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살든지 죽든지 (신학)/성경신학

마 28: 1~10 신약 비평방법으로 해석하기...^^ 양식, 전승사, 편집비평

by 바울과 함께 걸었네 2010. 6. 30.
728x90
반응형

(2)양식비평

1. 본문의 구조와 양식

Ⅰ. 1~4 큰 지진

부활의 이야기는 빈무덤에 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하고 있다. 이 단락은 무담의 침입을 막기위하여 경비를 세운 유대 당국자들의 조치에 곧이어 나옴으로써 더욱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이 이야기는 예수의 부활이 언제 어떻게 일어나고 있느냐를 다루기 보다는 예수의 부활을 전제로 하는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그것은 실제적인 부활의 모습을 설명하지 않은채로 부활사실을 기본적으로 선포하는 것이다. 이러한 놀라운 선포는 이에 합당한 기이한 사건들을(지진, 열린 무덤, 천사의 등장과 예수의 가르침) 동반하면서 이루어지고 있다.

Ⅱ. 5~7 주의 천사의 메시지

이 단락은 본질적으로 천사의 나타남과 그의 메시지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전반부는 이야기로 후반부는 담화로 이루어져있다. 천사가 전하는 5개의 명령의 구조적 장치를 주목하라 (두려워말라, 오라, 보라, 가라, 말하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복음서에서 부활이야기를 서로 조화시키는 문제는 여전히 논쟁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대체로 굳이 서로 분리된 이야기를 조화시킬 필요는 없다는 의견이다. 각각의 복음서가 독특하게 자신의 공동체의 삶의 정황에 맞는 이야기를 제시할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레온 모리스(L. Morris)가 지적한바와 같이

“각 복음서 저자들은 어느 누군가가 말하고 있는 것과 자기의 이야기를 조화시키려 애쓰지 않고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최대한 잘 말해주고 있다” 여자들은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놀라운 소식을 전하라는 천사의 명령을 이루기 위하여 길을 가다가 부활하신 예수를 직접 만난다.

Ⅲ. 8~10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여인들

이 단락의 핵심은 부활하신 예수와 여자들이 만나는 9절이라고 할 수 있다. 특별히 마태는 8절을 제외하고는 거의 마가를 의존하지 않고 있다. 특별히 마가의 도망하였다. 대신에 “기쁨으로”를 첨가하였고, 마가의 ‘심히 놀라 떨며’를 마태는 ‘무서움과 기쁨으로’로 바꾼다. 그리고 여인들이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 기뻐하며 발을 붙들고 경배한 내용을 통하여 당시 마태 공동체안의 부활신앙에 대한 상황을 엿보게 한다. 이 구절은 10절의 교훈을 제외하면 이야기체를 이룬다.

2. 삶의 자리

마태의 저자는 그의 복음서 안에서 자신의 혹은 그가 속한 교회 공동체의 특수한 신학적 이해와 삶의 자리를 반영해 주고 있다. 저자에 대해서는 자세한 논의가 필요하지만, 대체로 85년경 시리아 지역의 유대인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영역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마태의 부활전승도 이러한 시기와 상황에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마태 공동체의 구성원에 대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쿰멜에 의하면, 마태복음의 저자는 헬라어 권에 살면서 대부분 유대교 출신이고 헬라어를 쓰는 기독교인을 위해서 집필했음을 주장하고 있다. 어째든 대부분의 학자들은 마태 공동체는 대게 유대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하나님의 대한 믿음을 유지하고 있었던 임마누엘의 신앙(마 1:23; 마 28:20)을 가지고 있었던 공동체였다는 것은 분명하다.

예수께서 죽은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을 때 큰 지진이 있었다(2절) 또한 더불어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을때도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졌다”(27:51) 이 지진을 통해서 죽은자들이 깨어나며 소망을 얻게 되었다. 부활은 교회의 예수에 대한 신앙의 기원이다. 그리고 당시 종말론적인 삶의 자리에 있던 교회들에게 우리도 그리스도와 같이 부활할것이라는 메시지는 얼마나 큰 소망과 감격으로 다가왔을까?

