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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을 따라 (교회와 공동체)/공동체

코로나19 가 한국사회에 준 영향 2. 한국 종교(기독교)

by 바울과 함께 걸었네 2020. 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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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한국사회에 준 영향 그 두번째로 종교에 준영향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코로나19가 한국사회에 미친 영향중에 한국 종교에 끼친 영향이 지대하다. 일각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해 종교의 문화와 인식까지 변화될 가능성까지 내다보았다. 이번 사태가 준 영향과 더불어 변화될 종교적문화는 무엇일지 숙고해보고자 한다. 

1) 코로나19로 받은 영향과 던지는 세 가지 고민

1. 종교집회와 권력?

코로나19가 주는 가장 큰 영향은 종교적 모임인 예배일 것이다.
마침 중앙Sunday 3월7일자 신문기사를 보았다. 유현준교수가 쓴 '종교단체의 강적은 전염병…한곳에 못 모이면 권력 잃어' 라는 기사의 내용에 많은 부분 공감이 되었다. 유교수의 말에 따르면, 줄지어 놓인 긴 의자가 앞만보게 배치된 교회 공간은 말 그대로 집단적이다. 그리고 강대상에 말씀을 전하는 설교자에게 집중하는 공간구조는 설교자에게 그대로 권위가 부여된다. 그러기에 예배당은 그야말로 권위의 공간이라는 것이다.     
 

군집으로 다른 종들을 압도했던 사피엔스는 본능적으로 집단에 순응하려는 경향이 있다. 집단과 다른 행동을 하면 집단에서 쫓겨나고 이는 자신의 생존확률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줄지어 놓인 긴 의자가 앞만 보게 배치된 교회공간은 더욱 그런 경향을 강화한다. 그런데 인터넷으로 예배를 드리면 다른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2000명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대형교회와 2000명이 동시에 접속해서 인터넷 예배를 드리는 것은 다르다. 옆에서 설교자를 열심히 쳐다보면서 앉아 있는 사람이 없는 인터넷 예배에서는 같은 내용도 무게감이 다르다. 그래서 종교는 항상 모이기를 힘쓴다. 전염병이 있어도 마지막까지 모이려는 곳은 종교 공간일 것이다. 모여야 권위가 생기기 때문이다.
코로나19의 최대 발병지가 신천지 집회장소였다는 점은 우연이 아니다. 정상적 종교단체라면 전염병 기간 중 실내공간에서 모이는 것은 자제했을 것이다. 후발주자 신천지는 해산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한 공간에 모이지 못하면 종교는 집단공간이 만드는 권력을 잃게 된다.  <중앙일보>2020.0307 검색  https://news.joins.com/article/23724236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하지만 적어도 한국 교회의 역사에서 설교자에게 집중된 권위를 분산하고 해체하려는 시도들이 분명히 있었다. 한국교회내에서 앞을보고 예배를 드리는 천주교의 미사를 단호히 해체하고 예배인도자와 회중이 마주보고 예배드리는 형식으로 변화된 것도, 그리고 알아듣지 못하는 라틴어가 아니라 자국의 언어로 예배를 드리게 된것도 어쩌면 그런 이유다. 지금은 높이 세워진 강대상이 아니라 무대식 예배로 바뀌고 설교자가 양복차림의 정장을 벗고 청바지를 입고 나오는 이유도 그이유일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교수의 말처럼 설교자와 성직자들에게 부여되는 권위 그리고 그 아래에 집단공간에서 형성되는 권력은 분명 존재할것이다. 

2. 그리스도인이 예배당과 예배에 집중하는 이유는? 

