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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 성지순례 기행/튀르키예 그리스 바울의 발자취 기행

[그리스 여행 / 그리스 성지순례] 아크로폴리스 야경, 아네테 야경 카페 - 아레오파고스 언덕, 바울의 흔적을 찾다.

by 바울과 함께 걸었네 2019. 1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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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과 함께 걸었네 - YES24

흥미로운 여행기를 토대로 성경의 배경과 교회사를 이해하고 인문 고전의 깊은 상상력까지 풍부하게 더할 수 있는 책이 나왔다. 역사신학을 전공한 함신주 목사가 코로나19로 세계 여행의 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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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도시에서 인간들의 도시로

아크로폴리스를 내려왔다. 계단을 통해서 천천히 내려왔다. 신의 도시에서 이제 인간들의 도시로 내려온 셈이다.

계단은 높은 곳을 또는 낮은 곳을 오르고 내려오는데 쓰이는 통로를 말한다. 층을 지어 만들었기 때문에 계단은 반드시 윗층과 아랫층으로 나뉜다. 분명한 경계선이 생긴다. 한 계단 한계단 오르면, 오르는 재미는 있다. 계단위의 세계는 상상력의 세상이다. 계단 아래의 세상은 현실이다. 상상력의 세상은 때때로 인간의 욕망이 투사되기도 하는 세상이다. 현실의 세상은 저마다의 이성과 합리가 이끌어가는 세상이다. 계단위의 세상을 거닐었다면 반드시 아래로 내려와야 한다. 변화산 위에서 예수님과 영광스럽고 황홀한 세상(눅 9:33)을 만났다면 아래로 내려가야한다. 귀신들린 아들을 붙들고 저마다의 이성과 합리로 판단하는 세상으로 내려와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곳으로 보내시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실천하신 성육신적 삶이란 그런것이다. 경계를 뚫고 이땅에 오신 것이다. 육신을 입고 오셨다. 그리고 같이 사셨다. 영향을 끼치셨고 치유하시고 회복시키셨다. 성육신하신 그분처럼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경계를 넘어 삶으로 내려가야 한다. 경계를 허물어야 하고 어그러진것을 곧게하며 치유하고 회복시켜야 한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이다. 성육신을 실천하는 삶, 보냄을 받은 공동체 말이다. 우리는 신의 도시에서 과감하게 경계를 뚫고 인간들의 도시로 내려와야한다.
아크로폴리스가 신들의 도시라면 우리가 향하는 아레오파고스는 인간들의 세상이다.

계단으로 다 내려왔다. 그리스 길에는 개들이 많다. 주인 없는 개인것같은데, 굉장히 유유자적하고 마치 자기네 삶의 터전인것 마냥 당당하다. 그리스인들은 동물을 좋아하는 지 모두가 주인 없는 개들의 주인처럼 돌본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의 개들은 사람을 무서워하여 피하거나 대들지 않는다. 나무 그늘아래에서 늘어지게 낮잠을 자기도하고 누군가가 던져주는 음식들을 받아먹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이 있는 곳에는 개들도 있다.


아레스의 언덕

아레오파고스는 고대 아테네의 귀족정치의 중심이었다. 이곳은 또한 법정으로서 역할을 감당했던 곳이다.
신화에서 등장하는 아레오파고스는 흥미롭다. 그리스의 모든 장소와 건축물은 신화를 담아낸다. 아레오파고스도 그렇다. 특별히 아레오파고스는 아레스와 관련이 있다. 아레스는 잔혹한 전쟁의 신이다. 그는 아글라우로스와 사이에서 딸 알키페(Alkippe)를 낳았는데, 포세이돈의 아들 할리로티오스가 알키페를 납치하려했다. 그러자 아레스가 그를 살해한다. 포세이돈이 아레스를 법정에 고발한다. 포세이돈과 아레스를 제외한 올림포스의 열두 신이 배심원 자격으로 표결한 결과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이후 재판이 여린 이 언덕을 '아레스의 언덕'이라는 뜻으로 아레오파고스라고 불려졌다. (장영란,아테네 영원한 신들의 도시, 64~65,살림)

사도바울의 아레오파고스 설교 장소.

