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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 성지순례 기행

[튀르키예 여행/ 성지순례 여행]사데, 깨어있지 아니하면...

by 바울과 함께 걸었네 2019. 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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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의 아침은 생각보다 쌀쌀했다. 나는 여태껏 터키를 따뜻하고 건조한 나라로 알고 있었다. 그 오해를 단번에 깨트렸다. 따뜻한 빵을 하나씩 가슴에 안고 버스로 향했다. 버스로 가는 도중에 순례 팀원들은 고소한 빵 굽는 냄새에 이끌려 빵집으로 들어가 사진을 찍는다. 빵 맛은 희미해져도 사진은 영원하리라 믿는다. 인간은 뭐든 남기는 데 집착하는 존재임이 분명하다. 버스를 타고 한참을 달린다. 50분 걸려 도착한 곳이 바로 사데(Sardis)이다.

사르디스 혹은 사데라고 불리는 이 곳은 부유했던 도시로 알려져 있다. 현재는 시골의 한가한 도시이다. 폐허로 남은 유적들이 그 도시가 얼마나 웅장하고 부유한 도시였는지 알 수 있게 한다. 그래서 인간의 대부분의 문명들은 남기는 것에 집착하는지 모르겠다. 잊혀가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터키의 아침은 생각보다 쌀쌀했다. 나는 여태껏 터키를 따뜻하고 건조한 나라로 알고있었다. 그 오해를 단번에 깨트렸다. 따뜻한 빵을 하나씩 가슴에 안고 버스로 향했다. 버스로 가는 도중에 순례 팀원들은 고소한 빵 굽는 냄새에 이끌려 빵집으로 들어가 사진을 찍는다. 빵 맛은 희미해져도 사진은 영원하리라 믿는다. 인간은 뭐든 남기는 데 집착하는 존재임이 분명하다. 버스를 타고 한참을 달린다. 50분 걸려 도착한 곳이 바로 사데(Sardis)이다.

사르디스 혹은 사데라고 불리우는 곳은 부유했던 도시로 알려져있다. @사르디스(사데)교회터

사르디스 혹은 사데라고 불리는 곳은 부유했던 도시로 알려져 있다. 현재는 시골의 한가한 도시이다. 폐허로 남은 유적들이 그 도시가 얼마나 웅장하고 부유한 도시였는지 알 수 있게 한다.   

사데는 두아디라에서 남쪽으로 48k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다.  팍톨루스(Pactolus)라는 이름의 강이 흐르고, 뒤로는 투몰루스(Tumolus)라는 산 북쪽 산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사데는 그야말로 난공불락 요새였다.  사데는 리디아(Lydia) 왕국의 수도였다.  

헤로도투스(Herodotus)는 헤라클레스의 자손들이 행사하던 리디아 왕권이 크로이소스가(家)로 넘어간 경위를 그의  [역사]에서 서술하고 있다. 헤라클레스의 자손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불멸의 영웅이라 불리는 헤라클레스의 이야기를 사데에서 만났다. 고대의 신화는 헤라클레스(Heracles)를 제우스와 미케네의 왕 앨렉트리온의 딸 알크메네의 아들로 전한다. 그의 어머니 알크메네는 페르세우스의 아들 알카이오스의 딸 아나쿠소의 딸이다.

헤라클레스는 제우스의 아들 페르세우스의 후손이며 또한 제우스의 아들이다. 흔히 우리는 이런경우 족보가 꼬였다 라거나 패륜 이라고 한다. 그러나 신화 속에서는 영웅이다. 그는 올림포스의 최고의 신인 제우스의 증손이며 아들인 것이다. 역사 이래로 인간은 신의 이야기를 담을 때 인간의 욕망의 대상인 불멸성과 영웅심을 그대로 투사해낸다. 인간의 나약함과 현실을 판타지와 같은 세계 속으로 끌어들여 이를테면 대리만족을 누린다. 그렇게 주조한 인물이 헤라클레스인 것이다. 불멸의 영웅이라고 하지만 헤라클레스는 제우스의 아내인 여신 헤라에게 질투를 한 몸에 받는 인물이기도 했다. 영웅의 비화(悲話)는 이렇게 이어진다. 

