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간절한 기대 (삶)/책과 삶

노예로 돌아가는 꿈은,

by 바울과 함께 걸었네 2019. 8. 22.
728x90
반응형

반민특위에 대한 책을 읽고 있는 중에 최인훈의 「총독의 소리」 라는 글을 접했다. 

반민특위에 대한 책을 읽고 있는 중에 최인훈의 「총독의 소리」 라는 글을 접했다. 


"해방된 노예의 꿈은 노예로 돌아가는 일 입니다. 그들은 그리워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지난날의 그리웠던 발길질과 뺨 맞기, 바가야로와 센징을, 그 그리운 낱말들을 애타게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최인훈의 「총독의 소리」 의 한 내용이다.  
「총독의 소리 는 1967년 부터 1976년까지 네 차례 이어져 발표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67년~76년은 해방후 10년이 지난 시점이다.
그러나 저자 최인훈은 여전히 몸에 남아있는 '뿌리 깊은 노예근성'을 꼬집어 이야기하고 있다.
오늘날 한국사회는 이를 '토착왜구' 라는 이름으로 '적폐'라는 이름으로 이어져오고 있다. 

왜 노예로 돌아가는 일을 그리워하는 것일까?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후 1948년 9월 29일 김인식 의원 외 19인이 긴급동의하여 반민족행위 처벌법 제 9조에 따라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하자는 동의안을 표결에 붙여 결의에 따라 10월에는 위원회를 소집하고 위원장과 부위원장을 뽑아 반민특위가 정식으로 발족된다. 

그러나 반민특위에 검거된 이들은 반민특위를 처단하려는 것은 공산당을 즐겁게 하는 처사라 하며 극우 단체들과 친일자들은 반민특위의 법 제정 반대시위도 열린다. 
정부의 끊임없는 방해와 간섭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다. 1월 26일 이승만대통령의 측근이었던 전 수사과장 노덕술이 반민특위에 체포된다. 반민법 실시를 놓고 정부와 공방을 하다가 결국 테러와 암살음모가 반민특위 관계자들에게 노출이 되었다. 그러던중 6월6일 경찰은 반민특위 기습을 자행한다.
결국 반민특위는 와해되고 해체된다. 
흥미로운 것은 이 과정중에 끊임없는 좌파와 공산주의에 대한 공격이었다.
'반민특위는 빨갱이의 앞잡이라'고 외치기 시작했다.
게다가 친일 부역자들은 빨갱이를 때려잡는 애국자로 둔갑되기 시작하였다.
이승만과 박정희는 공산주의의 든든한 방어막과 방패가 되주는 상징적인 지도자들이 되었다.
그러나 이들로 인해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민주주의는 파괴되었다.  

반민특위가 최근 이슈가 되었다. 2019년 3월 14일 문재인 정부가 친일 부역자로 밝혀진 독립유공자의 서훈을 취소하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반민특위가 국민여론을 분열시켰다고 발언한데서 논란을 야기 시켰다. 


김민웅교수는 반민특위의 해체와 관련하여 이렇게 평가한다. 
'해방은 되었으나 친일 세력이 다시 역사의 주역이 되어 세상을 거꾸로 돌아가게 했다.'

이들은 다시 노예로 돌아가고자 했다. 매듭을 짓지 못했다. 말하자면 해방 후의 첫 단추를 잘 못 끼운 것이다. 
지금 2019년은 해방후 1949년 시점 같다. 국론이 분열되어 있다. 보수 우파는 끊임없이 빨갱이 사냥중이다. 
진보 좌파는 적폐라는 이름으로 못다한 친일 청산 중이다. 

일본의 수출규제와 백색리스트 제한으로 인해 한국은 반일 감정이 들끓고 있다.
어제는  2016년 박근혜정부시절(2011년부터 논의되었지만) 미국과 일본의 우호와 대화를 바탕으로 하는  'GSOMIA·지소미아' 말하자면 한 일 간에 위협이 되는 북한의 무기와 미사일 정보를 공유하는 협정을 종료하였다. 이에 일본도 미국도 당황스러움을 금하지 못하고 있다. 
이유인즉, 지소미아는 한일간에 우호와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안보 정보를 공유하는 것인데, 이미 우호와 신뢰가 깨진마당에 지소미아가 무슨의미가 있느냐고 본 것이다. 
이로써 한일 관계뿐아니라 미국과의 관계까지 어렵게 될것같다. 이러한 안보 불안은 세계의 경제 투자에 영향을 미치게 될것이라고 내다보는 경제인들도 있다.  한국은 어찌하든지 중국과 북한의 경제와 안보의 위협을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외교적 과제를 가지게 되었다. 게다가 일본과의 문제까지 쉽지 않다. 

중앙일보의 한 사설에서는 한국이 복배수적(復背受敵) 위치 즉 사방이 모두가 적인 위치에 놓여 있으며 이러한 문제의 직면은 결국 외교의 발전을 이루어냈음을 밝힌다. 변하지 않은 지금의 위치속에서 '1동맹 4우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피력하기도했다. 어째든 지금은 불안과 두려움의 시기인 것은 분명하다. 

