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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한 기대 (삶)/책과 삶

존스토트의 그리스도의 십자가(IVP)를 읽고 3부

by 바울과 함께 걸었네 2009. 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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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부 십자가 성취

제 7장 죄인의 구원

하나님은 자신의 거룩한 사랑의 완전함에 마음이 움직여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죄인을 위하여 자신을 대속물로 내주셨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핵심이다.
이것은 이제 우리를 그 사건으로부터 그 사건의 결과로 이끈다. 즉 십자가에서 벌어진 일에서부터 그것이 성취한 결과로 이끈다. 하나님은 왜 우리를 대신 하시고 우리의 죄를 담당 하셨는가? 하나님이 자기희생에 의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심으로써 이루신 것은 무엇인가? 신약성경은 이런 질문에 대하여 세가지 주된 답변을 제시하는 이것을 요약하면 구원, 계시, 정복이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십자가를 통하여 이루신 일은 우리를 구하신 것이고 악을 정복하신 것이다. 존 스토트는 이 장에서는 십자가를 구원에 초점을 맞춘다.

만약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지 않으셨다면 구속도, 칭의도, 화목도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화목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죄가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일으키며 이것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과 단절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누가 화목을 이루는가? 복음은 우리가 서두에서 살펴본 것처럼 어느 누구도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돌이킬 수가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화목제물로 세우셨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기 아들을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로 보내셨다. 하나님의 사랑은 속죄의 결과가 아니라 속죄의 원천이라는 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칠수 없다.
 셋째로
무엇이 희생 재물이었는가? 그것은 어떤 물건 어떤 동물도 식물도 아닌 한 인격이었다. 그 인격은 바로 하나님 자신이셨다. 그분의 아들을 주심으로써 그분은 자신을 주신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화목에 관한 이세가지 질문에 대한 우리 대답의 중심은 하나님 자신이다. 거룩한 진노속에서 그 노가 진정되어야 하는 이는 하나님 자신이며 또한 우리 죄를 위한 화목을 위하여 그 아들 속에서 죽으신 이도 하나님 자신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그분의 아들이 우리를 대신하여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을 때, 그 아들안에서 스스로 자신의 의로운 진노를 담당하심으로써 자신의 노를 진정시키기 위한 사랑의 주도적 행동을 취하신 것이다.

이제 우리는 화목에서 구속으로 넘어간다. 화목은 십자가에 의하여 진정되어야 하는 하나님의 진노에 초점을 맞춘다 한편 구속은 십자가에 의하여 죄인이 속함을 받아야하는 바 죄인의 궁지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므로 우리의 몸은 창조에 의하여, 구속에 의하여 그리고 내주하심에 의하여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이 우리의 것이 아닌 이상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셨으므로 이제는 다른 어떤 사람이 아나 다른 어떤 것에도 종노릇할 이유가 없다. 과거에 우리는 죄의 종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리스도의 종이 되었으며 그분에 대한 봉사는 참된 자유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생각해 왔던 두 개의 그림은 우리를 성전 경내(화목)와 시장(구속)으로 인도하였다. 하지만 이제 세 번째 이미지는 우리를 ‘칭의’라는 법정으로 인도할 것이다. 여기서 존스토트는 칭의에 대한 바울의 변호를 요약하기 위해 네 개의 핵심어구를 선택하여 설명하는데, 먼저 우리의 칭의의 원천은 그분의 은혜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는 것이다 .
 둘째로 우리의
칭의의 근거를 이야기하는 바울의 다른 핵심 표현은 그의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음이다.
 셋째로
칭의의 수단은 이신칭의라는 말에 의하여 표현된다. 즉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칭의의 원천이고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의 칭의의 근거다 믿음은 우리가 그것을 통하여 연합되는 수단일 뿐이다.
 넷째
우리의 칭의가 가져다주는 효과는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었다는 표현에서 추론해 낼 수 있다고 한다.

십자가의 성취를 보여주는 구원의 네 번째 이미지는 ‘화해’다. 화해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화해한다는 것은 관계를 회복한다는 것, 우정을 새롭게 한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여기서 전제되는 것은 원래의 관계가 있었는데 그것이 파괴 되었다가 그리스도에 의하여 다시 회복된다는 것이다.