헤라는 헤라클레스를 미치게 만들어 자신의 아내와 아들까지도 죽게한다. 이일로 12년 동안 과업을 부여받는다. 헤라는 또다시 헤라클레스를 미치게 하여 에우리토스의 아들 이피투스(Iphitos)를 죽게 한다. 이피투스는 헤라클레스의 친구였다. 결국 헤라클레스는 이 일로 리디아(Lydia) 왕국의 여왕 옴팔레(Omphale) 밑에서 3년동안 노예생활을 하여 자신의 죗값을 치르게 된다. 옴팔레는 그에게 여자 옷을 입고 바느질과 길쌈을 하도록 시켰다. 
어느새 그와 사랑에 빠진 옴팔레는 그와 결혼을 하여 여러명의 자식을 낳고 그를 노예로부터 해방을 시킨다. 옴팔레와 사이에서 리도스, 알카이오스 등의 아들을 두었다. 인간에게 영웅은 무엇일까? 인간 욕망의 투영대상이다. 불멸과 영웅심을 그대로 투사한 대상일 뿐 아니라 추락과 일탈의 심리까지도 그대로 투영한다. 그것으로 만족감을 삼는다. 헤라클레스의 이야기는 그런 의미에서 인간이 만든 가장 완벽한 신화이다.  

이렇게 헤라클레스와 옴팔레 사이에서 낳은 아들 알카이오스의 후손 중에 칸다우레스(Candaules)는 헤라클레스 후손의 마지막 통치자이다. 탁월한 이야기꾼인 헤로도토스는 '역사'에서 그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칸다우레스는 왕이지만, 비범한 인물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는 자신의 아내를 너무 사랑했다. 아내의 아름다움을 자랑했던 말하자면 팔불출 같은 인물이었다. 그에게는 굉장히 신임하는 신하인 귀게스(Gyges) 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칸타우레스에게 충성을 다하는 경호원이었다. 
칸타우레스는 아내의 아름다움을 귀게스에게 자랑한다. 하루는 아내의 미모를 자랑하다가 결국 자기 아내의 알몸을 보여주겠다고 한다. 당시 리디아인들 뿐아니라 그밖에 모든 헬라세계에서 남자라도 알몸을 보이는 것을 큰 치욕으로 여겼다. 그래서 귀게스는 극구 사양하지만 왕의 청원에 승낙하게 된다. 왕은 충성스러운 신하에게 전략을 짠다. 그리고 침실 은밀한 곳에 숨어 들어와 침실로 걸어 들어오는 왕비의 알몸을 보게 된다.

그런데 귀게스가 숨어 보고 있다는 것을 왕비는 눈치를 챈다. 이 사실을 모른 체하고 있다가, 다음 날 기게스를 불러 하나의 제안을 하게 된다. 이런 계획을 세운 칸타우레스가 죽던지 알몸을 본 자네가 죽던지 둘 중한 명은 죽어야 하니....
왕비는 귀게스에게 왕인 칸다우레스를 죽이고 자기와 결혼하여 리디아의 왕이 되든지, 아니면 지금 죽을 것인지 선택하라고 한다. 귀게스는 왕이 될 가능성이 있는 전자를 택한다. 그는 칸다우레스 왕을 암살하고 왕비와 결혼하여 리디아의 새 왕이 되었다.

그러자 리디아 백성들이 적지 않은 소요를 일으켰다. 이에 신탁을 요청한다. 신탁이 귀게스를 리디아 왕으로 선포하면 그를 왕으로 세우고, 헬라클레스의 자손이면 왕권을 돌려주자고 결의한다. 델포이의 신탁 덕분에 귀게스는 왕으로 인정받는다. 이렇게 귀게스는 리디아의 세번째 왕조인 메르므나다이 왕가의 시조가 된다. 메르므나다이 가(家)는 헤라클레스의 자손들에게서 리디아의 왕권을 찬탈한다. 귀게스가 세운 새로운 왕조는 150년간 계속된다. 

리디아 왕국은 크로이소스가 왕 재위 시절이 사데의 가장 전성기였다.
"당시 살아있던 헬라의 모든 학자들이 번영의 절정에 있던 사르데이스(사데)를 방문했는데.... 아테나이의 솔론도 그중 한 명이었다." 솔론이 방문했을때 크로이소스는 보물창고들을 보여주며 자랑을 했다.
또한 리디아인들은 굉장히 용감한 민족이었다. 그들은 말을 타고 싸웠고 긴 창을 들고 다녔다. 탁월한 기수들이었다.
그러나 최고의 번영을 누리는 시기에 리디아는 활짝 피지도 못하고 져버린다.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보면 페르시아의 퀴로스(고레스)가 리디아 왕 크로이소스를 2주간의 전쟁 끝에 정복한 기록이 있다.  

사데는 해발 250m 높은 산으로 깎아지른 절벽 위에 자리잡은, 지형적으로 유리한 난공불락의 도시였다.

사데는 해발 250m 높은 산으로 깎아지른 절벽 위에 자리 잡은, 지형적으로 유리한 난공불락의 도시였다. 이 도시로 들어갈 때는 좁은 입구를 통과해야 했다. 군사적으로 난공불락의 도시였다. 이러한 곳에 페르시아(바사)군이 14일간 포위하고 물불을 가리지 않고 성벽 타기를 시도했으나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다.

