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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 성지순례 기행/튀르키예 그리스 바울의 발자취 기행

[그리스 여행 / 그리스 성지순례] 디바니 팰리스 라리사, fortress cafe, 화이트 타워 방문 -데살로니키, 믿음 소망 사랑

by 바울과 함께 걸었네 2020. 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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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스테판 수도원을 돌아보고 버스에 올라탔다. 마테오라 그 웅장함에 넋을 잃다가 정신을 차리고 그 길로 버스를 타고 서쪽으로 향했다. 4시간여 버스를 탔다. 라리사(Larissa)라고 하는 도시에 도착을 했다.

디바니 팰리스 라리사(Divani Palace Larissa) 라는 호텔에서 하룻밤을 지낸다. 이제는 짐을 풀고 내리는 일에 익숙하다. 이곳에서 저녁 식사를 하였다. 식사후 잠깐 소화를 위해 운동겸 그리고 좋은 카페가 있는 지 밖으로 나갔다. 호텔 바로 옆에 근사한 고대 야외극장이 있었다. 이 고대 야외극장은 시에서 관리를 하는 것 같다. 들어가 볼수는 없었다. 지금까지 보았던 야외극장보다는 규모는 작았지만, 굉장히 오래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 야외극장을 중심으로 젊은이들의 거리 같이 보이는 카페며 작은 바(Bar)들이 있었다. 길거리에서 작은 테이블을 설치하고 그곳에 앉아서 맥주를 즐기는 이들이 많았다.

도시 근처에 큰 그리스 정교회가 있었다. 예배를 드리고 나오는 젊은이들이 있었다. 정교회의 사제들도 여기저기 보인다. 그리스정교회와 로마가톨릭은 동서방의 교회 분열이후에 앙금이 많이 남아있다. 그 앙금들이 결국에는 서로 다른 전통을 내었고, 서로가 자신들의 정통성과 우위성을 입증하기 위해 애를 썼다.
그리스 정교회(Orthodox Church,正敎會) 라는 이름 자체가 주는 의미가 그렇다. 진리 올바름 이라는 뜻의 Orthodox 가 교회 앞에 붙음으로 정통성과 바른 믿음을 보이는 교회로서 자부심과 당당함이 느껴진다.
정교회의 사제들의 모습은 로마가톨릭의 사제들과 여러부분에서 다른데 가장 큰 차이는 정교회의 사제들은 덥수룩한 수염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라리사는 그리스 정교회 사제들이 눈에 많이 보인다.
카페와 바와 같은 곳에는 젊은이들이 모여있다. 직장인들 같기도하다. 저녁 8시만 넘어도 그리스의 거리는 한적하다.
라리사는 아기자기한 모습이 특징인 도시같다.

호텔에서 나와 고대야외 극장에서 조금 벗어나 북쪽으로 걸어올라갔다. 시원한 바람이 불지만 그렇다고 반소매 티셔츠를 입고 다녔다가는 감기에 걸리기 쉽다. 옷을 단단히 입고 바람을 쏘이며 걷기에는 참좋다. 조금더 올라가니 카페거리가 나온다. 그중 맘에 드는 카페를 골라 들어가도 좋다. 좀더 올라가 보았다. 도시에서 관리하는 유적지 같은 것이 나오는데 그 근처에 큰 주차장이 보인다. Fortress 라는 카페이다. 이곳에서 커피한잔을 했다. 멀리 어둑한 정교회 건물이 보인다. 도시에서 관리하는 라리사의 유적지는 조명으로 그 멋을 입혔다.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메테오라와 성 스테판 수도원을 다녀온 기억을 메모지에 정리하고 잠을 청했다.

아침에 일어났다. 수요일이다. 작은 강당을 빌려 그곳에서 예배를 드린다. 성지에서 드리는 예배는 그자체로 은혜요 감동이다. 예배후에 우리는 짐을 버스에 실고 해변도로로 북쪽으로 올라간다. 테살로니키(Thessaonniki, 또는 테살로니카)로 향하는 여정을 시작한다. 총 447Km 버스로 8시간여 이동을 하게 될것이다.
감기로 인한 몸상태 때문인지 버스에 타자마자 잠을 청했다. 한 두 시간여 이동을 하다 문득 눈을 떴다. 여기가 어디쯤일까? 구글 지도를 검색하여 현재의 위치를 살피니 우리 버스는 에게해 해변을 따라 북쪽으로 향하고 있는 중이었다. 왼쪽을 보니 마치 그리스의 등뼈와 같은 역할을 감당하는 높은 산맥들이 솟아 있었다. 오른편은 해변이 보인다.
정면에 멀리 보이는 한 높은 봉우리는 신비롭게 구름으로 감추어져있었고 만년설로 뒤덮여 있었다. 멋있었다. 그 산의 이름이 신들의 산이라고 불리우는 '올림포스 산(Mount Olympus, 해발 2919m)'이었다. 마케도니아주에 위치하고 있으며 우리가 향하는 테살로니키에서 100km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있다. 올림포스산은 늘 구름으로 둘러쌓여 있어 신들이 사는 곳이라는 신비감을 더해주었다.