무덤을 보기위해 갔던 여인들의 모습(1절)을 통해서 마태에게서 부활신앙은 예수의 부활을 역사적으로 확인하거나 증명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보기위한 것이아니라 부활한 예수가 함께 하는 부활의 공동체에 참여함에 있다. 특별히 여인들이 예수의 발을 잡고 경배한 사건(9절)을 통해서 부활한 예수의 부름과 위임에 복종하는데서 그리스도인은 부활의 삶을 역사안에서 살 수 있게 된다. 예수의 부활을 확신하고 부활의 공동체에 참여한 자들은 그에게 예배한다. 부활의 신앙은 보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이 경배의 행위를 통해서 마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라는 인물을 높임받으신 주님에 대한 신앙과 철저하게 동화시켜 놓았다

 

3) 전승사비평

신약문서에 나타난 예수의 부활에 관한 대표적인 본문들은 복음서, 사도행전, 그리고 고전 15:3~8에서 찾을 수 있다. 이 기록을 전승 연대에 따라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전승 분류

설 명

본 문

최초의 전승

사도행전 설교 중에 나타난 단편적 진술들

행 2:23~32, 3:13~20, 7:55~56, 17:31

바울의 고백적인 부활 전승

고전 15:3~8

초기 복음서 설화

마가의 빈 무덤 설화

막 16:1~8

후기 복음서 설화

마태의 부활 설화

마 28:1~20

누가의 부활 설화

눅 24:1~53, 행 1:1~11

요한의 부활 설화

요 20:1~21:23

(위의 표는 신석방 A반 4조의 보고서에서 발췌해 온 것이다.)

하나님께서 예수를 일으키셨다는 케리그마는 초기 교회의 기독론 형성을 위한 근본적 토대이다. 이 케리그마는 사도행전의 설교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다.(행 2:24~32; 4:1~2, 33, 10:40~41, 13:30~37, 17:18,30~31) 신약성서의 부활에 대한 증언은 매우 이른 시기부터 생겨났음이 분명하다. 예수의 부활은 모든 믿는 자들의 죽음으로부터의 부활의 선취와 약속으로 여겨졌다(고전 15:20, 마 27:51~53) 일반적으로 신약에서 기록된 부활전승은 빈무덤 전승과 현현사건 전승 두가지로 구분 된다. 신약에서 기록된 빈무덤 전승의 내용과 현현사건의 전승은 정확하게 일치하지는 않는다. 빈무덤을 목격하는 여인들의 명단도 다르며 각각 그것을 증언하는 초자연적 존재인 주의 천사, 흰옷입은 청년 또는 찬란한 옷을 입은 두사람 각각 다르다. 그리고 예수의 부활의 소식을 전하는 내용도 다르며 그 소식을 듣는 사람들도 각기 다름을 보고 있다.

하지만 예수의 부활에 관한 이러한 신약성서의 보고들 사이에 주목할 만한 어떤 패턴이 발견되는데 그것은 신약성서를 포함하는 초기교회의 기독론이 초기 전승에서 후기 전승으로 가면서 예수의 부활에 대해서 더욱 상세하고 다양한 사례들이 기록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말해서 비교적 초기의 문서로 인식되는 마가의 전승과 가장 후대의 문서로 일컫는 요한의 문서를 비교해 봤을때도 역시 그러하다. 예수의 부활전승의 목적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초기기독교 공동체의 삶의 자리에서 단지 예수를 기억하고 회상하는 것 보다 현존하는 그리스도를 찬양하고 경배하는 데있었다. 그런의미에서 스킬레벡스(Schillebeeckx)는 부활에 관한 가장 오래된 전승은 복음서들에서처럼 빈 무덤 전승과 연결된 것이 아니라 예수가 신적인 주로서 고양됨을 의미 했다고 주장한다. 일반적으로 신약성서 학자들은 예수의 부활에 대한 최초의 성서적 증언은 살전 1:10 과 4:14이다. 일반적으로 빈무덤 전승의 가장 오래된 기록은 막 16:1~8 으로 알려져 있으며, 현현전승에 대한 최초의 문서적 증언은 고전 15:3~8로 알려져있다.