그렇다 할지라도 그리스도인들이 예배당에 모이는 이유는 집단 공간이 만드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신앙의 이유때문이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모이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예배 드리라고 명하셨기 때문이다. 
앞서 밝힌대로 코로나19는 한국 종교에 큰 영향을 미쳤다. 수면 아래에 감춰져있던 신천지라고 하는 사이비 이단종교가 코로나19의 확진에 기여하면서 말이다. 신천지가 코로나19의 확진에 숙주적 변수로 등장하면서 기하흡수적으로 확진자가 늘어났다. 지난달 말 정부는 국내 감염병 위기 경보를 '심각'으로 상향조정했고 이에 3월1일 주일엔 대부분의 교회와 성당이 공식 집회와 모임장소인 예배당의 문을 닫고 가정예배 내지는 인터넷으로 생중계된 예배를 드렸다.  
필자가 섬기는 교회 역시 현 시대적이면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위해 자발적으로 2주간 예배당의 문을 닫고 생중계로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이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교회 역사상 처음있는 일이었고, 교회의 예배당을 떠나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일이었기 때문이다. 텅빈 교회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목회자로서 쉽지 않은 일이었다. 성도들은 예배당을 그리워하는 메세지들을 보내왔다. 주일에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리지 못한다는 것은 성도들에게 어떤 큰 영적 무게로 다가온 것이다. 

물론 101년전 1919년 3.1운동이 후 교회는 여러 지도자들이 감옥에 갇히는 일들이 일어났다. 당시 3월1일은 토요일이었기 때문에 삼일운동 만세시위를 주도했던 그리스도인들과 교회지도자들이 체포되었고 일제의 경찰과 헌병대는 주일 예배집회를 강제로 금지했다. 어쩔수 없이 예배당을 잃은 이들은 가정에서 예배를 드릴수 밖에 없었다. 삼일운동과 주일예배해산은 일제에 의한 무력과 강제적인 이유였다.
하지만 금번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과 주일예배는 101년전과는 달리 자발적이며 사회적 책임에 의한 것이다. 교회의 문을 닫은 것이 자발적이라는 데에 의미가 있다. 그래서 더욱 이번 결정이 각 교회들에게 난제였고,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예배는 무엇일까? 사실 그리스도인들에게 예배는 예나 지금이나 목숨과 같은 것이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무력과 강제적인 이유에서 예배의 해산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라 할지라도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예배당은 상징적 의미를 가진다. 과거의 그리스도인 뿐아니라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을 목숨을 지키는 것처럼 생각한다. 장소는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김현경이 쓴 「사람 장소 환대」라는 책에서 장소는 사람이 마땅히 찾아야하는 권리로 이해한다. 그래서 사람은 이 장소에서 존재로서 인정을 위해 투쟁한다. 존재의 부정을 위협하는 요소들을 물리치기 위해 폭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왜그럴까? 김현경은 이렇게 적고 있다. 

'인간은 자신이 한번 의미를 부여한 장소를 쉽게 잊지 못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장소는 우리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이다(중략) 한 장소를 떠나는 것은 그 장소에 속한 다른 모든 사람들을 떠나는 것이며우리의 자아를 구성하는 것은 우리의 기억 뿐아니라 우리를 기억하는 다른 사람들의 기억이기도 하다 우리가 장소의 의미에 천착하는 것은 이 모든 이유들에서이다. (김현경,  「사람 장소 환대」 285~287.)' 

정리하면 장소는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이며 기억의 요소를 가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소를 떠난 다는 것은 존재를 잃은 것이며 기억을 잃은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쩌면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의 장소인 예배당에 집착하는 이유이다.
더욱이 예배당은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임재의 상징이요. 말씀이 선포되는 공간이요. 성도들이 모여 서로의 삶을 나누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떡과 잔을 나누는 기억과 소망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예배당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소망의 장소요 마음의 평안을 얻는 곳이다. 존재의 이유가 되는 장소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목숨과 같이 예배당으로 모인다. 자발적으로 교회문을 닫고 예배드리지 못하는 상황은 교단과 종파를 떠나 쉽지않은 일이다. 특히 사제중심의 성례전을 행사하는 가톨릭은 더욱 쉽지않았을 것이다. 


