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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든지 죽든지 (신학)/조직신학

20세기 신학 제1장 계몽주의: 고전주의적 균형의 파괴

by 바울과 함께 걸었네 2009. 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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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과 인간 그리고 이세상에 대하여 생각하는 방식에
영구히 돌이킬수 없는 변화가 온것은, 서양의 지성사에 있어서 통상 계몽주의 라고 불리는 한 시대 때문이다.
여기서 계몽주의의 용어를 정리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알리스터 맥그라스의 역사속의 신학 p125를 보면,
 계몽주의(Enlightment)라는 용어는 19세기 말의 몇십년 동안에만 통용되었던 말이다. '맑게 개다'라는 의미를 지닌 독일어의 die Aufklarung과 빛을 의미하는 불어의 les lumieres라는 용어가 18세기에 통용된것으로 추정되긴 하지만 계몽주의 운동의 본질과 깊이 연관되어 있었던것 같지는 않다.
계몽주의란 개인과 사회를 과거의 억압에 묶어 놓으려는 낡은 신화를 타파하기 위해 자유롭고 건설적으로 이성을 사용하고자 했넌 1720-80년 사이의 일련의 사상과 태도를 모두 포함한다.

 계몽주의의 이성의 빛은 권위의 근거였던 교회의 교권제도적 아성을 찬탈하게 되었다.
이제 사고하는 개인들은 그들이 믿는 바가 합리적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것이었다.  
계몽주의시대의 지식인들은 종교적 신념들에 대해 보편적으로 판별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도덕적으로 긍정적인 의미를 제시하는 것들로만 제한하려 했다.
이시대가 기독교  신학의 기초와 방향 모두를 완전히 뒤엎어 놓았기 때문에
계몽주의 시대 이후의 기독교 신앙은 더이상 그이전의 모습을 유지할수 없게 되버렸다. 
 
 교부시대의 최고의 신학자 히포의 어거스틴에 의해 초월성과 내재성이라는 양립하는 쌍둥이 진리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는 시도는 그절정에 다다르게 된다. 어거스틴의 신학적 균형은 중세에 들어와서 첨예화 되고 또 조율되다가
종교 개혁자들과 그들을 뒤따르던 개신교 스콜라주의에 의하여 재구성 되기에 이른다.
이시기의 신학적 균형 작업은 여전히 하나님의 초월성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17세기와 18세기에 이르러서는 중세의 신학자들이 전개해서 종교개혁기에 첨예화된 이 균형이 영구히 그리고 본질적으로 깨져 버리게 된다.  단계적으로 질서정연하다고 믿어 오던 실제가 새로운 우주론에 의하여 대체되어 버린것이다.
이러한 변화와 더불어 내재성보다는 초월성을 강조하던 균형이 바뀌어 버린 것이다.
이 두세기를 일반적으로 계몽주의 시대라 일컫는데 계몽주의의 시발점은 17세기 초로서 사회정치적인 면으로 말하자면 30년 전쟁의 종언을 고한 웨스팔리아 평화조약(Peace of Westphalia 1648)이 지성사적으로 말하다면 프란시스 베이컨(1561~1626)의 작품이 그 시원이라고 할수 있겠다.

베이컨은 실험의 방법을 중시했다. 그는 당시 과학적 방법을 동원하여 우주를 이해하려고 했으며 그는 현대의 기술문명사회를 위한 초석을 놓았다.
역사가들은 18세기의 마지막 몇해를 계몽주의 시대가 마감되는 때라고 지적한다. 이성의 시대는 사실상 임마누엘 칸트의 순수이성 비판(Critique of Pure Reason, 1781)이 출간될 때쯤에 이르러 끝이 나버린다.  

