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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을 따라 (교회와 공동체)/공동체

코로나19 가 한국사회에 준 영향 1. 개인주의 심화

by 바울과 함께 걸었네 2020. 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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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 중국 후베이성 성도 우한에서 시작된 폐렴이 전세계적으로 빠르게 확산되었다.
이 폐렴이 후베이성의 한 수산시장으로 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감안하여 새와 박쥐 와 같은 야생동물들을 식용으로 판매하면서 생긴 동물성 전염균이라고 확신하였다. 

결국 코로나19 라고 명명한 신종 바이러스 전염병은 발생한지 2개월동안 국내에서만 사망자 42명 그리고 6,284명의 확진환자가 파악이 되었다. 정부는 초기 대응에 성공하는가 싶었다.
실제로 지난달 2월 초 정부는 '국내 방역 관리는 안정단계로 접어들었고 코로나19는 종식될 것'으로 내다보았다. 
하지만 확진자만 거의 2000명이 넘게 발생한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이 변수로 등장했다. 중국 우한에 지교회를 둔 대구및 부산 신천지교회와 신도들이 청도대남병원을 중심으로 대구 경북지역에 집단적으로 확산시켰다. 

 

 

대구및 경북지역의 집단 전염과 신천지의 확산 사이의 역학관계를 철저히 조사함을 통해서 방역에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늘어나는 확진자 추이는 이 사태가 장기화로 가게 될것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달 말 정부는 국내 감염병 위기 경보를 '심각'으로 상향조정했고 이에 3월1일 주일엔 대부분의 교회와 성당이 예배당의 문을 닫고 가정예배 내지는 인터넷으로 생중계된 예배를 드렸다.  

뿐만아니라 졸업식과 입학식을 연기및 중단을 하게 되었다. 각종 유치원및 보육시설도 휴원을 하였다. 
각종 문화와 예술분야에도 이어졌다. 확진자가 다녀간 극장은 폐쇄조치가 내려졌고, 연극이며 예술분야에 관람객이 끊어졌다. 코로나19 여파로 인해 경제는 그야말로 직격탄을 맞았다. 한 경제전문기사에서는 경제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보아 이를 코로나 쇼크라고 까지 이름을 붙였다. 

조성훈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국내에서 코로나19가 잠잠해지더라도 미국 등 주요국에서 코로나19가 시차를 두고 창궐한다면 올해 우리 경제가 0%대 성장에 그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한은은 지난달 27일 경제전망에서 코로나19가 국내에서 3월에 정점을 찍는다는 전제로 올해 연간 경제성장률을 2.1%로 예측했다.
<매일경제>2020.03.06 검색 https://www.mk.co.kr/news/economy/view/2020/03/224738/

국내 사회를 넘어 세계의 사회와 경제까지 코로나 쇼크는 그 근간을 흔들었다. 14세기 부터 17세기까지 근 5~600년간 2500만에서 6000만 명의 사망자를 내어 유럽 전체를 뒤흔들었던 흑사병(黑死病 또는 페스트) 과 견주어 이 사태를 해석하는 이들도 생겼다. 당시 페스트는 유럽의 사회적 경제적 그리고 종교적 기반을 뒤흔들었다. 사람들이 죽어나가자. 노동력손실이 생겼다. 이로써 장원및 봉건제도는 치명타를 입게된다. 게다가 죽음의 두려움은 비정상적인 종교행위로 이어지게 되었다.  제러드 다이아몬드(Jared Mason Diamond) 는 그의 책 「총균쇠
(Guns, germs, and steel : the fates of human societies)」에서 이렇게 말한다. 

"역설적이지만 유행병을 일으키는 세균들은 대부분 오늘날 거의 인간들에게만 감염되고 있다. 질병은 인간을 죽게하는 가장 큰 요인이므로 역사를 변화시키는 결정적인 요인이기도 했다. 제 2차 세계대전에 이르기까지 전시에 사망한 사람들 중에 전투중 부상으로 죽은 사람보다 전쟁으로 발생한 세균에 희생된 사람이 더 많았다. (287쪽) "

현재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전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페스트와 같이 대규모의 사망자를 낸것은 아니지만 현재 우리의 삶과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 시점에서 그리고 목사의 눈으로 이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우리에 미칠 영향들을 고민해 보고자 한다. 

