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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 성지순례 기행/튀르키예 그리스 바울의 발자취 기행

[그리스 여행 / 그리스 성지순례]필리피(Philippi) 세계 문화유산 유네스코 -하나님나라의 시민권

by 바울과 함께 걸었네 2020. 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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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비볼리에서 47.6Km를 차로 이동하였다. 약 1시간 30분 걸려 이동하였다. 우리가 정차한 곳에 그리스 유네스코에 등재된 고대 필립피 야외 극장 (Ancient Theatre of Philippi) 및 유적지가 있다. 현재 이곳을 필립피(Philippi)라고 부르지만 한국인들에게 익숙한 지명은, 빌립보 일것이다.
이곳은 B.C 356년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2세가 건설한 도시이다. 자신의 이름을 따서 필리피 (또는 빌립보)로 명했다. B.C 42년 무렵에는 로마가 점령을 하여 작은 로마 라고 불리울 만큼 큰 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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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과 함께 걸었네 - YES24

흥미로운 여행기를 토대로 성경의 배경과 교회사를 이해하고 인문 고전의 깊은 상상력까지 풍부하게 더할 수 있는 책이 나왔다. 역사신학을 전공한 함신주 목사가 코로나19로 세계 여행의 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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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럴드 호든은 그의 『WBC 빌립보서』에서 필리피가 역사속에서 관심을 받은것은 A.D 42년에 벌인 로마의 내전(Roman Civil War)때문인데, 시저(Julius Caeser, 100-44 BC)의 암살을 주동했던 브루터스(Marcus Junius Brutus, 85-42 BC)와 카시우스(Gaius Cassius Longinus, 85-42BC)의 연합군과 옥타비아누스(Octavianus, 63 BC -19 AD)와 안토니우스(Marcus Antonius, 83-30 BC)의 연합군이 맞붙은 전쟁 장소로 유명해졌다.
그 후에 악티움(Actium)에서 옥타비아누스가 안토니우스를 패배시키고 스스로를 아우구스투스(Augustus)의 호칭을 취했다. 옥타비아누스가 황제가 된 이후 퇴역군인들을 정착시키며 그곳을 거류지로 만들었다. 이시기에 이곳을 콜로니아 아우구스타 이오스 이탈리쿰 필리펜시스 (Colonia Augusta Ius italicum Philippensis) 로 이름을 바꾸었다. 다시말해서 필립피는 로마의 속국이었지만, 퇴역군인들을 정착시키기 위한 곳이었다. 그래서 주로 로마인들이 살고 있었다. 이들은 이 도시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였고 로마의 관습을 지키며 그 법률을 따라 사는 것을 자랑으로 삼았다. 작은 로마 라고 불리울만 한 도시였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이들이 가지고 있는 로마의 시민권은 자랑중의 자랑이었다.

이쯤 되면 빌립보서에 등장하는 한 구절의 말씀이 생각이 날 것이다. 빌립보서 3:20절이다.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 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빌 3:20)

이 구절은 ‘그러나’ 라는 앞 구절과 뒤의 내용이 상반될 때 쓰는 접속사로 시작하고 있다. 실제로 18절~19절은 심각한 내용으로 전개되고 있다. “내가 여러분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빌3:18~19)

바울은 눈물을 흘리며 고백한다. 십자가의 원수된 삶을 일일이 나열하면서 말이다. 누구를 지칭하는 말일까? 그리고 십자가의 원수된 삶은 무엇일까? 십자가의 원수라고 지칭하는 이들은 빌립보서 3장 2절에 보면 ‘개들, 행악하는 자들, 몸을 상해하는 일을“ 세 부류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소위 유대 그리스도인들 이었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을 믿지만, 율법의 행위가 진정 구원얻게 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 자들 이다. 바울은 이들을 십자가의 원수된자들, 십자가의 값진 보혈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자들 이라고 불렀다. 우리는 이들을 가리켜 ’명목상의 그리스도인들(Almost Christian)‘이라고 한다.
이들의 특징은 무엇일까?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다. 그들의 신은 배다. 그들의 신은 배라는 것은 저급한 욕망을 말한다. 먹고 사는 문제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삶을 말한다. 그들의 영광은 부끄러움에 있다는 것은 욕망에 집착하는 삶을 말한다. 당시 성공은 재물을 많이 쌓아두는 것 뿐아니라 축첩을 통해서 과시했다. 그리고 이들은 땅의 일을 생각한다. 땅의 일을 생각한다는 것은 현실의 문제에만 몰두하며 사는 것을 말한다. 그리스도인이지만, 욕망에 집착하고 먹고사는 문제에 몰두하며 하늘의 일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일들에만 목매어 사는 이들 우리는 이들을 명목상의 그리스도인들이라고 말한다. 바울은 명목상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눈물을 흘리며 십자가의 원수된 삶에서 돌아오라고 권면하고 있다.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의 삶, 우리라고 자유로울까?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으로 살지 못하고, 욕망에 집착하며 먹고 사는 문제와 현실의 문제에 매어 염려하며 근심하며 사는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다. 죽음의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우리의 믿음없는 삶의 깊은 곳에는 죽음과 연결되어 있다. 먹고 사는 문제에 집착하는 이유는 다른게 아니라 죽지 않기 위해서 이다. 욕망과 현실의 문제를 포기하거나 내려놓지 못하는 이유도 죽음 때문이다. 죽을까봐 두렵고, 죽을 것 같아서 포기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존재들인가? 죽음의 문제가 해결된 자들이다. 더 이상 죽음의 문제가 우리를 넘어뜨리지 못하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존재가 그리스도인들이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살아나셨다. 그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주로 고백하는 순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우리의 모든 육신의 욕망과 죄가 못박혀 죽는 경험을 한다. 그리고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내안에 사는 귀한 경험을 한다.

