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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든지 죽든지 (신학)/성경신학

마 28: 1~10을 신약비평방법으로 해석하기 서사 비평, 사회과학적 비평

by 바울과 함께 걸었네 2010. 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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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서사비평

1) 본문의 배경

A. 문맥: 전문맥 27:1~56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27:57~66 숨지심 그리고 경배병을 세움

후문맥 28:11~15 경비병들을 돈으로 매수함

          28:16~20 부활하신 예수의 예수의 지상명령

B. 본문연구

언제: 안식일이 다 지나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새벽(1절)

어디서: 예수의 무덤(1절) - 제자들에게로 가는 길가 어딘가(8절)

본문등장인물: 여인들, 주의천사, 부활하신 예수, 지키고 있는자들, 저자

-여인들: 안식후 첫날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옴(1)

천사의 메시지를 듣고 제자들에게 두려움과 큰 기쁨으로 향함(8)

가는 도중에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함(9)

-주의천사: 하늘로서 내려와 돌을 굴려내고 그위에 앉음(2)

너희는 무서워 말라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를......내가 아노라(5)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누우셨던 곳을 보라(6)

또 빨리 가서....너희에게 이렀느니라(7)

-지키는 자들: 저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같이 됨

-부활하신 예수: 평안하뇨(9)

무서워 말라.....거기서 나를 보리라(10)

-Narration(저자의 의도): 여인들이 무덤을 ‘보려고’ 왔더니(1)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서 내려와....(2)

그형상이 번개 같고 그옷은 눈같이 희거늘....(3)

무덤을 지키는 자들은 무서워하며 떨며 죽은자 같이 됨(4)

여인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빨리 떠나 (8)

부활하신 주님의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9)

C. 줄거리(플롯)

a. 1v 여인들이 무덤에 '옴'

  b. 2~4v 주의 천사의 등장

    c. 5~7v 주의 천사의 메시지

a'. 8v 여인들이 무덤을 '떠남'

   b'. 9v 부활하신 예수와의 만남

       c' 10v 예수의 메세지

2) 본문의 해석

D. 본문의 배경에 관한 연구

Q: 당시 무덤은 어떤 형태였으며 당시 유대의 장례관습은 어떠했을까?

- 안식후 첫날이 되려는 미명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왔더니(1)

-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두었다가’(막 16:1) 미리 사다둠

- 안식후 첫날 새벽에...‘예비한 향품’을...(눅 24:1) 미리 사다둠

- 안식후 첫날 이른아침 아직 어두울때에....무덤에 와서(요20:1)

- 죽은자들을 성벽 바깥에 장사 지냄 (막 12:8; 눅 7:12; 행 14:19)

- 때로 시체들은 비둘기장처럼 칸칸이 배열되도록 자른 터널에 매장되었는데, 높이는 60센티정도다. 어떤 때는 시체를 타원형 벽감에 안치했는데 그벽감은 무덤 양쪽을 깊이 1m 정도 땅위 75cm 정도 부분까지 판것이었다. 그 벽감을 구유처럼 파서 시체를 그위에 놓거나 벤치처럼 만들어서 그위에 놓았다. 대부분이 석회암을 파서 만들었다.(막 15:46) 그런 무덤의 입구는 둥그렇게 만든 돌로 막아 놓았는데 맺돌 같은 모양으로 입구앞에 흠을 파고 굴려놓았다.

-마가 누가는 향품을 바르기 위해 옮 그러나 마태는 보려고 옮 이에 아마도 여인들은 기도나 애도를 하기위해서 였을 것이다. 그들이 무덤에 간 것은 기대보다 일찍 매장된 무덤을 안전하게 지키기 윟 3일째 되는날까지 사랑하는 사람의 무덤에 가보는 유대 관심을 말해준다는 롱스탭(Longstaff)의 주장은 별로 신빙성이 없어보인다.(3세기 Sem. 8.1을 참고하라)

* 정리하자면 당시 무덤은 석회질로된 무덤이며 그안을 파서 벤치모양이나 구유모양으로 만들어 그위에 시체를 두었을 것이다. 그리고 무덤을 큰 맺돌로 막아두었을 것이다. 또한 공관복음서에서 마태를 제외한 마가 누가의 여인들은 안식일전에 미리 향품을 사두었다가 안식일이 끝나자마자 바로 향품을 바르러 무덤으로 온다. 마태에서 여인들은 향품을 바르러 오는 것이 아니라 보러온다. 그것은 아무래도 시체의 안전 여부를 확인함과 동시에 기도와 애도를 위한 것이었으며, 향품을 바르기 위한 것도 포함되었을 것으로 보는 의견도있다. 단지 경비병들의 이야기에 걸려서 저자는 시체를 건드린 것 자체를 조심스러워 하는 자세를 보여준다.

