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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 성지순례 기행/튀르키예 그리스 바울의 발자취 기행

[그리스 여행 / 그리스 성지순례] 아테네 여행, 트롤리, 아테네 카페 -아테네, 그리스인들의 일상을 거닐다.

by 바울과 함께 걸었네 2019. 1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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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과 함께 걸었네 - YES24

흥미로운 여행기를 토대로 성경의 배경과 교회사를 이해하고 인문 고전의 깊은 상상력까지 풍부하게 더할 수 있는 책이 나왔다. 역사신학을 전공한 함신주 목사가 코로나19로 세계 여행의 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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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린트에서 버스를 타고 다시 아테네로 돌아왔다.
조용했던 고대 코린트 유적지를 벗어나 복잡하고 시끌벅적한 도시로 진입하니
알수없는 답답함이 밀려온다. 이런 마음을 아는지 버스는 도시를 그대로 관통한다.
그리스의 대표적인 교통수단인 전기 버스 트롤리가 사방으로 뻗어 놓은 거미줄 같이 생긴 전선아래로 다닌다.
대도시의 복잡함 속에서도 한적한 오후 카페에서는 여유롭게 수다를 떠는 그리스인들이 보인다.
복잡한 거리는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도 가득하다. 터키를 방문했을 때는 다양한 이슬람 사원들이 눈에 띄었는데 그리스에 오니 다양한 그리스 정교회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개인적인 느낌탓이지만 교회는 평안함 그자체이다.
아테네 오후 일정은 아크로폴리스를 방문하는 것이다. 가장 기대되던 일정이다.

고대 그리스는 지금의 '그리스'라는 국가처럼 통일된 단일 국가로 존재하지 않았다.
폴리스(Polis)라고 불리우는 식민도시 혹은 작은 도시국가와 같은 마을 공동체들을 세웠고,
이러한 수 많은 폴리스들이 지중해 세계를 중심으로 존재하였다.
고대인들은 그리스인들을 모여사는 폴리스를 '헬라스' 라고 불렀다.
이는 국가라는 개념보다는 그저 '그리스인들이 사는 땅'이라는 의미를 지녔다고 할수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폴리스는 그저 마을 공동체를 넘어 작은 도시국가로서 정치와 군사, 종교의 중심 역할을 하였다.

아테네 사람들은 도시의 중앙에 우뚝 솟은 석회석 바위 언덕을 아크로폴리스(Acropolis)라고 하였다.
이는 높은 곳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아크로(Acro)와 도시를 의미하는 폴리스(Polis)에서 온것이다.
말그대로 아크로폴리스는 높은 도시, 최고의 도시 라는 의미다. 명실상부 이곳은 신들의 도시다.
그곳에 세워진 파르테논 신전은 지금도 그렇지만 당대에 아테네를 상징하는 멋진 건축물이다.


버스에서 내렸다. 멀리 파르테논 신전이 보인다. 저곳으로 가려면 언덕을 걸어 올라가야한다.
언덕을 향하는 길이 인산인해를 이룬다. 이곳의 명성이 느껴진다. 높은 언덕을 오르다보니 아테네시가 시야에 들어온다. 고대 그리스의 야외 극장을 만났다. 아테네시와 고대 야외 극장의 아름다운 건축물이 한 눈에 펼쳐져 있다. 장관이다. 이들은 어떻게 완벽하게 삶과 건축물이 조화를 이루도록 설계하고 건설하였을까?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는 삶과 건축물이 조화를 이룬다고 느껴지기 힘들다. 인간의 정신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지어진 학교 건물이라든지, 교회 건물은 그저 자신의 부와 명성을 뽐내도록 건설되었고, 높디 높은 고층빌딩들은 우리네 일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전혀 상관없이 지어졌다. 사람들은 높은 고층 빌딩을 보며 더 높이 사는 법을 더 빠르게 사는 법을 동경하며 살아간다. 건축물은 인간의 삶과 조화를 이루어 지어져야 한다.