이 귀한 경험을 하는 자들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않는다. 오직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 백성들의 삶이다. 사도 바울은 십자가의 원수된 이들의 삶이 어떤지 눈물로 고백한 후 새로운 삶의 대안을 제시한다.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 지라!”
십자가의 원수된 자들의 삶이 어떠한지 나열한 뒤 그러나 라는 접속사를 사용하여 그것과 반대되는 삶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바로 하늘에 있는 시민권, 다시 말하면 우리는 비록 땅에 발을 딛고 살아가지만 하늘에 속한 자들입니다. 라고 선포해주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시민권으로 쓰인 단어가 바로 헬라어로 폴리튜마(πολίτευμα)이다. 이는 도시라는 뜻이다. 좀 더 깊은 의미는 퇴역한 군인들이 모여 사는 도시이다. 로마의 속국이지만, 작은 로마로서 자부심있게 살아가는 것, 로마의 법을 지키며 그나라의 언어와 삶의 관습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폴리튜마이다.

우리는 땅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존재다. 현실의 문제를 고민하지 않을 수는 없다. 세상에 발걸음에 발맞춰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반면에 우리는 하늘에 속한 하나님나라의 시민들이다. 우리의 믿음의 담대함은 다른데 있지 않다. 우리가 풍요롭고 배불리 살아가는 것에 있지 않다. 명예를 누리며 우리의 모든 욕망이 채워지는 위치에 서있는 것이 우리를 담대하게 만들지 못한다. 오직 그리스도인들은 내가 하나님나라의 시민이라는 확고한 정체성이 믿음 유지하며 담대하게 걸어가도록 해준다. 우리는 비록 땅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존재이지만 하늘을 품으며 산다.

하늘을 품으며 살아가는 이땅의 백성들은 있는 곳에서 성실하게 사는 의무를 가진다. 담대하게 정직을 선포하며 공의롭게 정의롭게 살아간다. 죽음의 문제가 해결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우리는 이렇게 사는 삶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우리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을 살 때 이 모든 것을 더해주시리라 약속하셨던 그 약속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그 담대함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나라를 구하는 삶을 살아갈 때 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실것이라는 믿음 말이다. 사도바울은 이 믿음이 있었다. 담대하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며 살아갔다.

고대 필립피 야외극장  (Ancient Theatre of Philippi)


버스에 내려서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고대 필립피 야외극장 (Ancient Theatre of Philippi)이었다. 이 야외극장의 용도는 무엇이었을까? 반듯한 대리석 벽돌로 깔끔하게 정돈된 무대와 계단 모양의 객석이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오케스트라(Orchestra)라고 불리우는 무대가 공간의 중앙에 위치하고 반원으로 객석이 둘러싸 있는 일반적인 그리스식 야외 극장의 모습으로 되어있다. 일반 야외극장과 다를바가 없지만 아담하면서도 깔금해 보였다. 무대 중앙에서 상상해 보건데 이곳 무대에서 연기자들은 춤을 추거나 연극을 한다. 반원으로 되어있는 객석은 위에서 아래로 관람하는 형태로 되어있다. 이는 바람을 타고 위로 전달되는 방식으로 탁월한 음향장치 역할을 해주었다. 혹은 연설을 하거나 정치적인 선동을 할때도 훌륭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몇몇 야외극장은 죄수들이나 그리스도인들에게 공개 사형을 집행 하는 장소로 쓰기도 했다. 공개처형 장소로서 야외극장은 그리스도인 순례객들에게 관심의 장소이다.


