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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을 따라 (교회와 공동체)/공동체

'남북이 함께 먹는 쌀', 정말 좋은데…

by 바울과 함께 걸었네 2011. 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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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시절 같은반 친구 종엽이에 대한 기사.
이제는 같은 하나님나라의 확장 위한 동역자가 되었구나..

     
'남북이 함께 먹는 쌀', 정말 좋은데…
[인터뷰] 북한 동포와 NGO 돕는 '하나누리 쌀' 판매하는 최종엽 씨
입력 : 2011년 01월 26일 (수) 17:01:28 [조회수 : 906] 윤희윤 ( 기자에게 메일보내기

최종엽 씨(30)는 장사꾼이다. 그가 판매하는 것은 '하나누리 쌀'. 이름이 좀 특이한 이 쌀은 이름 말고도 특이한 점이 더 있다. '남북이 함께 먹는 쌀'을 표방하고 있다는 것. 10kg짜리 쌀 한 포가 팔릴 때마다 1,000원씩 사회에 환원한다. 500원은 '하나누리'란 단체를 통해 북한을 지원하는 데 사용된다. 쌀 이름 앞에 '하나누리'가 붙은 이유이기도 하다. 500원은 하나누리가 아닌 다른 NGO에 후원된다.

   
 
 

▲ 지난해 12월 최종엽 씨는 꿈꾸는장터와 함께 노숙자 배식 단체에 쌀과 후원금을 지원하는 이벤트를 열었다. 사진은 오뚜기 공동체에 쌀을 전달하는 최종엽 씨(왼쪽 두 번째). (사진 제공 꿈꾸는장터)

 
 
농민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도 '하나누리 쌀'을 판매하는 이유다. 쌀에 값싼 외국 쌀이나 품종이 다른 쌀을 섞으면 이문이 많이 남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또 계약 재배한 쌀만 취급하는 미곡 처리장에서 납품받는다. 계약 재배는 미곡 처리장과 농민이 쌀을 재배하기 전에 전량 수매를 약속하는 재배 방식이다. 대신 미곡 처리장은 품종 선택부터 재배 방식까지 쌀 품질을 위해 엄격히 관리한다. 농민들은 판로를 걱정 안 해도 되고 미곡 처리장은 좋은 품질의 쌀을 유통할 수 있어 좋다. 하지만 매해 생산량에 따른 가격 폭등과 폭락을 책임져야 하는 등 서로에 대한 신뢰가 필요한 방법이다.


이문이 가장 중요한 장사꾼이 이런 쌀을 파는 이유는 무엇일까. 청년의 무모함일까. 아니면 종엽 씨가 청년 갑부이기 때문일까. 둘 다 아니다. 사람에 대한 관심 때문이다. 


20대 중반 체육대학을 졸업하고 트레이너를 할 때 종엽 씨의 인생을 바꾼 한 사람을 만났다. 종엽 씨가 근무하던 스포츠 센터에 운동하러 오던, 교통사고를 당해 한쪽 다리가 다른 쪽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얇은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매일 와서 열심히 운동하는데 운동 방법은 엉망진창이었다. 오히려 운동하면 할수록 몸을 망칠 것 같았다.


하루는 그 사람에게 트레이너를 고용하지 그러냐고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돈이 없다는 것이었다. 실수했다고 생각한 종엽 씨는 그 사람을 돕기로 마음먹었다. 사장이 있을 때 지도하면 훈련비를 내야 하니 영업이 끝나는 밤 10시 30분에 오면 운동을 지도해 주겠다고 했다. 우선 훈련비를 내고 성실히 따라 하면 다 돌려주겠다고 했다.


사람을 살리는 일


스포츠 센터는 종엽 씨 집과 거리가 멀어 지도를 하고 12시 넘어 퇴근하면 대중교통이 끊기기 일쑤였다. 때로는 택시를 타거나 찜질방에서 자야 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났을까. 걷기 어려울 거라고 말했던 그 사람이, 늘 휠체어만 타고 오던 그 사람이 절뚝거리며 걸었다.  종엽 씨는 그때 직업에 대한 가치가 돈에서 사람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고 싶었지만 트레이너로 재활업을 하는 건 법률상 어려웠어요. 트레이너 시장은 큰 자본금이 필요했죠. 트레이너로 고용돼서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고요. 아버지가 사업을 하셔서 사업에 대한 관심이 쭉 있었는데, 그때부터 이런저런 직업을 탐색하며 사업할 좋은 아이템을 찾았죠. 저 그동안 가진 명함만 11개예요."

