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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한 기대 (삶)/신뢰의 길

한 신학생의 생각

by 바울과 함께 걸었네 2009. 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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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 신학생이 되어야 할까?

이제 신학교에 왔다.
듣자하니 지금 우리나라의 신학은
정체성이냐 아니면 개방성이냐를 두고 많은 고민이 있다고 하던데,
나는 그문제에 대해서 딱히 할말은 없다....

신학의: 정체성vs 개방성
 
정체성을 위해서는 신앙의 정통을 내세워야 하며...
개방성을 위해서는 세상을 향해 열린마음을 가지고 우리의 언어를 낮추고
기독교의 문턱을 낮추는 노력을 해야 겠다....

그러나 지금 사회 여기저기에서는
교회의 사회참여에 대한 문제에 대해 더없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다시말해 개방성의 문제가 제시되고 있는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이 과연 맞는 것일까?
신학을 시작하는 나로써는 교회가 문턱을 낮추는 것이 맞는 걸까?
아니면 교회안에 정체성을 강조하는 것이 맞을까?  에 대해서 
많든 적든 관심을 가져야할 부분이긴 하다만 
개방성의 측면에서 정체성을 보자면 답답하고 보수적인 것이고
정체성의 측면에서 개방성을 보면 교회는 세속화 되었다는 한탄이 나올것이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시대는 기독교를 향해 교회의 개방성을 더 부르짖는 것 같다. 
요즘 여러 상황적 문제를 따지면,
아무래도 교회의 개방성 문제가 더 제시 되어야 하지 않을까? 

개방성이라는 말은 정치며 경제며
모든 영역에서 기독교가 그들의 질문에 대답을 해줘야 할거 같은 의미로 들린다.
그래서 기독교는 교육, 정치 경제, 심지어 낙태와 같은 윤리 도덕 문제까지
그 손을 뻗치고 있다. 과연 교회가 해야할일이 그것일까?

얼마전에 읽은 세상에 포로된교회 -마이클호튼저 부흥과 개혁사 에서 얻은 생각은
과연 교회의 세속화란 무엇인가 에 대한 것이었다.
단지 세상적인 것에 속한 것을 말하는 것인가?
요즘 교회의 세속화에 대해서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
오히려 교회의 세속화는모든 부분에서 교회가 다 장악하고 대답해 주려는
욕심에서 나온것이라고 생각한다. 
(진정한 교회란 무엇인가 에 대한 부분은 언젠가 꼭 개인적으로 공부하고 다루고 싶은 부분이다.)

과연 나는 어디에 서있어야 할까? 우리는 왜 이런부분에 대해서 고민해야 할까?
이제는 교회가 세상의 소리를 들어야 할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한국교회의 이러한 모습은 신학교가 그대로 대변해 준다.
여기는 정말 공부잘하는 사람도 많다. 그리고 공부를 준비하는 사람도 많다.
모든이들의 질문에 대답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시대의 흐름에 이들이야 말로 잘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굳이 내가 없어도 이들만으로도 한국교회는 충분하다고 느낄정도다....
게다가 때로는 신학교가 학자를 만드는 곳인가?
아니면 목사를 만드는 곳인가? 의구심이 들때도 있다.

세상에 손을 내미는 교회 그리고 그런 신학생 이기보다.

 나는 세상의 필요를 아는 그런 신학생이고 싶다. 
이러한 교회를 향한 세상의 부르짖음에 과연 나는 어떻게 준비되어야 할까?
신앙의 정체성을 지켜야 할것인가? 아니면 개방성을 가지고 있어야 할까?
무엇을 먼저 준비해야 할까?

 마틴루터가 이런 말을 했다.
"많이 읽고 생각한다고 해서 배우게 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훨씬 더 높은 학교가있다
그곳은 광야다..."

광야의 삶.... 내가 먼저 훈련받아야 할 이곳은 바로 광야다...
요즘 점점 메마른 나의 모습을 본다.  그럴때마다 기도탑으로 달려간다.... 
나는 광야에 있다....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로 갔느냐?
세상을 향해 나아가기 전에 나는 먼저 광야의 학교로 들어가야 한다.
그곳에서 주님의 충만한 임재를 경험하고 싶다.
그리고 주님이 나와함께 하심을 경험하고 싶다. 하늘이 열리는 것을 보고 싶다.
이사야가 들었던 주님의 탄식소리를 듣고싶다.
단 한순간의 망설임없이 주님앞에서 손을 들고 싶다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나를 보내소서."

나는 먼저 신학생으로써 정체성을 지키고 싶다.
그리고 내가 받은 은혜대로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 싶다.
나는 그런 신학생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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