내가 잠시 지나가는 그 때도 올림포스 산은 신비로운 산의 면모를 과시했다. 사도 바울은 마게도냐에 있는 공동체를 둘러볼 목적으로 가는 선교 여정속에서 올림포스 산의 산맥들을 넘었을 것이다. 이 산맥을 넘지 않았을지라도, 당시 사도바울의 여정은 쉽지 않았다. 차가 없는 시기, 배 외에 제대로 된 교통시설이 갖추어지지 않았을 당시 그의 여정은 고난 그자체였을 것이다. 나는 버스로 타고 가는 이 고산준령을 사도바울과 전도팀은 걸어서 갔다.
복음이 무엇이길래 그들은 이 수고를 감래하고 다녔을까? 감옥에 갇히거나 매를 맞는 것도 복음의 열정을 가로 막지는 못했다. 사도바울에게 복음은 고난과 함께 누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훗날 그의 영적아들인 디모데에게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 받으라."(딤후 1:8)

그는 디모데에게 복음과 함께 가장 좋은 곳을 취하라 라든지, 복음과 함께 사람들의 존경받는 자리를 얻으라하지 않았다.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한다. 내 삶을 말씀에 비추어보니 너무 부끄럽다. 나는 목사이지만, 고난 받는 것 부담되고 싫다. 뭔가 문제가 크다. 잠시후에 살펴보겠지만, 바울이 데살로니키로 들어갔을때, 그리고 그곳에서 복음을 전했을때, 그곳에 교회가 세워졌을때도 오직 고난이었다. 복음으로 인해 받는 환난을 즐거워하라고 전한다. 그래서 데살로니가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로 인해 받는 고난앞에서 환난앞에서 즐거워한다. 끝까지 믿음을 지켰다. 그들의 믿음의 소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방에 퍼져갔다.


테살로니키에 들어왔다. 확트인 에개해 해변이 보인다. 테살로니키는 BC 315년 경 마케도냐의 카산도로스(Kasandros)가 건설한 도시다. 지금은 그리스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이며 마케도니아 지방의 중심도시이다. 알렉산더의 누이이자 그의 왕비인 데살로니카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전해진다. 에게해의 파도가 높지않은 해변덕분에 잔잔한 호수공원 같았다.


이곳에 이 도시의 랜드마크 격인 화이트 타워(White Tower)라고 불리는 탑이 있다. 이 탑은 도시의 방어 기지로 오스만 제국에 의해 세워졌으며, 20세기 초에는 투르크 족에 의해 교도소로 사용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1980년대에 이르러 방어수단의 목적에서 벗어나 비잔틴 박물관으로 개조되었다. 굳이 들어가보지는 않았다. 화이트 타워를 지나 해변가 공원을 따라 걸어내려갔다. 운동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관광객들은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다. 길거리의 악사들은 자유롭게 기타를 들고 연주를 하고 있다. 들려지는 음악소리가 에개해 처럼 마음을 평온하게 한다.
한참을 걸었다. 뜨거운 햇볕도 문제되지 않았다. 하늘은 구름한점 없었다. 푸르다 못해 아예 파랗다. 멀리 거대한 동상이 보인다. 대제국의 대왕이 말을 타고 천하를 호령하듯 보이는 동상이다. 넘치는 박력으로 그앞에 서있는 것 조차 부담이 될 정도다. 말은 금방이라도 달려나갈 것처럼 두발을 하늘로 뻗어있고 꼬리는 들려있다. 알렉산더 대왕( Alexander III Magnus)의 동상이다. 그리고 알렉산더 대왕이 타고 있는 기세등등한 말은 바로 그 유명한 부케팔라스 (Bucephalus)이다.


