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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한 기대 (삶)/책과 삶

로드니 스타크의 "기독교의 발흥" 을 읽고 3

by 바울과 함께 걸었네 2020. 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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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기독교의 발흥의 이유는, 

셋째,  도시제국의 기독교화 때문이다.  

저자는 초기 기독교에 관한 탁월한 연구인 웨인 믹스의 책 "최초의 도시 기독교인"을 통하여 기독교가 도시 운동이었음을 부각한다. 전적으로 동감한다. 실제로 그리스 터키 성지순례시에 초기 기독교 공동체가 세워졌을 법한 곳은 도시였다. 초기 기독교 확산에 관하여 운동이라고 여기는 학자들이 많다.  하르낙은 기독교 공동체가 디아스포라의 회당을 중심으로 발흥했다고 본다. 그런의미에서 기독교는 도시 운동이었다. 그러므로 초기 기독교의 발흥과 관련하여 성향 분석이 가능하려면 그레코 로만 시대의 물리적이면서 사회적인 구조를 살펴야 한다. 
거대한 그레코 로만 사회구조 속에서 교회는 어떻게 발흥했으며 어떻게 존재했을까?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두가지 정도로 책내용을 살펴보고 느낀점들을 적어보고자 한다. 


1. 도시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위에서 밝힌대로 기독교는 도시 운동이다. 하지만 당시 로마사회의 도시라고 해봤자.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였다. 거주하는 집은 단지 잠자고 물건을 보관하는 정도의 공간이었을 것이다. 이런 밀집 지역에서 화재는 공포의 대상이다. 게다가 상하수도 시설이 놓여있었지만, 음식물쓰레기나 요강을 쏟아 붓는 작은 개천이었다. 악취와 더불어 더럽고 불결한 곳이었다. 이런 불결한 도시는 감염성 질병의 온상으로 여성은 출산과 낙태및 만성적인 감염의 고통을 겪었다. 더욱이 이교도 세상에서 도시는 성적인 범죄와 무질서가 횡행했을 것이다. 
이런 세상에서 기독교 공동체는 어떻게 존재했을까? 저자는 5가지 정도로 소개하고 있다. 

기독교가 여러 시급한 도시 문제를 해결할 새로운 규범과 새로운 유형의 사회적 관계를 제시했고 이로써 그레코 로만도시인의 삶을 재활성화했다는 것이다. 노숙자와 빈민으로 가득찬 도시에서 기독교는 구제뿐아니라 희망도 제공했다. 신착자와 낯선 사람으로 가득 찬 도시에서 기독교는 즉각적 애착관계의 토대를 제공했다. 고아와 과부로 가득찬 도시에서 기독교는 신개념의 확장된 가족을 제공했다. 폭력적인 인종 분쟁으로 갈가리 찢겨진 도시에서 기독교는 사회 응집의 새로운 토대를 제시했다. 그리고 역병 화재 지진과 마주한 도시에서 기독교는 효과적인 간호서비스를 제공했다. (241-2)

그렇다면 어떻게 기독교는 이러한 가치들을 유지할수 있었을까? 
먼저 기독교는 배타적 공동체였기 때문이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제일 많은 비난을 받는 것이 배타성에 관한 것일 것이다. 하지만 기독교에 복음이라는 절대적 가치를 지닌이상 배타성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치열하게 공동체 생활을 영위하였다. 그 깊은 내막은 성직자와 성도들간의 생성된 깊은 가족유대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둘째 기독교는 희생의 종교로서 순교를 귀하게 여겼다. 저자는 사회과학적으로 순교를 분석한다. 순교는 정신분석학적인 어떤 극단적 정신 분열에 의해서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합리적 선택에 의한 것임을 밝힌다. 합리적 선택이란 효용의 극대화 즉 보상의 원칙에 따른 합리적 선택이라는 것이다. 순교자들이 택하는 고비용에 따른 보상은 결국 천국, 면류관 같은 것 뿐아니라 희생을 통하여 순교자 반열에 오르는 영광스러움 을 부여 받는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떻게?

