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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 성지순례 기행

[튀르키예 여행/ 성지순례 여행] 에베소, 박해의 문으로 들어가서

by 바울과 함께 걸었네 2019.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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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축(Selcuk)으로 간다. 요한 기념교회를 방문하기 위해서이다. 사도 요한기념교회는 교회사적으로 가치있는 곳이다.
특별히 AD37~48년 사이에 사도요한은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성모 마리아)를 이곳으로 모셔와 정성껏 돌본다.
그리고 그곳에서 돌아가신 것으로 알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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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과 함께 걸었네 - YES24

흥미로운 여행기를 토대로 성경의 배경과 교회사를 이해하고 인문 고전의 깊은 상상력까지 풍부하게 더할 수 있는 책이 나왔다. 역사신학을 전공한 함신주 목사가 코로나19로 세계 여행의 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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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예수의 십자가 상에서 그의 제자 요한에게 하신 부탁때문이다.
요한복음 19장 25절~27절이다.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어머니 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는 제자가 곁에 서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집에 모시니라." 십자가 곁에는 세 분의 마리아 즉 어머니, 글로바의 아내, 막달라인과 이모 그리고 사랑하는 제자인 요한이 있었다.
예수께서는 사랑하는 제자 요한이 어머니 마리아 곁에 있는 것을 보시고는 요한에게 어머니를 부탁한다.
복음서를 연구하는 이들은 예수의 이모도 십자가 곁에 있었음을 발견한다. 그리고 예수의 이모는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 일 것으로 추정한다. 이 추정이 맞다면, 예수와 그 제자 세베대의 아들들인 야고보와 요한은 이종사촌 일것 이다.
예수는 십자가 도상에서 요한에게 어머니를 부탁한다.

요한은 사랑의 사도이다. 그런데 그는 본래 보아너게(Boanerges,우뢰의 아들들)라고 불리웠다. 그 별명은 그의 급하고 과격한 성격때문이었다. 그가 사랑의 사도라 변화된 것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 때문이었다. 십자가 도상에서 예수의 고뇌와 인류를 위한 처절한 사랑의 몸부림은 그의 삶을 변화시키고도 남을 만한 능력이 되었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 마리아를 섬기며 사랑의 사도로서 인생은 절정을 달하게 되었다.
오늘 방문할 곳이 바로 사도 요한 기념 교회이다. 에베소 유적지 주차장에 도착했다. 주차장에 내리자마자 한글이 눈에 띄었다.
처음에는 터키에 한국인들이 많이 오니까 무슨 광고글이나, 식당을 소개하는 문구 겠거니 했다.
호기심에 가까이 가서봤다. 몸에 전율을 느껴 한참이나 멍하니 서있었다.
다름아닌 누가의 무덤이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했다.

호기심에 가까이 가서봤다. 몸에 전율을 느껴 한참이나 멍하니 서있었다.  다름아닌 누가의 무덤이었다. 

사도바울의 충성스러운 동역자이자 의사였던 누가! 그가 여기에 묻혀 있다니......
온 몸에 전율이 흘렀다. 그는 이방인이었다. 예수를 만난적도 없다.
그런 그가 평생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며 선교의 사명을 완수했다. 누가가 쓴 복음서인 누가복음은 황소 복음이라는 별명을 가진다. 그가 만난 예수는 하나님과 우리사이를 화목케 하신 화목제물이 되시기 때문이다. 예수는 억압 받는 자들, 고아와 과부들 하나님께 나아갈수 없는 자들을 일으켜 하나님께 나아갈수 있도록 돕는 우직한 황소가 되신다. 그리고 그 황소는 아주 좋은 제물이 되신다. 누가는 사도바울과 전도여행을 통해서 그 예수를 만났다.
그는 사도바울 곁에서 충성스러운 황소처럼 섬겼다. 그리고 이곳에 묻혔다.

누가의 무덤에 있는 한 기둥, 십자가 밑에 황소가 새겨있다


무덤은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기억하게 하는 추모의 요소를 가진다.
무덤은 추모를 통해 묻혀있는 이를 이곳에서 살리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무덤에 집착하기도한다. 어떤 이들은 무덤 조차 세우는 것을 거부한다. 무덤은 기억하고 살리는 요소를 가지기 때문이다. 누가의 묘소 앞에 뜨거운 마음을 가진다. 복음을 위한 예수의 열정 다시 살아나고 회복된다.