계몽주의 인간
계몽주의 시대에 나탄는 사상적 전망에서 한가지 중심적이며 근본적인 변화는 역설적이며 심지어는 자가 당착적인 것처럼 보이는 인간 이해를 전개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시대는 인간의 위치를 격상시켰고 인간의 능력을 한층 높게 평가했다. 계몽주의 시대는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을 역사의 중심무대에 두었다. 이러므로 하나님은 그 고딕식 성당들의 첨탑이 가리키건 하늘의 높은 위치로 부터 인간사가 얽힌 세상의 위치로 그자리가 바뀌게 된것이다.
 이에 계몽주의의 인간의 격상은 낙관적인 인간학이 발전하게 되는데, 이는 지금까지 신적 계시를 최종적 경정자로 바라보는 한편 이성의 역할은 계시를 통하여 주어진 진리를 이해하는데 있었던 중세의 신학이 인간의 낙관적인 입장으로 인간의 이성은 진리의 이해자에서 진리의 결정자로 그위치가 바뀌게 된것이다.
반면 하나님의 위치는 거대한 실제가 수레바퀴속에 들어가 있는 하나의 작은 톱니바퀴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그렇다면 계몽주의의 사상의 기초는 무엇인가?
그것은 두가지로 살펴볼수 있다.
첫째는 계몽주의는 철학적 혁명의 산물이었다.
그의 중심에는 프랑스의 철학가 르네 데카르트(1596-1650)가 있었다.
데카르트의 이성의 제 1원리로서 회의는 인간의 지적능력에 대한 확신으로 이어지게 되었고 결국 신적계시가 아니라 사고하는 주체가 바로 철학의 출발점이 이되었다. 그것은 신적인 계시로부터 인간의 내적인 음성에 집중하게 하여 내재성으로의 방향 전환에 길을 터주게 되었다.  

둘째는 과학분야에서의 혁명의 산물이었다. 과학분야의 혁명은 가장 큰 변화라고 볼수 있는데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당시의 지구가 우주 중심이었다는 사고에 굉장한 변화를 가져왔다.
이러한 자연적 법칙과 원리의 변화는 기독교의 세계관의 큰 시각을 흔들어 놓았고
결국 아이작 뉴튼의 과학의 업적을 통해서 가장 절정에 다다르게 된다.
그는 우주를 질서 정연하고 기계와 같은 것으로 설명하였다.
인간의 노력이 드는 모든 분야가 과학의 분파로 취급되었다. 인간이성의 빛나는 업적이라 하겠다.

계몽시대의 종교는 한마디로 이신론이 등장이다.
당시 합리적인 기독교 즉, 종교개혁이후에 개신교적 스콜라주의의 정통적 교리적인 신학 움직임은 계몽주의에 이르러 이성의 중심으로 옮겨지게 된다.
이를 계시종교(성경과 교회가 가르치는 가르침으로 내용으로하는 )보다 자연종교(신의 존재와 도덕법은
만인에게 알려져 있는 것이고 이성에 의하여 입증될수 있다고 믿는)를 압세우는 현상이라고 말할수 있는데.
이 당시의 철학자며 지성인(존 로크를 비롯.) 들은 합리주의 정통주의에 대한 신학적 대안으로
이신론을 내새우게 되었다.

이신론자들은 신은 저 멀리 있다고 하는 초월성에 그 중심을 두었지만,
계몽주의의 신관은 하나님이 자연과 인간 이성에 근접해 있는데, 너무 근접시켜버린 나머지
창조세계와 이성의 질서 정연한 영역안에 신이 내재해 있다고 보는 신의 내재성안에 신의 초월성이 용해 되기에 이른다. 


 (간단하게 정리)
고대 - 교부신학 중심: 어거스틴의 균형잡힌 두 진리 (초월성과 내재성의 균형)
          이성의 주체: 신적계시중심

중세- 신학: 스콜라주의(신적계시의 우월성. 안셀름)
         이성의 주체: 진리의 결정자로써 신적계시, 진리의 이해의 도구 로써 인간의 이성
 
종교개혁- 교회의 권위주의에 대한 반발,
               신학: 어거스틴의 신학입장(초,내의 균형)--->개신교적 스콜라주의 (정통주의 합리주의)
               이성의 주체는: 신적권위의 대리자로서 교회, 교리중심

근대(계몽주의)-중심: 베이컨 , 과학주의, 실증주의                      
                        신학: 이신론- 창조자로서 신--> 우주의 질서 톱니바퀴로서의 신
                       이성의 주체: 진리의 결정자로서 신적계시-->인간의 이성
                       (내재성안에 초월성이 용해됨- 이신론의 초월성과 계몽주의의 내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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