빈 무덤 전승에 있어 복음서의 빈무덤 설화들은 예수의 부활사건 자체나 부활현장에서 예수의 모습을 기록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미 살펴본대로 빈 무덤에 전승에 대한 성서의 증언은 각각 불일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전승사적 연구를 통해서 빈무덤 전승을 하나의 사건으로 엮을 가능성을 열어둔다. 다시말해서 빈무덤의 전승은 비록 서로 다른 상반된 내용으로 각 복음서안에 있지만, 하나의 사건이 다른 전승들에 의해 표현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바로 두가지 가능성을 가진다. 먼저 요 20:3~10을 부활사화인 요 20:1~2로부터 분리된 별개의 것으로 본다면, 11절 이하는 그 사이에 있는 구절과 조화시키기 위해 개작된 한 단위로서 취급될수 있을 것이다. 이구절은 막 16:1~8과 평행본문인데, 막 16:1~8은 후문맥(9~11)의 갑작스러운 삽입으로 보이는 자료들을 통해서 이 구절의 전승사적 연속성은 마가 이전의 자료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마가의 평행본문은 요한의 형태로 발전되었음을 볼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로 요한 20장의 전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요 20:11~14a이 일반적으로 공과복음 자료를 알고 있었다는 주장을 토대로 할 때 개별적이고 독자적인전승 단위인 마28:9~10에서 언급된 사건, 즉 마리아로 하여금 부활한 예수를 만나게 해주는 편집적인 삽입 구절일 가능성이 있다. 이럴 경우 요 20:1~2은 자체로 완결된 별개의 독자적인 단위로 볼수 있는데 이것은 그 다음에 막 16:1~8과 전체적으로 상호 관계를 맺었을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고려할 만한 가치가 있는 한가지 가능성은 요 20:1~2이 전승의 초기 형태이며 부활절 이후의 신앙에 영향을 받지 않는 형태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승사적 발전 단계는 요 20:1~2에서 마가 이전의 형태로, 그다음에 현재 마가의 형태로 그다음에 마태와 누가의 형태로 발전되었을 것이다.

4) 편집비평

마태의 이야기에는 부활의 사건을 목격한 사람에게 당시의 일어난 사건을 직접 듣고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본문 마태의 배열 및 구성을 통해서 편집작위와 마태의 부활신앙의 특징을 밝히고자 한다.

1. 본문의 배열 및 구성

먼저 그날의 시간이 안식일이 다 지나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새벽(1절)이라고 구체적으로 언급되고 있다. 둘째 여인들의 명단이 등장하고 여인들은 무덤을 보려거나 향품을 바르기 위해 무덤으로 가고 있다.(1절) 셋째 예수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내고 돌위에 앉아 있는다.(2절) 넷째 천사의 형상이 묘사되고 있다. 마가는 청년으로 누가는 두 사람으로 표현하고 있다.(3절~4절) 다섯째 천사는 여인들에게 예수의 메세지를 전한다. (5~7절) 여섯째 여인들은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게되고 그 자리에 엎드려 발을 잡고 경배한다.(8~9절) 일곱째 예수는 제자들 더러 갈릴리로 가라는 메시지를 주신다(10절)

 

2. 마태의 편집 작위와 구성을 통한 마태의 부활신앙과 특수성과 메세지

ㄱ. 시간의 편집작위를 살펴보자. 안식일이 다 지나고 안식후 첫날이 되려는 새벽에서 마태의 표현은 마가의 안식일이 지나매 와 누가의 안식 후 첫날 새벽을 붙여놓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을 통해서도 마태는 마가의 표현을 따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것은 마태가 안식후 첫날 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다. 초대교회 사도들에게 있어서 안식후 첫날이라는 8일의 개념은 아주 중요하게 사용되었다는 전승이 있다. 7일이후 8일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재창조의 시간이며 모든 만물이 새롭게 되는 시작일인 것이다. (순교자 저스틴의 글들과 초대교회의 교부들의 글을 참고하라)

ㄴ. 여인들의 명단과 무덤의 방문 목적에 대한 내용이다. 여인들의 명단에서 사복음서 공통적으로 막달라 마리아를 언급하고 있다. 마태는 마가와 누가의 여인 명단보다 좀더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는데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로 소개하고 있다. 이것으로 보아 마태는 이들의 소개에 대해서 큰 의미를 두고 있는 것같지는 않는다. 다만 그들은 무덤을 보려고 왔다는 것은 마가와 누가의 의견과는 좀 다르게 언급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자료비평에서 밝힌바 있다.