아크로폴리스로 오르는 초입에 만난 그리스식 야외극장은 로마 집정관 헤로데스 아티쿠스가 세운 극장으로 알려져있다. 그의 아내를 위해서 세운곳이다. 이곳은 음악당으로 사용되었다.
극장의 무대 좌우에 항아리가 눕여 있었는데, 오늘날의 스피커 역할을 했던 울림통이다.
저 울림통을 통해 그대로 관객에게 아름다운 음악이 울려나갔을 것이다.
아니면 멋진 오페라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 같은 영웅들의 모험담들이 연기자들을 통해 재현되었을 것이다.


지금도 이곳에서 야외공연이 이루어진다고 하니 놀랍다.
이곳에서 펼쳐지는 음악의 향연이 귀에 들리는 듯하다.
음악은 일상이다. 인간의 일상은 음악으로 시작해서 음악으로 마감한다.
순간 고대 그리스인들의 일상이 궁금해 졌다. 이들의 일상은 어땠을까?
고대 그리스 남성들의 하루의 일상중에 반드시 가야하는 특별한 장소들이 있었다.

먼저 소개할 곳은 짐나지움(Gymnasium)이다. 체육관이라고 보면 좋을 것같다.
이곳에서 남성들은 나체로 운동을 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인체의 아름다움을 동경하였기 때문이다.
남성들은 몸이 완벽한 사람일수록 지식이 뛰어났다고 생각했다.
남성들은 이곳에서 운동 경기 뿐아니라 목욕과 토론을 할수 있었다.
대부분의 남성들이 하루의 일과로서 짐나지움을 가야했다면, 그리스인들은 유대인들의 할례문화를 굉장히 불편한 것으로 여겼을 가능성이 크다. 어쩌면 그리스인들은 유대인들을 야만적이라고 느꼈을 것이고 반대로 유대인들은 그리스인들을 향해 '할례받지 못한 이들'이라고 경멸했을 것이다.
율법의 할례가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하는데 방해가 될수도 있었겠다 싶다. 사도바울은 표면적 유대인이 아니라 내면적 유대인이 진정한 유대인이요 표면적인 할례가 아니라 마음의 할례가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당시 그리스인들이 그리스도인이 되게하는데 어떤 의미가 되었을까?

그리고 짐나지움에서 나오면 아고라(Agora)로 향했다. 아고라는 광장이다.
시장이나 재판과 연설을 하는 공적인 활동장소로 사용되었다.
이곳에서 남성들은 정치를 배운다. 정치가들의 연설을 이곳에서 들을수 있기 때문이다.
국방의 정신을 다진다. 이곳에서 참전 용사들의 이야기를 들을수 있었다.
당시 전쟁의 이야기는 신들의 이야기였다. 고대의 전쟁은 곧 신들의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의미에서 참전 용사들의 전쟁이야기는 곧 신화(神話)이다.
이곳에서 호메로스와 같은 탁월한 이야기꾼들은 전쟁 영웅들의 이야기와 모험담을 통해
청년들의 상상력을 자극시켰을 것이다.
그리스의 남성들은 아고라로 가야 세상을 배울수 있었다.

아고라에서 나온 남성들은 곧바로 신들의 세계인 신전 즉 아크로폴리스(Acropolis)로 갔다.
아크로폴리스는 신들의 세계였다. 그리스의 남성들은 종교의식과 행사에 참여를 하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종교는 인간들의 삶과 죽음을 돌아보는 곳이다.
신이라는 존재 앞에서 인간의 나약함과 유한함을 인정하는 곳이다.
더불어 신전은 공동체의 뿌리를 발견하는 곳이다.
아크로폴리스는 아테네의 토대를 이루는 전설들이 발현된 곳이다.
남성들은 신전에서 인간의 뿌리와 공동체의 뿌리를 발견한다.

