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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든지 죽든지 (신학)/조직신학

제 2장 초월성의 재건: 19세기 신학에서의 재구성 '칸트'

by 바울과 함께 걸었네 2009. 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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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계몽주의에 흔들린 교회...
 18세기의 계몽주의의 등장은 기독교에 상당한 치명타를 입힌 것이 분명하다.
이전에 제시되었던 성경과 교리의 권위들이 철저하게 무너지게 되었고, 이것은 결코 돌이킬수
없는 것이었다.  
결국 이성의 시대가 막을 내리게 되면서 교회는 두 갈림길에 놓여져 있게되었다.
하나는 성경과 교회의 권위를 회복하고 인간의 죄와 하나님의 구원을 강조하는 옛 교회의
전통을 회복하느냐? 아니면 계몽주의가 낳은 개인적 이성의 우월을 강조하는 근대의 회의주의적 합리주의를
따라야 하느냐?
그러나 신학의 방향은 점차 두갈림길을 벗어나고 있었는데,
그것은 정통으로의 회귀도 아닌 계몽주의의 이성적 합리주의도 아닌 새로운 방향으로의 전환으로
나아갔다. 그것은 임마누엘 칸트의 등장이 그 기점이 되었다.
 이미 계몽중의의 등장으로 인해 정통적 기독교의 교리의 권위는 철저하게 무너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성을
강조하는 계몽주의의 합리주의에 대한 기독교의 접근방식도 거부감이 들기 시작한것이다.

'19세기의 위대한 사상가들은 인간의 삶에서 종교가 차지할수 있는 특별한 위치를 별도로 지정함으로써 계몽주의에 의하여 빚어진 곤경을 극복하고자 했다. 이때에 등장한 것이 칸트였다. 칸트는 종교의 적합한 영역으로서의 삶의 실천적 영역 즉 도덕적 영역을 제시했다.
실천이성안에 그 적절한 기초를 두고 고기서부터 신학을 형성하려 함으로 초월성과 내재성 사잉의 균형을 맞춰 보려고 했다.'


 
임마누엘 칸트 Kant, Immanuel
(1724-1804)







칸트의 철학
본론: 배경- 영국의 경험론에서 회의주의적 인식론 까지 그리고 칸트
칸트의 철학은 가히 코페르니 쿠스의 혁명 이랄수 있는 것들을 일으켰다. 칸트의 철학에 배후에는 영국의 경험주의로 부터 물려받은 인식론 이라는 심대한 문제가 있었다.
영국의 경험론은 인간 지식자가 경험으로 부터 인식의 과정을 이해하는 것인데 소위 '수동적 지성' 이라고 불리우는  것이 그중심에 있다. 존로크는 '인간지성론'이라는 책에서 인간지성은 백지와 같다고 말하였는데 인간의 인식은 굉장히 수동적이라는 것이다. 당지 오감을 통해서 외부롭터 전해져 오는 인상들을 수용한 다음 그 동안 수집한 인상들로 부터 관념들을 형성하는 것일 뿐이다
이러한 인간 지성의 수동적인 인식의 흐름은 회의주의에 도달하게 된다.
결국 데이비드 흄에 이르러 인간 지성은 경험주의 방법대로는 우리가 당연시하고 있는 실제(인과관계, 영혼불멸과 같은 실제)에 대해서 인식할수 없게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모든 것들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각(pereception)일 뿐이라고 흄은 천명했다. 우리가 어떤 것을 안다라고 하는 것은 경험에 의한 인식이 아니라 단지 지성의 습관에 의한 결과 라는 것이다.
  이러한 흄의 인식론적 회의주의는 당시의 교회에 또한번의 타격을 주는데 이신론, 즉 경험주의라는 구조물위에 세워진 종교에 대한 회의를 불러 일으키게 된다. 즉 흄에게 있어서 어떤 실제 또는 인과관계에 대해서 인간의 지식으로 인식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이것은 바로 신존재 증명에 대해서 일격타를 날리게 되는데, 흄에 의하면 신존재가 인과관계에서 설명할수 있는 것이라면 우리의 인식으로는 불가능하며, 신의 존재를 거부하게 된다.
이러한 철저한 회의주의 인식론을 가져오게 된다.

칸트는 이러한 배경을 타고 등장하게 된다.
칸트는 흄이 발견했던 인간이 인식 과정에서 가지게 되는 한계의 문제점을 설명할수 있게 되었다.
 그의 순수이성비판에서는 인간이성은 능동적이다 라고 하며 이전의 인간이 성은 단지 오감에 의한 것이라고 하는 인간지성의 수동성을 무너뜨리고 인간이 가지는 감각은 단지 원자료를 공급하여 주는것이며 지성은 체계화 시키는 것으로 보았다. 그렇다면 지식은 어떻게 가능한가? 인간의 이성이 그 안에 내재되어 있는 어떤 형식적 개념들이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매개체로서 일종의 여과판 역할을 해주기 때문에 가능하다 라고 보았다.
그것은 바로 '시간과 공간'이라는 개념인데. 이 두가지 개념체계는 하나의 질서이며 어떤 대상에 대한 인식과정을 거치게 될때에 이 두가지 개념이 아니고서는 다른 방법으로는 외부 세계를 인식할수 없다고 그는 주장했다. 