3. 코로나19로 인한 교회의 이미지?

코로나19 확산과 더불어 언론과 대중매체는 예배당에서의 예배를 감행하는 대형교회를 비난하였다.
결국 교회 대부분이 예배당문을 닫고 인터넷 예배내지는 생중계예배를 감행하였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위함이요. 정부와 사회방침에 따라가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는 처사인 것이다. 더불어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모든 미사를 중단할 것을 경의하였다. 불교계는 산사 폐쇄하고 템플스테이를 중단하였다.

관련기사들
<오마이뉴스>2020년 3월7일 검색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619854&CMPT_CD=P0010&utm_source=naver&utm_medium=newsearch&utm_campaign=naver_news
<동아닷컴> 2020년 3월 7일 검색 http://www.donga.com/news/article/all/20200223/99834603/1

 

이런노력에도 불구하고 신천지와 더불어 교회내에도 확진자가 생기기시작하였다.
심지어 언론은 그와중에 예배를 드린 일부 교회도 '제2의 신천지'로 인식하여 보도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지난 22일 광화문에서 집회를 감행한 보수단체를 보며 시민들은 눈살을 치푸렸을 뿐아니라 박원순 서울시장은 대규모 종교집회및 신천지 교회의 예배에 대한 특단의 조치를 내릴 것을 밝혔다.  

 "서울시에서도 신천지 교회에 참석했던 사람이 확진 환자로 확인되었습니다. 신천지 교회의 이 예배라든지 집회에 대해서 특단의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
(출처 : SBS 뉴스 원본 링크 :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5659835&plink=ORI&cooper=NAVER&plink=COPYPASTE&cooper=SBSNEWSEND)
 

코로나19가 가져온 한국 종교계 특히 한국교회에 미치는 영향은 작지 않다.
예배당을 떠나 예배드린다는 것자체가 기독교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었고, 목회자로서 예배의 의미와 대 사회적으로 그리스도인됨을 어떻게 실천해야 할지를 고민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서론에 언급한 위의 사실들을 근거로 몇 가지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코로나19는 한국종교계 작게는 한국 기독교에 세가지 정도 영향을 주었다. 


2) 코로나 19가 한국교회에 준 세 가지 영향

1. 한국사회는 한국교회를 신천지와 보수우파와 더불어 범기독교단체로 보게됨.

한국사회는 한국교회를 신천지와 보수우파와 더불어 범기독교단체로 보게되었다. 한 카테고리 안에 묶어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는 필자가 섬기는 담임목사님에게 들은 이야기이다. 충분히 공감되는 이야기이다. 신천지와 같은 사이비 이단단체에 대한 사회적인 문제점 제기는 물론이고 대대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코로나19를 통해 신천지의 집단이 사회로 공개되고 노출된 것은 굉장히 감격스러운 일이나 그만큼 잃은 것도 많다.
소위 신천지 집단들이 하는 복음방 모임이나 성경공부등에 대한 거부감은 그대로 교회의 소그룹모임이나 전도모임, 성경공부모임에 그대로 영향을 줄것이다. 게다가 신천지의 집회를 통해서 바이러스가 침투 확장된 일연의 확진 역학을 보면서 기독교의 집회와 예배모임들에 대한 위생적으로 불편한 감정을 갖게 될것이다. 다시말해서 신천지와 일반 개신교회를 구분하거나 나누는 시도보다는 한 카테고리에 넣어서 기독교적인 집회, 성경공부 모임, 소그룹 같은 것 자체에 거부감을 갖게 될것이라는 것이다. 한국사회는 최근 세습을 감행한 모교회라든지, 코로나19 사태가 번져감에도 예배를 진행한 한 대형교회라든지 몇몇 교회들을 통해 '교회가 과연 신천지와 무엇이 다르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심각하다. 

