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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한 기대 (삶)/책과 삶

로드니 스타크의 기독교의 발흥을 읽고 2.

by 바울과 함께 걸었네 2020. 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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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기독교의 발흥의 이유는, 

둘째, 기독교 정신 때문이다.  
초기 기독교의 발흥과 성장에 빠질수 없는 요소가 바로 기독교 정신일 것이다. 기독교 정신은 무엇일까? 사랑과 섬김, 생명에 대한 존엄 등등일 것이다. 로마제국내에 그리고 이교도 세상에서 기독교 정신은 빛났다. 로드니 스타크는 4장이후로 본격적으로 기독교의 발흥 요소인 기독교의 정신의 문제를 풀어낸다. 개인적으로 현대의 교회가 주의해서 봐야할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크게 두가지로 내용을 요약하고 느낀 점을 나누고자 한다.  


1. 역병속에서 나타난 사랑과 섬김이다. 
       165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통치기에 가공할만한 역병이 로마제국 전역을 강타했다. 역사가들은 천연두가 출현한 것이 아닐까 의심한다. 어째든 역사가들은 이러한 역병이 고대 로마사회에 인구감소에 기여했다고 본다. 하지만 초기 기독교 시대를 연구하는 역사가들은 오히려 역병이 교회 발흥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왜 그럴까?  
저자 로드니 스타크 역시 키프리아누스 라든지 디노니시우스나 유세비우스등의 교부들의 글을 소개하면서 역병이 기독교의 발흥과 관련이 있음을 밝히고 있다. 즉 역병의 시대,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는 세상속에서 기독교는 희망의 빛을 전해 주었다는 것이다. 당시 로마제국의 이방 종교는 이 재앙이 왜 일어났는가에 대한 흡족한 해명을 제공하는데 실패했으며 종교가 재앙앞에서 무익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교부들은 기독교는 천국이 존재한다는 비전에서 따뜻하고 즉각적인 치유와 위로를 전해주었다. 그리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훈련을 하며 순교를 갈망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은 이교도들 뿐아니라 모든 환자들을 간호하고 치유하였다. 이러한 그들의 행위는 그자체로 이교도인들에게 의구심을 갖게 했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사랑하기 때문에 서로 사랑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수 없다는 발상은 이교도들에겐 낯선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은 서로를 위해 희생함으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고 실천하였다.
이교도들을 정성껏 간호하고 돌보면서 이들이 실제로 치유되고 회복되기도하였다. 이교도들은 당연히 기독교인들에게 감동을 받았고 개종한다. 이러한 개종의 역사, 치유의 역사는 역병으로 인해 감소한 제국의 인구에 비해 기독교가 성장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2. 여성의 역할 때문이었다. 
       오늘날 기독교는 남성중심의 사회 가부장적이라고 비난을 받는다. 하지만 초기 기독교는 여성에게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저자인 로드니 스타크는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주요 멤버가 여성이었음을 밝힌다. 하지만 이와 같은 사실은 굉장히 괄목할만한 것이다. 왜냐하면 고대사회의 여성들의 위치 때문이다. 
역사학자들은 고대사회의 여성들의 숫자는 적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로마제국내 남성 135명당 여성 100명의 비율을 갖는다고 분석한다. 아마 생명에 대한 어떤 조작이 있었기에 가능하다고 본다. 어떤 조작일까? 낙태와 여아살해 등등의 이유를 꼽는다.
하지만 기독교 내에 여성들은 공동체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고 기독교 인구는 여성들의 수가 남성들의 수보다 많았다. 이렇게 기독교안에 여성이 자리 잡을수 있었던 이유는 기독교의 주요 전략이 중상류층이었기 때문이다. 중상류층의 여성들이 대거 기독교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그들의 남편과 가족을 개종시켰을 것이다. 
기독교 내의 여성의 역할은 교회의 발흥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직접적인 영향은 기독교 인구가 상승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교도 내에 편만했던 성적인 타락은 독신주의를 낳았다. 결혼하지 않고 쾌락을 유지하며 사는 것이 당시 사회에 편만했다. 게다가 성적인 타락은 낙태 문제를 가져왔다. 하지만 고대사회의 비위생적인 낙태술은 여성의 생명까지 위협하였다. 영아 살해와 같은 일도 비일비재하였는데,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로 나아갔다. 
하지만 이런 세상속에서 기독교는 달랐다. 기독교는 결혼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혼이나 근친상간 일부 다처제, 외도를 죄악시 했다. 혼외 성관계를 간음으로 여겼다. 더나아가 교회는 재혼하지 않은 과부를 잘 돌봐주었다. 한편 결혼한 가정은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성경의 명령을 지켰다. 기독교인의 출산율은 이교도보다 훨씬 높았다.
한 가지 눈여겨 볼 것은 사도들과 교회지도자들은 여성들이 이교도들과 결혼하는 것을 막지 않았다는 것이다.  상류층에 속한 기독교 여성들은 이교도 남편들을 개종시켰다. 애착과 친밀 네트워크가 가정내에 형성되었고 사랑과 섬김이 남편을 변화시켰다.  



본 서를 오늘날 우리의 상황에 고민해보면.... 

