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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한 기대 (삶)/신뢰의 길

기억 (記憶), 부재를 살려냄

by 바울과 함께 걸었네 2017. 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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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주 라는 작가가 쓴 "언어의 온도" 라는 책을 보고있다.

"언어에는 나름의 온도가 있습니다. 따뜻함과 차가움의 정도가 저마다 다릅니다.
온기있는 언어는 슬픔을 감싸 안아줍니다."

 

언어에는 온도가 있다. 살아있다는 뜻이다.

언어는 살아있다.

그래서 기억해내고 생기를 주며, 절망하게도 만든다. 죽이기도 한다.

 

나는 지금 어떤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가? 고민된다.

부재의 존재 라는 글에서 문득....

 

그리운 맛은 그리운 기억을 호출 한다 라는 글귀가 마음이 간다.

 

사실 역사신학을 전공하면서 현재는 허상과 같다고 여겼다.

왜냐하면 시간이 흐르면 사라지니까.

현재를 붙들수 없으니까.

모두 과거가 되니까 말이다.

 

현재는 과거의 기억속에서 존재한다.

기억하지 않으면 부재로 이어진다.

그러니 현재는 허상과 같다고 생각하였다.

 

작가의 글은 그리운 그 어떤 것을 현재에서 마주대할때

그리운 기억을 호출한다고 말하고 있다.  

 

어느덧 현재는 허상이라는 깊은 허무함에 잠길즈음

아내가 이런 말을 했다.

 

현재는 허상이 아니라고, 기억해 낼때 다시 존재하게 된다고....

그말의 의미를 조금 알거같다.

 

그리운 것, 붙들지 못한 현재를 떠올려 낼때

과거의 기억을 호출해 낼때,

우리는 비로소 부재의 존재를 느끼게 된다.

 

그런의미에서 망각은 죽음과 같다.

망각은 부재의 존재조차도 죽이는 것 같기 때문이다.

 

부재의 존재를 느낀다.....

그 기억이 실로 두터워 질 소위 나이 듦이라는 시간이 깊어지면,

부재의 존재를 더욱 깊이 느낄라나?

그냥 내내 허무해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기억이 내가 함께 먹으며 살았던 사랑하는 이들을 살려내고

그리운 곳을 살려내며 존재를 느끼도록 그 힘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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