또한 최근 보수우파 단체의 핵심인사들이 한기총의 목사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광화문 집회들을 단행하면서 코로나19과 더불어 눈쌀을 치푸리게 하는 일들이 있었다. 이미 광화문 집회가 시작된 시점부터 한국 개신교회, 또는 복음주의를 보수우파적 성격을 가진 정치 카테고리안에 넣고 분류한다. 심지어는 보수 기독교의 행위가 제2의 신천지라는 언론의 노골적인 기사제목은 마음 한 구석을 애리게한다.
(<연합뉴스> 2020 3월 7일 검색 가정예배 제안한 신학자 "제2의 신천지 되지 말아야" https://www.yna.co.kr/view/AKR20200303152200005?input=1195m)

그러니 코로나19 사건을 중심으로 신천지의 종교행위와 광화문 집회의 보수우파의 모임을 한국개신교회에 그대로 덧입혀 인식하게 되었다는 것은 충분히 납득이 간다. 

최근 한 카페에서 교회 교역자들과 잠시 회의를 했다. 끝마칠 무렵 회의를 진행하시던 목사님께서 마침 기도를 부탁하셨고 카페의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지만 마무리 기도를 하였다. 전도사님 한분이 굉장히 난처하고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카페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상황을 들어보니 우리가 기도하는 모습을 본 한 여성분이 밖으로 나가는 전도사님을 붙들고 이렇게 물어봤다는 것이다. '당신들 혹시 신천지야?' 
신천지에 대한 노골적인 거부감과 동시에 이곳에서 기도하는 무리가 일반 교회일 것이라는 생각을 전혀하지 않은 체, 내뱉은 언사였던 것이다. 교회는 이에 대한 각별한 준비를 해야할 것이다. 신천지와 같은 이단단체들에 대한 명확한 구분및 가르침은 물론이거니와 교회가 이땅에 존재하는 이유를 제대로 성도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게다가 신념과 이념에 따른 정치적 모임과 선동은 조심해야한다. 특별히 반지성주의자들, 정치에 끊임없이 러브콜을 보내며 어떻게든 정치과 결탁하려는 움직임은 피해야한다. 

예배당에서 예배드리지 않은 주일에 몇몇 청년이 교회 문을 두드렸다. 예배드리는 교회를 찾아왔다는 것이다. 정중히 돌려보냈다. 가면서 예배드리는 00교회로 가자! 라고 하며 떠났다. 예배에 갈급한 청년들의 모습과 더불어 왠지 신천지같다는 느낌을 전해줬다. 예배당 문이 열리고 이제 곧 코로나 종식과 동시에 성도들로 예배당은 채워질것이다. 일반성도들은 물론이거니와 신천지로 위장한 이들 내지는 사이비집단에 있던 자신의 무지를 회개하고 돌아오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이제 교회는 코로나19 사태가 주는 심각한 영향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이제 응전해야 할것이다. 교회의 영광및 거룩함을 위한 고민과 더불어 이단 사이비 신천지들이 죄과를 뉘우치고 회심하게 될때 일반교회는 어떻게 받아줘야 할지를 고민하고 모색해야한다.


2. 예배에 대한 신학적 입장의 재고와 교육의 필요.

주일에 예배를 예배당이 아닌 가정에서 드린다. 그것도 외부에 무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말이다.
성도들안에 어떤 마음이 있었을까? 주일에 예배당에 가지 않고 가정에서 예배드리는 것이 가능할까?

