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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한 기대 (삶)/책과 삶

하나님나라 잔치에 대한 단상

by 바울과 함께 걸었네 2016. 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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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웨스트( Christoper West)가 말하듯,

" 세상에서 무엇이 가장 거룩한지 알고 싶다면, 무엇이 가장 지독하게 더럽혀졌는지 보면된다."



베리 존스(Barry D. Jones)는 그의 책 "Dwell" 에서

크리스토퍼 웨스트의 말을 빌어 음식과 식탁의 타락을 통해 먹는 문제와 영성의 연결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과식증이나 거식증 같은 식이 장애, 비만 등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미각의 경험 그 즐거움을 완전히 망가졌다고 하고 있다.

이것은 혀의 감각인 육체적 인 미각뿐아니라 영적 미각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리차드 십스(Richard sibbs)는 그의 책 "The glorious feast of the Gospel" (한국어제목: 영광스러운 부르심 ,지평)

에서 하나님의 만찬의 아름다움을 묘사하고 있다. 더 나아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신령한 음식에 만족하기 위해서

우리안에 있는 모든 자극적인 것들로부터 결별을 선언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리차드 십스는 분명 신령한 음식을 향한 영적 미각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음식들에 만족하고 그것의 참 맛을 위해서는

우리안에 자극적인 어떤 것들을 잠시 중단하는 것이 필요하다.

음식과 먹는 것 그리고 영적인 삶의 관계는 연결되어 있다고 할수 있다.


예수께서는 종종 하나님나라를 설명할때 잔치의 비유를 들어 설명하셨다.

풍성함, 배부름, 차고 넘침 등의 표현은 하나님나라의 잔치가 얼마나 풍성한지를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한다.

베리존스는 우리가 습관적으로 탐식한다면 식사를 잔치로 경험하는 능력이 약해진다고 하였다.

오늘날 탐식하는 문화에서 잔치는 의미를 잃는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잔치는 탐욕과 탐심으로부터 저항하는 의미이다.

그 잔치에 참여하고 함께 나누는 의미다.



나는 예수께서 처음으로 마태를 부르신 장면을 묵상할때마다

잔치의 의미를 아주 잘 느낄수 있다.


레위 마태를 부르신 장면을 묵상해 보자. 세관에 앉아있는 그를 예수께서 다가가셔서 나를 따르라 명하신후

그는 예수를 따른다. 그날 마태는 예수님과 그의 제자를 모시고 연회를 베푸는 데,

이 연회의 모습이 문제가 되었던 것같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보면서 이렇게 말한다.

"어찌하여 세리 및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당시 시대적 상황에서 세리와 창녀는 죄인으로 분류되는 이들이었다. 경건한 유대인들은 창녀라는 말을

입밖으로 내기 민망하여 죄인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성경에 죄인이라고 언급할경우 대체로 창녀들을 말하곤 했다.
게다가 당시 식사 관습은 누워서 식사하는 모습이었으며 덥고 건조한 기후로 인해 대체로 연회나 잔치는

밤에 하였다. 그리고 이들의 연회의 장소에 빠질수 없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포도주였다.

그러니 세리와 죄인들 이라는 바리새인들의 시각을 빌려 봤을때,

세리와 죄인들은 분명 어떤 음란한 광경을 싸잡아서 표현한 것이라고 할수 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들과 거리낌 없이 누워 먹고 마셨다.

연회에 빠질수 없는 맛난 음식들과 포도주를 말이다.

당시 고대 유대사회에서 잔치의 풍성함의 정도는 바로 먹을 것과 마실것에 있었다.

마가는 의도적으로 이렇게 불경건해 보이는 장소인 마태의 연회장소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거기 계심으로 인해 그곳이야 말로 하나님나라 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소외되고 죄인으로 분류된 이들이 거기에 있었으며,

음란하고 뭔가 불경건해 보이는 장소였지만, 그곳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그곳은 분명

하나님나라 였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예수께 어떻게 저들과 먹고 마시는가? 라고 물어봤을때 우리 주님은 이렇게 대답하신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 없고 병든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그곳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기에 하나님나라다.



복음서에서 잔치는 그런곳이다. 소외되고 죄인들이 찾아와서 함께 먹고 마시는 곳.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신령한 음식들로 풍성하여 어느누구도 굶주림을 경험할수 없는 곳.

탕자를 그저 받아주시며 손에 가락지와 발에 신을 신기우며 송아지를 잡아

종이며 동네 사람이며 모두 초대 받아 즐거워 하는 곳

그곳이 바로 하나님나라의 잔치다 .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탐심과 탐욕으로 인해 하나님의 잔치의 풍성함을 잃어버렸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미각은 너무나 자극적인 것에 맛들려 있어

그 고유의 능력을 잃은지 오래되었다.

하나님나라의 잔치를 위해서 우리는 그 미각을 다시 찾는 훈련을 해야한다.

그리고 그 잔치의 풍성함을 위해서 탐심과 탐욕을 저항해 내야 한다.

그것이 현재를 사는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삶이다.



그런의미에서 금식은 하나님나라의 향연을 위한 아주 좋은 훈련이다 하겠다.

먹는 것을 멈추는 것 뿐아니라, 미디어며, 관계며, 하나님보다 먼저였던 보든 중독적 삶을 떠나

잠시 하나님앞에 침묵하고 하나님을 떠올리며 먼저 생각하는 그 훈련말이다.

저항(금식은 요즘 저항의 의미도 담고있는 것같다 물론 금식투쟁 같은...^^)해 내는 훈련,

탐욕과 탐심을 저항해 내고 마귀의 도전에 굴복하지 않도록 살아내는 그런 훈련말이다.



베리존스가 인용하기도했고, 전에 읽어본 존파이퍼의 "Hunger for God" 에서 나온 글귀로 마치고자 한다.

"그리스도인의 금식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향한 향수병때문에 일어나는 주림이다.....
그리스도인의 금식은 하나님안에서 더 큰 만족을 추구하는 데서 오는 자발적 결과일뿐아니라 세상에서 이러한 만족을 빼았으려는 모든 세력에 맞서서 선택하는 무기이기도하다."

우리의 금식은 하나님을 향한 향수병때문에 일어나는 주림이다......


- Barry D. Jones. "Dwell." 전의우역 (서울:성서유니온,2016). 을 읽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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