여기에 왜 알렉산더 대왕의 동상이 있는 것일까? 알렉산더 대왕은 BC. 356년 북방 마케도니아의 왕, 필리포스 2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 아리스토텔레스의 가르침을 받았다. 나는 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이곳에서 살았고, 이 근처에 아리스토텔레스 광장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기원전 336년 필리포스 왕이 암살되자 알렉산더가 즉위 한다. 그후 B.C 335년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테네로 돌아왔다고 전해진다. 알렉산더는 아버지 필리포스 2세가 이루다가만페르시아 정복 원정길을 시작했다. 무엇보다 이곳에서 알렉산더와 그의 말 부케팔라스는 힘찬 도약을 했을 것이다.
왠지 이곳에 알렉산더의 동상이 세워진 이유를 정확히 알수는 없지만, 의미는 알것같다. 이 거대한 동상이 세워진 이곳에서부터 알렉산더의 세계정복의 열정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알렉산더는 페르시아를 정복하고 대 제국을 건설하면서 찬란한 헬라제국과 문화가 꽃피게 된다. 동방의 오리엔트 문화와 헬라의 문화가 만나 찬란한 꽃을 피워냈다. 역사는 이를 헬레니즘(Hellenism)이라고 부른다. 이 헬레니즘이 중요한 이유는 대 제국 로마시대와 성경의 신약시대에 까지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게다가 프톨레미 2세때 히브리어로 기록된 구약성경이 헬라어로 번역되는 놀라운 일이 생기는데 이역시 헬라어가 당시 공용어였기 때문이다. 헬라어 번역자 이면서 율법 학자들이었던 70명을 선발해서 성경 번역작업을 착수하게 된다. 이를 70인역(septuagint, LXX)이라고 부른다. 이 70인역은 선교의 중요한 단초의 역할도 감당하게 된다. 결국 알렉산더는 정복전쟁을 통해 헬라의 문화가 꽃피우게 되고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의 신구약 중간기의 문을 여는 왕이 되었다.

성경에 보면,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키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서신이 있는데, 그것이 그 유명한 데살로니가 전후서 이다. 데살로니키 지역의 그리스도 공동체는 독특하다. 그 개척의 순간도 독특할 뿐아니라 강한 은혜를 준다.
사도행전 17장에 따르면 데살로니가 지역에는 상당한 규모의 유대공동체가 존재했다. 바울도 유대교 회당에 참석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데 힘썼다. 그가운데 일부가 복음을 받아들이는 결과까지 얻게 된다. 그중에 어떤 사람들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무리와 적지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따르기 시작한다. 그러나 과격한 유대인들이 시기하여 떼를 지어 사람들을 선동한 뒤 바울이 거주했던 야손의 집으로 들이닥친다. 바울은 결국 야손과 형제들에 의해 베뢰아로 보내진다. 바울의 안전과 남아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조치였을 것이다. 바울은 다시 데살로니가로 돌아가고자 시도를 했지만 번번히 무산된다. 그러나 피신해 있던 베뢰아에서도 유대인 대적자들로 인해 바울은 바다로 내몰려 결국 아덴으로까지 피신하게 된다.
아덴으로 추방된 바울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개종한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했다. 바울은 목회자의 심정으로 바다건너편에 있는 교회가 어떻게 살아있는지 궁금했을 것이다. 목회자들은 성도들에게 어려움이 찾아올때, 예배는 잘 드리고 있는지, 혹여나 시험에 들어 믿음에서 이탈하지는 않았는지에 마음이 쓰인다. 그리고 심방하여 기도함으로 어떻게든 그가 믿음의 사람이되고 견고하게 서가기를 원한다. 그게 목회다. 바울은 답답했을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아덴에서 동료들과 만난후 디모데를 다시 데살로니가로 보내 공동체가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지를 알아보게 한다. 디모데는 결국 좋은 소식을 가지고 왔다.