교회는 '에클레시아'를 번역한 용어다. 또한 헬라어 '에클레시아'는 히브리어 '카할' 이라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임 이라는 용어를 번역한 단어다. 즉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임이다. 예수를 구주로 믿는 사람들이 모인 모임. 그곳이 바로 교회다. 장소는 사실 큰 의미는 없다. 시간과 날짜는 중요한것은 사실 아니다. 토요일이니 일요일이니 하는 것은 그렇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토요일에도 진심으로 예배드릴수 있고, 일요일을 주일로 여겨 작은 부활절로서 기쁨의 예배를 드릴수 있다. 어떤 이들은 직장인이라 불가피하게 월요일에 예배를 드릴수밖에 없어서 월요일에 가능한 이들이 모여 월요예배를 드리는 이들도 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것을 우리 하나님은 원하신다.  
이렇게 하나님의 백성들인 그리스도인들이 모인 곳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요. 작은 의미로서 그 하나님나라의 백성들이 곧 교회인것이다. 이를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보이지 않는 교회라 했다. 이렇게 믿음의 사람들이 모여 하나님을 높이고 찬양하는 것을 예배라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모였다고 그곳에서 예배드린다고 해서 모두 교회일까? 아니다. 교회는 온전한 말씀이 선포되고 성례전이 바르게 행해지는 곳이다. 그래서 예배드릴수 있는 성례전적 공간과 장소가 필요했다. 조직이 세워지고 건물을 세웠다. 이를 보이는 교회라 할수 있다. 
다시말해서 우리의 예배는 시공간을 초월해 믿는 이들이 모이는 곳이라면 장소와 상관없이 예배드리수 있다. 하지만 모임을 위해서 공간과 장소가 필요한 것이다. 이것이 교회와 예배에 관한 신학적 토대라고 할수있다. 분명 종교개혁을 거치고 500여년이 지난 지금 예배에 대한 신학적 입장과 신학적 성찰은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를 삶에 그대로 실천함과 적용에 있어서는 여전히 수준은 기대에 못미친다. 

이번 코로나19 로 인해 교회의 예배당 문을 닫았다. 성도들은 각자의 삶에서 가정에서 예배드렸다. 
어쩌면 코로나19가 교회와 종교적 모임에 영향을 준 가장큰 요인이라고 볼수 있다. 
어떤이들은 교회가 헌금의 이유로 모임에 집착한다고 말한다. 어떤 이들은 권력에 관한 이유때문이라고 말한다. 
물론 그 이유를 배제할수는 없다. 지금도 예배드리지 못하는 작은 미자립교회는 목회자에게 사례를 줄수 없어 큰 어려움이 예상되기도 한다. 집에서 오랫동안 예배드리다 보니 오히려 모이는 것이 불편하게 되는 인간의 게으름과 연약함이 일어날지도 모르겠다. 
이 사태가 한국교회내에 잔뜩 두려움으로 인해 바람을 불어 부풀린 복어처럼 불안이 증폭되지 않기를 바란다.   

한 집사님이 가정에서 예배드린 감정을 나누어주었다.
'교회에서 오랜시간 예배드렸지만 가족들이 한자리에서 예배드리긴 처음이었다. 주일학교 가는 자녀와 주일에 서로 다른 부서사역하는 남편과 한번도 같이 예배드린 적이 없었는데 가정에서 이렇게 같이 예배드리니 좋았다.' 
지난날 교회가 잊어버린것이 무엇인지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지를 깨닫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2주간 교회는 소독을 하고 북적거리던 사람의 발길이 멈춰 조용해졌다. 정화의 시간이 되길 바란다. 
더 나아가 교회에 대한 소중함 예배당에 대한 그리움이 더해져 성도들의 신앙이 다시 회복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또한 아마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리지 못한 껄끄러움과 아쉬움은 분명 남아 있을 것이다.
예배드리지 않은 교회와 예배 드린 교회와 사이도 분쟁까지는 아니더래도 서로 껄끄러운 모습이 있을 것이다. 
분명한것은 누구는 예배드렸고 누구는 집에서 예배드린것이 믿음과 신앙의 문제로 나아가서는 안된다.
코로나 19로 인해 우리는 예배의 중요성과 더불어 예배 신학에 대한 재고도 해봐야 할것이다. 그리고 가르쳐야 한다. 
주일에 드리는 예배, 우리에게 주어진 장소와 공간에서의 예배는 우리에게 주어지는 은혜이다. 모이기에 힘쓰라는 주님 명령따라 주일이라는 시간을 거룩하게 여겨 모이기에 힘써야 한다.
그러나 세상으로 가라 명하신 주님의 명령에 따라 흩어지는 교회로서 세상에서 삶의 예배자로 살아야 한다.  

