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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한 기대 (삶)/신뢰의 길

평강(平康, peace)

by 바울과 함께 걸었네 2018. 5.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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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강(平康, peace)

'이 세상의 근심된 일이 많고

참 평안을 몰랐구나'

 

평강(평안)은 무엇일까? 

저마다 평강 즉 내적 행복을 찾아 헤맨다.

그리고 물어본다. 나는 진심으로 행복한가? 나는 평안한가?

 

우리는 사실 그것을 안다. 진정한 행복은 이 세상에서는 맛볼수 없는 것이라고 말이다.

왜냐하면 저마다 우리는 바쁘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는 내려놓을때 평안하다고 말한다.

어느 누구는 소소하고 확실한 그 무엇에서 평안을 누릴수 있다고 말한다.

어느 누구는 버릴때, 잠시 멈출 때 평안을 누릴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어느 누구는 언택트 기술.... 또는 나만의 휴식공간(케렌시아)와 같은 공간에서 평안할수 있다고 말한다.[각주:1]

그래서 우리는 때로는 도망을 선택한다. 내려놓고 멈추고 회피한다.

관계의 접촉을 지우려고 한다. 혼자만의 세계에서 예배드리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해서

교회 안나가! 한다. 그런데 그것이 정말 행복을 가져다 줄까.

평강은 무엇일까?

요한복음 20장 19절~23절을 보면 죽음의 위기속에서 제자들은 평안을 위해 자신들의 공간을 만들었다.

그들의 사명을 잠깐 멈추고 내려놓고 모여있다. 어떤 제자들은 그자리에도 없었다.

그런 그들에게 우리주님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신다.

 

예수님께서 하신 인사는 제자들에게 늘 하셨던 인사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 인사는 그날에는 굉장히 특별한 인사였다.

제자들은 평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신의 손과 옆구리의 상처를 보여주신다. 그리고 그 상처를 본 이들은 크게 기뻐하였다.

두려움과 불안의 장소가 기쁨의 장소로 바뀌었다.

 

여기서 질문이 생긴다. 평강이란 무엇일까?.....

평강은 내려 놓는 것도..... 도망가는 것도...... 잠시 멈추는 것도 아니다.....

평강은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고 그곳에서 소소하게 행복하게 사는 것도 아니다....

타인과의 접촉을 지우기위해서 관계하지 않고 홀로지내는 것도 아니다.....

 

평강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못자국과 옆구리의 창자국을 보는 것이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실제로 죽으셨고 다시 사셨다는 것을 보이시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조금 깊이 들여다 보면 평강은 죽음의 문제와 잇닿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죽음의 문제가 자리 잡은 존재는 평강할수 없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이땅에 오셨고 죽으셨다.

그리고 모든 인간의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주셨다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주셨다.

 

평강은 무엇일까?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흔적을 보는 것이다. 그리고 부활의 흔적을 만지는 것이다.

십자가의 흔정은 무엇일까? 그것은 세상의 가치관을 저항해내는 흔적이요.

부활의 흔적은 현재를 살아가는 능력의 흔적이다.

 

십자가와 부활은 이 세상의 가치관을 따르지 않고 현실을 하나님의 나라의 방식으로 따르겠다는 삶의 고백인 것이다.

이러한 삶에서 진정한 평강이 나온다.

 

평강이 무엇일까?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타난 십자가의 사랑이 우리의 죽음보다 그리고 생명보다 귀하다.

그리고 파도같이 불어닥치는 숨막히는 전쟁과 같은 삶보다 더 강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이 거친 풍랑에도 깊은 바다처럼 우리를 잔잔하게 한다.  

그것을 우리는 평강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그 십자가에 나타난 사랑에 압도되어 그 안에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평강을 누릴 수 있다.

오직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안에서라야 우리는 진정한 평강을 누릴 수 있다.
 

 

  1. https://m.blog.naver.com/daishin_blog/221135522836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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