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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을 따라 (교회와 공동체)/공동체

MZ세대 와 교회/ 어떤교회가 되어야 할것인가.

by 바울과 함께 걸었네 2021. 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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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중메체에 ‘MZ세대’라는 말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사실 이 MZ세대는 이미 2018년 부터 사회와 경제적인 이슈로 자리하고 있다.
2021년과 코로나 펜대믹 현상이 맞물리면서 MZ세대는 그야말로 거친 파도와 같이 사회구석구석에 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글을 쓰는 필자는 경제학자나 사회학자는 아니다. MZ 세대라는 떠오르는 핵심 세대를 향한 냉철하면서도 예리한 분석의 결과를 기대하지는 않길 바란다. 더욱이 대중메체에서 언급하는 세대론은 경제적 용어가 대부분이다. 필자는 인위적으로 세대론을 나누고 어떤 틀과 프레임을 씌워 경제관념을 덮는 것에 대해서 거부감이 있다. 현재 MZ세대에 대한 대부분의 통찰은 과학적이거나 합리적인 분석에 의한것이라기 보다, 이 세대 구성원들이 정치적이며 사회적 이슈에 반응하여 어떻게 또는 무엇을 소비하는 지 그 유행과 경제 흐름을 읽고 거기에 이름표를 붙이거나 꼬리표를 붙이는 것 같은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세대론을 그렇게 선호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대론에 입각하여 글을 쓰고자 함은 이들이 미래의 한국교회의 주축이 될 세대이기에 무시할수는 없다는 생각에 글을 시작하고자 하는 것이다.

사실 필자 역시 MZ세대의 범주에서 벗어나지는 않는다. 엄연히 필자 자신도 밀레니얼(Millennal) 세대라고 불리우며 대학생활을 보냈다. MZ세대라 함은 밀(M)레니얼-Z 세대라는 의미인데, 30대 후반에서 40대초반 즉 1980년대 생에 해당하는 밀레니얼세대와 2000년대 초반에 해당하는 Z세대를 묶어 부르는 말이다.
즉 30대 중반에서 40대 초반의 사회 초년생들 그리고 20대 초중반의 대학생들중심의 디지털 플랫폼이라는 시공간적 혜택을 누리며 사는 세대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이들은 IT 기술 SNS의 모바일을 기초로 하는 정보 네트워크 로 긴밀하게 얽혀있는 삶을 추구한다.

대학내일20대 연구소 팀이 발행한 “트랜드 MZ 2019” 라는 책을 보았다. MZ세대를 분석하여 마켓팅 트랜드를 살피는 책으로서 개인적 견해로서는 MZ세대라는 고유명사를 처음 세상에 알린데 공헌한 책이 아닌가 생각한다.
게다가 이책이 의미가 있는 것은 2013년부터 2018년 간의 사회 정치적 이슈, 경제이슈들을 분석하여 2019년 이후의 소위 MZ세대의 라이프 스타일을 예견함과 동시에 그들을 어떻게 공략할지를 제안해주고 있다는 데있다.

이 책은 먼저 MZ세대가 형성되기까지 가치관, 사회인식, 관계, 소비, 콘텐츠 등의 5가지 범주를 살핀다.

‘MZ세대의 가치관’은 끊임없이 묻고 탐구하며 찾아온 건강한 자존감이다. 이를테면, 2013년 한국사회에 힐링 열풍이 불었다. 일반적으로 힐링은 자존감과 연결이 된다. 밀레니얼 세대는 IMF 경제난을 겪은 세대이다. 대학 졸업후 사회진입에 성공 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자금 및 결혼등을 앞두고 경제난을 절대 벗어날수 없는 현실을 직면하게 된다. 게다가 직장내 권위주의 사회속에서 깊은 좌절과 낙심이 이들의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잡는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하게 된다. 결국 이들은 휴식, 쉼, 취향을 통해 행복이란 무엇인지를 발견하면서 자아를 찾는 힐링을 맛본다. 여기서 힐링이란 소박함 그자체 이다.