인간이 사는 사회는 극단에 치닷게 되면, 불안과 두려움이 엄습하게 되면 살길을 무리하게 모색하기 마련이다. 
말하자면 다시 노예로 돌아가고자 한다. 물론 기업들은 일제를 뒤로하고 국산화 제조에 팔을 걷어부치고 있고, 지소미야 종료로 자국의 안보노력을 강조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상황속에서 배가고프기 시작하다 보니 일본에 의존했던 과거를 되돌아 본다. 정치적 궁지에 몰리게 되면 반대편을 빨갱이라고 몰아붙인다. 그리고 빨갱이 사냥을 서슴치 않는다. 매카시즘 식의 빨갱이 사냥말이다.
노예로 되돌아가고 싶은 꿈을 꾸는 것같다. 이들은 왜 노예로 되돌아가고자 하는가?

지금 정부는 친일자(정치나 경제적으로 지나치게 일본에 의존했던 이들)들을 적폐라는 바구니에 담아내기 시작한다.
역사의 매듭, 과거 청산은 중요하다. 그리고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야 긍정적인 미래로 나아갈수 있다. 그런데 지금 정부에게 묻고 싶은게 있다.
그래... 반민특위의 못다한 역사 청산을 이루면 그 다음은 무엇인가? 

1949년 반민특위 부위원장인 김상돈, 강경파였던 한독당의 김명동 의원 이들도 친일부역자였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당시 반민특위은 점차 와해되었다.
지금 정부는 이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현재 위치와 방법으로서 역사의 매듭과 청산은
또 다른 모습으로 과거의 노예가 되고자 하는 것과 다를바 없다. 
좌 우간의 대립 이라는 노예, 국론의 분열이라는 노예 말이다. 

살을 도려내는 아픔을 감수해야한다. 희생과 상처를 감수해야한다.
남의 살이 아니라 내살. 다른이들에게 희생과 상처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희생과 상처를 감내해야한다. 
그런의미에서 묻는 것이다. 과거 청산... 그리고 그다음은? 


성경의 이야기로 고민을 확장시키고자 한다. 

출애굽기 14장 12
절에 보니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사람을 섬길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앞으로는 홍해바다 뒤로는 바로의 군대가 추격하고있다. 죽음의 두려움이 밀려오는 상황이다.
큰 위기와 두려움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부르짖는다.
그리고 살 길을 찾는다. 어떤 살 길인가? 옛날로 돌아가겠다는 것이다.
다시 노예가 되어 애굽사람을 섬기는 길을 선택하겠다는 것이다.
두려움은 살기위한 방식을 택하게 한다.
인간들이 두려워서 발버둥치는 방식은 분명 하나님의 방식과 다르다.

인간들이 두려워서 발버둥치는 방식은 다른게 아니다. 그저 노예가 되는 것이다.
살 수만 있다면애굽으로 돌아가 노예로 살아가는 것 마저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여긴다.

오늘날 어떤 이들은 살 수만 있다면 친일도 문제 되지 않는다. 
친일은 일본과 가깝게 지내는 것이라기 보다 말그대로 살기위해 일제에 부역하고 민족을 배반한 이들이다. 
삶의 두려움은 노예가 되는 일도 서슴치 않는다. 

어떤이들은 이데올로기의 노예가 되고자한다. 
사회주의니, 자본주의니... 과거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갇힌다. 
삶의 두려움은 노예가 되는 일을 자처한다.

삶의 두려움은 나의 살을 도려내고 희생을 감내하기 보다 
다른이들에게 프레임을 씌우기도한다. 죽이고 헐뜯고 비난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일을 거절한다.

그러다 보니 지금은 전쟁과 다름없는 삶을 사는 것같다.
전쟁은 인간의 두려움이 극대화 시킨다. 이런 두려움 속에서 노예가 되는 일들이 일어난다.
전쟁속에서 권력을 잃을까봐 두려워하고 삶의 자리를 잃을까봐 두려워 한다. 

해방된 노예의 꿈은 무엇이어야 할까?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 

한번이라도 우리는 해방된 이후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고민한적이 있었는가?.... 
해방에만 목말라... 삶의 현실이 주는 두려움에만 반응하다 보니... 
여태껏 해방이후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하지 않고 살아온것같다.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진지하게 고민해보자.

역사가 무기가 되고 힘이 되는 것은 과거로 회귀에서 그칠때가 아니다.
미래를 향하고 역사 이후를 볼때 가능하다. 

조금더 미래를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그게 우리에게 무기가 되고 힘이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역사라는 올가미에 걸려 다시 노예로 살아가는 삶을 살아갈수 밖에 없다. 

역사가 힘이 되고 무기가 되려면 반드시 과거를 현재의 위치에서 잘해석해야 한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가게 해야한다......
다음 발걸음으로 진일보해야한다.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