야외극장을 빠져나와 문득 독특한 모양의 유적지에 들어갔다. 넓은 공간에 대리석 돌들이며 기둥들이 촘촘하게 세워져 있는 흔적이 보인다. 기나긴 세월의 흔적들이 보인다. 지진이나 자연재해, 전쟁등으로 고대의 옛도시는 사라졌다. 그러나 돌들은 남아있다. 저 돌들이 이제 남아있는 우리에게 교훈을 주기도하고 말을 건내기도한다.
멀리 필립피의 고대 도시의 유적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유적지 발굴중이었다. 제일 먼저 만난 것은 대리석으로 깔린 고대 도시의 도로이다. 바닥에는 마차의 흔적이 있었다. 이 뻗은 길은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 바울도 이곳을 지나갔을 것이다. 도로 정면으로 넓은 광장이 놓여 있다. 이곳은 고대 필립피의 아고라 광장이다. 굉장히 넓은 광장이다. 대부분 무너져 형체를 알아볼수 없지만, 수로 시설이라든지 대리석으로 규모있게 그리고 질서있게 세워진 건물의 흔적이 보였다.

사도 바울의 동역자 누가는 이곳에서 마게도냐의 첫 성 빌립보 교회의 시작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사도행전 16장이다.
"우리가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행 16:11~12)

드로아에서 배로 사모드라게로 직행하고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서 빌립보에 이른다. 이곳은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며 로마의 식민지라고 밝힌다. 이곳에 교회가 세워진다. 빌립보 교회다.
이미 밝혔다시피 이 곳에 발견되는 웅장한 교회의 터는 대부분 비잔틴시대에 세워진 바실리카(Basilica)이다. 이곳에는 세 곳의 바실리카가 있다. 필립피 고대도시에 들어오기 전에 있는 바실리카를 바실리카 A라고 한다. 그리고 넓은 광장(Forum)을 가로질러 아고라를 지면 웅장한 건물이 나오는데 그곳이 바실리카 B이다. 그중에 가장 인상깊게 본 교회당을 소개하고 싶다.

 초기 기독교 바실리카 (Early Christian Basilica)


옛 도로위로 걸어가면 아고라를 지나 옛 도시의 안쪽으로 들어가는 길이 나온다. 도시 안쪽에 웅장한 교회터가 나온다. 유적지 관리를 잘 해놓았다. 자연재해로 유적지들이 상하지 않도록 지붕을 얹어놓았다. 바실리카를 소개하는 안내판을 보았다. 안내판에 따르면 이곳을 초기 기독교 바실리카(Early Christian Basilica)라고 부른다. 이제와서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그리스의 특징중 하나는 안내판들은 대부분 그리스어와 영어로 되어있는데, 영어는 읽을수도 해석 할 수도 없도록 난해한 문맥들과 문장구조로 되어있다. 심지어 아폴로니아 비마터에서는 성경구절도 틀리게 새겨놨다. 좀 불편하다. 어떤 이들은 이 불편한 여행이 그리스 여행의 매력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불편한 것 불편한 거다.

(Octagonal Church)

 

발굴된 모자이크와 그 역사적 의미들을 읽어보고 싶었지만, 그냥 내 언어의 한계라고 믿기로 한다. 예배당 바닥 모자이크에는 새들 과 나무들 기하학적인 상징들(Geometric motif)과 함께 포르피리오스 감독(Bishop Porphyrios)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포르피리오스 감독은 언제인지는 몰라도 빌립보 교회의 목회자였을 것이다.

 교회터 밖에 있는 세례터

보존을 잘한 덕분에 모자이크는 그대로 보존되었고 교회터 밖에 있는 세례터는 거의 그대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가운데 제단 같은 계단형식의 단이 있는 것으로 보았을 때, 이곳은 비잔틴 시대때 세워진 교회 곧 바실리카(Basilica)이다. 왜 교회건물을 바실리카라고 불렀을까? 교회사가 후스토 곤잘레스(Justo L. Gonzales)는 그의 책 『일요일의 역사(A Brief History of Sunday』 에서 비잔틴의 교회가 바실리카라고 불렸던 이유에 대해, 교회당은 기본적으로 공공건물의 기본 도면을 모방했고 이 공공건물은 황제(베실레우스 Basileus)의 소유였기에 전통적으로 바실리카라고 불렀다고 전한다.

바울이 세운 초대교회는 거의 대부분 가정 집에서 시작했다. 잠시뒤에 이야기 나누게 되겠지만, 빌립보에 세워진 초대교회는 추측건데 루디아의 집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 성지순례기간 동안 반드시 염두 해두어야 할 것은 다름아니라 바울의 교회 개척은 건물을 세우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는 사람을 세웠다. 복음으로 변화된 한사람을 세우는 것, 그리고 그 한 사람이 또 한 사람을 복음으로 세우는 것. 이것은 일종의 운동(movement)이다.
우리는 이렇게 세워진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여 공동체를 이루고 모두가 있는 곳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그분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을 ‘하나님의 나라’라고 한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백성들이 물이 바다를 덮는 것처럼 많아져 온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해지는 것, 하나님의 방식과 뜻대로 운행되어 가는 것 이것을 하나님나라의 확장이요 하나님나라의 운동이며, 겨자씨 운동, 누룩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나라에 집중했다.