사회적으로 성공하기 어려운 시대다. 밀레니얼 세대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부모의 도움을 받지 않고 빚 없이 서울 시내에 집을 사는 것은 무리다. 애초에 기성세대가 물려준 평범함의 기준 ‘30평형대 브랜드 아파트, 중형 세단, 연봉 3,000만 원 이상의 직장’을 지키기 어려워진 지 오래다. 이제 밀레니얼 세대는 먼 미래에 안달복달하지 않고, 눈앞에 행복을 가져다주는 작고 소소한 성공에 집중하게 되었다. 라이브 퀴즈쇼에 도전하기도 하고, 우리나라가 메달을 따지 못한 올림픽 경기도 축제처럼 즐길 줄 안다. “결과 없는 노력은 의미가 없다.”는 폭력적인 질책에 주눅 들지 않는다. 인내심을 가지고 꾸준히 노력하는 힘을 믿기 때문이다
- <트렌드 MZ 2019: 밀레니얼-Z세대 5대 마케팅 트렌드> 중에서

작고 소소한 성공, 나는 누구인가?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스스로에게 묻고 그것이 진정한 자신이라고 믿고 살아가는 세대가 요즘 세대 곧 MZ세대인것이다.
이미 밝힌대로 이러한 가치관을 갖게된 것은 살기어려워진 세상때문이다. IMF, 경제난은 청년들에게 헬조선 열풍으로 이어졌다. 노력해도 혹은 실패하면 다시 회복할수 없는 세상, 게다가 갑질과 역차별, 공평하지 못한 세상은 그대로 청년들에게 상처가 되고 스트레스가 되었다. 결국 3포세대 N포세대를 양산해내고 이들은 인생을 관조하며 사는 법을 택하였다. 일상에서 소소한 행복을 누리는 것이 얼마나 삶에 활력을 주는지 깨닫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이들은 유튜브나 SNS세상 속으로 들어갔다. 지금까지 대중매체의 중심부적인 삶을 굳이 택하기보다 주변부의 삶, 비주류적 삶으로 살아감을 선택하였고, 브이로그와 같은 것들은 소통과 본질을 강조하여 소통의 힘, 본질을 붙드는 질문들, 삶의 활력, 소소한 일상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새삼 경험하고 있다.
또한 할머니품과 같은 넉넉함 또는 아무 걱정없이 뛰어놀던 어린시절을 추억하기 시작한다. 소위 레트로 감성, 그립고 정겨운 것들을 소환하는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레트로 감성은 이들에게 지금껏 느끼지 못한 새로운 감정을 허락해주었다. 말하자면 모험이랄까? 옛 것에 대한 호기심이랄까? 낯선것들에 마음이 설레는 일이 그것이다. 반면에 넉넉한 할머니의 품과 같은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예를 들어 꾸미지 않은 카페들 옛 정서를 그대로 둔 익선동이나 후암동 성북동과 같은 곳은 마치 정지되어 있는 느낌, 과거로 돌아간 느낌을 그대로 준다. 복잡하고 번잡한 곳에서 탈출하여 마치 외가집이나 할머니집에 들어온 느낌을 준다. 넉넉함, 정지된것 같은, 낡고 오래된 곳에서 추억 이러한 감정들은 그저 괜찮다고 실패해도 된다고 하는 먹먹함을 안겨준다. 오늘날 세대들이 이런곳을 선호하는 이유는 그 먹먹함을 느끼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교회는 어떤가?
마침 교회는 좋은 대학에 간이들, 좋은 직장에 취직한 이들을 축복받은 이들로, 세상에서 성공한 이들의 간증만을 듣는 근대적 이면서 계몽주의적 세상이 되어버렸다. 결국 교회에는 청년이 찾아볼수 없는 곳이 되어버렸다. 교회가 이런 청년들에게 치유와 회복의 장소가 되었다면, 실패해도 괜찮다고 다시해보자고 기운을 복돋아주는 그런 장소가 되었다면 어땠을까 아쉬움을 던져본다. 그러므로 교회는 몇가지 과제를 가진다.

첫째,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행복이라함은 거창하고 구름속을 다니는 듯한 그런 행복이 아니다. 성공과 물질적 복락으로 얻어지는 행복역시 아니다. 소소하면서도 현재의 삶에서 나답게 살아가는 일상을 말한다. 하나님의 백성답게 일상을 살아가는 법, 복된 삶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창조하신 나 답게 살아가는 법을 익히는 곳이 되어줘야한다. 1960~70년대 한국사회는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하였다. 도시계발등은 진정한 성공의 가치를 잘먹고 잘사는데 두었다. 그래서 교회마다 돈많이 벌고, 좋은대학 좋은 회사에 취직하고 강건하게 사는 것을 간증하였다. 그 후 저마다 복이라는 개념에 거부감을 표했다. 그리스도인들은 복 달라고 떼를 쓰는 욕심쟁이가 되버렸다. 그러나 복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고싶으신 것이요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다. 너무 좋은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너무 복을 왜곡시켰다. 그러다보니 오늘날 다시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가? 재고하기 시작하였다. 교회는 진짜 복이 무엇인지, 어떤 삶이 행복한 삶인지 알고있는 곳이다. 다만 그것을 어떻게 지금의 세대들에게 보여줄수 있을지, 어떻게 지금의 세대들이 공감하고 교회에 있는 행복을 발견할수 있도록 할지 고민해야 할것이다.

