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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한 기대 (삶)/책과 삶

잃어버린 언어를 찾아서를 읽고

by 바울과 함께 걸었네 2016. 1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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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잃어버린 언어를 찾아서

바바라 브라운 테일러 저/정다운 역
비아 | 2016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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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잃어버린 단어들이 너무 많다. 그 단어들을 되찾기 위해서는 인간 경험의 중심부로 들어가야 한다.

1) 서론 : 기대속으로

 

본서의 저자는 바바라 브라운 테일러 이다. 저자는 이미 설교자로서 명성을 떨치고 있는 목회자로서 본 필자 역시 설교학 시간이나 설교자들의 예화에서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명사이다.

 

"잃어버린 언어를 찾아서"로 명명된 본서는 이미 1999년 헤이스팅스 강연의 강연자로서 강연한 내용, 바턴칼리지의 스프링클 강연에서 강연한 내용을 바탕으로 발간한 책이다.

 

본서는 한 설교자가 오늘날 교회가 잃어버린 언어에 대해서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그 언어를 되살리기 위한 묵상과 인간 경험의 본연의 깊은 곳으로 나아가도록 돕는데 그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특별히 언어는 각 공동체가 특정현실과 마주했던 경험에 따라 형성된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한 공동체가 어떤 언어를 쓴다는 것은 그 공동체의 고유한 가치가 담겨져 있다고 본다. 그런데 어느덧 우리의 고유한 가치를 반영하는 언어들은 현대의 문화와 시대적 상황아래에서 급격하게 변화 내지는 퇴보되었고 상실하게 된 것들도 많이 있다.

 

저자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잃어버린 수많은 언어들중에 죄, 참회 그리고 구원을 어떻게 회복시킬수 있을지에 대해서 아주 섬세하고 주도 면밀하게 살펴보고있다.

 

2) 본론 : 책속으로

 

1. 잃어버린 구원의 언어,

왜 오늘날 구원의 언어를 잃어버렸을까? 저자는 교회안에 은총과 용서만을 들으려 하는 사람들 그리고 삶과 마음의 허기를 채워주는 신에 관한 말만 하는 교회를 이유로 꼽았다.

무엇보다 먼저 구원이라는 언어를 말하려면, 우리의 죄요 본질상 진노의 자녀가 된 우리의 상태를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텐데 성도들도 그렇고 교회도 듣고싶지 않은 말 하고 싶지 않은 불편한 말을 하려고도 들을려고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속에서 우리는 구원의 언어를 잃어버렸다.

 

그리고 둘째로, 구원의 언어를 잃어버린대는 현대의 사조를 이해하지 않고는 찾기 어렵다. 왜냐하면 이 현대의 사조에서 살아남기 위해 교회는 어떻게 응답하였으며 대응하였는지 살펴봄으로서 구원의 언어들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알수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다원주의, 포스트 모더니즘 그리고 세속주의를 이야기 한다. 그러면서 이들과의 대화가 우리의 구원을 식별하게 하며 명확하게 한다고 그는 말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서평자로서 불성실하게 묻고 싶다. 왜 구원에 관하여 굳이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우리의 언어를 찾는 작업들을 해야하느냐 였다. 그에 대한 대답을 찾기는 어려웠으나, 저자는 본 장의 마무리 즈음에 폴 틸리히(Paul Tillich)의 말을 인용하여 이렇게 밝히고 있다.

"그러나 잃어버린 언어를 다시 발견할수 있는 길이 있다. 우리는 인간 경험의 심연으로 가야한다."

 

즉 죄와 구원을 말하기 위해서 우리 경험의 중심부로 헤엄쳐 들어가야한다. 즉 우리가 잃어버린 언어를 회복하기 위해서 우리의 삶의 중심부로 들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 경험의 중심부, 그것이 내적 중심이든지 외적 중심이든지 그 중심부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시대적 사조의 중심으로 들어가고 내면의 깊은 중심으로 들어가는 과정과 작업속에서 우리는 잃어버린 언어를 찾을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처한 현대의 사조속에서 그리고 우리의 상태와 삶의 여정속으로 들어가는 과정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왜 잃어버렸는지, 그리고 어떻게 찾을수 있는지를 발견할수 있다.

 

2. 죄 우리의 유일한 희망

 왜 그리스도교는 죄의 언어를 잃어버렸을까? 이는 죄를 너무 절망적인 언어로 만들어버렸기 때문 아닐까 싶다. 죄는 절망적인 언어맞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죄는 절망적인 것 뿐아니라 희망을 품고 있다. 저자는 오늘 그 이야기를 우리에게 건네려고 시도하고 있다.