아레오파고스에서 바울의 흔적을 찾다.

여기에 세워진 귀족중심의 정치모임을 아레오파고스회라고 한다. 아테네는 아르콘이라 불리웠던 행정관들에 의해 통치되었다. 이들의 임기는 1년이었는데, 이들의 임기가 끝나게 되면 아레오파고스회의 의원이 되었다. 솔론(Solon B.C 640~560)과 같은 정치가들의 사법개혁과 정치개혁은 한 층 더 아테네의 민주제를 견고하게 발전시킬수 있었다.
그러나 이곳에서 우리가 중요하게 볼 것은 다른것이 아니다. 이곳은 사도바울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아레오파고스 언덕으로 올라가는 계단 오른쪽편에 사도행전 17장 22절이하의 구절이 적혀진 동판을 볼수 있다.

아레오파고스로 올라가는 계단

동판의 내용은 사실 아레오파고스를 내려와서 발견한 것인데, 헬라어로 되어 있었다. 목사들의 결단은 늘 해외에서 시작된다. 영어권에 가면 귀국해서 영어공부를 하리라! 유럽에 가면 아... 라틴어!!! 이스라엘에 가면 신대원시절에 히브리어 좀 열심히 할것을... 그리스 터키에오면 헬라어 공부를 왜 안했을까.... 오늘도 그랬다.
헬라어로 빼곡히 써놓은 동판은 사도바울의 아레오파고스에서 설교가 적혀있었다.

사도행전 17장의 바울의 아레오파고스 설교


사도행전 17장에 보면 바울과 전도팀이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전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테살로니키에서 나누게 될것이지만, 사도바울의 데살로니카 복음전도일정은 성공적이었다. 유대인 회당에서 세 안식일 말하자면 3주간 성경을 강론한다. 경건한 헬라인의 큰무리와 적지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따른다.
무엇이 이들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큰 무리의 사람들과 헬라인들이 따르자 그곳의 유대인들이 시기한다. 이들은 사도바울과 전도팀이 복음의 거점으로 삼은 야손의 집에 쳐들어온다. 그러나 바울과 실라를 찾지못하고 야손과 성도들 몇명을 끌고가서 읍장들 앞에서 호소한다.

"세상을 소란하게 한 그 사람들이 여기에도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야손이 그들을 영접하였습니다 그 사람들은 모두 예수라는 또 다른 왕이 있다고 말하면서 황제의 명령을 거슬러 행동을 합니다." (행17:6~7, 표준새번역)

성도들은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낸다. 그리고 바울은 그곳의 회당에서도 말씀을 전한다. 이곳에서도 역사가 일어났다. 이 사람들은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였다. 믿는 사람들이 생겼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데살로니카의 유대인들은 곧바로 베뢰아로 가서 또 소란을 피운다. 결국 성도들은 바울을 바닷가로 떠나보낸다. 이때 실라와 디모데는 거기에 남겨진다. 바울의 마음은 어땠을까? 복음의 역사가 강한 곳에 방해꾼들의 역사도 강하다. 복음을 전할때 우리에게 참으로 많은 장애물들이 등장한다.

전에 대학시절 서부경남지역에 전도여행을 다녀온적이 있었다. 당시 전도팀들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복음화율이 낮다고 하는 서부경남지역, 그중에서도 진주지역의 한 교회를 거점으로 잡아 팀들을 마을로 파송하여 전도를 하였다.
마지막 날에는 교회로 초청을 하여 마을 잔치를 하는 일정이었다.
이곳은 복음을 받기 참 어려운 마을이었다.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 마을에 한 선교사님이 오셔서 교회를 개척하고 성실하게 복음을 전하고 사역을 하셨다. 그런데 이 마을의 중심에는 '성스럽다 여기는 오래된 나무'가 있었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소원을 빌고 건강과 평안을 구하였다. 어느날 선교사님께서 거룩한 분노로 밤새도록 도끼질을 하여 나무를 베어버렸다. 그러면 이 마을에 평강이 오고 선교사님의 목회가 순조롭게 되어야하는데, 이 선교사님이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세상을 떠나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모르겠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이 나무신이 예수신보다 강하다. 나무신이 노해서 선교사에게 벌을 줬다. 등등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결국 이 마을은 복음의 문이 닫히게 된것이다.

