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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한 기대 (삶)/책과 삶

교회다움을 묵상하며....

by 바울과 함께 걸었네 2016. 5.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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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교회의 모습이 어떠한지 돌아보고 현재의 교회를 진단해 내며

미래의 모습을 형성해주는 것이 교회사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그런의미에서 결국 현재의 교회는 과거와 미래를 무시하고는 진단해 낼 수 없다.

 

나는 교회사가(historian of church) 이다.

그것도 막 석사를 마친 따끈따끈한 교회사가...ㅎㅎ

 

요즘 읽고있는 책에 푹빠졌다. 이상훈교수가 쓴 교회성장연구소 출판의

 『Re-form』이라는 책이다.

미국에 떠오르는 젊은 교회를 한 교수가 직접 방문하면서 경험한 것을 일목요연하게 전달해주고 있다. 

이 책에 푹빠진 이유는 교회를 이끌어가는 리더들의 고민과 읽어내려가고자 발버둥친 시대정신 때문이다.

 

공동체를 한 인격이라고 유기체적인 공동체라고 인식하여, 교회 공동체가 제자도를 걸을수 있도록 발걸음을 내딛도록하는 그 시대정신, 비전 말이다.

 

그리고 그 시대정신과 비전이 교회 공동체 전체적으로 공유되고 그것을 유지하려는 모습들이 도전이 되었다.

 

그렇다. 예수께서 원하신 공동체의 모습을 고민하며 그것에 부합하는 시대적 정신이 중요하다. 그리고 비전과 가치의 공유가 필요하다.

 

지금 나는 그것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

시대정신 그리고 우리의 교회 공동체의 비전.... 

 

얼마전 유튜브에서 한 강연을 들었다. 그 강연자는 복음주의와 관련한 책으로 유명한 교회사 교수였다.

강연이후에 질의응답시간에 한 학생이 질문을 던졌다.

 

질문의 내용은 잘들리지 않으나 강연자의 대답의 내용상으로 미뤄봤을때, 미래의 한국교회를 어떻게 진단하시느냐 였다.

 

대답은 명료했다. "잘모르겠다..." 그 대답이 맞다고 생각한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경제, 미디어, 정치 이러한 흐름에 한국교회가 당면한 현실 역시 '빠름'이다.

 

너무나 급속도로 빠르게 진행되어져 가는 교회의 모습은 예측이 불가능하다.

 

그런 상황속에서 미래의 교회의 모습을 진단한다는 것은 어렵다.

잘모르겠다는 말이 어쩌면 강연자가 가장 잘 대답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1960~70년 한국에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발맞춰서 한국교회 역시 성장을 맞이하게 된다. 

교회성장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지만, 필자가 한국 교회사를 연구하면서 가장 흥미있었던 것은, 도시계발이 시작되고 도시화가 이뤄지면서, 각박한 세상속에 공동체에 대한 향수를 교회공동체가 현대인들에게 편안한 '둥지'역할을 해줌으로서 만족시켜 주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사람들안에 도시화와 더불어 실용주의적 생활이 형성되면서 교회가 서양의 실용적인 사고와 생활에 대한 친근감을 줬기 때문에 교회로 들어오는 것이 낯설지 않았다는 평가가 있다.

 

나는 위의 두가지 평가는 정확한 평가였다고 생각한다.

 

교회 공동체가 각박한 세상속에서 또는 빈곤한 삶을 탈출해보고 싶은 마음으로부터 탈출구가 되어주었으며, 이웃공동체, 따스한 인간중심 공동체가 되어주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교회로 몰려 들었고, 그결과 1970~80년대 성장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를 근거로 보았을때, 교회는 결국 사회의 풍조와 삶의 형성과정과 함께 했다.

우리가 미래의 교회의 모습을 적어도 내다볼수 있는 눈을 가진것은 우리네 사회와 삶의 자리에서 였다.

그것을 우리가 치열하게 분석해내면서 교회의 모습을 기대해내거나 어떤 공동체를 세워내야 할지를 도전해볼수 있다.

 

그러나 오늘은 교회가 성장을 위한 발판을 딛고 도약했지만, 과체중으로 인해 이제는 위기에 놓여있다.

특별히 현 사회가 발빠르게 발전하고 경쟁사회 구도 안에 들어감에 따라 외로움과 고독으로 인한 인간에 대한 그리움이 생겨나게 되었다.

또한 이제는 사회안에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해서 어느정도 벗어나보니, 삶의 질에 대한 고민이 생겨나게 되었으며, 사는 것이란 무엇인지 돌아보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오늘날 교회가 이런 사회를 돌보지 않고 여전히 성장을 외치거나 치열한 자본주의적 경쟁체제에 돌입하는 것은 세속화되었다는 의미라고 볼수 있다.

이런 시대속에서 교회는 진정한 그리스도인됨이라든지, 그리스도께서 원하신 공동체는 무엇인지, 제자도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하도록 돕고 해답을 내려줘야 한다.

 

그런의미에서  '하나님나라,' '공동체,' '선교적 교회' 등등이 이슈가 되고 있으며, 오늘날 교회가 이 단어들을 제처두고는 '교회 다움'을 말할수 없게 되었다.    

 

더불어 과거 1960-70년대 도시화에 따른 서양의 실용적인 삶의 사고가 한국으로 영향을 미쳤듯이 오늘날의 한국교회 역시 서양의 시대정신에 영향을 받고 있다.

나는 사대주의자는 아니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지금까지, 서양교회 특히 미국교회의 영향을 받아왔다는 사실을 무시할수 없다. 신학뿐아니라 교회의 모습은 늘 미국교회를 따라갔다.