ㄷ. 마가와 누가의 돌을 굴려진 것은 어느 누구도 본적이 없다. 즉 마가는 이미 돌이 굴려져 있음을 여인이 확인을 한다(막 16:2) 그리고 누가는 여인들이 큰 돌을 굴릴 것을 걱정하지만 무덤에 도착해 보면 이미 돌은 굴려져 있다(눅 24:3~4) 그러나 마태는 큰지진과 함께 주의 천사가 등장하여 돌이 굴려진 이유에 대해서 진술하고 있다(2절). 큰 지진에 대한 의미는 이미 앞의 비평에서 밝히고 있지만, 이것은 확실하게 종말론적인 하나님의 활동과 일맥상통하고 있다. 땅을 진동하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보여주는 것이다. 특별히 이러한 현상은 십자가의 죽음의 당시 무덤이 깨지고 죽은 자들이 일어나는 것(마 27:51~53)과 대비시켜주며 종말에 일어날 소망과 희망을 복돋아주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돌 위에 앉아있는 천사는 사망권세를 이기신 예수를 상징하는 것이다. 부활하신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임을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ㄹ. 천사는 여인들에게 예수의 메세지를 전한다. 마태가 보여주는 천사는 초자연적인 모습이다. 반면에 마가는 흰 옷입은 청년(16:5)으로 누가는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청년(24:4)으로 묘사하고 있다. 마가와 누가는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는 증인으로써 등장한다. 즉 마가는 청년의 모습으로 예수의 메시지를 전하며 부활을 전하는 사신의 역할로 등장하고, 누가는 어떤 이들은 신 17:6절의 두세사람 증인수를 위해서 최소한의 증인인 두명의 천사를 언급했다고 하기도한다. 다른이들은 누가의 기사에서 부활 기사는 변화산에서 변형되심 (눅 9:30)와 승천장면 (행 1:10)으로 영향받았다고 한다. 어째든 마가와 누가에서 나타나는 천사의 모습을 마태는 좀더 초자연적으로 천사를 묘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ㅁ. 여인들은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게되고 그 자리에 엎드려 발을 잡고 경배한다. 예수님과 여인의 만남에서 마가는 9절이후 좀 모호하게 처리되고 있다. 예를 들면 막 16:9의 안식후 첫날 이른 아침을 다시 언급함으로써 편집의 의심을 갖게한다. 마태의 예수의 발을 붙잡고 경배하는 모습은 이미 자료비평에서 다루었다. 정리하자면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를 왕으로서 경배의 의미라고 볼 수 있다.

ㅂ. 예수는 제자들 더러 갈릴리로 가라는 메시지를 주신다(10절) 마태는 마가의 진술을 그대로 따름에 있어서 갈릴리를 약속의 최종 목적지로 삼는다.(막 14:28) 그러나 누가의 경우 어떤 장소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 누가에게 있어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장소는 바로 예루살렘이다. (눅 24:47, 2:32; 3:6; 13:28~29; 14:15~23) 또한 사도행전에서도 표현되어 있는데 거기 보면 누가는 복음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해서 로마와 땅끝까지 퍼져간다고 밝히고 있다 (행 1:8) 갈릴리나 예루살렘이나 부활하신 주님이 나타나신 것을 분명하다.(마 28:9; 눅 24:34, 36~39; 요20:14~17, 19~23, 24~29) 어떤 지리적 장소에만 주님의 부활이 국한될 수 없음은 분명하다.

이로써 마태의 편집자적인 의도를 정리해 보면 마태는 최초의 케리그마적 부활 진술과 마가의 빈무덤 실화를 자료로 사용하고 있으며 이것들에다가 자신의 공동체의 부활전승을 편집적으로 결합하여 자기의 특별한 부활전승을 구성하였다. 마태에 있어서 예수의 부활은 종말론적인 기적사건이나 파루시아의 한 예표 이전에 역사안에 권세를 가지고 있는 부활한 예수의 제자로 부름과 위임을 받은 교회 존재의 근거이며 현실이다. 동시에 부활은 예수에 대한 신앙의 기원이며 복음서를 이루는 예수 전승의 틀이다.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