이렇게 가정에서 시작된 작은 교회는 비잔틴시대에 이르러 규모가 커지게 된다. 황제의 명에 의해 도시 중심에 바실리카가 세워진다. 게다가 신학이 발전하여 교회 벽돌 하나하나에 신학적 기틀을 세웠다. 공간도 점차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장소와 인간의 일상의 영역을 구분하였다. 돔을 얹어 교회를 정교하게 건축했다. 가운데 돔은 얹은 교회건물은 중심공간형태로 이루어진다. 그곳은 신비의 영역이고 예배하는 공간이다. 돔을 통해 빛이 내려오게 하였다. 중심공간 바닥에는 모자이크로 신비와 아름다움을 덧입혔다. 이 모자이크가 있는 지점은 원 형이나 사각형으로 구조물을 만들었다.


신학이 발달하면서 중심공간은 대체로 팔각형으로 형성된다. 이를 팔각형 구조물(Octagon complex) 라고 한다. 8각형의 구조물은 비잔틴 건축의 초기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필립피에서 만난 바실리카는 가운데 중심공간이 팔각형으로 되어있다. 서서 모자이크만 보고 오면 아무 의미가 없다. 조금만 뒤로 물러서서 교회의 전체 형태를 봐야 팔각형 구조물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이 바로 아름다운 모자이크로 이루어진 대표적인 팔각 교회(Octagonal Church 또는 팔각형교회)이다. 안내판의 옥타곤이라는 단어를 찾아보고서야 이 예배당이 팔각형으로 되어있음을 볼 수 있었다.

 팔각 교회 (Octagonal Church  또는 팔각형교회 @구글지도


그런데 왜 팔각형일까? 후스토 곤잘레스는 여덟째 날이 주는 의미에 집중한다. 안식후 첫 날로서 여덟째날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날이다. 그리고 창조 시작되는 첫날이다. 소망의 날이며 재창조의 기쁨과 설렘이 있는 날이다. 보통 우리가 주일로 지키는 날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하나님의 도성 (City of God)』에서 여덟째날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일곱째 시대는 우리의 안식일이 되리라 그날에는 해가 지지 않겠고 그리스도의 부활로 거룩하게 된 주의날, 여덟째 날 영원한 날이 시작되리라. 그날은 영혼의 영원한 쉼은 물론이고 육신의 영원한 쉼의 원형이다.“

예배학자 주승중의 『은총의 교회력과 설교』라는 책에서는 순교자 유스티아누스(Justin Martyr)의 글과 초대교회의 문헌들을 통해서 제 팔일(주님의 날)은 새 창조의 날이며 기쁨의 절기였음을 강조한다.
초기의 교회가 세례를 받는 세례당을 큰 팔각형으로, 그리고 세례를 주는 세례반을 왜 팔각형으로 만들었는지 이해가 된다. 필립피에 있는 이 바실리카는 예배당의 중심공간에 팔각형 구조물을 설치하였다. 이는 이 공간에서 예배드리는 모든 이들이 팔각형의 예배공간안에서 새창조와 부활의 의미를 살리고, 경험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부활은 새롭게 되는 날이다. 재창조의 날이다. 작은 부활절로서 주일은 우리가 그리스도안에서 살아나는 날이자 새롭게 되는 날이다. 소망과 설렘의 날이다.

오늘날 교회는 어떤 장소가 되고 있을까? 소망과 설렘의 장소요 재창조의 능력이 임하는 장소가 되는가? 우리는 주일조차 너무 바쁘다. 하루 종일 봉사하고 섬기느라 정신이 없다. 예배 안에서 정신없이 예배드리고 이 공간을 빠져나가기 위해 애를 쓴다. 축도도 끝나기 전에 서둘러 밖으로 나간다. 주일에도 쉬지 못하고 직장에 나가 일을 해야 하고 자격증과 진로를 위해 바둥거린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주일은 더이상 우리에겐 재창조의 날이 아니다. 무엇을 회복해야할까? 후스토 곤잘래스는 『일요일의 역사(A Brief History of Sunday』에서 초기교회가 여덟째 날로서 주일을 어떻게 지켰으며 어떤 날이었는지를 짧게 소개해주고 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 이후로 주일은 기쁨의 날이었다. 기쁨의 날이기에 엄격하게 살거나 심지어는 금식도 못하게 하였다. 기도할때 무릎도 꿇지 않도록 하였다. 위대한 왕이신 하나님의 양자됨의 기쁨을 누리는 날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먼저 회복해야할 것은 기쁨이다. 주일에 드려지는 예배안에서 충분한 기쁨을 누려야 한다. 이 기쁨을 누리려면, 사실 일상에서 치열한 삶을 통해서 가능하다. 일주일 동안 광야의 삶을 믿음의 삶을 살기위한 발버둥을 치며 사는 이들은 분명 주일이 기다려질 것이다. 전쟁과 같은 일상을 살다가 보면 신앙의 공동체가 그립다. 형제 자매들이 그리워진다. 영적 충전의 장소인 예배당이 무척이나 그립다. 주일에 예배당에 가면 감격스럽고 눈물이 난다. 기쁨이 넘친다. 주일은 우리의 영혼이 새롭게 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회복과 은혜가 넘치는 날이기 때문이다. 본 회퍼는 그의 탁월한 책인 『신도의 공동생활』에서 공동체가 함께 드리는 예배안에서의 기쁨을 이렇게 고백한다.

