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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한 기대 (삶)/책과 삶

정의를 위하여

by 바울과 함께 걸었네 2016. 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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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순, "정의를 위하여" 를 읽고
오늘날 정의란 무엇인가? 정의를 위하는 삶은 무엇인가? 에 대해 단순한 관심 뿐아니라 모든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 사실 지금까지 내가 읽어본 책들이며 세미나와 같은 강의들은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의 지평만 넓혀 주려는 시도일뿐 그 대안이나 우리가 과연 무엇을 해야하는가에 대해서 시원함은 주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얼마전에 읽은 권석천의 "정의를 부탁해"에서 그는 아주 날카로운 필체로 이렇게 적고있다. "정의는 사람이 내세우는 가치중 가장 떳떳한 것에 속한다. 그러나 무서운 무기이기도 하다."(권석천,2015)
그러나 지금 우리는 정의를 우리가 내세우는 가치중 가장 떳떳한 것이라고 말할수 있는가? 우리가 정의라고 말하는 것에 우리의 마음을 담고 몸을 맡겼을 때 그것이 무서운 무기일수 있는가.
필자는 강남순의 "정의를 위하여"라는 책을 통해서 정의를 위한 삶은 무엇인가? 과연, 그것이 우리에게 무서운 무기가 될수 있겠는가? 생각해본다. 저자는 현대 사회가 지닌 가장 위험스러운 악의 양태는 비판적 사유의 결여 라고 말하고 있다. 비판적 사유야 말로 악을 최소화 시키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주어진 관습과 편견 경쟁과 통제적 제도에 끊임없이 저항하는 정치적 행위라고 말한다.
정치적 저항은 결국 자유를 지닌 존재로서 살아있음을 향유하는데, 살아있는 존재야 말로 희망과 소망의 끈을 이어가는 존재이며 정의로운 삶을 사는 존재가 된다. 그러므로 정의로운 삶을 위한 열심은 곧 비판적 사유에서 시작된다.
무엇을 비판하여 무엇을 사유할것인가? 여전히 우리의 삶 주변에는 갑을론, N포세대, 인권 유린과 학대, 폭력들이 즐비해있다. 어떤이들은 젊은이들을 향하여 달관세대라고 까지 말한다. 청년들이 현실을 여행이나 그들의 즐기는 문화에 빠져 그져 인생을 향유하고 달관한다고 한다. 젊은이들의 절망과 실패의 경험은 이들을 철저히 고립시키고 게토화되어 분노사회가 만들어 지고 있다.
이러한 사회 문제의 중심에서 정의를 위한 삶은 무엇인가?
저자는 이러한 삶의 현상들은 결국 '나선형적 소통방식'을 통해서 성숙한 사회로 나아갈수 있음을 제시하고 있다. 즉 서로가 지닌 인식의 한계들을 넘어서고자 하는 비판적 문제제기를 인내심을 가지고 서로 주고 받으며 함께 나아가는 방식말이다. 저자는 표현과 해석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그 다양성속에서 사회적 연대와 책임의 가치를 모색하는 비판적 문제 제기들에 귀를 기울이면서 야만과 지성의 그 정교한 경계를 구분해야한다고 말하고 있다.
오늘날 비판적 사유의 결여는 소통의 부재에서 나온다고 볼수 있다. 그러니 점차 우리네 삶은 고립되어 희망보다는 절망과 분노로 치닫게 되는 것이다. 저자는 비판적 사유를 함께 존중하고 대화하는 소통의 방식을 제안하고 있다. 사회적 약자와 연대하고, 표현과 해석의 자유를 존중해주는 문화, 사회의 문제들을 풀어감에 있어서 비판적 문제제기를 통해서 좋은 시민사회를 만들어 갈수 있다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저항하는 존재로서 정의를 실현하는 방식이다. 비판적 사유와 소통 그리고 공동체적 연대 비판적 사유와 공동체적 연대를 이어주는 것은 소통인 셈이다. 그것이 저항하는 존재로서 정체성을 갖게한다. 그때 우리의 정의는 '우리에게 있는 가장 떳떳한 가치이며 무서운 무기'가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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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를 위하여 - YES24

인문학적 성찰은 정의를 위한 저항의 시작이다!칼럼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던 신학자이자 철학자 강남순의 첫 대화서그것은 인문학이 아니다공허한 인문학 열풍 속에서 생각하는 인문학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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