최근 옥성득교수님 페이스북을 통해 한국교회를 향해 흥미로운 제안을 하였다. 공감이 된다. 

'교회에 갈 수 없는 6개월- 2년의 시간이 주어지면 어떻게 할 것인가? 목회자들은 교인들을 훈련시켜야 한다.'

 

옥성득교수 페이스북 글에서... 3월 6일 오전 10:38

3. 다양한 예배 컨텐츠를 개발하다.

이번 코로나19를 통해서 눈여겨 본것은 인터넷 예배다. 다양한 인터넷 예배컨텐츠가 개발되고 생겨났다. 
인터넷이라는 공간, 인간의 문화가 조성한 사이버 세계에 하나님의 영이 임할수 있을까? 예배는 사실 한 개인이 하나님앞으로 나아가는 참여와 응답인데 컴퓨터와 모바일 기기앞에서 보는 것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얻을수 있을까?
분명 이에대한 신학적 입장과 성서적 모색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이시대가 신종 바이러스와 모임과 집회에 대한 거부감과 부담감을 갖기 시작한 입장에서 이러한 실제적이며 실천적 예배의 준비가 필요하게 됨은 사실이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를통해서 어쩔수 없이 예배당 문을 닫고 각 처소로 예배드리게 되자.
먼저는 청년부와 교육부를 중심으로 다양한 인터넷 또는 SNS 예배 문화가 등장했다. 셀모임을 유튜브로 진행하기도 하고 예배중간에 실시간 나눔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당분간 예배의 문화가 많이 향상될 것이며 유튜브라든지 여러 매체들을 이용한 예배가 등장하게 될것이다. 다양한 예배 컨텐츠 계발도 눈여겨볼 만하다.  교회의 현실적 유지는 헌금이다. 헌금에 대한 인식 재고와 필요에 맞게 드리는 방식도 생각해야할 것이다. 계좌번호로 봉헌하는 방식, 큐알코드인식하여 헌금을 드리는 방식이라든지, 봉헌의 의미를 현대에 어떻게 해석해야할지 고민하고 논의해야할것이다.

적어도 2주간 예배당이 문을 닫게 되었다. 이번 교회들이 현실적으로 직면한 것은 어떻게 가정안에서도 함께 예배드리는 느낌을 갖을수 있도록 할것인가였다.
때문에 이에 응하여 인터넷예배와 다양한 컨텐츠를 개발하는 교회들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코로나19사태를 미처 대비하지 못한 교회들은 서둘러 유튜브라든지 인터넷예배에 대한 지식들을 배우고 공유하기 시작하였다. 앞으로 유튜브예배라든지 인터넷교회에 대한 시도들이 일어나게 될것이라고 전망한다. 

또한 복음전도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해야한다. 지금까지는 길거리에서 혹은 선포식 복음전도 방식에 대한 대응으로 소위 관계전도 방식을 추구하였다. 최근 신천지 전도방식이 공개되었다. 굉장히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한다. 이들도 관계를 맺어가는 방식으로 복음방으로 끌어들이고 7개월 동안 3시간씩 성경공부를 가르쳐 소위 추수꾼으로 성장시킨다. 
신천지의 전도방식을 통해 우리도 으례 겁을 먹거나 복음전도에 대해 거부감을 표현해서는 안된다.
우리도 성경공부에 더욱 매진해야 한다. 관계 전도에 힘을 써야한다.
코로나19를 통해서 한국교회가 위기가 아니라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강원도 고성 왕곡마을의 오봉교회 모습 입구에 있는 십자가 @ 블로그내용의 글과는 무관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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