”주의 제자인 요한계시록의 요한도 이렇게 맛모 섬에 홀로 유배되어 있으면서도 “주의 날에 영으로”(계 1: 10) 그의 공동 체와 함께 드리게 될 천상의 예배를 찬미한다. 그가 본 일곱 촛대는 그의 교회들이며, 일곱 별들은 교회의 천사들이다. 그리고 그는 그 중심과 모든 것 위에 인자 예수그리스도가 부활하신 분의 거대한 영광속에 서 계신 것을 본다. 요한은 그분의 말씀으로 힘을 얻고 위로를 받는다. 이 것이야말로 추방당한 자가 주님의 부활의 날에 참여하게 될 천상의 공동체다. 다른 그리스도인이 신체적으로 ‘함께 있다는 것’은 신자들에게 ‘비할 수 없는 기쁨과 힘의 원천’이 된다.“

또한 진정한 회복과 재창조로서 주일을 경험하기 위해 ‘잠시 멈춤’도 필요하다. 우리가 경험하는 기쁨은 인생을 향유하는 여유속에서 발견한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너무 바쁘다. 안식이라는 것은 쉼을 말한다. 현대인들은 쉬지 못한다. 눌리며 살고 여유가 없으니 불안하고 분노가운데 산다. 안식이 필요하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진정한 안식은,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데서 비롯된다. 급하게 돌아가는 일상속에 잠깐 멈추고 예배를 드리려면, 급하게 돌아가는 일상속에서 우리의 삶을 붙드시는 하나님, 우리를 책임지시며 굶게두지 않으시며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가능하다. 하나님을 믿을 때 우리는 진정한 안식을 누릴 수 있다. 예수안에 있을 때 우리는 진짜 쉴수 있다. 이 안식을 왜 우리가 누려야 할까? 그 속에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발견하는 기쁨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쉬지 못하는 우리에게 기쁨을 잃어버린채 살아가는 우리에게 예수께서는 이렇게 당부하신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하리라“ (마11:28)

잠시 멈추자 우리가 가야할 곳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품이다. 그안에 진정한 안식이 있고 기쁨이 충만하다.
옥타곤 바실리카를 떠나 필립피의 옛 도시를 한 바퀴 둘러보았다. 처음에 출발했던 아고라터가 다시 나왔다. 이곳에서 사도바울은 빌립보 사역의 가장 큰 위기가 찾아온다. 사도행전 16장 16절~23절이다.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에게 큰 이익을 주는 자라 그가 바울과 우리를 따라와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하며 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여종의 주인들은 자기 수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장터로 관리들에게 끌어 갔다가 상관들 앞에 데리고 가서 말하되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하게 하여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하거늘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고발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명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이곳 어딘가에서 사도바울과 전도팀은 기도할 곳을 찾아 헤매다가 귀신들린 여종을 만난다. 아마 길거리에서 점을 쳐주고 돈을 받는 여인 이었고 이 수입은 그대로 그의 주인에게 좋은 수입이 되었을 것이다. 한마디로 이 여인은 귀신에 매이고 돈에 매이고 사람에게 매인 존재였다. 이 여인이 바울을 따라다니며 괴롭히자 귀신을 쫓아내준다. 이일이 문제가 생긴다. 온전케 된 여인의 주인이 자신의 수입이 끊어지자 바울과 실라를 장터로 끌고간다. 아마 지금 우리가 서있는 이 아고라 어느 지점일 것이다. 이곳에 있는 비마터일수도 있다. 사람들은 사도바울과 전도팀을 고발하였다. 옷을 벗기고 매로 친다. 도시 근처 옥에 가두고 든든히 지키라고 간수를 붙인다. 쉽지않다.
마게도냐인이 환상중에 바울을 불렀고 성령에 의지하여 첫 성읍 빌립보에 발을 들였다. 성령께서 이들의 발걸음위에 함께해 주셔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런데 복음을 전하다가 매를 맺는다. 감옥에 갇힌다. 바울과 실라는 이 황당한 시츄에이션을 어떻게 해석했을까? 우리의 삶의 모든 문제는 늘 해석에 달려있다. 인생의 당면한 문제를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중요하다. 해석에 따라 우리의 인생은 깊은 어둠과 우울과 분노로 살아간다. 반대로 은혜와 감격속에 살아간다. 이들은 어떻게 해석했을까? 아고라 터에서 2분여 거리에 바울과 실라가 갇혀있던 감옥으로 추정된 장소가 있다. 개인적으로 필립피에 방문하면 꼭 한번 눈으로 보고 싶은 곳이 이곳 감옥터이다. 아고라에서 바울과 실라는 사람들에게 재판을 받아 넘겨진뒤 감옥으로 들어갔다.
이들은 온몸에 멍이들고 상처를 받았다. 옷도 찢겨진뒤 감옥에 갇혀있는 신세가 되었다. 우리의 삶의 모든 문제는 해석이라고 했다. 그리고 결단을 한다. 어떤 결단일까?
“그가 이러한 명령을 받아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더니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행 16:24~25)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한다. 감옥에 갇혔지만 그들은 그의 인생을 절망이나 낙심가운데 내버려두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님께 기도하며 찬송하였다. 그때 감옥의 문이 열린다.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행 16:26)