마지막으로 그리스의 남성들은 야외극장과 심포지엄(Symposium)으로 향했다.
남성들은 야외극장에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를 눈으로 보고 배울 수 있었다.
고대 그리스에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는 교과서와 같았다.
남성들은 야외 극장에서 눈으로 신들의 이야기를 마주하고
심포지엄에서는 강연을 듣고 토론하였다.
특별히 고대 그리스의 심포지엄은 향연 (symposion)이라는 의미에서 유래된 것으로
친목을 다지는 모임 또는 와인을 즐기는 모임이었다. 와인을 즐기며 던져지는 주제를 가지고 토론하였다.
남성들은 친목을 통해 정치를 배우고 토론을 통해 생각과 지식의 폭을 넓혀갔다.

인간의 삶은 장소에서 이루어지고 일상은 그 장소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에피소드들로 채워진다.
인간들은 그곳에서 공동체를 이루며 인생을 배우며 살아간다.
그곳에서 에클레시아(부름받은 존재 또는 시민, 민회 Ecclesia)로 살아간다.

이러한 여정은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다. 그리스도인들은 영과 육을 분리하거나 신앙과 일상을 분리하는 삶을
사는 이들이 아니다. 일상에서 하나님나라를 사는 이들이다. 일상과 공동체속에서 영적인 삶을 살아내는 사람들이다.
일상과 공동체적 삶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위해 부르심을 받았는지를 깨닫고 부름받은 존재로 살아간다.
일상을 하나님나라 되게 하는 삶을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으로 부름을 받았고 세상속에서 거룩하게 살라고 부름을 받은 존재다.
우리의 부름받은 위치를 아는 것이 진짜 지혜라 하겠다.

오늘 우리의 여정이 그리스인들의 일상을 거니는 여정이 될것같다.
멋진 건축물인 야외 음악 극장을 벗어난다. 언덕을 오른다. 멋진 대리석의 건물들이 등장한다.
아크로폴리스의 관문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만났다.
이곳이 세계적인 관광지구나 싶을 정도로 수많은 외국인들이 눈에 들어왔다.
물론 오색 빛깔의 아웃도어를 입고 단체사진을 즐기고 계시는 한국 아주머니들도 눈에 들어왔다.
남는 것은 사진 밖에 없다는 눈 빛으로 한데 모여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다.
잠시 계단을 오르다가 내려다 보았다. 아테네시가 한눈에 보였다.
그리고 저멀리 바울이 아테네인들을 향해 설교했던 아레오바고도 보인다.

대리석벽돌로 쌓아놓은 이름모를 신전들을 지났다. 몇 계단을 오르자.
감탄사와 함께 눈에 들어온 것은, 멋진 이오니아식 배흘림 기둥으로 든든하게 받치고 있는
파르테논(Parthenon) 신전이었다. 이 기둥들은 대리석 지붕을 버티고 있었는데, 직사각형의 넓은 평면위에 세워졌다.
직사각형의 좁은 쪽에는 8개 긴쪽으로는 17개의 기둥을 세웠다.
원래 이 대리석 기둥들에는 색깔들이 입혀져 있어 화려한 신전으로 알려져있으나
사실 웅장한 면에서 보면 지금 모습이 좋은 것같다. 저마다 이 웅장한 모습의 신전에 감탄사를 내뱉고 있으니 말이다.


이 감탄사는 각 나라 말씨는 달라도, 살아온 환경은 달라도 비슷한 목소리로 내는 소리다.
감탄사는 각가 핸드폰을 들어 사진을 찍는 것으로 완성이 된다.
인간의 문명의 위대함을 탄성하는 소리이기도 하지만, 역사라는 장엄한 흐름속에 한 낫 먼지같은 존재가 내는 소리이기도 하다. 멋지다. 이래서 아테네하면 파르테논 이라 하는가 보다 파르테논 신전은 아테나여신을 위한 신전이다.

