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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석목사8

염광교회 50년사 / 아름다운 교체이야기 2. " 비록 절룩거려도 이젠 이스라엘입니다." 창동염광교회 2대목사 황성은목사 청빙과 위임식과정 2008년 11월 18일 당회에서는, 후임 담임목사 청빙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하였다. 임목사 청빙위원회는 위원장 홍희천 장로, 위원 김우택 장로, 안소모 장로, 도정택 장로, 최경석 장로 총 5명으로 구성되었다. 2009년 6월 14일 청빙위원회가 당회장 최기석 목사에게 올린 「후임 담임목사 추천」 문건에 의하면, “후임목사 청빙위원회에서 본 교회 담임목사 후임에 현재 제주성안교회 담임목사로 시무하고 있는 황성은 목사(47세)가 가장 적임자로 판단되어 추천합니다.”라고 하였고, 이후 후임목사 청빙과 최기석 목사 은퇴 준비에 관한 모든 일들이 추진되어 나갔다. -창동염광교회 50주년사 편찬위원회- 후임목사 청빙위원회가 최기석 목사 후임으로 제주성안교회 담임목.. 2022. 2. 24.
염광교회 50년사 / 아름다운 교체이야기 1. " 너는 내 것이라" 최기석목사 은퇴식 2009년 8월 2일 오후 1시 45분 당회실에서 열린 최기석 목사 은퇴준비위원회는 최기석 목사 은퇴식 일정을 세워, 2009년 8월 16일 최기석 목사를 원로목사로 당회에서 추대하고, 8월 23일 공동의회에서 결의하여, 11월 1일 최기석 목사 은퇴감사예배를 드리기로 결정하였다. 또한, 공로목사 추대를 시찰회에 상정하기로 하였다. 같은 날 오후 17시22분 열린 임시당회에서, 최기석 목사 은퇴에 따라 후임목사로 제주성안교회 황성은 목사를 위임목사로 청빙하기로 하고, 최기석 목사 은퇴기념 설교집 "너는 내 것이라" 발간에 따른 편집 준비위원으로 이종범, 최경석, 박재완 장로를 선정키로 결의하였다. 11월 1일(주일) 오후4시 찬양예배 때, “최기석 목사 원로목사추대 감사예배”가 거행되었.. 2022. 2. 24.
염광교회 50년사 / 개척이야기2. “여호와를 위하여 이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를 위하여 그곳에 단을 쌓고” 1972년 4월 30일 오전 11시에 창동염광교회 창립의 첫 예배를 드렸다.이 예배에 참석자는 용산구 청파동교회 양태선 장로, 주순검 은퇴목사, 미군 2사단 운전병 장 상병,그리고 고향을 떠난 최기석 목사의 가족들로 모두 합하여 12명이었다.최기석 목사는 창세기 12장 1∼9절을 본문으로 “여호와를 위하여 이곳에 제단을 쌓고”라는 설교를 하였고이때 작은 수의 교인들이 부른 찬송은 창동 들녘을 넘어 널리 울려 퍼졌다. -창동염광교회 50년사 편찬위원회- " 고로 우리의 마음의 제단 기초위에 보이는 교회도 세워져야 한다. 이것이 참교회이다. 교회의 가장 급선무는 화려하고 웅정한 교회당만 드높이 짓는데 있지 않고 우리의 마음의 성잔을 아름답게 건축해야할 초비상 시기에 이르.. 2022. 2. 20.
염광교회 50년사 / 개척이야기1. “소금으로 빛으로 살라” 창동지역 유래 창동이라는 지역명은 양곡 창고(倉庫)가 있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유래된 것으로, 창마을, 창말, 창촌(倉村) 등으로도 불렸다. 창동은 원래 경기도 양주목 해등촌면 산하의 유만리, 마산리, 창동리 중 하나인 창동리였고, 1895년 갑오개혁 이후 한성부 양주군 해등촌면 창동리가 되었다가, 1896년 경기도 양주군 해등촌면 창동리가 되었다. 1914년 해등촌면과 노원면이 노해면으로 합쳐지고, 유만리, 마산리, 창동리가 통합되면서,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 창동리가 되었다. 해방 후에는 1963년 서울특별시 성북구 창동, 1973년 도봉구 창동, 1988년 노원구 창원, 1989년 도봉구 창동 등으로 계속 관할구역이 바뀌었다. 창동은 해방 후 1970년 쌍문동이 분리·신설되었고, 1975년 월계동이 분.. 2022. 2. 20.
염광교회 50년사 / 부흥과 성장 이야기 4. "교회학교, 밤이 오기전에" 1975년 5월 말 건축허가가 나와, 창동87-1번지에 대지 177평 건평 60평의 본당이 완공되었고 1975년 7월 6일 입당예배를 드렸다. 1976년 10월 초에 교회 옆에 반지하로 교육관(30평)과 그 2층에 목사관(15평)이 완공되었다. 1976년 10월 초에 교회옆에 반지하로 교육관이 완공된다. 이미 1972년 5월14일자 주보에 따르면 아동부를 지도할 교사를 모집하는 광고를 낸다. "어린이 교회학교를 지도할 교사를 찾고있습니다. 희망하는 분은 자청하여주시기 바랍니다." , 1972.5.14. 아동부 1972년 5월14일 주일 오후 2시 아동부 학생 48명(남자28명, 여자20명)을 모아 함께 분반 공부를 시작함으로 교회학교가 시작되었다. 이후 1973년에는 아동부 숫자가 78명 그리고 1974.. 2022. 1. 29.
염광교회 50년사 / 부흥과 성장 이야기 2. "111 5,000명 초청예배" 염광교회 부흥과 성장의 원동력 「111 5,000명 초청예배」 창립 10주년을 맞아 장년만 낮주일예배 참석인원 1천 명을 목표로 하면서 이미 전체 교인 수는 1천 명이 넘는 교회로 성장하여 앞으로 더 큰 발전의 가능성을 보게 되었다. 이에 교회 성장에 더욱 박차를 가하였는데, 특히, 창동염광교회가 극적인 성장을 이루게 된 계기는 1987년 11월 1일에 드려진 「111 5,000명 초청예배」였다. 이를 위해 당회를 비롯 온 교우들이 하나되어 ‘111작전’이라고도 불렸던 전도 작전에 아낌없이 힘을 쏟았다. -창동염광교회 50주년 편찬위원회- 1. 1987년 3월 29일(주일) 총동원전도주일 1987년 3월 8일자 『주보』에, “3월은 우리 염광인들의 전도의 달”이며, 특히 3월 마지막 주일(29일)은 총동.. 2022. 1. 15.
염광교회 50년사 / 부흥과 성장 이야기 1. "일어나 빛을 발하라" "일어나 빛을 발하라" 창동염광교회는 1973년 2월 4일 『주보』에 새해를 맞아 교인들이 새로운 다짐을 하도록 ‘표어’를 정하고 이 주제 아래에 ‘우리 교회가 지향하는 목표’를 제시하였다. 표어에는 그 근거가 되는 성경말씀이 제시되어 있다. 이 날의 『주보』에 실린 표어와 목표는 아래와 같다 우리 교회가 지향하는 목표 1.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교회 2. 복음선교의 사명을 가진 교회 3. 성도의 사귐이 있는 교회 4. 이웃과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교회 이해의 표어: 「일어나 빛을 발하라」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한 3서 2절) 1945년부터 90년까지는 한국기독교의 급성장기라고 할수있다. 세계를 놀라게 할만한 경이적인 양적인 성장이 이루.. 2022. 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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