바울과 실라가 갇혔을 것으로 추정되는 감옥터
바울과 실라가 갇혔을 것으로 추정되는 감옥터 내부


바울과 실라가 갇혔을 것으로 추정되는 감옥터는 생각보다 작았다. 성인 5명정도 들어가면 좁을 공간이었다. 이곳이 감옥으로 추정되는 가장 큰 이유가 있다면 무엇일까? 현지 가이드가 설명해주길 이곳은 곡식이나 물을 저장하는 창고 같은 곳이었다. 그런데 벽화를 발견했는데, 행 16장 24~25절의 내용을 담은 그림이었다. 그래서 이곳이 그 감옥이 아닐까 하는 추측이 나온 것이다. 그리고 이 곳의 구조때문인데 행 16장 33절~34절이다.
“그밤 그 시각에 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어 주고 자기와 그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은 후 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행 16: 33~34)

감옥터 바로 위에 간수장의 사택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구절 때문이다. 하지만 이 곳이 바울과 실라가 갇혔던 감옥이라는 역사적 근거는 없다. 하지만 비록 감옥에 갇혔을 지라도 멈추지 않았던 바울과 실라의 기도와 찬양소리는 이곳 어딘가에서 울려퍼졌을 것이다. 인생이라는 감옥, 현실이라는 감옥에 갇혀 사는 우리에게 지금 당장 무엇을 결단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그 사건, 여기 어딘가에서 일어났다. 그 복음의 위대한 사건과 발걸음이 천년을 넘어 이곳 나에게 전해지고 있으니, 은혜가 되고 도전이 된다.


발걸음을 옮긴다. 옛 필립피의 고대도시를 뒤로하고 쭉 뻗은 아스팔트를 걸어간다. 오른편에 높은 산이 보인다. 그곳은 고대 아크로폴리스라고 한다. 아담하니 정리가 잘된 동방정교회로 향한다. 그곳은 루디아 기념교회이다. 루디아 기념교회(Lydia Church)는 말그대로 사도바울과 빌립보 교회를 위해 헌신적으로 사역했던 한 여인 루디아를 기념하는 교회이다.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는데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 (행 16:11-15)


잔디밭과 정원 관리가 잘 되어있는 교회이다. 루디아 기념교회는 아담하고 아기자기하게 생겼다. 이미 언급한 대로 이곳은 루디아를 기념하는 곳이다. 교회당 앞쪽에는 하천이 흐르고 있다. 이곳은 루디아가 세례를 받았다고 여겨지는 세례터(Lydia Baptistery)이다. 마게도냐 첫성 빌립보에서 첫 개종자가 나왔다.
루디아는 어떤 여인이었을까? 두아디라(Thyatira)시(市)에 있는 자색옷감 장사이며 하나님을 섬기는 여인으로 소개하고 있다. 하나님을 섬기는 여인이라는 말은 이 여인이 유대인이었을 가능성을 알려준다. 하지만 이 여인은 바울에게 세례를 받았다. 당시 비유대인에게 개종시 세례를 베풀었을 관행을 비추었을 때 바울에게 세례를 받은 이여인은 유대인이 아니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게다가 루디아(Lydia 또는 리디아)라는 이름은 인명(人名)이라기 보다 는 사실 지명(地名)이다. 말하자면 리디아 출신 여자 내지는 리디아댁(宅)이다. 이 여인은 염색산업이 발달했던 소아시아 서쪽 리디아주(州)의 두아디라시(市)에서 자색옷감 장사를 했던 여인이다.
여러정황상 이 여인은 리디아 출신의 이방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 여인이 이방인이었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여인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울을 만나 개종하게 된다. 어떤 주석가들은 이 루디아가 빌립보서 4장2절에서 사도 바울이 언급했던 유오디아나 순두게 둘 중 한 사람으로 보기도 한다. 루디아는 자신의 집을 교회로 사용하도록 내어 놓았을 것이다. 그리고 소아시아 두아디라를 오고가며 빌립보의 그리스도인들을 섬겼을 것이다.

루디아는 어떤 여인이었을까 ?