저자는 무수히 많은 죄에 대한 언어들중 몇가지를 정의한다. Chatah 라는 말은 '과녁을 벗어났다'는 말이다. Avah라는 단어는 잘못된 행동을 하다라는 뜻으로 종종 '죄악' 으로 해석한다. 세번째 Pasha라는 단어는 '반역하다'라는 뜻이다.

각 죄가 가지는 단어의 뜻은 달라도 분명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행위를 가르키는데 사용된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죄에 대해서 유기시킴으로서 심판하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에서 죄는 반드시 하나님앞에 나아가야하며, 변화를 촉구한다. 삶이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의미에서 죄는 '희망적'이다.라고 본다.

 

저자의 표현대로라면 "죄는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다.(78) 죄를 인정하는 것은, 그 아픔에서 일어나고 고통에서 일어나고 싶은 마음을 표현하게 한다. 죄인이라는 고백을 함으로서 묶이고 갇힌 것으로부터 해방을 위해 꿈틀댄다. 더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변화를 꿈꾼다. 그러므로 죄를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은 희망이 담겨 있는 것이다. 여기서 참회는 다음 단계로 나아가게 한다. 하나님과의 잘못된 관계에서 회복을 결단하도록 하며, 나에게 주신 자리를 받아들이고 공동체로 나아가도록 한다.(86)

 

죄는 우리의 유일한 희망, 진정한 회개의 가능성으로 우리를 깨우는 첫번째 경고음이다.(88)

 

3. 참회를 회복하기.

저자는 초기 사순절 기간의 '재의 수요일'의식을 돌아본다. 재의 수요일 의식중 이마에 재로 십자가의 성호를 그으면 "그대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것입니다." 라고 하는 선포가 이어진다. 이를 통해 우리가 죄인이며 흙이며, 죽은자임을 인정하게 한다. 그리고 깊은 참회의 시간을 갖고 회개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용서와 사죄의 선언을 선포한다.

 

일련의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진정한 참회란 무엇인지를 돌아본다. 저자는 용서에 대한 부분을 다루고 있다. 진정한 용서가 되려면, 무엇을 해야할까?

전통적인 입장에서는 죄에 대한 합당한 벌을 받은후에 용서가 이루어진다. 그런데 그렇다 하더래도 그 안에 남아있는 상처와 얼룩져있는 앙금까지 해결될수는 없다. 어쩌면 용서는 가장 마지막에 이루어지는 것같다. 결단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말이다. 누군가의 삶의 변화를 보고나서야 비로소 용서라는 말이 떠오르기도 하고 시간이 약이다 라는 말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용서는 무엇일까? 일단 저자는 오직 용서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이다라고 한다.  홀로 용서에 능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죄없는 자가 돌을 들어라 라고 하신 말씀같다. 누가 용서하겠느냐 라는 것이다. 마음에 가득 앙금을 품고 있으면서 용서하라고 용서하겠다고 하기 쉽지 않다.

흥미롭게도 저자는 용서에 대한 개념을 조금 뒤집는 듯한다. '용서는 종착지가아니라 출발점이다.'(117)라고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나도 그의미에 동감한다. 용서는 출발점이다. 우리의 변화의 출발점말이다.

우리가 용서받았다면, 이제 시작해야한다는 것이다. 삶의 변화로 나아가야하고 다시는 그 죄, 다시는 상처주는 일들을 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한다.

 

그러므로 용서에 대한 설교는 피해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당신 용서했으니 참으라가 아니라.

용서받았으니 다시는 그렇게 살지 말라 라고 대상이 바뀌어야 할것이다. 십자가의 용서가 그런의미이다. 용서는 잘못된 일을 바로 잡기 위해 내가 책임을 져야함을 받아들이는 행위다(122)

용서는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는데 출발점이 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심으로써 오래전에 이미 용서하심으로서 우리에게 새로운 공동체를 약속하신다. 이 새로운 공동체는.....참회하는 죄인들의 공동체다.(123)

 

3) 서평을 마무리하며,

바바라 브라운 테일러의 글이 깊은 것은 그의 고민이 깊이 뭍어있기 때문이다. 그가 잃어버린 언어인 죄, 참회 그리고 구원에 대한 언어를 되찾고자 하는 일상에서의 깊은 투쟁과 영적 아픔이 있었기 때문에 그의 글이 우리에게 잔잔한 영적 도전을 주고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우리에겐 잃어버린 단어들이 너무 많다. 그 단어들을 되찾기 위해서는 인간 경험의 중심부로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투쟁해야한다.

 

교회공동체는 그것을 가지고 함께 투쟁해야한다. 그때 비로서 저자의 표현대로 "교회는 우리의 두려움을 내려놓는 곳 우리의 굳어버린 마음을 여는 곳 고립에서 벗어나는 곳 꿈을 잃은 마음을 돌이킬수 있는 곳 그리하여 충만한 삶을 회복하는 곳."이 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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