형제 네명으로 구성된 전도팀이 어느 마을로 들어갔다. 인사를 하고 한 집으로 들어갔다. 너무 반가워하셨다. 리더 형제는 할머님이 계시는 방으로 들어가 마사지를 해드렸고, 남겨진 나와 한 명의 형제는 부엌에 있는 아주머니에게 복음을 전하였다. 이 아주머니는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를 신봉하는 분이셨다. 긍휼한 마음으로 다가갔고 마사지를 하는 리더 형제를 보더니 마음이 열리신 것같다. 그래서 마루에 앉아서 복음을 전하고 소위 영접기도를 권했다. 순조로웠다. 아주머니께서 복음을 받아들이겠다고 하셨다. 그 형제가 기도를 해드리겠다고 하였고 나는 가운데 서서 이 아주머니의 마음에 예수께서 임하시길 기도하였다.
그때였다. 갑자기 급하고 강한 바람소리와 함께 기도를 인도하던 형제가 '앗 따거!' 라고 소리지르기 시작했고, 깜짝 놀라 눈을 떠보니 쇠파리가 이 형제를 공격한 것이었다. 순간 아주머니께서 뭔가 정신을 차리셨다는 듯이 우리를 쫓아내셨다. 종교를 바꾸려하니 신이 노하셨다면서 말이다.

나는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의문이 든다. "하나님께서 왜 그런일을 막아주지 않으셨을까?" 우리는 복음을 전할때 많은 방해물을 만난다. 복음의 역사가 강할수록 그 역사도 강하다. 왜 그럴까.... 사도바울에게도 이런 영적 방해물들을 만났다. 큰무리의 헬라인들 적지않은 귀부인들이 예수를 영접하는 일이 일어났으면, 하나님께서 그곳에 교회가 견고하게 설수있도록 도와주시면 좋겠는데, 사도바울은 도망을 갈수밖에 없는 상황이 일어난다.
그러나 나와 바울의 차이점은 크다. 나는 복음의 장애물 앞에서 알수 없는 패배감을 바울은 복음의 장애물앞에서 알수없는 열정과 승리감을 갖는다. 그는 데살로니가에서도 베뢰아에서도 이제곧 도달하게될 아테네에서도 복음을 전한다.
승리감에 도취되어 전한다. 복음을 전하는 이들은 현실에 낙심하지 않는다.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는 믿음 가지고 앞으로 나아간다. 그게 복음전도자이다. 복음을 가진 이들의 믿음이다.

결국 사도바울은 배를 타고 아덴 곧 아테네로 향한다. 바울은 아테네의 온 도시가 우상으로 가득찬 것을 보고 격분하기 시작한다. 그는 아고라에 가서 만나는 사람들마다 토론하였다. 그곳에 있는 에피쿠로스 철학자들과 스토아 철학자들을 만났고 토론 하였다. 어떤 이들은 굉장히 혼란스러워 하면서도 어떤이들은 바울의 전한 복음과 부활의 내용들에 반응하고 흥미로워했다. 그리스의 신화를 어렷을 적부터 들었던 이들이라 가능했겠다 싶다.

아프로디테 여신의 이야기라든지, 제우스의 머리에서 나온 아테나 여신의 이야기 반신반인의 용사 헬라클레스의 이야기 등등은 예수의 동정녀 탄생이나 신이 인간이 된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었을 것이다. 결국 사람들은 사도바울에게 부탁하여 이 새로운 교훈을 들려줄 것을 부탁한다. 그리고 바울을 세운 곳이 바로 이곳 아레오파고스이다.