   
 
 

▲ '하나누리 쌀'을 판매하는 동인 대표 최종엽 씨. ⓒ뉴스앤조이 이명구

 
 

거기에 새로 만나게 된 교회 공동체는 종엽 씨의 이런 생각에 불을 지폈다. 부모님과 함께 다니던 교회의 재정 불투명 문제로 '교회가 이런 곳인가'를 고민하던 중 우연한 계기에 소개를 받고 찾아간 교회였다. 사택에서 예배하는 작은 교회였다. 한 번만 예배하자고 생각했는데 함께 예배하다 보니, 한 번이 두 번 되고 세 번 됐다. 그들은 비좁은 사택에서 불평 없이 예배했다. 예배한 후에는 교인들이 둘러앉아 '어떤 교회를 만들고 싶은지', '어떻게 만들 건지'를 논의했다. 교인들의 고민은 종엽 씨의 고민이었다.


"전에는 그냥 예수 믿으면 구원받는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신앙을 고민하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하나 고민하며 하나님나라는 결정하고 판단하고 만들어 가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죠. 그리고 그 길은 많은 사람들이 서로 돕고 동참하며 함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도요."


새로운 교회에 나가며 믿음에는 선택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그는 고심 끝에 쌀장사를 하기로 했다. 쌀장사는 이모저모로 사람을 살리는 데 적합한 일이었다. 굶는 사람들을 살릴 수도 있고, 쌀 시장 개방으로 죽어 가는 농민들도 살릴 수 있다. 쌀을 주식으로 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좋은 쌀을 먹게 하는 일도 사람 살리는 일이다.


자본 대신 배짱

   
   
좋은 쌀을 찾기 위해 전국을 헤맸다. 100% 계약 재배하는 곳, 깨끗하게 쌀을 처리하는 곳, 관리 상태가 우수한 곳을 찾았다. 재배지도 가고, 가공 시설도 가고, 시설 대표도 만났다.  그리고 맘이 통하는 대표를 만났다. 3대째 쌀을 연구하고, 쌀이 지니는 의미를 아는 사람이었다. 좋은 쌀을 파는 좋은 사람은 만났지만 문제는 있었다. 그 회사는 국내의 굵직한 도매상과 거래하고 외국에도 수출하는 곳이었다. 쌀장사를 시작하겠다고 이제 막 마음먹은 종엽 씨와 거래해 줄 것 같아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


거대 도매상에 비견할 자본도 경험도 없었지만 배짱은 있었다. 대표에게 사람을 살리는 쌀을 팔고 싶다고 했다. 이 쌀을 통해 북한 주민도 돕고 NGO도 돕고 싶으니 도와 달라 했다. 식량 자급자족이 무너지고 있는 국내 현실에서 쌀에 사활을 걸겠다고 했다. 젊은이의 배짱과 패기가 설득이 됐는지 거래가 성사됐다. 거기에 '하나누리 쌀'이라는 새로운 상품명을 포장지에 인쇄하는 비용까지 후원받았다.


용기 있게 첫걸음을 뗐지만 아직 수익은 미미하다. 매달 5일마다 적립한 금액을 해당 단체에 기부하는데, 아직은 큰 도움이 안 돼서 미안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단체를 찾아가 판매량을 보여 주고, 적은 돈이지만 전달하고 나면 '진짜 살아 있다'는 기분이 든다. 더 열심히 발품 팔아 누군가에게 더 큰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마음을 먹게 된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쌀을 판매하지 않겠다는 결심도 했다. '하나누리 쌀'만 전면에 내세우기로 했다. 눈앞의 이윤에 전전하다 보면 사람 마음은 언제든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판매하면 판매량을 저만 아니깐 한 포당 1,000원을 후원하지 않아도 모르잖아요. 저도 사람이니깐 이윤을 더 많이 보고 싶은 마음이 있죠. 그런데 개별적으로 쌀을 사고 싶다고 연락하는 건 제 욕심을 자극하는 행위에요. 흔들리고 싶지 않아서 회사 이름도 빼고, 회사 연락처도 뺐어요. 쌀을 구입하려면 꼭 '꿈꾸는장터'나 하나누리 홈페이지를 이용하라고 기사에 꼭 써 주세요."


문의 : 070-8766-2312, njshop.co.kr (꿈꾸는장터)
        02-743-4113, hananuri.org (하나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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