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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한 기대 (삶)/책과 삶

K. Barth, einfuhrung in die evangelische theologie, 이형기역, "복음주의 신학입문",크리스찬 다이제스트. 9장 신앙부분

by 바울과 함께 걸었네 2011. 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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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장 신앙

신앙이란 신학의 절대필수 조건이 아니다. 다시말하면 신앙이란 사건이요 역사인바 이것없이는 인간이 아무리 훌륭한 가능성을 소유했어도 그는 기독교인이나 신학자가 될수도 없고 기독교인이나 신학자도 아닐수 없다. (p111)

몇가지 강조점
1. 우리는 보통 신학자가 되기위하여 그리고 신학자이기 위하여 믿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신앙은 인간에게 부여된 하나님의 은총에 대하여 감사를 통하여 응답하는 것이요. 이은총의 자명한 결과이다. 이는 싹에서 꽃으로 자라고 그리고 꽃이 태양을 향하여 움직이는 것과 비교될만하고 흥미있는 일을 만날때 웃는 아이의 자명한 웃음에 비교될만하다. (p113)

2. 신앙이란 하나의 역사이다. 신앙이란 매일 아침새롭다. 
신앙은 어떤상태나 속성도 아니다. 신앙은 명제적 진리 조항들에 대한 신념(glaubigkeit)이 아니다. 
신앙이란 "그 무엇을 믿는것" (credere quod....)이 아니라 사도신경의 표현대로 "그 누구에 대한 신앙" (credere in....)이다. 그런데 이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이시다. 
즉 모든 서술어들의 주어이신 하나님 자신을 믿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매일 아침 새롭게 일어날수 있는 것인바 "지서에을 추구하는 신앙에 의하여"(fide quaerente intellecrum)만 가능하다. (p114)

3. 신학자에게 꼭 필요한 신앙의 순수성과 견고성에 대한 표준은 이 신앙이 특별히 강하고, 깊고, 불같은 신앙이라는 사실에 있지않다. 이 신앙이 상당히 약하고 가냘프고 바람부는 인생행로와 인생의 여러사건들 속에서 가물거리는 신앙일지라도 이것은 문제되지 않는다. 

4. 누가 만약에 자신이 "소유 했다"든지, 신앙이 그에게 결핍하고 있지 않다든지 그래서 그는 "믿을수 있다"고 한다든지 그렇게 주장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확실히 신앙하고 있지 않은사람이다. 정말 신앙하는 사람은 "자신의 이성과 능력"으로는 도저히 믿을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고백한다. 

그는 "주여 나의 불신앙을 도우소서" 라고 하는 간청의 기도 없이 "나는 믿나이다" 라고 말할수 없다(p115)

K. Barth, einfuhrung in die evangelische theologie, 이형기역, "복음주의 신학입문",크리스찬 다이제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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