아레오파고스의 비마터


바울아레오바고(아레오파고스) 법정 가운데 서서, 이렇게 말하였다.

"아테네 시민 여러분, 내가 보기에, 여러분은 모든 면에서 종교심이 많습니다. 내가 다니면서, 여러분이 예배하는 대상들을 살펴보는 가운데,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제단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이 알지 못하고 예배하는 그 대상을 여러분에게 알려 드리겠습니다. 우주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주님이시므로, 사람의 손으로 지은 신전에 거하지 않으십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무슨 부족한 것이라도 있어서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모든 사람에게 생명과 호흡과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셔서, 온 위에 살게 하셨으며, 그들이 살 시기와 거주할 지역의 경계를 정해 놓으셨습니다. 이렇게 하신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찾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더듬어 찾기만 하면,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떨어져 계시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시인 가운데 어떤 이들도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이다' 하고 말한 바와 같이,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살고, 움직이고,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신을,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이나 은이나 돌에다가 새겨서 만든 것과 같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지했던 시대에는 눈감아 주셨지만, 이제는 어디에서나 모든 사람에게 회개하라고 명하십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세계를 정의로 심판하실 날을 정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가 정하신 사람을 내세워서 심판하실 터인데, 그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심으로, 모든 사람에게 확신을 주셨습니다." (행 17:22~31)
사도바울의 그 유명한 아레오파고스 설교이다. 더러는 이 설교를 강론 내지는 변론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어떤 이들은 이 강론안에는 복음의 내용이 없기때문에 실패했다. 라고 평가절하 하기도 한다. 반면 어떤 해석가들은 이 강론이 당시 그리스 철학과 대등한 수준으로 이루어졌으며 복음이 문화의 옷을 입고 선포된 탁월한 변증이었다고 말한다. 특별히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과 시인들까지 인용한다. 진에드워드는 "디도의 일기" 아레오파고스에서 바울의 설교를 이렇게 그려낸다.

"글깨나 읽었다는 청중들도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바울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철학자 아라투스(Aratus)까지 끌어냈다. 파에노메나(Phenomenon)를 비롯해 여러 저서를 남긴 3백년전 인물이다. 바울이 인용한 구절은 '우리도 그의 자손이다'라고 한 대목이다(행17:28)'(진에드워드,최종훈역,"디도의일기",(서울:생명의 말씀사,2015)291.)

소설이지만 설득력이 있다. 그의 설교가 굉장히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라는 건데, 그리스의 철학자들도 바울이 그저 말쟁이에 불과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대목이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바울의 아레오파고스의 설교에서 가슴을 시원하게 만드는 대목은 따로있다.

"우주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주님이시므로, 사람의 손으로 지은 신전에 거하지 않으십니다. " (행 17:24 표준새번역)

아마도 아레오파고스에서 보이는 높이 있는 신들의 도시를 향해서 손가락을 들고 강한 확신으로 강론했을 것이다. 아테네를 평안과 행복으로 만들어줄 것이라고 믿고 지은 파르테논 신전과 니케신전들을 향해 그는 자신있게 말했을 것이다.
저곳, 하나님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신전에 거하지 않습니다!


아레오파고스의 비마터에 서보다.

사도바울이 강론을 펼쳤던 비마(Bema)터에 서보았다. 아크로폴리스가 상당히 웅장하게 마치 병풍처럼 서있다. 하나님나라와 복음을 선포하는 바울에게 있어서 파르테논 신전은 굉장히 위협적이었을 것이다. 저 신전을 향해 손가락을 펼쳐 저곳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고 말할때 사람들의 눈빛은 어땠을까?
이따금씩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을 전할때 가장 그리스도인 다워짐을 알수있다. 야성이 생기고 생명의 귀중함을 알게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의 야성을 회복해야한다. 이것이 바울과 내가 다른 점이라면 다른 점일것이다.
그는 복음을 아주 잘 누렸던 사람인것이다. 복음을 누릴줄 알기에 두려움이 없었고, 생명에 대한 가치를 알았다. 우리는 얼마나 복음을 누리며 사는 가.