현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도 여전히 이교도 세상에서 살고 있다. 더나아가 여전히 교회는 도시속에 존재한다.
먼저 대한민국의 도시의 현실에 대한 주도 면밀한 연구와 분석이 필요하다. 어느 한 도시에 교회를 개척할때, 그저 현실적으로 전세와 월세를 고려하여 장소를 선택할수 밖에 없다. 현실이니 어쩔수 없다 치더래도 도시에 대한 지역적이며 영적인 선 이해가 필요하다. 그리고 필요들을 살펴야 할것이다. 교회가 그 필요들을 조금씩 채워가야 한다. 하나님께서 그 지역에 그 교회를 세우신 이유요 비전이기도 하다. 
그리고 교회는 배타적 공동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한다. 지금은 코로나 시기라 대면하여 모일수 없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우리에게 준 교훈은 대면도, 비대면도 어느한 공간, 물리적 공간이든 사이버 공간이든 공간안에 함께 있으면 모임이라는 것이다. 성직자와 교회 공동체 내에 성도와 성도간의 주도면밀하게 공동체성을 유지하는 노력이 필요하겠다. 줌이라든지 온라인 모임들을 유지해야 한다. 치열하게 모이기 위해 애를 써야한다. 
마지막으로 애착관계가 형성된 그룹내에 사회응집의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순교라는 이름아래 교회 공동체는 응집했다. 공동체에 순응했고, 규율에 엄격하게 순종하였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보상 때문인데, 이 영적인 보상은 순교와 희생을 선택하게 했다. 저자가 계속해서 말하고 싶은 것은 기독교가 가진 가치의 위대함인것 같다. 오늘날 도시의 삶에서, 이교도 같은 세상에서 자칫 기독교가 가진 가치를 잃어버린채 살아가는 것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을 버리려다가 어린아이까지 버리는 실수를 저질러서는 안된다.


2. 그리스도인의 미덕을 유지하기.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인들이 도시에서 살아갈때, 이교도의 세상에서 살아갈때 어떻게 살아가야 할것인가 에대한 부분이다. 저자는 기독교 중심교리는 매력적이고 해방적이며 효과적인 사회관계와 조직을촉발하고 지탱했다 고 밝힌다(315) 이제 곧 읽어보게 될 로버트 윌켄의 초기 기독교 사상의 정신 을 보니 기독교의 교리와 그들이 추구하는 도덕은 당시 굉장히 낯선 것일 뿐아니라 매력적인 것이었음을 알수 있다. 그러니 상류 지식인들에게 흥미를 주었고, 특히 여성들에게 감흥을 주었다. 자비라는 덕목이 사라지고 사랑이라는 가치가 없는 이교도 세상속에서 기독교는 자비가 주요한 미덕이며 자비로우신 신이 인간에게도 자비로울 것을 가르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라는 말씀을 근거로 서로 사랑하기를 가르친다. 기독교의 사랑과 구제는 공동체를 넘어서까지 확장되어야 한다.(318)고 가르친다. 
그러니 이교도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은 매력적일수 밖에 없다.

오늘 중앙Sunday 2020 9.12. 김대식의 글을 보았다. 

"아래로 내린 엄지는 죽음 위로 척든 엄지는 자비와 삶을 의미한다고 프랑스 화가 장 레온 제롬은 추측했지만 사실 역사적으로 확실하지는 않다. 반대로 내린 엄지 주먹안에 숨긴 엄지가 패배자의 생존을 의미한다고 보는 가설도 있다. 중요한 것은 2000년전 로마 제국에서 중산층과 젊은이가 인간이 인간을 살육하는 장면을 보기위해 줄을 서고 자신의 엄지가 한사람의 삶과 죽음을 좌우한다는 사실에 흥분했던 것이다." 

세상의 잔인성 이교도들의 비인류적 만행 속에서 기독교가 내세운 것은 사랑과 자비였다. 교부들은 그런 경기를 관람해서는 안된다고 금했다. 저자는 이 책의 마지막을 이렇게 마친다.

"기독교인이 이교도가 관습적으로 가볍게 행하는 잔인성과는 전적으로 양립 불가한 도덕적 비전을 효과적으로 선포했다." (321)

교회는 이제 무엇을 내세워야 할까?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교회가 세상과 양립불가한 미덕, 선포해야할 도덕적 비전은 무엇일까? 코로나19 를 맞으며 더 준비해야 할것은 온라인 컨텐츠가 아니다. 온라인 예배를 드리느냐 마느냐가 관심이 되어서는 안된다. 예배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 그러나 순종이 제사 보다 낫다는 것,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다는 사실은 예배와 삶의 모순과 간격을 먼저 좁혀야 한다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코로나 이전과 이후는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시기를 겪으며 오프라인에 대한 갈망함, 온라인의 한계를 경험하였다. 이전 만큼은 아니더래도 조심스럽게 우리는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게 될것이다. 그렇다면 다가올 회복의 시기에 무엇을 고민해야할까? 오프라인을 어떻게 준비해야할까? 
그리스도인이 가지는 미덕, 즉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있어야 한다.
줄어드는 인구, 차별과 소외 등의 인간성에 대한 문제, 소비의 속도는 굉장히 빠르다. 그렇다면 교회도 거기에 같은 속도로 발 맞춰야 할까? 한계가 있다. 우리는 속도에 발맞추려 하다가 주변을 놓친다. 교회가 가진 애착 네트워크, 배타성을 유지하기 위한 복음의 본질, 미덕...
결국 우리가 준비해야할 것은 온라인세상이 아니다 현실 세상에서 기독교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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