 

E. 본문 연구

Q: 본문안에 여인들의 심경을 조사해보자.

- 무덤에 온 여인들

(마태는 심경변화 없음, 마가 ‘누가 돌문을 열어주리요?’ 염려, 누가 ‘열린 것을 보고’ 놀람)

- 주의 천사를 보고

(마태는 ‘무서워말라’, 마가 ‘놀라지말라’ 놀람의 간접적표현, 누가 ‘두려워 얼굴을 땅에대니’)

- 천사의 메시지를 듣고나서

(마태는 ‘무서움과 큰기쁨으로’ 마가는 ‘무서워서 아무말못함’, 누가 ‘심경묘사없음’ 다만 사도들이 여인들의 말을 믿지 않음)

* 정리하면 여인들이 무덤에 왔을때는 빈무덤을 보고 ‘놀람’ 주의 천사를 보고 ‘두려워하고 놀람’ 그러나 천사의 부활의 소식을 듣고는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인다. 마태는 무서움과 큰 기쁨이 있었다. 그러나 마가는 무서워서 아무말도 못한다. 누가는 심겨의 묘사를 그리지 않고 들은 메시지를 그대로 제자들에게 전한다. 왜 여인들에게 무서움과 동시에 큰 기쁨이 있었을까? 큰 기쁨은 이외에 (마 2:10)에서 마태에서만 두 번 나타난다 이땅에 성육신하신 예수그리스도의 별을 본 사람들과 죽은자들 가운데 다시 살아나신 빈 무덤을 본 사람들에게서 다. 이것은 얼마나 큰 의미를 주는 가? 예수그리스도는 우리의 큰 기쁨이시다. 이땅에 오신 예수를 알리기 온 세상에 알렸던 것 처럼 부활하신 주님을 기쁨으로 달려갔던 여인처럼 우리는 예수를 큰 기쁨을 가지고 전해야할 사명을 가지고 있다.

 

Q: 여인들과 부활하신 예수를 만났을 때 예수께서 하신 ‘평안하뇨’는 어떤 의미였을까?

- 5v의 천사의 첫마디 ‘무서워 말라’(mh. fobei/sqe) 9v 예수의 첫마디 ‘평안하뇨’(cai,rete)

- 천사는 먼저 여자들의 두려움을 진정시키는 쪽으로 자신의 과심을 둔다. 하늘로부터 온 천사들이 사람들에게 두려워 하지 말라고 권고한 것은 일반적인 일이다. (눅 1:13, 30; 2:10등등 )

- 1~4v 가운데 놀람과 두려워하며 무서워 하는 여인들의 마음을 해소 시켜주는 한마디였다.

* 정리하면 예수의 ‘평안하뇨’라는 말은 그렇게 특별한 말이 아니였다. 겟세마네에서 예수는 유다를 향해서도 이렇게 인사하셨다(마 29:49; 27:29을 보라)하지만 이같은 특별한 상황에서 이 인사는 형식적인 인사말 이상의 것이었을 것이다. 평안하뇨로 쓰인 카이레테(cai,rete)는 그대로 직역하면 기뻐하라 라는 의미였다.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무서움과 두려움이 가득한 여인들에게 기뻐하라는 주님의 인사는 어떤 의미였을까? 그들의 천사들의 소식으로만 들었던 주님의 부활의 기쁨을 그들이 그대로 눈으로 목격한 것이다. 그여인들은 부활주일 아침에 정말로 기뻐할 이유가 있었다.