 과연 그렇다면 칸트의 인식론에서 인간의 지성은 능동적이다 라고 할수 있을까?
그는 인간인식자의 경험속에 존재하는 대상들 과학적이며 도덕적인것들과 경험을 넘어선 곳에 존재하는 대상들 즉 신, 인간영혼등 과학영역을 넘어선것들을 구분하도록 하였다.
 칸트는 인간 지식자가 감각경험을 가지고는 신의 존재라든지 불멸하는 영혼 그리고 인간의 자유와 같은
초월적인 실제를 논증할수 있는 능력에 커다란 한계가 있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그는 판단력 비판 에서
신이라는 실제가 감각에 기초한 경험의 논증에서 증명될수 있다면, 신을 도덕적인 범주내에서 보는 것이 어려워질것이라고 믿었다. 즉 신앙을 인간 이성의 또 다른 영역 실천적인 측면에서의 이성에 속하는 것으로 분류하였다.

실천이성
칸트는 인간 실존의 실천적이며 도덕적인 측면을 마찬가지로 이성적인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도덕적인 접근도 이성의 원리로서 통제가 가능하다고 보았다. 칸트는 이러한 도덕적인 삶의 방식을 '의무' 라는 말을 사용했다. 이러한 도덕적의무는 정언명령에서 그 절정을 이룬다.
칸트의 최고선은 덕과행복이 연결되는 곳에서 사는 것인데, 이것은 도덕적인 삶을 사는 삶이 적합한 보상을 받을수 있는 미래적인 삶이어야 한다. 그런의미에서 칸트의 도덕의 최고선은 '요청되는 신'이어야 한다. 
 신은 완전한 정의가 나타날수 있도록 보장하는 자이며, 인간은 자유로운 능동적인 도덕 행위자로서 존재한다. 그런의미에서 영혼불멸은 최고선이라고 할수 있다. 그리고 그러므로 인간은 도덕적인 행위자 일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정리해보면 칸트 역시 계몽주의가 낳은 도덕적 행위자로서 인간의 낙관적 모습을 보여주며, 신의 요청을 피력하고 있지만 결국 신은 어떤한 의미에서도 존재할수 없고 우리는 경험할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합리적 종교
이성의 한계 내에서의 종교(Religion within the Limits of Reason Alone,1793)에서 칸트는 그의 작업을 한단계 더 확대 시켜서 도덕으로부터 종교로 옮겨 갔다. 종교는 도덕을 위한 것이며, 인간의 최종목표인 권능의 도덕입법자 에르도록 최종적인 목표를 제공해 주고 있다고 하였다. 예수는 역사적 모범으로서의 예수로서 최고선을 위하여 고난에 직면한 예수의 모습을 그린다.
(종교의 권위: 성경--> 순수한 이성,도덕적 차원.  은혜: 은혜로부터 행함-->행함으로 부터 은혜로)

도덕에 기초한 신학
 즉 칸트의 신학은 도덕에 기초한 신학이라고 할수있다. 칸트는 종교를 윤리적이라고 보았다 그의 기독론역시 그러한 관점으로 설명하게 되는데 창조의 목적 역시 도덕적으로 완전한 인류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묘사했다.
기독교는 윤리적 사회를 구현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제시되었고, 이는 후에 알브레이트 리츨에 의해서 자유주의 신학으로 대표되는 윤리적 하나님나라의 신학이 등장하는데 그 시작점이 되었으리라 추측해본다.

칸트의 신학은 신중심의 신학이었던 이전의 종교개혁주의적 신학을 무너트리고 인간중심적 신학을 전개했다. 이는 신의 내재성을 강조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휴.... 솔직히 좀 어려웠다. 칸트에 대해서 아는 것은 단지 시험공부를 위한 몇가지 뿐이었다.
배경적인 것이나 시대적 정황에서 나온 철학은 하나하나 단계를 밟아가며 습득을해나가야 하는데
단지 이책을 하나 가지고 이해하려니까 어려웠다.
칸트의 책 한권을 3년이나 읽는 분들도 계시던데... 
암튼 마이클 호튼의 책을 얼마전에 재미있게 읽어본 기억이 있는데,
미국의 세속주의적 신학의 기초는 계몽주의로 부터 시작되었다고 주장한것에대해
이책을 통해서 이해할수 있게 되었다.
현대에 계몽주의적 이라함은 무엇을 의미 할까?..... 
차근차근 그 시각을 넓혀보고 싶다.

 2장에서는 칸트를 시작으로 헤겔과 슐라이에르 마허 그리고 리츨까지 다뤄준다.

20세기 신학
카테고리 종교
지은이 스탠리 그렌츠 (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 199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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