 

그런의미에서 지금 읽고 있는 책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이머징처치나 서양의 떠오르는 교회들의 경우 젊은이들이 기존교회 더나아가 미국의 구도자적인 예배를 추구하는 교회들은 이미 젊은이들을 찾아볼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젊은이들이 이제는 소규모로 모여 공동체적 특성을 가지고 자신들의 신앙공동체를 형성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렇게 이들이 모인 공동체의 특성중에 하나가 옛 할아버지 할머니로부터 받은 신앙공동체를 회상하는 형태라는 것이다.

 

어렷을적에 낡은 오르간 반주소리와 크리스마스 와 같은 절기예배때 촛불을 키고 드렸던 예배 공동체가 향수로 작용하여 대형교회와 거대한 매스미디어를 활용하는 예배문화 보다는 조용하며 신비적인 예배를 추구하게 되었다.

이를 소위 이머징처치(emerging church)라고 한다.[각주:1]

 

그렇게 젊은이들이 자신의 공동체를 형성하며 모이기 시작하였다. 시끄럽고 거대한 대형교회를 떠나 올바른 제자도, 예수그리스도 중심적 교회로 모이기 시작하여 정의를 실현해 나가며, 하나님나라를 확장해 내가는 공동체를 세우고 있다.

누군가는 이러한 움직임을 하나의 운동으로 보며 미셔널처치(Missional Church) 혹은 선교적교회 라는 이름으로 이슈가 되고 있다.[각주:2]

 

나는 지금 태평양을 건너 한국에도 그런 움직임들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교회 미래학자도 아니고 교회 전문사역자도 아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사회를 이끌어가는 시대정신이 있다면, 향수다.

응답하라 시리즈 와 같은 드라마, 이전 시대때 각광받았던 가수들이나, 코메디언 들이 다시 나오고 있는데 이는 우리가 살아내었던 시대를 향한 향수가 작용해서 이다.

 

각박한 시대속에, 여유라고는 찾아볼수 없는 현 시대속에서 과거 이웃과 함께하며 교회에서 밤늦도록 모여 앉아 불끄고 눈물로 기도했던 시간들, 문학의 밤같은 행사를 통해서 소통하려 했던 교회의 모습을 향수하고 있다.

 

그런의미에서 오늘날의 교회는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

과거의 회귀 현상을 통해서 교회는 더이상 성장으로 진일보 하려는 노력을 이제는 조금 내려놓을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교회는 성장해야 한다. 그런데 그것이 이제는 어떤 군사적이며 투쟁적인 모습보다는 인격적 방식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참된 교회 다움에 대한 고민이 이뤄져야할 시기이며, 교회가 인격체이며 유기체적인 모습으로서 제자도의 길을 걷는 그리스도인됨을 실천해야 할 시기가 왔다고 생각한다.

 

 

내 삶속에 하나님나라가 이뤄지면 나와 내주변이 하나님나라가 되어야 한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교회안에 하나님나라가 이뤄지면, 교회주변이 하나님나라가 되어야 한다.

 

"사실 오늘날의 교회의 문제는 교회가 지역 공동체와 전혀 상관없는 하나의 종교기관이 덴데 있다. 에디 깁스는 묻는다. '만일 오늘 밤 주께서 우리 교회를 이지역에서 옮기신다면, 이웃들은 더이상 우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무엇으로 알수 있을까?' 교회가 세상사람들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오히려 사람들의 불편거리와 조롱거리가 된다면,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부르심을 입은 교회는 하나님앞에서 면목이 없을것이다. " -이상훈,『Re-form church』(서울:교회성장연구소,2015),92쪽.

 

복음과 함께 삶을 살아내는 삶의 자리를 중시하는 그런 공동체 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적 공동체는 삶의 자리를 중시할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역시 삶의 자리를 소중히 여기셨기 때문이다. 

그때에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 공동체가 될수 있다.

 

마치며...  

오늘날 교회가 나아가야할 길에 대한 글을 쓴다는 것은, 이제 막 목회의 길에 들어선 나에게 흥미거리 충만한 것이다.

뭘 안다고 이런 글을 쓰냐는 조소도 있겠다 싶다.

 

하지만, 현 시대 속에서 나는 목회를 해야하는 입장임과 동시에 교회를 세우고 공동체를 세워내야 하는 길위에 있기 때문에, 그냥 지나칠수 없는 문제이다.

 

누군가는 그렇다면 뭘 말하고 싶은 거냐? 물어볼수 있겠다.

지금 내게도 그걸 묻고 있다. 뭘 말하고 싶은 건가...

 

나는 두가지를 분명하게 말하고 싶다.

교회와 공동체를 세우고 그길 걷는 삶에서 놓쳐서는 안될 몇가지...

먼저는 시대정신을 읽어 내려가는 힘.

두번째는 교회다움에 대한 정확한 비전.

세번째는 하나님나라와 선교적 삶에 대한 교회의 사명

 

위의 세가지가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뿌리로서 내 삶과 정신속에 박혀있어야 한다. 마치 겨자씨가 심기워지고 밀가루 반죽속에 누룩처럼 내재되어야 한다.  그것을 위해서 부지런히 공부하고 배우고 싶다. 좋은 스승들을 많이 만나고 싶다. 좋은 책들을 발견하고 감탄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살아내고 싶다.  

 

 

 

  1. http://www.kukinews.com/mission/article/view.asp?page=1&gCode=all&arcid=0920715998&cp=nv 국민일보 전통회귀 ‘이머징 처치’ 운동 뜬다… 과거 중시했던 묵상·의식 등 예배에 포함 [본문으로]
  2. http://www.nocutnews.co.kr/news/4574406 노컷뉴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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