 

(6) 사회과학적 비평

1. 본문의 배경

-언제: 안식일이 다 지나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새벽(1절)

-어디서: 예수의 무덤(1절) - 제자들에게로 가는 길가 어딘가(8절)

-본문등장인물: 여인들, 주의천사, 부활하신 예수, 지키고 있는자들, 저자

2. 본문을 향한 기본 질문들

- 안식일이 다 지나고에서 당시 안식일 대한 당시 사회적 관습은 어떠했는가?

- 당시 사회의 죄인의 장례의 문화 및 풍습은 어땠는가?

- 왜 복음서의 기자들은 부활의 소식을 여인들에게 먼저 듣게 했는가? 당시 여인들의 사회적인 위치는 어떠했는가?

- 무덤을 지키는 자들에 대한 마태의 인식은 어땠는가? 그들도 부활의 소식이 그들에겐 기쁨의 소식이 되지 않았을까?

- 예수의 메시지에서 제자들을 ‘내형제들에게’ 라고 말하고 있다. 예수의 부활이 주는 사회학적인 의미는?

 

3. 질문에 대한 해석

- 무덤을 보면서 장례에 대한 사회적인 풍습은 어떠했는가?

배경주석에 의하면 고대세계에서 시체를 매장 절차에 맞게 처리하는 것은 여자들의 몫이었다. 토요일 저녁 해가 지는 시각이 안식일이 종료되는 때였다. 여인들이 무덤에 다가온때는 사물을 식별할 만큼 날이 밝기시작하는 아침 6시경이었다. 장례를 치른지 사흘 이내 묘지를 다시 찾는 것은 유대와 이방문화 모두의 풍습이었다. 매장된 이의 죽음을 재확인 하는 이런 관습은 십자가 형의 성격상 전혀 불필요한 것이었으므로 그들의 관심사는 다분히 감상적인데 있었건 것이 분명하다. 예를 들면 기도나 애도의 표현으로 다시 찾은 것으로써 방문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여인들이었다.

- 왜 복음서의 기자들은 부활의 소식을 여인들에게 먼저 듣게 했는가? 당시 여인들의 사회적인 위치는 어떠했는가?

부활의 첫 증인으로 선택 받은 이들이 여성이었다는 것은 매우 중대한 의미가 있다. 당시 문화로서는 여인의 증언은 효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예수님의 사역이 동시대인의 가치관에 영합하지 않는 반 문화적 현상 도전적 성격을 지녔음을 입증하는 동시에 부활의 증언이 후대의 교회가 조작해 낸것일 수 없다는 것을 명확히 해주는 증거다. 즉 당시 사회적 관습은 여인의 증언은 믿을수 없다는 것이 통념이었다는 것이다. (여인들의 말을 믿지 아니하는 사도들 막 16:10~11; 눅 24:9~12 무덤에 가 보고 나서야 믿음. 참고 요 20:3, 8 )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여성신학적 성서해석은 독자가 자신의 해석학적 틀을 활용해서 현실에서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구체적인 작업이다. 그러므로 여성신학적 해석은 ‘전통적으로 가부장적인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본문’(저자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관심)이나 ‘가부장적으로 해석되던 본문’(과거의 해석자의 이데올로기적 정황에 대한 관심)을 여성 중심적인 관점(또 다른 이데올로기)에서 해석하거나 여성 긍정적인 본문을 찾아 그 의미를 더욱 강조하는 것이다.

웨인라잇(E. Wainwright)을 위시한 여러 학자들이 마태복음서에서 남성성이 규범이고 여성들이 소외된 남성 중심적이고 가부장적인 세계에 대한 하나의 상징적인 관점을 본다는 견해는 적당해보이지 않는다. 이들은 마태복음서에서 남성의 지배가 노골적으로 드러난 부분을 교정할 것을 주장했지만 다른 학자들은 마태복음서가 여성들을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장면을 발견하고 있다. 마태복음서의 저자가 계층화된 사회에 소속해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에 대한 언급과 제자들과 군중들 속에 여성들을 포함시켜 궁극적으로 여성들의 입장을 옹호하고 그들의 해방을 지향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 예수의 메시지에서 제자들을 ‘내형제들에게’ 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갈릴리로 가라고 하신 예수의 부활이 주는 사회학적인 의미는?