이 아레오파고스 설교 이후에 성경은 이렇게 평가한다. '그들이 죽은 사람들의 부활에 대해서 들었을 때에, 더러는 비웃었으나, 더러는 "이 일에 관해서 당신의 말을 다시 듣고 싶소" 하고 말하였다. 이렇게 바울은 그들을 떠났다. 그러나 몇몇 사람은 바울 편에 가담하여 신자가 되었다. 그 가운데는 아레오바고 법정의 판사인 디오누시오도 있었고, 다마리라는 부인도 있었고, 그 밖에 다른 사람들도 있었다.' (32절~34절 표준새번역)
성경은 아주 냉정하게 사도바울의 설교를 이렇게 평가한다. 더러는 비웃었으나 더러는 관심을 가졌다. 그래서 어떤이들은 사도바울의 아레오파고스 설교는 실패였다고 말이다. 그러나 34절까지 깊이 읽었다면 너무 성급한 평가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몇몇 사람이 신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아레오파고스 법정의 판사인 디오누시오와 다마리와 몇몇 사람이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 신자가 된다.
성지 순례가이드가 아레오파고스 절벽끝으로 나를 불렀다. 손으로 어느지점을 가르쳤다. 작은 교회가 보인다. 그곳이 디오누시오 기념교회라고 한다. 디오누시오에 대한 기록은 교회사가 필립사프에 의해서 소개되고 있다.

"전승{이레나이우스, 에우세비우스, 제롬]에 따므면, 도미티아누스의 재위 때 사도 요한이 밧모 섬에 유배되었고(하
지만 사도의 유배는 네로의 재위 때 발생했다고 봐야 옳다) 로마에서 죽지 않고 기적으로 살아남았으며(테르툴리아누스의 증언) 안드레와 마가와 오네시모와 아레오바고 관원 디오누시오가 이때 순교했다고 한다. 이그나티우스의 순교전은 도미티아누스 치하에서 박해가 많이 자행되었다”고 말한다."
(필립샤프, 이길상옮김,"제2권 니케아 이전의 기독교"(고양:크리스탼다이제스트,2004),59~60쪽))
즉 아레오파고스의 관원 디오누시오는 아테네 교회의 감독이 되었고 도미티아누스때 순교했다고 이어오고 있다는 것이다. 바울의 아레오파고스의 설교를 복음의 내용이 없어 실패한 설교라고 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아레오파고스의 설교를 통해 적어도 디오누시오가 회심하였고, 교회가 세워지는 역사가 그리고 훗날 순교자가 나오는 역사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자 이제 아레오파고스를 내려온다. 돌계단으로 내려온다. 복음은 통로이다. 높은 곳에서 내려오는 통로요 올라가는 통로이다. 우리는 복음이라는 계단을 통해 하나님께로 그리고 세상으로 나아간다.
돌 계단으로 내려오니 그 동판이 보인다. 사도바울의 아레오파고스 설교말이다.
그길로 더 내려가 아고라를 지나 소크라테스의 감옥으로 추정되는 곳으로 향한다.


저녁식사하고 아크로폴리스가 훤히 보이는 카페앞에 앉았다. 아마도 아테네에서 가장 경치가 최고인 카페일것 같다.
저녁이 되니 아크로폴리스는 낮에 보았던 모습과 전혀 다른옷을 입고있었다. 낮에는 웅장함과 차분함이 있었다면, 밤에는 화려하면서 아름다웠다. 신전 곳곳에 켜진 조명들이 신비감을 더했다.
따뜻한 커피한잔을 하였다. 쌀쌀한 날씨에 그리고 저멀리 보이는 아름다운 아크로폴리스 야경,
커피값이 전혀 비싸지 않았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걸어서 숙소를 향했다. 내일은 메테호른으로 향한다. 날씨가 좋아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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