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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한 기대 (삶)/책과 삶

랑케& 카 역사의 진실을 찾아서, 조지형지음

by 바울과 함께 걸었네 2022. 7.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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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관심을 갖게된 것은,
단지 중고등학교때 국사점수가 다른 과목보다 더 잘나왔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어릴적 아버지가 들려주신 역사 이야기가 좋았다. 그런의미에서 역사는 자신감이었고 추억이다.
신학을 시작하고 역사는 하나님의 일하심 그자체였다. 보이는 모든 세계는 하나님의 역사였다.
그중에 교회의 역사에 눈을 뜨게 된 것은, 청교도들의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였다.
공부를 더하게 되면 교회사를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으니 말이다.
청교도 를 공부하고 싶은 마음에 시작한 역사신학은 오히려 서양교회사보다는 내 정체성을 묻는 시간으로 채워갔다.
한국적인 것은 무엇일까? 한국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역사는 무엇일까? 결국 나는 한국교회사를 공부하게 되었다.

요즘은 틈틈히 한국교회사를 넘어 한국의 역사에 관심이 생겼다.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노력을 한다. 이때 꺼내본 책이 조지형 교수의 역사의 진실을 찾아서 라는 책이다.
저자는 역사를 사실의 출발점으로 인식한다. 그러나 사실이라는 것 과거라는 것, 의미는 알겠는데 그것을 과학적이며 논리적으로 접근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사실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일까? 우리에게 과거 현재 미래 라는 것을 정확하게 정의할수 있을까? 조지형교수는 그 접근을 시도한다.

조지형 저, 랑케 그리고 카 역사의 진실을 찾아서


사실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했던 두 역사학자를 소개하고 있다. 근대 역사학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레오폴트 폰 랑케 그리고 에드워드 H. 카 이다. 역사학이나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갖는 사람이라면 한번 쯤 들어봤을 만한 인물이다.

저자는 두 인물을 소개하며 그들이 사실이라고 했던 사건들을 다루는 방식 무엇을 주안점을 두었는지 그들은 무엇에 진지했는지를 소개하고 있다.
랑케는 근대 역사학의 아버지라는 별명에 걸맞게 역사를 과학적 학문으로 기초를 닦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는 끊임없이 역사적 사실을 고증해주는 사료를 대하는 문제를 아주 진지하게 접근했다. 사료를 비판하고 분석하며 오류와 편견들을 제거하기 위해서 굉장한 열정을 쏟기도 했다. 그러나 사료는 역사가에 의해 허구로 조작될수도, 왜곡될수 있다는 의심이 끊임없이 제기되면서 랑케사학은 난항을 겪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역사에서 사실을 다룰때 중요한 것은 사료라고 생각한다. 그런의미에서 역사가는 성실해야하고 역사적 사실을 위해서 사료를 성실하게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역사학을 한다는 것은 사료를 다루는 학문을 한다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랑케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오늘날 우리는 그를 자아의 소거를 주장한 역사 이론가로 기억하고 있지만, 사실 그는 긴 생애 동안 탁월하면서도 엄청나게 많은 역사 저술로 전설이 된 실제 역사가였다.(p.121)

그리고 카는 '역사란 무엇인가' 라는 걸출한 책을 통해서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라는 유명한 글귀를 전해주었다. 카 역시 역사적 사실에 진심을 가지고 연구했던 사람이다. 그는 과거의 사실이 역사적 사실이 되려면 역사가가 그 사실에 부여한 중요성에 의해서 역사상의 사실이 된다고 생각했다. 즉 그 역사상의 사실이라고 판단하는 역사가가 중요하다고 본것이다. 과거의 사실과 역사가의 끊임없는 대화가 역사상의 사실이라는 결론을 내는 것이다. 카를 비판하는 학자들은 이것을 역사가의 지배, 역사가의 권력이라고 보았지만 카가 말하는 대화란 역사의 역동성 이라고 할수 있다.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말이다.
'역사는 단순히 과거의 사건만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 사회를 이해하는 것이다 동시에 역사는 현재사회에 대한 정통한 지식을 증대시키는 것이다.' 즉 과거의 사회를 이해하면서 현재사회에 편견과 선입견을 깨트리며 글을 써내려가는 것 이라는 것이다.

이것에 동의하는 이유는 내가 역사가이면서 설교자이기 때문인데, 동의가 될지 모르겠지만, 역사가와 설교자는 많은 부분에서 공통점이 많다. 설교자도 역사가와 마찬가지로 수천년전에 쓰여진 성경을 해석하고 내가 속한 사회에 편견과 선입견을 인지하고 극복하도록 노력하는 동시에 이것이 어떻게 적용될수 있는 지를 글을 쓰기도하고 선포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의미에서 설교자는 또한사람의 역사가 일수도 있고, 이러한 일들의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서 사회는 진보하며 역동이 일어날수 있다. 카에게 미래는 진보를 의미 한다고 보는 것처럼 설교자에게 미래는 진보를 의미한다.

"미래가 다가옴에 따라 역사학은 끊임없이 확장되고 깊어진 통찰을 제공한다. 그리고 이런 의미에서 카는 역사학을 하나의 진보적인 학문으로 정의한다. 현재는 단순히 현재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는 미래를 전망하고 미래를 실현하는 장이다. 그래서 역사가의 눈은 현재가 아니라 미래에 가있다. 카는 미래만이 과거를 해석하는 열쇠를 제공할수 있다고 말한다. 역사가는 미래속에서 자신의 시야를 고정시키고 그속에서 그의 사실들(역사상의 사실들)과 끊임없이 대화하는 것이다." (p.157)

책을 보면서 설교자도 역사가가 되어야 함을 느꼈다. 설교자는 성경 텍스트 즉 사료를 다루는 사람들이다. 그런의미에서 설교자는 예언자적이며 역사가적이다. 그것이 사실인가 아닌가를 두고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것보다는 하나나님의 말씀이기에 말씀앞에서 겸손한 자세로 본문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지 본문을 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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