1. 극심한 개인주의
극심한 개인주의가 심화될것이다. 코로나19의 감염 경로는 다음과 같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는 감염자의 비말(침방울)이 호흡기나 눈·코·입의 점막으로 침투될 때 전염된다. 감염되면 약 2~14일(추정)의 잠복기를 거친 뒤 발열(37.5도) 및 기침이나 호흡곤란 등 호흡기 증상, 폐렴이 주증상으로 나타나지만 무증상 감염 사례도 드물게 나오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 COVID-19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여기서 비말로인한 전염이란 감염자가 재채기나 기침을 할때 침등의 비말에 바이러스및 세균이 섞여 나와 타인에게 전염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감염자를 통해 오염된 손으로 얼굴이나 코, 눈을 비비면 전염될수 있다. 
그래서 실내공간에서는 마스크를 반드시 착용해야함은 물론이고 밀폐된 공간은 피해야 한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살기위해서 마스크를 마련해야 한다. 이를 사회적 현상으로 '마스크 대란' 이라고 한다. 

관련하여 국내 최대 마스크 생산업체인 웰킵스 대표는 한겨레 신문 인터뷰기사에서 마스크 대란의 이유를 크게 세가지로 꼽았다. 첫번째 이유는 중국 춘절 연휴와 코로나19 확산의 시기가 겹쳐 마스크 원자재인 멜트블론 필터 (MB)가 중국으로부터 수입이 막혔기 때문이다. 두번째 이유는 마스크 유통업자들의 노골적인 탐욕 때문이다. 개당 400원에 출고되던 마스크 물량을 가격 폭등을 노려 수천만장을 쟁여놓았기 때문이다. 세번째 원인은 정부의 뒤늦은 마스크 수출 제한 조치이다. 중국내 마스크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중국과 거래하는 업체가 마스크를 대량 뺴돌려 수출을 감행한 것이다.   <한겨레>2020.03.06 검색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31379.html

이러한 마스크 대란은 코로나 확산과 함께 국내 소외계층은 물론이거니와 일반인들도 구하기 힘든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대형 마트며 약국에 아침마다 마스크를 구하는 사람들의 행렬로 넘치게 되었다. 거기에 KF94 마스크가 10배가량 넘는 가격으로 거래된다고 하니 서민들의 불만은 폭등하였다. 결국 정부는 뒤늦은 마스크 5부제 등 수출규제를 통하여 공급하려고 애를 쓰고 있으나 여전히 불평과 반발이 끊이질 않고있다. 

마스크대란을 낳은 코로나19는 점차 사회적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먼저 경제적 불평등으로 인한 체념과 낙심안에 내재된 분노가 개인주의를 낳는다. 마스크를 구하기 쉽지도 않은데다가 평소보다 10배가량 높은 가격으로 사야하는 경제적 소외계층은 더욱 쉽지가 않다. 마스크를 구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는 이사회는 어느덧 마스크는 생명줄이 되어버렸다. 마스크는 얻지못한 이들은 깊은 낙심으로 이어진다.
부모들은 어린 자녀에게 한없는 죄책감을 갖게한다. 이러한 깊은 낙심과 죄책감은 분노로 이어진다. 
이러한 분노가 밖으로 향하면 각종 범죄와 살인으로 만연한 범죄사회가 되고, 안으로 향하면 각자도생의 사회가 된다.
각자도생의 사회는 말그대로 게토화된 사회이다. 이런 사회의 특징은 생존을 위한 투쟁이다.
먹고사는 문제에 집착한다. 생존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는 사회가 된다. 마스크는 곧 생존이다. 사재기에 동기부여라든지 자기성찰은 말그대로 사치다. 살기위해서 하는 행동에 무슨 성찰이있고 동기부여가 필요할까? 그속에 공동체는 없다. 오직 나 개인만이 존재할 뿐이다. 