       코로나 시국에 초대교회로부터 배울 것은 기독교의 정신이다. 사랑과 섬김 그리고 생명에 대한 존엄과 가치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코로나 시기가 가진 교회의 위기도 위기지만, 인구 절감의 문제라든지 차별과 소외와 같은 문제들이 앞으로 교회를 더 힘들게 할것이라고 생각한다. 초대교회는 이러한 문제들로부터 분명한 입장을 가진다. 두가지로 살펴보고자 한다.

1. 로마제국내의 인구절감의 원인은 먼저 역병과 질병의 문제였다. 반면 기독교의 성장의 원인은 사랑과 섬김이었다.
       역병과 질병은 죽음의 문제를 통해 두렵게 하고 어둡게 하였다. 하지만 기독교의 사랑과 섬김은 세상을 밝게 하고 생명을 허락해 주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죽음의 문제를 이긴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리스도인들 뿐아니라 이교도들, 세상 사람들을 품고 정성껏 간호해주었다.
코로나19시기를 보내는 오늘날 상황을 돌아본다. 코로나19로 인해 한국교회는 그야말로 치명타를 입었다. 초대교회시기에는 역병은 성장의 원천이 되었다. 위기가 기회가 된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은 역병은 위기가 되었다. 뭔가 문제가 생긴것이다. 교회는 암울하고 어두운 역병의 시기에 참된 생명을 보여주고 있는가? 희망을 이야기 해주고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사랑과 섬김을 실천하고 있는가?
어떻게 적용할수 있을까?
첫째 교회가 가진 능력들을 지켜야 한다. 복음의 능력말이다. 생명을 주는 사명 지켜야 한다. 그리고 죽음이 편만한 세상에 생명을 전해줘야한다. 이교도 세상에서 복음은 소망이다. 생명 그자체이다. 우리가 가진 가치들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기를 바란다. 
둘째 기독교 의료 전문가들을 키워야한다. 현재 코로나19는 간호사들및 의료진들, 약사들의 도움이 아니면 어렵다. 교회는 청년들중 의료쪽에 관심이 있는 이들을 발굴해야 한다. 그리고 기독 의사들, 기독 간호사들을 양성해야 한다. 기독교 정신으로 간호하고 돌봐야 한다. 코로나 시기에 대구에 있는 동산 병원은 기독교 정신으로 무장하여 넘쳐나던 환자들을 돌보았다. 귀감이 되는 일이었다. 또한 교회내 호스피스 사역이나 노인 돌봄사역등 필요한 사역들이 있을 것이다. 
 

2. 로마 제국내 인구 절감의 원인은 둘째로 성적인 타락의 문제였다. 반면 기독교 성장의 원인은 생명 존엄에 있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역시 성적인 타락이 편만한 세상이다. 낙태 문제 뿐아니라 동성애 문제까지 교회는 골치가 아프다. 이런 세상은 인구절감과 관련이 있다. 인구학 전문가가 말하길, 인구 문제는 삶의 질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교회도 앞으로 성적인 타락, 인구 절감의 세상을 살아가게 될것이다. 코로나의 위기보다 더 힘든 시기가 찾아오게 될것이다. 교회의 부흥과 성장의 시기는 이제 인구절감과 동시에 어려움을 겪게 될것이다. 이런 시기에 교회는 무엇을 해야할까? 
먼저 결혼을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결혼역시 하나님의 언약과 예배라는 측면으로 접근해야한다. 오늘날 젊은이들은 결혼을 너무 가볍게 생각한다. 그러니 결혼을 쉽게 생각하고 이혼을 가볍게 여긴다. 여성인권 문제와 생명 존엄의 문제는 결혼을 어떻게 여기는가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초기 기독교의 결혼에 대한 중요성은 기독교 인구의 증가로 나아가는 단초였다. 
둘째로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를 버려야한다. 낙태와 같은 이슈는 이미 오래전 일어난 사회적인 문제이다. 오늘날은 여성인권과 관련이 있다.  그러니 낙태 문제는 쉽게 생각하고 결정해서는 안되는 문제다. 하지만 반면 낙태의 어두운면도 직시해야 한다. 분명 생명을 경시하는 문제, 성 적인 문제와 연결이 되어있다는 사실을 교회는 자각해야 한다. 교회는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진지한 태도로 접근해야할 것이다.   
셋재 성적인 타락으로부터 거룩함을 유지해야한다. 오늘날 동성애와 같은 이슈 역시 어렵다. 한국은 이미 차별금지법으로 한 차례 곤경을 겪었다. 물론 우리는 어떤 이유에서든지 인간 그자체를 차별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동성애든 이성애든 성적 취향이나 성향에 따른 성적인 타락에 대해서는 대항해야 한다. 교회는 거룩함을 위해서 살아야한다. 
넷째 인권문제에 대해서 앞장서야 한다. 오늘날 교회는 보수진영에 속한 집단으로 프레임이 짜여있다. 옳지 않다.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좌우를 넘어 여성및 노예 계층의 인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앞장섰다. 계층간의 경계선을 허무는 하나님나라의 공동체였으며, 여아 살해, 가정폭력과 성폭력등으로 여성인권이 무너진 세상에서 여성들의 지위와 역할들을 강조하였다. 오늘날 교회도 이 문제를 소홀하게 여겨서 안된다. 교회내의 여성문제, 인권에 관한 문제들을 다루는 기관들을 설치하고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목소리를 내는 그리스도인들을 발굴해야할 것이다.   

루디아 기념교회 예배당 프레스코화 그림은 루디아의 세례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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