루디아기념교회 안으로 들어가보았다. 바닥은 모자이크로 바울의 전도여행을 새겨놓았다. 예배당 내부는 화려한 프레스코화로 채웠다. 바울이 마게도냐의 첫 성 빌립보 전도여행과 루디아를 만나 세례를 베푼 내용들이 그려져있다. 예배당 가운데에는 동그란 세례반이 놓여있다. 이곳은 유아세례나 세례식을 위한 예배당으로 사용된다.

예배당 구조는 중앙 천정은 동방정교회의 구조를 따라 돔을 얹은 형식인데, 천정 돔에는 사방으로 스테인드글라스에서 자연채광이 예배당을 비추었다. 그리고 중앙 돔에는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때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같은 형체로 임하여 그 위에 강림하고 계신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눅3:22) 그림을 보고 있자니 하늘의 음성이 들리는 것같다. 하늘이 열리고 임한 그 빛이 연상(聯想)된다. 굳이 인위적인 빛이 필요치 않았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빛이 어두움을 몰아내듯이 하늘로부터 빛이 임한다.

세례는 다름아니라 우리의 죄와 어두움을 물로 씻듯 깨끗하게 하는 것이다. 죽음과 저주에 묶여있는 옛 자아를 죽이고 예수안에서 다시 사는 믿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신앙의 외적인 표징(表徵)이다. 세례를 받는 이들 마다 새롭게되는 은혜가 그리고 어두움이 밝은 빛으로 바뀌는 기적이 일어나게 된다. 하늘의 빛이 임하는 것이다.

그 감격을 가지고 이곳에 모여 잠시 예배를 드렸다. 동그란 세례반을 중심으로 중앙에 모여 찬송을 불렀다. 루디아의 고백을 담은 곡 같았다. 찬송가 288장이다.
예수로 나의 구주삼고 성령과 피로서 거듭나니
이 세상에서 내영혼이 하늘의 영광 누리로다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
나사는 동안 끊임없이 구주를 찬송하리로다.
찬양 소리가 마치 하늘에 닿는 듯 울려퍼지기 시작하였다.
사도바울과 루디아, 한사람을 변화시킨 그 능력의 복음, 빌립보에서 시작된 그 복음의 발걸음이 공명(共鳴)이 되어 온 세계로 뻗어 나가는 것처럼 말이다.
바울과 실라는 이제 걸음을 옮겨 암비볼리로 그리고 아볼로니아를 거쳐 데살로니가로 향한다.
우리는 바울의 마게도냐에 첫 발을 내딪은 역사적인 장소로 향한다.
필리피에서 약 15km 남쪽에 떨어진 곳이며 북부 그리스의 항구도시로 알려진 카발라(Kavala)이다.
한편 역사적 발걸음을 시간적 순서를 따라 걸어보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역행을 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같다.
역사를 숙고한다는 것은 거슬러 올라가 보는 것이다.
카발라는 로마 통치시기에는 네압폴리스로 불렸다. 처음 카발라에 도착했을때 작은 항구도시 라는 느낌을 지울수 없을 정도로 아기자기한 분위기가 풍겼다. 하지만 이곳은 그리스 북부 지방에서 두번째로 큰 항구도시로 알려져있다.
왜 이곳에 왔을까? 사도행전 16장 9절-12절이다.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우리가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바울과 전도팀은 성령께서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는 것을 느낀다. 그러자 지금의 터키 내륙 중부지역인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들어간다. 아마도 바울과 선교팀들은 비시디아 안디옥을 중심으로 교회들을 다녔을 것이다. 결국 무시아 앞에 이르러 터키 북쪽 비두니아로 가고자 하지만, 예수의 영이 허락락하지 않는다. 사실 이해하기 참 어려운 대목이기도 하다. 어째든 복음을 전하는 발걸음을 성령께서 막으시다니 말이다. 물론 막으셨다는 대목이 성령께서 직접 개입하셔서 막으시는 신비로운 역사라고 볼수도 있고, 질병이나 자연재해 같은 일로 막으실수도 있다. 정치나 권력자들에 의해서 그땅에 이룰수 없는 정황상의 어려움일수도 있다.
하지만 이 일은 사도바울의 선교여행이 무작정 떠나는 여정이 아니었음을 알려주는 대목이기도 하고
철저히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여정이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깨닫게 되는 대목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복음의 여정을 성령께서 막으셨을까?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은 선교적이다. 하나님께서 부르신 곳으로 떠난다. 그리고 그곳에서 충성스럽게 살아간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삶으로 입으로 전하면서 말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있는 곳에서 예배의 삶을 살아가며 말씀대로 살아간다. 기도하며 하늘을 향해 부르짖는다.
우리가 부르짖어 기도하는 그 곳에 하늘의 하나님께서 임하신다.
하나님의 뜻이 하늘과 땅에서 이루어진다. 이를 우리는 하나님나라 라고 한다.
그리스도인들의 모든 삶은 하나님나라의 확장을 위한 선교적 삶인 것이다.