5. 이러므로 나도 참다 못하여 너희 믿음을 알기 위하여 그를 보내었노니 이는 혹 시험하는 자가 너희를 시험하여 우리 수고를 헛되게 할까 함이니 6.지금은 디모데가 너희에게로부터 와서 너희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을 우리에게 전하고 또 너희가 항상 우리를 잘 생각하여 우리가 너희를 간절히 보고자 함과 같이 너희도 우리를 간절히 보고자 한다 하니 7. 이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모든 궁핍과 환난 가운데서 너희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위로를 받았노라 8.그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 굳게 선즉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 (살전 3:5~8)
데살로니가 전후서의 말씀은 어려움을 당한 한 그리스도의 공동체가 어떻게 이 어려움을 벗어나 믿음의 본을 보이는 소문난 교회가 될수 있었는가에 대한 목회자의 감사와 기쁨이 담긴 말씀이요. 이 험란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떻게 믿음으로 승리하며 견고한 공동체가 될수 있는지를 마음을 담아 권면한 권면의 말씀이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어떻게 믿음의 본을 보이는 소문난 공동체가 될수 있었을까? 데살로니가 1장 3절에 보니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앞에서 기억함이니(살전 1:3)

라고 증언하고 있다. 믿음과 사랑과 소망을 아주 구체적으로 공동체안에서 실현하고 적용한 공동체였기 때문이다.
먼저 그리스도의 공동체는 믿음의 역사(produced by faith)를 이루는 공동체이다. 믿음은 행동으로 증명한다. 삶이 믿음을 양산해 내는 것이다. 행위가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기 때문이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삶으로 믿음을 보이는 공동체였다. 믿음을 가지고 기꺼이 살아가는 것이다. 말로만 입으로만 믿는다 하는 게 아니라 믿는이로서 구체적으로 현실을 살아내는 삶이 필요하다. 이러한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삶은 사도바울의 삶을 통해서 절실하게 배웠을 것이다. 바울이 처음 데살로니가에 왔을때 복음을 전했을 때에는 빌립보에서 온 직후였다.(행16장) 빌립보에서 옥에 갇히고 매를 맞은 흔적들이 여기저기에서 그들의 삶이 녹록치 않았음을 보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들의 믿는 바를 전하며 살았다. 행동으로 보였다. 믿음에 길에는 반드시 박해와 환란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보였다. 그러니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이들에게 찾아온 어려움을 믿음의 길에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우리는 복음을 전할때 무엇에 주안점을 두고 선포하고 가르치는 가? 돌아볼 필요가 있겠다.

또한 사랑의 수고(prompted by Love)를 이루는 공동체이다. 모든 사랑은 수고를 감내한다. 수고하는 헌신이 없는 사랑은 사실 사랑이라고 볼수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랑을 기꺼이 수고하심으로 이루셨다. 그것이 십자가 사건이다. 십자가는 사랑의 완전체요 결정체이다. 사랑을 입으로만 하지않으시고 기꺼이 자신을 내어준 수고를 하셨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공동체는 예수그리스도의 이 수고를 감당하는 공동체이다. 디트리히 본회퍼는 그의 책 「나를 따르라」에서 마태복음 5장 산상수훈을 강해하며 이렇게 적고 있다.

"이 빛 속에서 제자들의 선한 행실은 보여야 한다. 예수는 말한다. “너 희가아니라너희의 선한행실이 드러나야한다. 이 빛 속에서 볼 수 있는 선한 행실이란 어떤 것인가? (중략) 한마디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사랑의 수고대로 우리 역시도 그리스도의 십자가 지는 삶을 감당해 내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사랑의 수고이다.

마지막으로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endurance inspired by hope in our Lord Jesus Christ.)를 이루는 공동체이다. 여기서 소망은 무엇일까? 인내를 이루어내는 것이다. 소망이 있어야 인내한다. 그런데 막연한 소망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약속하신 아주 구체적인 소망이다. 구원의 소망이다. 오시겠다고 약속하신 그 약속 이것일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확실한 소망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인내하며 기다리며 하루를 살아가는 이유도 이 소망에 근거한다. 이소망이 있다면 우리는 지하 동굴에 들어간들 두렵지 않다. 이 소망이 있다면 앞이 꽉 막힌 것같은 터널속에 들어갈지라도 살수 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이 소망이 있었다. 이 소망은 환란이 와도 견고하여 흔들리지 않도록 붙들어 주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붙들어주었다. 결국 이들에 대한 바울의 고백은 이렇다.

