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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을 따라 (교회와 공동체)/창동염광교회 50년사

염광교회 50년사 / 부흥과 성장 이야기 1. "일어나 빛을 발하라"

by 바울과 함께 걸었네 2022. 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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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 빛을 발하라" 

창동염광교회는
197324주보에 새해를 맞아 교인들이 새로운 다짐을 하도록 표어를 정하고 이 주제 아래에 우리 교회가 지향하는 목표를 제시하였다. 표어에는 그 근거가 되는 성경말씀이 제시되어 있다.
이 날의 주보에 실린 표어와 목표는 아래와 같다

우리 교회가 지향하는 목표
1.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교회 2. 복음선교의 사명을 가진 교회 3. 성도의 사귐이 있는 교회 4. 이웃과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교회

이해의 표어: 「일어나 빛을 발하라」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한 3서 2절)

1945년부터 90년까지는 한국기독교의 급성장기라고 할수있다. 세계를 놀라게 할만한 경이적인 양적인 성장이 이루어졌다. 그 결과 대형교회들이 출현했다. 한국교회 양적성장에는 많은 요인들이 있으나 1960년부터 이루어진 경제개발은 산업화와 도시화가 촉진되는 계기였으며 이러한 사회현상을 디딤돌로 삼아 교회가 성장하게되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교회성장에 가장 큰 기여는 곳곳에서 일어난 부흥회와 집회들의 영향일것이다. 
1970년대를 중점으로 초대형 전도집회가 연속적으로 개최되었다. 
1973년도에 대최된 빌리그래함 전도집회, 1974년도에 엑스플로 74(ExPlo'74), 84한국교회선교100주년 대회 등등이 그것이다. 창동염광교회도 이러한 교회성장의 급물살의 영향을 받았다.

"엑스플로74는 순수 교육훈련,"<동아일보>1974.8.9일자.

1973년 전도연습시간 , 100명이상으로 교인수 증가.

1973년 초 세계적인 빌리 그레함 전도단의 한국 방문은 창동염광교회에게 좋은 전도의 기회를 제공하였다.
창동염광교회는 전도를 통해서 교회를 성장시키겠다는 의욕을 갖고 1973년 4월 1일 주일 밤 예배 후에 전도연습시간을 가졌다. 자체적으로 전도 훈련을 받았던 이들은 4월 8일 오후 2시 교회에 모여 기도를 하고 두 사람씩 짝을 지어 2시간 전도활동을 시작하였다. 최기석 목사는 전도만이 교회를 성장시킬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5월 20일부터 전도대를 조직하여 축호 전도에 힘썼다. 그 결과로 주일 낮 예배에 참석하는 교인 수가 80여 명에서 5월 20일 이후에는 처음으로 100명 이상으로 증가하였다.
-창동염광교회 50주년사 편찬위원회-

금번에 한국교회 사상 최대의 전도운동이 전국 각지역에서 전개되고 있습니다. 특별히 20일 부터는 우리교회에서도 전도대를 조직하여 축호전도를 합니다. -창동염광교회 주보,1973. 5.13.


"빌리 그래함 한국전도대회 의의" <동아일보>1973.6.6.

73' 빌리그레이엄 전도집회 참석

금주 수요일(5월30일)부터 6월3일(수요일)까지 여의도 5.16 광장에서 역사적인 빌리 그레이엄 부흥집회가 열립니다. 위하여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창동염광교회 주보, 1973.5.27.

오늘 오후 3시 여의도 광장에서 빌리그레이엄 전도대회가 있으니 참석하시기 바랍니다.
-창동염광교회 주보, 1973.6.3.


한국교회는 사회적 배경의 요인도 있지만, 부흥회(사경회)와 전도집회를 통해 성장하였다.
창동염광교회는 이러한 한국교회의 성장에 동력을 받아 부흥회(사경회)와 전도집회를 통해서 성장하게 된다. 

아래는 창립초기에 열린 부흥회 개최 현황이다. 

'75 봄 부흥사경회' 강사: 김대복 목사 (1975. 10. 27)

1973년 8월 26∼31일 도봉산 다락원에서 동신교회 주최 부흥회에 참석. 김세진 목사
11월 12∼17일 청운교회 이준만 목사
1974년 9월 23∼28일 한강중앙교회 정운상 목사
1975년 10월 27∼11월 2일 동성장로교회 김대복 목사
1976년 10월 25∼29일 최용문 목사
1977년 8월 15∼19일 여의도5․16광장 민족복음화 대성회에 참석. 대회장 한경직 목사
1978년 1월 16∼22일 서울중앙성결교회 이만신 목사
4월 30일 저녁 선교예배. 한국대학생 선교회(CCC) 대표 김준곤 목사
1979년 6월 14∼17일 성결교회 강달희 목사
1980년 2월 10∼13일 ‘전도요원 부흥성회’ 한국대학생 선교회(CCC) 주서택 간사
1982년 6월 교회창립 10주년과 성전봉헌 감사기념. 한국중앙교회 최복규 목사
9월 5∼6일 장년부 주일 낮예배 출석수 1천 명 돌파운동. 충신교회 박종순 목사

-창동염광교회 50주년 편찬위원회-

 
"복음으로 국난 극복" <동아일보> 1977년8월16일자. / "7백만명 모인 초유의 전도집회" <조선일보> 1977년 8월21일자.

창동염광교회는 1977년 여의도 민족복음화 대성회에 참석을 하였다. 1978년 창동염광교회는 당시 대성회의 주요 강사진들중 하나였던 이만신목사 (서울 중앙성결교회)를 사경회의 주강사로 초청한다. 그 후 교회 창립기념주일에 CCC 한국 대표인 김준곤목사가 마 28:16~20의 본문으로 설교를 하였다. 즉 창동염광교회의 성장의 배경은 이와 같은 부흥회와 전도집회에 있으며, 이에 영적 동력을 얻어 최기석 목사와 성도들이 한마음으로 전도하고 기도로 맺은 열매였다고 볼수있다.  

창립 6주년 기념 전도 시가행진 (1978. 4)

"민족복음화 세계선교를 위하여"

최기석 목사는 교회가 성장하려면 전도해야 하고, 전도하려면 교인들이 성령충만을 받아야 한다는 믿음을 갖고 1979년 첫 주일인 1월 7일부터 5월 20일(주일)까지 수요일 주간기도회 시간에 “1. 자신의 성령 충만을 위해서, 2. 교회 성장을 위해서, 3. 민족 복음화 세계선교를 위해서” 통성으로 기도하는 시간을 마련하였다. 

-창동염광교회 50주년 편찬위원회-
 

그 결과 1979년 9월을 전후하여 출석인 수가 500명을 초과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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