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을 중심에 두지 않으면 노동자는 ‘자연스럽게’ 죽을 수 있다는 것이다.
“뒤집으면 기업이 안전해진다는 것은 부자연스러워진다는 것이다. 자본 축적이 최우선 순위인 일터에서 자본 축적과 무관하고 때로는 자본 축적에 역행하는 선택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안전을 택한다는 것은 시중에 널린 값싼 유해물질 대신 비싸고 무해한 물질을 부러 찾아 나서는 것이다. 하청업체들끼리 알아서 소통하길 기대하지 않고 총괄 소통 담당자를 따로 뽑는 것이다.
생산과 안전이 대립할 때, 적극적으로 개입해 대책을 찾고 생산에 차질이 생기는 상황도 감수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언제 돈을 버냐고 묻는다면, 그러다 사람이 죽는 게 낫겠냐고 반문할 수밖에.
김겨울 작가·북 유튜버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62123
위의 사설처럼 기업이 안전해 진다는 것은 부자연스러워 진다는 것이다. 자본축적이 아니라 사람을 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교회가 안전해 진다는 것은 무엇일까? 교회는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도 자본축적을 목적으로 하는 공동체도 아니다.
교회는 사람을 택하는 공동체다. 그래서 사람을 세운다. 그러나 교회가 사람이 아닌 자본축적을 택하면 교회는 흔들린다.
교회가 안전해 지기 위해 사람을 세우기 위해 애를 쓰고 소통하기위해 애를 쓴다. 다음세대를 키우기 위해서 위해 다른 예산을 절감하면서 싸지 교회학교 중심의 예산을 세운다. 교회의 안전요소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2014.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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