6.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7.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8.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으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살전 1:6~8)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으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것이 없노라.....' 참 멋진 말이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져서 힘들고 환란가운데 있는 많은 그리스도의 공동체들에게 위로가 되고 도전이 되었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속한 교회들도 쉽지 않다. 교회가 어느덧 세상과 닮아있다. 이념간의 갈등이 존재하고 세대간의 갈등이 존재한다. 빈부의 격차에서 오는 갈등, 소수자들을 향한 차별과 갈등이 존재한다. 이런 시대속에 젊은이들은 교회를 떠난다. 믿음을 지키는 것이 힘들다. 목회지 되물림등이 우리에게 큰 이슈로 등장하였다. 복음의 장애물이 되어 교회마다 진통을 겪고 있다. 교회들은 이 힘든시기에 데살로니가 공동체처럼 믿음의 소문을 전해줘야한다. 복음으로 살아가는 삶에 얼마나 큰 능력이 있는지, 믿음으로 살아갈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갚아주어야 하는지 알려줘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절대로 손해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이것이 믿음의 소문을 끼치는 삶이다. 이것이 교회를 깨우고 성도들에게 큰 도전을 준다. 하나님나라를 세워가는 방식이다.

나태주 시인이 최근 시집을 냈다. 『너의 햇볕에 마음을 말린다』(홍성사) 제목이 참 좋다. 너의 햇볕에 슬픔으로 젖은 마음을 말린다는 의미이다. 공동체란 서로의 햇볕으로 서로의 슬픔과 상처로 젖은 마음을 말리는 곳이다. 한국교회가 믿음의 소문이 퍼져가는 공동체 되길 소망해 본다. 우리에게서 발산하여 나오는 그리스도의 영롱한 햇 살과 같은 빛이 한국 교회안에 얼룩인 곳을 말리고, 성도들안에 슬픔과 탄식으로 젖어 있는 눈물을 말리게 되길 바란다.

알렉산더 대왕의 동상아래에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곳 테살로니키 해변에서는 바울의 열정을 발견할수는 없었다. 사실 공허해 보이기도 했다. 물론 이곳에서 사도바울의 흔적을 찾는 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되는 것이다. 이 또한 마음의 문제이다. 이곳은 무역이 활발한 대도시이다. 여기저기 그리스 정교회들은 보였다. 차들도 바삐움직인다. 지금까지 본 그리스의 도시들중 가장 유럽같은 도시가 이곳이다. 넓은 광장과 잘 닦여진 도로 그리고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이곳이 얼마나 역사적이고 중요한 도시인지를 보여주었으나 사도바울의 눈물의 흔적이나 감격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분명 이 도시들 아래에 스며들었을 것이다.

알렉산더 대왕의 동상을 뒤로하고 걸어나왔다. 그를 기념하는 동상에는 넓은 광장이 펼쳐져 있었다. 알렉산더를 기념하는 도시, 왠지 이 도시는 헬라의 문명을 전해주고 넓혀준 알렉산더는 기억할 것 같다. 로마의 장군들은 누구나 알렉산더를 흠모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하나님나라의 확장을 위해 눈물을 뿌리며 애쓴 바울과 전도팀들은 잊은 것같다는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데살로니가 지역에서 복음을 받아들인 영혼을 보며 감격 했을 바울과 전도팀들의 마음, 그리고 유대인들에게 쫓겨가는 상황을 보며 하나님의 뜻을 물을수 밖에 없는 비통함들 그 마음들을 고스란히 마음에 담아 걸어본다. 어쩌면 바울의 유적지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지라도 그리스도의 공동체를 공동체답게 만드는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 이 세가지를 기억한다. 마음에 담아본다. 한 때 천하를 호령했던 대 제국의 대왕의 기념 동상을 뒤로하고 아쉬움을 담아 버스에 오른다.



아볼로니아 비마(Apollonia Bema)에 서다.


이제 성지순례의 마지막 여정으로 가는 길이다. 그리스의 마지막 성지순례 여정으로 필립피(Phillippi)이다. 그 전에 한시간 반여 서쪽으로 이동한다. 아폴로니아(Apollonia)를 들렸다가 알렉산더 비취 호텔 (Alexander Beach Hotel)에서 하룻밤을 묵고 터키 이스탄불로 향한다.

테살로니키 알렉산더 기념 동상 광장에서 버스를 타고 아폴로니아로 이동한다. 테살로니키는 유럽풍의 건물과 넓은 광장으로 인해 그리스의 다른 어떤 곳보다도 유럽에 온 듯한 느낌을 강하게 주는 도시였다. 게다가 에게해의 호수같은 잔잔함이 그곳에 여유로움을 더해준다.


아폴로니아는 사도행전 17장 1절에 등장하는 장소이다.