또 한 사람의 무덤으로 향한다. 그곳은 다름아닌 사도 요한의 무덤이다.
사도요한 기념교회에 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 이 있다. 바로 박해의 문이다.
왜 박해의 문일까? 오랜 기독교의 박해가 끝나자 로마의 황제는 그리스도인들의 박해의 장소였던 야외 경기장을 무너뜨리고 그 자재를 사용하여 이곳에 문을 세운다. 그래서 후대의 사람들은 이를 박해의 문이라고 부른다.

박해의 문을 통과하는데, 어째 마음이 음산하다. 그래도 박해를 통해 그리스도인들은 순교의 영광을 맛보았다. 박해를 통해 그리스도인들은 다시 사는 능력을 경험했다. 박해의 문을 통과해 눈을 들어보니 멀리 셀축 성이 보이고 넓은 대지위에 요한 기념교회가 눈에 들어왔다. 교회터가 상당히 넓었다.
교회의 규모로 보았을때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이곳에 역사적 가치를 상당히 두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의 사랑하는 어머니와 사랑하는 제자가 박해를 피해 이곳으로 와서 살았고, 이곳에 묻혀있기 때문이다.
대리석 계단을 통해 교회 내부로 보이는 곳으로 들어왔다. 정면을 응시하였다.
네개의 대리석 기둥이 보였다. 그곳이 사도요한의 무덤이다.

대리석 계단을 통해 교회 내부로 보이는 곳으로 들어왔다. 정면을 응시하였다.  네개의 대리석 기둥이 보였다. 그곳이 사도요한의 무덤이다. 

사도요한은 유일하게 외부의 박해자들에 의해 순교하지 않은 제자로 알려져있다. 그의 최후에 대해서 분명한 역사적 기록은 없다. 다만 '사랑의 사도' 라는 별명만 남겨졌다.
번개 같이 급하고 강했던 요한은 사랑의 사도로 변화되었다. 그의 변화는 단순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예수의 인품과 성품을 지켜보았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를 가장 가까이에서 듣고 보았다. 부활하신 예수 그 곁에 있었다.
그리고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섬기며 복음을 전하다. 밧모섬에 유배지에서 영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다. 사랑의 사도로서 그의 변화는 결코 단시간에 이루어진것이 아니다. 이사실이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 반드시 결과와 변화를 만들어내야 하는 세상속에서 사는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기도하고 위로가 되기도한다.

변화는 짧은 순간에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존재와 존재가 만나는 수많은 만남속에 이루어진다. 빚어지고 깨지는 그 많은 부딪힘 속에 이루어진다. 변화는 그 긴 시간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런데 그 시간은 견단코 인간의 시간이 아니다. 우리가 자로 잰듯 계획과 경험에 의한 시간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시간이다. 우리를 향한 계획과 철저한 반복과 굴림속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시간 이것이 바로 변화의 주요한 원리이자 중요한 축이다. 사도 요한은 그 속에서 사랑의 사도가 되었다.

요한의 무덤앞에서 변화된 가정, 변화된 나의 삶에 모든 초점을 맞추며 살았던 지난 시간들을 잠시나마 참회한다. 시간은 오직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 시간을 오로지 내것이라 여기며 살아왔던 지난 시간을 되돌아본다.

요한의 무덤을 뒤로하고 좌측 공간으로 걸어갔다. 세례터가 있었다.


이곳에 물이 담기면 세례터가 되는 것이다. 죽음에서 생명으로 변화되는 순간이 이곳에서 일어난다. 사단에 종노릇하는 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놀라운 신분의 변화가 이곳에서 일어난다. 하나님의 시간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변화는 물이 잠기는 시간만큼이나 시간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시간말이다.

세례 터를 지나 높은 곳으로 올라왔다. 교회의 터가 한눈에 들어왔다.
요한 기념교회, 이곳은 여느 유적지와 같이 이제는 돌무더기만 남아있다. 그러나 기념이라는 의미가 주듯이 이곳에서 예배드렸던 이들 함께 믿음의 길을 걸어갔던 이들의 삶은 남아있는 돌무더기 처럼 기념이라는 의미처럼 지금도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고, 질문을 해오고 있고, 깨달음을 주고있다.

주차장으로 내려간다. 다시 박해의 문을 나선다.
박해의 문을 통해 들어온 나는 교회를 향해 들어왔고, 박해의 문을 통해서 나가는 나는 세상을 향해 간다.
그리스도인들은 박해의 문을 드나드면서 분명 성숙하고 변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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