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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을 따라 (교회와 공동체)/창동염광교회 50년사

염광교회 50년사 / 개척이야기1. “소금으로 빛으로 살라”

by 바울과 함께 걸었네 2022.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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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동지역 유래 

창동이라는 지역명은 양곡 창고(倉庫)가 있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유래된 것으로, 창마을, 창말, 창촌(倉村) 등으로도 불렸다. 창동은 원래 경기도 양주목 해등촌면 산하의 유만리, 마산리, 창동리 중 하나인 창동리였고, 1895년 갑오개혁 이후 한성부 양주군 해등촌면 창동리가 되었다가, 1896년 경기도 양주군 해등촌면 창동리가 되었다. 1914년 해등촌면과 노원면이 노해면으로 합쳐지고, 유만리, 마산리, 창동리가 통합되면서,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 창동리가 되었다.
해방 후에는 1963년 서울특별시 성북구 창동, 1973년 도봉구 창동, 1988년 노원구 창원, 1989년 도봉구 창동 등으로 계속 관할구역이 바뀌었다. 창동은 해방 후 1970년 쌍문동이 분리·신설되었고, 1975년 월계동이 분리·신설되었으며, 1977년에는 창1, 창2동으로 분리되었다. 이때부터 창2동, 그리고 창3동이 ‘신(新)창동’으로 불리기도 했다.
 
 

창동역 1960-70년대 추정

염광(鹽光): 소금으로 빛으로 살라

최기석목사는 동두천에 자리잡고 있는 미군 2사단 카투사 군목 대위로 재직하고 있었다. 최기석목사는 외출을 나오면 항상 창동을 지나서 영등포에 다녔다. 이때 최기석 목사는 창동지역에 가난한 시골 사람들이 몰려올것을 염두해 두고있었다. 전역 6개월을 앞두고 4월30일에 개척을 하려고 창동염광교회에서 그리 멀지않은 도로변에 상가2층 24평을 69만원에 임대하기로 계약하였다. 
1972년 4월 30일 상가 2층 그 넓은 장소에 가족과 그외 12명이 모여서 첫 예배를 드렸다.  

1967년 창동 @서울역사편찬원제공
1963년 창동 @서울역사편찬원자료

창동염광교회는 이러한 시대적인 사명을 띠고 소외된 채 변두리에 사는 모든 교인들에게 소김과 빛으로 살라고 하면서 창동염광교회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5:13~16,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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