갈릴리는 어떤 곳인가? 마가는 1:1을 제외하고 예수님에 대한 소개는 갈릴리 나사렛출신이라는 사실이다. 예수는 갈릴리에 와서 하나님의 복음을선포하셨고 4명의 제자들을 부르셨다.(막 1:16)

갈릴리는 귀신을 쫓아내고 이적을 베푸시고 병든자를 고치시고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진곳이었다. 반면에 예루살렘은 적대자들의 본거지였으며 논쟁이 있었던곳 (마가 전체에서 11번정도 논쟁이 나옴) 많은 종교인들의 탐심과 습관적 제의적 활동에 분노하셨던 곳이다.

한국의 토착화 신학으로서 민중신학은 예수의 부활 사건은 공동체적인 사건으로서 구현되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민중의 부활과 동시대적인 사건이며 예수의 부활사건은 오늘의 미중의현장에서 일어나는 해방의 역사속에서 경험되어야 하는 것이다.

마태가 제자들과 예수의 만남을 예루살렘이 아니라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하는 주님의 약속에 대해서 안병무는 갈릴리는 민중의 부활사건이 일어나는 현장을 가리킨다. 갈릴리는 단순한 지명이 아니라 예루살렘의 지배세력과 대조되는 사회에서 멸시되던 민중의 자리 였다. 고 하였다. 부활하신 예수는 눌려있는 갈릴리민중이 일어나는 데서 만나지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3.1운동, 4.19의거 그리고 오늘의 한국교회가 억눌린자 소외된자와 함께 서는 사회선교활동에서 만나지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선교학적 의미에서 갈릴리는 마 4:12~17에서 사 9:1~2의 내용을 인용하여 설명하고 있다. 갈릴리는 예수의 사역의 시작점이었고 이곳을 통해서 선교가 시작되었다.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빛을 보았고.....빛이 비취었도다 하였으니라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마 4:12~17) 그러므로 갈릴리는 부활한 예수의 공동체의 시작점이고 선교적 중심지가 되는 것이다.

 

다. 결론: 비평 후 메시지

1) 본문의 구조

- 서사 비평을 통하여 본문은 대략 평행구조 (parallel struture) 라고 할 수 있다.

a. 1v 여인들이 무덤에 '옴'

   b. 2~4v 주의 천사의 등장

      c. 5~7v 주의 천사의 메시지

a'. 8v 여인들이 무덤을 '떠남'

    b'. 9v 부활하신 예수와의 만남

       c' 10v 예수의 메시지

이 구조는 a.는 여인들이 무덤에 찾아오고 a'는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무덤을 떠나는 장면이 평행을 b.는 천사가 등장하고 b'는 예수가 등장하고 c.의 천사의 메시지와 c'.의 예수의 메시지를 중심으로 하여 각각 평행되어 내용이 전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틀로서 본문의 메시지를 해석해 보겠다.

2) 비평이후 얻어낸 본문의 메시지

a. 여인들이 무덤이 온 사건 부활의 이야기는 빈무덤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되고 있다. 이는 마태가 마가의 빈무덤 사건을 따른 것이라고 할수있는데, 전적으로 그렇지는 않은 것이 그는 빈무덤 사건 안에 큰 지진과 주의 천사의 등장으로 약간 설화적이며 전설적인 느낌을 주는데 이는 마태가 의도한 부활의 사건은 어떻게 언제 일어났는가를 다루는 것이 목적이 아님을 알 수 있게 한다.

특별히 안식일이후 첫날이 언급되는데 이는 안식일이후 여인들은 새벽미명부터 예수의 무덤에 찾는데, 특별히 마태는 향품을 바르러왔다는 마가나 누가와는 달리 보려고 왔다고 언급하고 있다 이를 미루어 봤을 때 무덤에 안치된 예수를 향한 애도의 표현으로 이해할수 있다.

b. 이미 언급한 것처럼 큰 지진은 마태가 가지는 특별 사건이다. 이로써 약간 설화적이며 전설적인 느낌을 주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것은 한편으로는 27장의 십자가의 죽음과 연결되며 더 나아가서는 여호와의 임재와 종말의 상징으로 여겨질수 있다. 더나아가서는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가운데 지진이 나고 바위가 터지며 무덤에서 자는 자들이 일어난 사건은 마찬가지로 부활 사건에 그대로 이입되어 부활의 소망으로 까지 이어지도록 한다. 그러므로 마태의 의도는 에수의 부활이 어떻게 언제 일어났는가에 주안점을 두기보다. 그 실제적인 부활이 현존하시는 예수께서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를 알려주고 싶어한다는데 그 중점이 있다 하겠다.