" 그들이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 (살전 17:1)

암비볼리는 아볼로니아에서 약 서쪽으로 48Km 정도 거리에 있다. 바울은 빌립보에서 암비볼리로 아볼로니아를 거쳐 데살로니가로 이동하였다. 우리는 지금 성경의 데살로니가에서 아볼로니아로 그리고 암비볼리를 통과하여 빌립보로 이동하는 길이다. 말하자면 거꾸로 이동하는 길이다.
아볼로니아에는 바울이 전도를 했던 것으로 추정하는 장소가 있다. 비마터이다. 이 비마터는 큰 나무아래에 위치해 있다. 그리고 아래에는 작은 개울가가 있다. 개인적인 추측이지만, 이 개울가가 바울시대에 있었다면 사람들이 물을 길러나오거나 빨래를 하고 있을때 사도바울과 전도팀들이 이 비마터에 올라서서 복음을 전하지 않았을까? 그런 마음으로 비마터에 올랐다. 대중들 앞에서 큰소리를 외치거나 높은 곳에서 큰 소리로 말하는 이벤트적인 것에 상당한 부끄러움을 갖으며 살아왔다. 그러나 이곳에서 해보고 싶은게 있었다. 비마터에서 바울이 된 것 처럼 그 열정을 온 몸으로 느껴볼 마음으로 올라 외쳐보았다.
"주 예수를 믿으라!"

용기를 냈다. 같이온 순례팀들이 아멘으로 화답해주었다. 사도바울이 이 비마터에서 복음을 전했을 때 어땠을까? 사도행전 16장은 사도바울과 전도팀들이 빌립보에서 일을 다루고 있다. 빌립보에서 바울과 실라는 실컷 얻어막고 감옥에 갇힌다. 온 몸이 멍투성이었을 바울과 실라. 사도행전 17장 1절에 이르러 그 꼴로 아볼로니아로 왔다. 복음을 전하는 그들의 열정은 둘째치고 사람들은 그 거지꼴 상처투성이의 그들을 보며 뭐라고 생각했을까? 예수 믿으면 밥이 나오냐 떡이나오냐? 하지 않았을까? 당신들 차림을 보니까 예수가 인생에 별 도움이 안될 것같다고 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바울과 전도팀들은 듣든지 아니 듣든지 전했을 것이다. 순례팀들 한 사람씩 올라가 바울처럼 외쳐보기도 하고 바울의 열정을 마음으로 담는 시간을 가졌다. 비마터 아래에는 동판으로 사도행전 17:1절이 헬라어와 영어로 기록되었다.
이 아볼로니아의 비마터가 우리에게 주는 은혜가 그런것 이다. 고난을 받아도, 듣든지 아니 듣든지 예수만 존귀케 하는 삶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은혜 말이다. 이곳에서 조금 걸어서 나오면 옛 로마인들의 공동목욕탕이 있다. 어딜가나 로마인들은 야외극장과 목욕탕을 만들었다.


아볼로니아에서 다시 차를 탔다. 그곳에서 20여분 차를 타고 북서쪽으로 이동하여 스트르몬 강(Sterimon)을 건너면 암피폴리(Amfipoli)가 나온다. 이곳에 굉장히 오래된 사장상이 있다고 한다. 이 사자상은 B.C. 4세기 트로이의 창건자 라오메돈의 무덤 비이다. 사자상 하니까 사실 광화문의 해태 정도로 생각했다. '오래되어봤자 그리고 사자상이 얼마나 웅장하겠어?' 첫 인생부터가 압도적이었다. 어마어마한 크기 이다. 높이는 약 15m 정도로 보인다. 이 사자상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굳이 의미를 부여하자면, 사도바울과 그 전도팀이 데살로니가로 향했을 때 이 사자상을 보고 지나갔을 것이라는 것이다.

조금 억지같지만 사실 성지순례 여행이란, 여기 하찮게 보이는 돌들도 성스럽게 여기고 의미를 되새겨 보는 것이다. 예수께서 걸어가셨을 법한 곳을 거닐면서 은혜를 경험하고, 보셨을 법한 곳을 바라보며 잔잔한 감동을 느끼는 것이 성지순례다. 바울이 전도여행을 거닐면서 느꼈을 그마음을 우리도 느끼면서 복음의 열정을 담아온다. 이것이 성지순례가 주는 깊은 깨달음이요 유익일 것이다. 오직 이곳에서만 느낄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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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과 함께 걸었네 - YES24

흥미로운 여행기를 토대로 성경의 배경과 교회사를 이해하고 인문 고전의 깊은 상상력까지 풍부하게 더할 수 있는 책이 나왔다. 역사신학을 전공한 함신주 목사가 코로나19로 세계 여행의 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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