선교적 삶을 살아감에 있어서 기도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궤도의 수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무엇에 집중을 해야하는지 어디로 가야하는지를 기도를 통해서 깨닫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하던지, 어디에 있던지 먼저 기도를 한다.
하늘의 아버지는 우리의 기도에 친히 응답하신다.
하지만 이 응답이라는 것이 우리의 생각과 우리가 바라는 대로의 응답은 아니다.
물론 하나님아버지는 자녀가 바라는 대로 응답해주시는 좋은 분이시다.
때로는 우리의 선교적 삶을 살아갈때, 방향의 수정을 위해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응답하시기도 하신다.
응답하시지 않은 경우도 있다. 그리고 막연히 기다려야 할때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사실 기도 응답이나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순종이다.
기도의 응답을 받았을때 이를 위해 우리를 부르신줄로 인정하며 거침없이 나아가야한다.
기도 응답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순종할 마음이 있는가 이다.
바울은 기꺼이 순종한다. 내가 생각한 방향이 아니라 할지라도, 미지의 땅으로 가는 길이라 할지라도 그는 순종한다.
그리고 확신한다. 하나님의 부르심이라고 말이다.
이 사건은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도 필요한 깨달음이다.
기도하고 있는가? 그리고 순종할 마음이 있는가.
결국 그리스 쪽으로 방향을 틀어 드로아로 내려간다. 그곳에서 바울은 한 마게도냐인이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환상을 본다. 바울은 즉시 마게도냐로 방향을 수정한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부르신줄로 믿고 그길로 떠난다. 부르심앞에서 그는 지체하는 법이 없다. 곧장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거기서 빌립보에 이른다. 빌립보는 마게도냐의 첫 성이다.

까발라에 들어섰다. 첫 이미지는 작고 아기자기한 항구도시의 느낌이다. 버스에 내려서 도시를 가로질러 언덕을 올라간다. 교회가 보인다. 이곳이 바울 도착기념 교회다.
흥미롭게도 이교회 마당에는 사도바울이 첫 발걸음을 그린 모자이크가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그앞에 커다란 돌 몇개가 놓여있는데 사도바울이 네압볼리로 들어올때 밟았다고 여겨지는 돌들이었다.
물론 사도바울이 밟은 첫 돌이라는 의미라고 본다면 감히 어떻게 여기에 둘수 있을까? 기념과 상징으로서 충분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순례팀들이 다들 돌에 발을 얹고 사진을 찍고 있을 무렵, 나는 뒤를 돌아 교회 입구를 통해 들어가봤다.
시끄러운 도시의 한 가운데 있는 그리스 정교회이지만, 내부는 조용했다. 기도자들과 개인 예배자들로 인해 사진찍는 것은 금하고 있었다. 사도바울이 오른 발로 네압볼리를 밟고 있는 성화들이 여기저기 걸려있었다. 첫 발걸음은 중요하다.

역사에서 가장 관심있고 중요하게 보는 것은 무엇이 먼저인가? 첫 시작은 누구인가 이다. 그것을 위해서 사료를 찾는다. 역사는 곧 사료전쟁이다. 사료를 찾아내는 것 뿐아니라 잘 정돈하여 가치있게 사용하는 것이 역사학의 중요한 과제이다.
교회사도 마찬가지다. 무엇이 처음인가? 어디가 처음인가를 찾는 것은 중요하다. 이곳 까발라, 네압볼리는 그런의미에서 교회사에서 중요한 곳이다. 바울의 첫 발걸음 뿐아니라 성령께서 친히 지정하여 열어주신 문이기 때문이다.

유럽의 첫 문을 연 바울의 네압볼리 방문은 그야말로 교회역사의 가장 중요하면서 큰 역사적사건이다.
몇 전에 한국 교회사 탐방차 부산 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선교사들이 한국 땅을 처음 밟은 사건을 이렇게 기억한다.
'1885년 4월 5일 부활주일 아침,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가 제물포항에 선교의 첫 발을 디뎠다.'
그러나 부산에서는 그렇게 기억하지 않는다. 선교사들이 이 땅에 첫 발을 디딘 곳은 제물포가 아니라 부산이라고 말이다.다.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두 선교사 가정은 1884년 12월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1월에 일본 요코하마에 도착한다. 그리고 1885년 3월 나가사키를 출발하여 한국으로 향한다. 그해 4월 2일 부산에 기착(奇着) 한다. 잠깐이지만 선교사들이 부산에 머물렀다는 증거를 통해 현재 부산 광복동에는 한국 기독교의 역사의 출발점을 알리는 표지석을 세워 기념하고있다. 첫 발걸음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까발라, 사도바울 도착 기념교회는 유럽의 기독교 역사의 첫 출발점을 기리는 교회 답지 않게 아담하고 작았다. 게다가 인적조차 드물다. 잠깐 바울기념교회 당에 앉았다. 물론 사도바울은 이곳에 큰의미를 두지 않았을 것이다. 이곳을 거쳐 바로 빌립보지역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곳에서 기다리는 것은 환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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