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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한 기대 (삶)/책과 삶

하나님의 나그네 된 백성

by 바울과 함께 걸었네 2009. 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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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값싸게 책을 구입할수 있다는 사실만큼
행복한것은 있을까?
서적 재고방출의 기회를 타서 값싸게 책을 구입했는데,
그중에 한책이 바로 
'하나님의 나그네된 백성'이다.

스탠리 하우어워스는 현재 듀크대학에서 윤리학 교수로 
재직중이다. 
알리스터 맥그래스는 그의책 '역사속의 신학'에서 현대신학의 경향은
바로 기독교 윤리학이라고 내다 보았다.
그러면서 스탠리 하우어워스를 손꼽았다.
실은 이책은 싼 값에 사기도 했지만,
절친한 동역자 강윤성 형님의 권유이기도 했다.

  이책은 정말 탁월했다. 이시대의 교회 공동체를 향한
선지자적인 외침이며, 교회 윤리의 회복을 갈구하는 책이었다.

과연 이시대의 신학은 어떤 방향으로 가는가?
그리고 이방향은 바른 방향이라고 할수 있을까?

솔직히 지금까지의 신학은 어떻게 하면
우리는 세상을 변혁시킬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었다고 할수 있다.
적어도 종교개혁 시대 이후에 계몽주의 그리고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급격하게 변한 세계관 그리고 여전히 콘스탄틴주의식 사회변혁을 추구하는
교회공동체와 신학사조들....

 이책은 과연 이시대의 신학의 방향은 이것이 옳은가에 대해서
고민해 보기시작 한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안에 스며들었고, 주된 사상이 되버린
저자가 이야기하는 소위'콘스탄틴주의'를 과연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하며
바른 교회공동체 관을 어떻게 회복해야 하는지를
이책은 풀어주고 있다.

이시대의 신학적 과제는 예수를 현대적인 범주들로 번역하고
해석하는 문제가 아니라. 세상이 그분을 향하도록 변형하는 것이다.
신학자의 임무는 복음을 이세상이 믿을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이세상을 복음의 기준으로 만드는 것이다. 기독교는 나그네 된 백성 곧....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알수 있는 것을 알기에 차별화된
식민지의 백성이 되어 살라는 초청이다.

그것은 바로 예수그리스도께서 제시 하신 산상수훈이다.
산상수훈은 하나님나라로 살라는 가르침이며
우리는 기독교 공동체 안에서 철저히 식민지로서 삶을
살도록 우리를 초대한다.

·니버의 개혁주의 교회 VS 칼바르트의 고백교회

그는 지금까지의 기독교의 주류였던
리차드 니버의 개혁주의 그리스도 즉 변혁자 그리스도를 철저하게
비판한다. 리차드 니버는 우리를 마치 변혁자 그리스도의
유형만이 이세상의 대안이라는 식으로 우리를 이끈다. 그러나
니버는 과연 이시대의 세상과 맞딱드려진 그리스도인 들에게
 문화가 주는 성과 악의 요소들을 잘 알려주고 대응하도록 하고 있는가?

우리가 바라고 원하는 것이 진정
기독교 국가인가? 그것은 아니다.
우리는 세상안에 있다. 그러나 우리의 목표는 세상을 변혁시키고
그리스도의 국가가 되게 하는것에 있지 않다.
우리의 진정한 목표는 하나님의 나라를 복음으로 전파하고
세상안에 복음을 선포하는데 있다.
변형이 아닌 선포이며 보여주는 것에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을 하는가? 무엇이 되는가? 보다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바라 보는가가 중요한 질문이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스탠리 하우어워스는
존하워드 요더의 칼바르트의 고백교회 유형론을
제시한것을 보여준다.
바르멘 선언에 기초하여 칼바르트는 나치의 권력앞에 굴복한
독일의 교회들을 향하여 정의를 외치기 시작하고,
고백교회를 통하여 교회의 진정한 모습은 세상을 향해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며 보여줄때에 세상이 변하는 모델을 제시한다.

한국 교회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교회는 점점 마켓팅교회가 되고 있다.
성도들은 소비자가 되고 있고 목사님들은 구미를 당기는 설교를
통해 소비자가 왕이라는 사실을 잘알고 있다.
그리고 기독교는 많은 사람들에 의해 사랑을 받는 종교가 되었다.
이렇게 축복받은 기독교가 점차 권력의 도구로 이용되고 있다.
소수의 사람들은 이것이야 말로 기독교국가가 되는 가장 현명한 
길로 여기고 있다.
기복신앙과 세속신학이 어우러져서 강성한 기독교국가를 이뤄내고 있다.
그리고 세상에 외친다.
기독교의 진리에 복종할것을!
그러나 점점 이시대는 하나님 없는 시대가 되고 말았다.
과연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기독교 국가가 되는 것일까? 

아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기독교인의 정치 참여에 대해서 회의적이지 않다.
기독교인들의 마땅한 바다.
그러나 본질에서 어긋난 참여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우리는 복음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본질을 망각하고 선포하는 것은 세속적으로 변질된다.
이땅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의 본질을 망각한체 세상을
향해 외치는지 모른다. 
세상은 우리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예수는  Yes 교회와 기독교인은 No!
 이것이야 말로 모순아닌가? 예수와 교회 그리고 성도가 언제
떨어져서 인식되었던 적이 있었는가?

주님은 복음의 공동체,
하나님께서 주인이신 식민지의 공동체가 되기를 원한다. 

생각해 봄직한 글. 
"우리교회가 구매시장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까닭에 이문제는 더 심각해 진다.
소비자가 왕이다 소비자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손에 넣어야 한다.
복음에 대해 어중간하게 알고 있는 목회자, 그러면서도 자기실현의 경제속에서 사고파는
이러한 구조에 사로잡혀 버린목회자는
어느날 문득 잠에서 깨어나 그사실을 깨닫고 자기를 미워하게 된다.
-중략-
교회와 그지도자들이 복음의 이야기에 책임을 다하기 위해 애쓸때
목회는 그이야기를 나누고 그대로 살아내기에 충분한 백성을
일으키도록 도와주는 위대한 모험이 될수 있다.
신실한 목회자는 계속해서 우리를 하나께로 돌아가도록 이끈다.
그렇게 함으로써 목회자는 우리교회의 상상력을 열어주고
넓고 가능성의 영역으로 우리를 이끈다." p119~120

^^ 생각나는 대로 적은 글이라 뒤죽박죽이다.
잘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나그네된 백성 
복있는 사람
저자: 스탠리 하우어워스, 윌리엄 윌리몬
대상: 신학생, 목회자


하나님의 나그네 된 백성
카테고리 종교
지은이 스탠리 하우어워스 (복있는사람, 2008년)
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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