둘째, 심리적이며 사회적 거리감으로 인해 개인주의가 심화된다. 마스크를 쓰는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다.
개인위생 관리 뿐만아니라. 타인을 잠정적 감염자로 여기는 것이다. 마스크는 심리적이며 사회적 거리를 두는 것이다. 사실 역사적으로 마스크는 여러가지 의미를 가졌다. 과거 마스크는 일반적으로 추운날씨에 착용하는 것이었다. 20세기 민주화운동에 돌입하면서 최루탄등에 보호하기 위해 마스크를 사용했다. 마스크는 투쟁과 운동의 상징이다. 홍콩에서 일어난 시위역시 마스크로 시위 메세지를 전했다. 공동체적인 독특한 메세지와 의미를 마스크에 담았다.
젊은이들에겐 마스크는 얼굴을 가림과 동시에 패션의 한부분이 된다. 얼마전 약국에서 검정색 마스크가 있었는데, 일명 연예인 마스크라고 한다. 이들에게 마스크는 패션이다. 한국사회에 미세먼지가 인체에 악영향을 줌으로 마스크를 사용했다. 이때 마스크는 환경오염의 상징이 되었다. 그리고 코로나19로 인해 마스크는 사회적 거리, 심리적 거리를 두기 위해 사용한다. 마스크를 쓰는 의미는 시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르게 해석하고 다른 의미로 착용한다. 점차 마스크는 개인적이며 사회 심리학적인 이미지화 되었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 실내에 들어온 이를 보면서 불쾌함을 감추지 못해 비난을 하는 영상을 보았다. 나외에 다른이들은 잠정적 감염자로 인식하는데서 나오는 불쾌감인것이다. 마스크 사회는 점차 개인주의를 심화시킨다. 대화를 하려면 마스크를 벗어야 한다. 심리적 거리감을 조장하는 것들을 제거해야 한다. 마음을 나누고 친밀해 지려면 사회적 거리감을 좁혀야 한다. 사회적 거리감을 유지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사회적거리감을 유지하게 만듦으로 더욱 개인주의화를 심화시켰다는 것이다. 다음화에 종교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겠지만, 공동체적 모임, 예배당이라는 공간에서 하는 일종의 종교의식들은 사회적 거리를 좁혀야하고 모여야 가능하다. 코로나19가 심화시킨 개인주의화는 모임의 의미를 잃어 버리게 하였다. 앞으로 교회는 이와 관련하여 신학적 고민이며 관련하여 실천적 내용과 방식을 고민해봐야할 것이다.  

셋째  죄책감과 두려움이 개인주의를 심화시킨다. 
무엇보다 코로나19가 주는 분위기는 죄책감과 두려움이다. 누군가 버스나 밀폐된 공간에서 기침소리를 내면 언짢은 표정으로 쳐다본다. 죄책감과 두려움이 그 공간에 가득한다.
더욱이 여러 방법을 통해 확진자가 생기면 일단 언론을 통해 확진자의 경로가 노출이된다. 다녀간 카페, 식당이 공개되면 그 곳을 다녀간 이들에게 방역조치를 알린다. 방역을 한후 시간이 지나면 위험성은 없지만, 그곳엔 사람들의 점차 발길이 끊길것이다. 직장내 공장내 확진자가 생기면 그곳은 당분간 보건당국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 
감염경로가 어떻게 되든 확진자가 생김으로 인해 모든이들에게 경제적이며 심리적 피해가 임한다. 죄책감이 생긴다. 그리고 미래가 두렵다. 중국의 한 기사에서 
코로나19가 주는 분위기는 죄책감과 두려움이다.  이런 분위기는 불안과 불확실성이 주는 느낌이다. 이것이 개인의 삶을 옥죄인다. 이를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은 '유동하는 공포'라고 하였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대구경북지부학회 서창민 정신보건이사는 "확진자 다수가 스트레스 고위험군"이라며 "죄책감을 갖거나 동선이 공개돼 사생활 침해를 받아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한다, 신상이 유출돼 욕설 문자 등에 시달리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노컷뉴스>2020-03-06 검색 https://www.nocutnews.co.kr/news/5303161