둘째, 상처와 눌림으로부터 치유와 회복이 가능한 장소가 되어야 한다. 이미 언급했지만, 현 세대들은 경제난속에서 진학을 하고 취직을 하였다. 결혼을 하여도 막막하고 두렵다. 아니 결혼도 포기 할수 밖없는 n포 세대 이다. 이러한 상처들은 분노로 이어져 기성세대들을 향한 분노, 조국을 향한 분노로 가득하다. 분노는 두가지로 향한다. 현실에 만족하며 사는 법을 터득하거나 게토화되어 살아간다. 교회가 이 세대들을 담아내고 읽어내려갈만한 여력이 없었고 두려워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자. 마땅히 복음을 지닌 교회는 상처를 치유하고 무엇보다 그들을 이해하려는 시도들을 시작해야할 것이다. 상처의 치유는 다른것이 아니다 일상으로 나아가기 위함이다. 일상을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게 하기 위함이다. 90년도부터 2000년도 한국교회에 내적치유 바람이 불었었다. 내적치유는 지나치게 신비적이면서 개인주의 영성으로 이어졌다. 치유라는 말 자체가 종교적신비를 가늠케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교회가 가지는 이 치유의 능력을 버려서는 안된다. 다만 지나치게 개인주의와 신비주의를 양산해내는 것들은 지양해야한다. 공동체적 소통과 함께 해야한다. 일상에 녹아든 다시말하면 일상에서 벗어나서는 안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공동체적 소통이 가능한 것이며 일상을 벗어나게 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우리의 신앙생활은 이 두가지를 무시했다. 소통으로서 기도, 하나님의 신비가 가득 담긴 일상으로 회복하는 말씀으로 치유, 예배 이러한 것들이 고민되어야 할것이다.

셋째, 괜찮다고 실패에 초연한 공동체가 되어야한다.
2013년부터 18년까지 헬조선이라는 말은,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수 없는 철저하게 짓밟힌 세대들에게 평가된 한국 사회를 말한다. 더나아가 꿈 꾸기도 조차 어려운 마치 지옥과 같은 세상을 말하기도한다.
이런 세상에서 청년들은 할머니 품과 같은 넉넉한 곳을 추억한다. 잠시 시간이 멈춘것같이 연출된 옛 공간에서 복잡함을 벗어던진다. 아이가 된것 같은 기분으로 돌아간다. 미지의 낯선 공간에 들어간 것마냥 새롭고 설렌다. 높은 빌딩 속 삭막하고 차가운 세상이 아니라 아담하면서 작은 공간에서 옛 추억에 잠긴다. 그곳은 실패해도 괜찮다고 속삭이는 곳이다. 다시 시작해도 된다고 복돋아주는 세미한 소리가 들리는 곳이다.
교회라는 공간은 청년들에게 어떤 공간이 되고 있을까? 대부분 교회는 세련미, 실용성을 앞세운다. 넓은 주차장, 도서관과 카페를 열어놓고 어느 누구나 오라고 손짓하지만 선뜻 그곳으로 가는 것은 쉽지 않다. 게다가 1960~80년대 부흥을 경험한 한국교회는 청년세대들보다는 기성세대들로 넘치는 곳이다. 쉽게 말하면 지금 한국교회는 부모님 같은 곳이다. 물론 사랑이 넘치는 곳이지만, 한국의 부모님들은 자식의 입신양명을 위해 헌신하시는 헌신의 상징들이다. 지금 세대들은 교회가 부담된다. 따뜻함과 사랑은 넘치지만 혼날 것같은 곳, 실패가 없어야만 하는 곳, 성공이 축복이라고 믿는 곳이 되어버렸다.
할머니 같이 넉넉한곳 실패해도 괜찮다고 하는 느낌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사실 교회는 레트로 감성으로 충만한 곳이다. 그렇다고 그자체로 촌스러운 복고적 감성을 내세우는 것보다는 교회내에 현대와 과거가 교차하는 감성, 낯설면서도 설레임, 오감을 자극하는 무언가를 비치하는 것도 좋을 것같다.
교회가 가지는 독특함이 무엇일까? 예배당 그자체이다. 예배당안에 하나님의 임재를 충만하게 느낄수 있는 것들을 두면 좋을 것이다. 오감을 자극할만한 것 설레임을 느낄수 있을 만한 신비스러운 장치들,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고 하나님의 임재앞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것들이 구석구석 있으면 좋을 것이다. 그저 예배당에 앉아있는 것 만으로도 강력하면서도 따뜻한 임재를 충분히 느낄수 있는 그런 것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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