리디아 인들은 사데에 있는 트몰로스 산이 자신들에게 있기에 절대로 멸절되지 않는다 여겼을 것이다.
난공불락의 요새가 있기에 살았다 하며 안심했을 것이다. 그러나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자들이었다.' (계 3:1)  그들은 트몰로스 산을 믿었다. 크로이소스왕을 믿었다. 그의 군사력도 믿었다.  
그들에게 있는 자만심, 그들에게 있는 헛된 믿음이 삶이 아니라 죽음으로 이끌었다. 죽음은 우리를 일깨운다. 
죽는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은 우리로 자각시킨다. 그러나 살았다는 한숨은 무장해제를 시킨다. 
우리가 신앙에서 기도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가 영원히 살 것이라는 오해 때문이다. 
사데 사람들은 트몰로스 산이 우리를 영원히 지켜주고 안전하게 해 줄 줄 알았다. 영원히 살게 해줄줄 알았다. 그러나 그들은 실상은 죽은 자들이다.  우리는 무엇을 믿는가?.... 

트몰로스 산에 면해있는 쪽은 워낙 가파른 곳이라 공격당할 염려가 없다고 여겼다. 지켜줄 것이라 믿었다.
그래서 경비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그런데 마르도이 족인 휘로이아데스는 전날 리디아인 한 명이 이 쪽으로 성채를 내려와 굴러 떨어진 투구를 주워 올라가는 것을 보게 된다. 그 장소를 기억해 두었다가 이번에는 자신이 올라가 보았고 다른 페르시아인들도 따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수많은 페르시아인들이 잇달아 오르자 사데는 함락되고 도성 전체가 약탈되었다. 

아무리 난공불락의 요새라 할지라도 인간의 세계에는 반드시 약점이 있는 법이다.
그 약점을 공략해서 승리로 이끄는 쪽은 상대를 향한 집요한 집중과 분석에서 시작된다. 
모르겠다 헤로도토스는 역사를 서술하는 입장에서 최대한 공평하게 적으려고 했으나
누구는 이 사건을 한 병사의 느슨한 경계 태도라고 지적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신탁과 예언에 의한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한쪽은 교훈을 삼으려는 것이고 한쪽은 운명을 말한다.  그래서 역사는 해석이 중요하다. 

어찌 되었든 리디아의 함락은 한 병사가 떨어뜨린 투구와 허술한 경계 그리고 난공불락의 요새라는 자만감의 결과이다. 그리고 한 승리를 가져오기 위한 집착과 관찰이 가져다준 열매라고 할 수 있다. 
무엇인 든 역사적 사건은 단순한 것이나 단편적인 것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기보다. 복잡하고 복합적인 것이 하나가 될 때 일어난다. 그래서 쉽게 평가할 수도 없고 쉽게 말할 수도 없는 것이다.  
성지 팀은 난공불락의 요새라 불렸던 트몰로스 산 가까이 가보았다. 높고 험준할 뿐 아니라 가파르다.  
페르시아 인들은 유명한 요새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리디아의 함락의 역사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좋은 영적 깨달음을 준다. 그리스도인은 모두 영적인 전쟁터에 살고 있다. 원수는 우는 사자같이 삼킬자를 찾아 해 맨다고 한다.
허술한 경계와 허술한 삶은 투구를 떨어뜨려 원수들의 진격에 길을 내주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영적 공동체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리스도의 공동체는 기도로 무장한다. 단단하게 결속시킨다. 난공불락의 요새로 만든다. 마귀의 권세도 함부로 하지 못한다. 그런데 어느 한 사람의 허술한 경계 태도가 공동체 전체를 무너뜨린다. 게으름, 무기력, 원망, 분노 등등 한 사람의 영적 태도가 그 공동체를 패배의 삶으로 잠식(蠶食)시킨다. 
원수들의 강력한 공격에 맞서 이길 유일한 힘은 모두가 하나 되어 영적 전신갑주를 입고 기도로 무장할 때이다. 
사데교회에 보낸 편지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다,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같이 이르리니 어느때에 내게 이를는지 알지 못하리라" (계3:3)
깨어있는 삶을 촉구하고 있다. 믿음은 늘 현재형이다. 깨어있는 삶은 우리의 삶을 현재에 머물게 도와준다. 
리디아군의 허술한 경계 태도와 요한 계시록의 권면이 우리의 삶에 도전을 준다. 
깨어있어라 내가 도둑같이 이르리니.... 

트몰로스 산에 면해있는 쪽은 워낙 가파른 곳이라 공격당할 염려가 없기에 경비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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