죄책감과 두려움은 개인의 삶을 옥죄고 고립시킨다. 결국 고립과 단절로 점철된 개인의 삶은 공포세상으로 만든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개인의 공포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세상은 점점 더 믿을수 없고 두려운 곳이 되어 점점 더 방어적인 행동을 취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슬프게도 공포가 스스로 증식하는 능력에 활력을 더해 줄것이다. ' (지그문트 바우만, 모두스 비벤디) 

개인주의 심화는 현재 코로나19가 우리에게 주는 영향이다. 개인주의는 각자도생의 사회 공포사회, 불확실한 삶만 양산해 낸다. 고립되고 단절되는 삶을 낳게 된다. 과연 교회는 무엇을 해야할까? 개인주의는 공동체적인 삶을 통해서 회복해야한다. 교회는 결국 보냄을 받은 공동체요 보내는 공동체이다. 말하자면 신앙공동체이다. 왜 공동체일까? 공동체는 함께하는 삶이다. 고립과 단절에서 이끌어내는 곳이다. 각자도생의 삶으로는 절대 세상은 나아지지 않는다. 결국 공동체다. 함께 사는 삶이다. 평등으로 점철된 협력으로 사는 세상이 필요하다. 

코로나19로 인해 심화된 개인주의 세상에서
하나님나라의 공동체는 세상에 무엇을 해야할까? 

먼저 지금이야 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줄때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께서 나병환자를 고치신다. 그런데 고치시는 방식이 독특하다. 그에게 손을 대어 고치신다. 율법과 병리적 이유로 인해 나병환자에게 손을대는 것은 금지시 되는 때였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두려워하지 않으신다. 불쌍히 여기사 손을 대어 고치신다. 교회는 이럴때일수록 두려워하는 세상을 향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무엇도 손대려 하지 않은 곳을 향해 손을뻗어 내어야 한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보여줘야 한다. 개인주의 사회에 깊은 곳에 있는 것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다. 코로나19의 마스크 대란이라든지, 내재된 낙심과 죄책감의 깊은 곳을 보면 그곳에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살기위해 바둥거리고 집착한다. 그리스도인은 살아 있는 이름이다.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이다. 우리가 가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생명은 세상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충격이 된다. 그리스도인들은 방역과 개인 위생을 철저히 함과 동시에 어떤 상황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은 하늘나라에 소유된 백성으로 살아가야할것이다. 
필자가 섬기는 교회는 사랑의 마스크 운동을 하였다. 사재기하는 세상과 반하여 우리는 마스를 이웃들에게 나눈다. 살기위해서 발버둥 치는 세상에 반하여 우리는 생명을 살리위해서 발버둥 친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가신 생명을 보여주는 삶이다. 

마지막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보여줘야 한다. 복음은 무엇일까? 최유하는 능력이요 회복시키는 능력이다. 복음을 전할때 회심의 역사가 일어난다. 회심은 변화다. 회개가 동반된 변화인데 회개하는 이유는 치유와 회복때문이다. 정신적으로 죄책감과 어두움속에 있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함으로 그들안에 눌린것과 얽매인 것에 자유를 주어야 한다. 죄책감은 공포를 조장한다. 복음은 어두움과 죄책감으로 얼룩진곳에 성령이 임하여 밝은 빛이 임하게 한다. 우리가 가진 복음을 이제 전해야 할때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교회의 성장에 복음을 사용했다. 그러나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세상을 위해서 사람을 살리기 위해 복음을 전해야한다. 

 


다음은 2화로서
코로나19가 한국 종교에 준 영향을 다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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