c. 천사는 여인들에게 예수의 메세지를 전한다. 마태가 보여주는 천사는 초자연적인 모습이다. 반면에 마가는 흰 옷입은 청년(16:5)으로 누가는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청년(24:4)으로 묘사하고 있다. 마가와 누가는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는 증인으로써 등장한다.주의 천사의 메시지는 마태가 마가와 누가와 다른 점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가 살아났음’을 확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그가 죽은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셨다고 증언해주고 있다.

a'. 여인들은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무덤을 빨리 떠난다. 그들에게 무서움은 이해가 가지만 큰 기쁨은 무엇일까? 마태에서 큰 기쁨이라는 단어는 딱 두 번 쓰인다. 그것은 2:10 박사들이 별을 보고 아기있는 곳에 멈춰 선 것을 보고 가장 크게 기뻐하였다. 마찬가지로 큰 기쁨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가 다시 살아나셨다는 여인들의 마음속에 있다. 우리들에게 큰 기쁨은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이땅에 오셨으며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그 예수가 여전히 그리스도인과 그의 공동체 가운데 함께하신다는 감격가운데 있다.

b' 여인들은 제자들에게 알리러 가는 도중에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다. 여인들은 당시 사회적 통념으로는 그들의 증언은 믿을만한 것이 되지 못했다. 그들은 약한 존재였고 사회적으로 눌리고 약한 자들이었음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을 부활의 첫 증인으로 사용하시는 부분은 일반적인 통념을 깬것이었다. 부활의 소식은 가장 약하고 연약하며 믿지 않을 것같은 그들의 증언으로 시작되었다. 이것은 여성신학의 입장에서 굉장히 값어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주님은 평안하뇨 라고 인사하신다. 평안하뇨(cai,rete)는 기뻐하라는 의미이다. 두려움과 무서움가운데 있는 여인들에게 이말은 그들의 기쁨을 다시 회복시키게 하였다.

그리고 여인들은 예수의 발을 붙잡고 경배했는데, 일부 옛고대의 유령은 발이 없다는 관습에 의해서 예수는 영이아니라 육체임을 보여주는 (참고 눅 24:39) 것이라고 하지만 그런 의미라기 보다 일반적으로는 왕이나 높은 분에게 인사를 드릴 때 발을 붙드는 관습이 있었다. 게다가 여인들은 예수께 경배를 드리고 있었다. 경배를 드리는데 영인지 아닌지 의심하면서 발을 붙드는 것은 맞지 않다.

c' 예수의 메시지는 제자들더러 갈릴리로 가라고 명령하신다. 갈릴리는 어떤곳인가? 갈릴리는 예수의 선교적 중심지였다. 이곳에서 복음이 전파되었고, 병자들과 귀신들이 떠나가는 곳이었다. 이곳에서 예수는 많은 삶을 보냈다. 특별히 해방신학의 관점에서 봤을 때 갈릴리는 예루살렘과 대조되는 곳이었다. 그곳은 소외되고 눌리고 연약한 사람들이 있는 곳이었다. 그곳은 부활하신 예수가 함께하는 민중의 자리였다. 그리고 선교학적인 의미로서 그곳은 선교가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다.

 

Ⅳ. 참고문헌

윤철호, 예수그리스도 상, 서울:장로교출판사, 2008.

윤철호, 예수그리스도 하, 서울:장로교출판사, 2009.

나요섭, 신약성서개론, 서울: 대한기독교서회,2009.

최원준, “복음서 부활이야기에 대한 신학적 단상”,「그 말씀」2010년 3월호.

 

W.G 쿰멜, 신약정경개론, 서울:대한기독교서회,2008.

Paul Beasley-Murray, BST 시리즈 ‘부활’,서울: IVP,2008.

D.A Hegner, WBC 마태복음(하), 서울:솔로몬,2003.

Craig S. Keenr), IVP 성경배경주석, 서울: ivp,2000.

David Wenham & Steve walton, 성경이해 시리즈1: 복음서와 사도행전, 서울:성서유니온,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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