제 8장 하나님의 계시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성취뿐만 아니라 계시로도 이해되어야 한다. 성육신 속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아들의 스스로 낮아지심은 그분의 죽으심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하지만 자신의 바로 그 낮아지심 속에서 그분은 ‘돌림받으시는데’ 이것은 단지 예수님이 육신적으로 십자가 위에 높이 달리셨다는 것을 의미할 뿐 만아니라, 영적으로도 온 세상이 보는 앞에서 높임을 받으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로 그분은 ‘영광을 입으셨다’겉으로 보기에는 ‘수치’였던 그 십자가는 ‘영광’이었던 것이다.

또한 십자가는 죄를 심판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의와 죄인을 의롭게 함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자비를 동시에 분명하게 나타내고 있다. 왜냐하면 이제는 그 아들의 대속적 죽음의 결과로 하나님은 의로운 분이신 동시에 그 아들을 믿는 자들을 ‘의롭게 하는’분이 되실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의를 훼손하지 않고도 불의한 자에게 의로운 위치를 내려 주실 수 있게 되었다. 십자가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다”(롬5:8) 그 사랑은 바로 하나님 자신의 독특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사랑의 강한 증거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그분의 아들을 주셨을 뿐만아니라, 그분의 아들을 우리를 위하여 죽게 하려고 주신 것이며, 우리 같은 아무 자격도 없는 죄인을 위하여 그렇게 하셨다는 것이다.
십자가는 구원의 길로서는 가장 연약하고 어리석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가장 위대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즉 십자가는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십자가를 볼때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과 아울러 지혜와 능력중에 어느 것이 가장 현저하게 계시되는지 즉 죄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완전하게 결합시키신 하나님의 지혜인지 또는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인지를 결정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십자가는 하나님의 공의, 사랑, 지혜, 능력의 동일한 행동이며, 그리하여 그것들을 동일하게 확증하기 때문이다. 십자가는 이하나님이 우주안의 우주의 배후의 그리고 우주 너머의 실재임을 우리에게 확신시킨다.

제 9장 악의 정복

성경에서 마귀에 대한 하나님의 정복은 여섯단계로 묘사되고 있다
첫 번째 단계는 예언된 정복이다. 구약에서 에덴동산에서 첫 번째 예언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 단계는 예수님의 사역속에서 시작된 정복이다.
 그러나 그 강한자를 제압하는일 혹은 묶는 일은 세 번째의 결정적인 단계,
 즉
십자가에서의 성취된 정복때까지는 이루어 지지않았다. 하나님은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우리의 빚을 갚아 주심으로써 우리의 파산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하나님은 “그 빛을 제하실 뿐아니라 그것이 기록되어 있는 문서까지도 없에 버리신다.”
넷째로
부활은 확인되고 선언된 정복이었다. 우리는 십자가를 패배로 생각하고 부활만을 승리로 간주하지 않아야 한다. 도리어 십자가는 획득된 승리이고 부활은 추인되고 선언되며 입증된 승리인것이다.
 다섯째로 교회가 성령의 능력으로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선포하고 사람들을 불러서 회개 시키며
그리스도를 믿게하는 사명을 수행함으로 이 정복은 확장된다.
 여섯째 우리는
재림 시에 그 절정에 이를 정복을 기대하고 있다 이것으로 우리는 몇가지 중요한 정보를 얻는데 복음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모두 포함한다. 왜냐하면 만약 예수님이 부활하시지 않았다면 그분의 죽음에 의해 성취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복음은 십자가를 강조한다. 왜냐하면 승리가 입증된 곳이 바로 십자가 였기 때문이다 부활은 죄와 죽음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확신을 우리에게 심어 주는 것이다 우리의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는 것은’(벧전1:3, 21) 부활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승리는 그리스도의 승리안으로 들어가서 그 승리의 유익을 즐기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할수있다. 우리는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지금 천상의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심을 알고 있다. 하나님의 은혜로운 능력에 의하여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한 우리는 또한 그분의 보좌에 참여 하는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그 승리에 참여하는 그순간 적어도 네가지 영역에서 우리는 자유함을 얻을수 가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더 이상
율법의 폭정, 육신의 폭정, 세상의 폭정 그리고 죽음의 폭정 아래 있지않다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에 의하여 시작된 ‘새로운 시대’는 율법이 아니라 은혜가, 육신이 아닌 성령이, 세상의 풍속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그리고 죽음이 아니라 풍성한 생명이 그 특징을 이룬다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하여금 들어 갈수 있게 해주신 그 승리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카테고리 종교
지은이 존 스토트 (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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