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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을 따라 (교회와 공동체)62

창동염광교회 50년사 축사_ 안교성교수 2022년은 창동염광교회가 50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희년을 위한 많은 행사가 있었다. 그중에서 내 나름대로 가장 의미있고 가장 오랜기간 준비되어온 기념식이 있다면, '창동염광교회 50년사 출판감사기념 예식' 일것이다. 창동염광교회 50년사 출판 감사예식... 이 예식은 작년 2022년 12월 22일 염광교회 비전홀에서 치뤄졌다. 황성은 담임목사님께서 삼상 7장 10~12의 본문으로 '에벤에셀의 돌' 이라는 제하의 말씀으로 선포 후, 장로회신학대학교 역사신학 안교성교수께서 축사를 맡아주셨고, 그 내용을 실어놓았다. “ 출간을 축하하며”, 2022.12.22. 안교성,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 먼저 창동염광교회가 희년을 맞게 됨을 축하드립니다. 특히 출간을 축하합니다. 출간은 마땅히 축하해야 할 몇 가지 이유.. 2023. 1. 14.
염광교회 50년사 / " 단 하루를 살다 죽어도 소명으로 사는 인생은 행복한 인생입니다." 백년을 산다 해도 맹목적으로 사는 인생은 허무한 인생입니다. 단 하루를 살다 죽어도 소명에 사는 인생은 행복한 인생입니다. 인생의 참된 의미라는 것은 세월의 길고 짧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소명의식에 있기 때문입니다. 최기석목사, "보내심을 받은 교회," 2000.4.30 설교 중. 최기석 목사는 1939년 음력 11월 5일 전라북도 정읍에서 전주 최씨 가문의 최구열 집사와 박양녀 권사의 8남매중 차남으로 출생하였다. 최기석목사가 늘 고백했던데로 그는 작고 약하게 태어났다. 질그릇 같은 존재요 꺼져가는 등불이었다. 그러나 그에게 그것은 약할때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였다. "나는 원래 작고 약하게 태어났습니다. 나의 인생은 깨어진 질그릇 꺼져가는 등불이었습니다. 이것이 오히려 너무나 크신 하나님의 은혜인줄.. 2022. 2. 24.
염광교회 50년사 / 아름다운 교체이야기 2. " 비록 절룩거려도 이젠 이스라엘입니다." 창동염광교회 2대목사 황성은목사 청빙과 위임식과정 2008년 11월 18일 당회에서는, 후임 담임목사 청빙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하였다. 임목사 청빙위원회는 위원장 홍희천 장로, 위원 김우택 장로, 안소모 장로, 도정택 장로, 최경석 장로 총 5명으로 구성되었다. 2009년 6월 14일 청빙위원회가 당회장 최기석 목사에게 올린 「후임 담임목사 추천」 문건에 의하면, “후임목사 청빙위원회에서 본 교회 담임목사 후임에 현재 제주성안교회 담임목사로 시무하고 있는 황성은 목사(47세)가 가장 적임자로 판단되어 추천합니다.”라고 하였고, 이후 후임목사 청빙과 최기석 목사 은퇴 준비에 관한 모든 일들이 추진되어 나갔다. -창동염광교회 50주년사 편찬위원회- 후임목사 청빙위원회가 최기석 목사 후임으로 제주성안교회 담임목.. 2022. 2. 24.
염광교회 50년사 / 개척이야기2. “여호와를 위하여 이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를 위하여 그곳에 단을 쌓고” 1972년 4월 30일 오전 11시에 창동염광교회 창립의 첫 예배를 드렸다.이 예배에 참석자는 용산구 청파동교회 양태선 장로, 주순검 은퇴목사, 미군 2사단 운전병 장 상병,그리고 고향을 떠난 최기석 목사의 가족들로 모두 합하여 12명이었다.최기석 목사는 창세기 12장 1∼9절을 본문으로 “여호와를 위하여 이곳에 제단을 쌓고”라는 설교를 하였고이때 작은 수의 교인들이 부른 찬송은 창동 들녘을 넘어 널리 울려 퍼졌다. -창동염광교회 50년사 편찬위원회- " 고로 우리의 마음의 제단 기초위에 보이는 교회도 세워져야 한다. 이것이 참교회이다. 교회의 가장 급선무는 화려하고 웅정한 교회당만 드높이 짓는데 있지 않고 우리의 마음의 성잔을 아름답게 건축해야할 초비상 시기에 이르.. 2022. 2. 20.
염광교회 50년사 / 개척이야기1. “소금으로 빛으로 살라” 창동지역 유래 창동이라는 지역명은 양곡 창고(倉庫)가 있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유래된 것으로, 창마을, 창말, 창촌(倉村) 등으로도 불렸다. 창동은 원래 경기도 양주목 해등촌면 산하의 유만리, 마산리, 창동리 중 하나인 창동리였고, 1895년 갑오개혁 이후 한성부 양주군 해등촌면 창동리가 되었다가, 1896년 경기도 양주군 해등촌면 창동리가 되었다. 1914년 해등촌면과 노원면이 노해면으로 합쳐지고, 유만리, 마산리, 창동리가 통합되면서,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 창동리가 되었다. 해방 후에는 1963년 서울특별시 성북구 창동, 1973년 도봉구 창동, 1988년 노원구 창원, 1989년 도봉구 창동 등으로 계속 관할구역이 바뀌었다. 창동은 해방 후 1970년 쌍문동이 분리·신설되었고, 1975년 월계동이 분.. 2022. 2. 20.
염광교회 50년사 / 부흥과 성장 이야기 5. "민족복음화 세계선교" 민족복음화 세계선교 하나님께서 교회에 부흥과 성장을 주신 것은 다름아니라 민족을 섬기고,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함이다. 1978년의 창립6주년 기념예배 설교에서 최기석목사는 성도들과 그 고민을 나누었다. 그런의미에서 1978년 염광교회의 창립6주년은 민죽복음화와 세계선교라고 하는 넓은 지경으로 부르심에 응답하고 발돋움하는 시기라고 할수있다. 이때 최기석 목사는 성경과 역사를 통해 얻은 해답은 창동염광교회가 ‘민족구원과 세계복음화’를 위해 ‘고난받는 교회’, ‘십자가를 지는 교회’되어야 한다는 것임을 밝혔다. 이제 개척한 지 여섯 돐이 지난 오늘, 우리 교회는 최소한의 건물이 확보되었다. 가족 수효도 외롭지 않을 만큼 늘어났다. 재정도 과히 궁색하지 않을 만큼 늘어났다. 그럼 우리는 이것으로 만족할 것.. 2022. 1. 29.
염광교회 50년사 / 부흥과 성장 이야기 4. "교회학교, 밤이 오기전에" 1975년 5월 말 건축허가가 나와, 창동87-1번지에 대지 177평 건평 60평의 본당이 완공되었고 1975년 7월 6일 입당예배를 드렸다. 1976년 10월 초에 교회 옆에 반지하로 교육관(30평)과 그 2층에 목사관(15평)이 완공되었다. 1976년 10월 초에 교회옆에 반지하로 교육관이 완공된다. 이미 1972년 5월14일자 주보에 따르면 아동부를 지도할 교사를 모집하는 광고를 낸다. "어린이 교회학교를 지도할 교사를 찾고있습니다. 희망하는 분은 자청하여주시기 바랍니다." , 1972.5.14. 아동부 1972년 5월14일 주일 오후 2시 아동부 학생 48명(남자28명, 여자20명)을 모아 함께 분반 공부를 시작함으로 교회학교가 시작되었다. 이후 1973년에는 아동부 숫자가 78명 그리고 1974.. 2022.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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