헤시오도스의 "신들의 계보"에 따르면, 아테나는 제우스와 메티스 사이에서 태어난다. 그런데 신화니까 가능한 이야기이지만, 아테나는 아버지 제우스에게로부터 태어난 자식이다. 제우스는 자신의 권세와 지위를 훗날 태어날 자신의 아들에게 빼앗길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하였다. 그도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할아버지로부터 찬탈(簒奪)한 왕권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제우스의 두려움을 가중시키는 가이아의 신탁을 듣게된다.
메티스와의 사이에서 태어날 아들이 올림포스를 차지하게 될것이라는 신탁이었다. 제우스는 개구리로 변신하고 메티스를 파리로 만들어놓은 후 메티스를 통째로 삼겨버린다. 메티스와 태중에 있는 아이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메티스는 제우스의 뱃속에서 아이를 낳게 된다. 몇달 후, 제우스에게 갑자기 격한 두통이 몰려왔다. 트리톤 강가에서 갑자기 두통이 심해지자 헤파이스토스가 두통의 원인을 알아보기 위해 제우스의 머리를 도끼로 쪼갰다. 그러자 그 속에서 황금 갑옷으로 무장한 아테나가 튀어나왔다. 이때 하늘과 땅, 바다가 아테나의 탄생을 축하하며 성대하게 박수를 치며 환호를 보냈다고 한다. 자신의 몸에서 태어난 아이라는 부성애가 자극되었을까? 자신의 머리를 쪼개고 나온 이가 아들이 아니라 딸이라 안도했을까? 아테나는 아버지 제우스의 사랑을 받았다. 사실 세상의 모든 딸은 아빠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다. 아테나여신은 앞장서서 싸우는 여전사(프로마코스)라는 별명이 있다. 그녀는 선봉에서서 아테네를 비롯한 그리스를 이끌었다. 게다가 지혜의 여신으로서 장인들의 기술과 예술을 주관하는 여신이었다.

아테나를 사랑했던 것은 제우스 만이 아니었다. 그리스인들도 아테나 여신을 사랑했다. 아테나 여신의 후예들로 자처하여 그 도시의 이름을 아테네라고 까지 명명하였다. 그리스인들은 아크로폴리스 언덕에 그녀를 위해 신전을 세웠다. 그것이 파르테논(Parthenon) 신전이다.


사실 그곳에 아테나 여신을 위한 신전을 세운 것은 다른 역사적 이유가 있다.
탁월한 역사가인 헤로도토스는 그의 책 '역사'에서 페르시아와의 전쟁사를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고대 그리스 역사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전쟁은, 페르시아와의 전쟁이다.

당시 페르시아는 강대국이다. 페르시아의 왕 퀴로스때로부터 소아시아와 그리스의 정복을 위한 계획을 세웠고 퀴로스 사 후 다레이오스는 페르시아 원정대를 꾸려 아테나이를 칠 준비를 한다.
그러나 원정준비를 하던중 다레이오스는 재위 36년 만에 세상을 떠난다.
그의 왕위는 그의 아들 크세르크세스가 계승한다.
그는 고민끝에 부친 다레이오스의 뜻을 받아 아테나이를 정복할 계획을 세운다. 이것이 제 2차 페르시아 침공이다.

헤로도토스는 그리스원정에 동원된 페르시아 대군이 보병만 170만명, 기병 80만명 동맹군 32만명 등 260만명 이상의 규모라고 적고있다.(역사, 7권 184장) 고대 역사가들은 늘 과하다. 현대 연구자들은 약 9만에서 30만정도로 보고있다.
아테나이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 델포이의 신탁을 듣기위해 사람을 보낸다.
신탁의 결과는 참람했다. 그러나 나무성벽이 아테나이를 지켜줄것이라고 한다. 이 나무성벽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다.
그러나 나무성벽을 나무를 깎아서 군선을 만들어 해전을 대비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하게 되었고
이에 아테나이인들은 대규모 해전을 대비한다. 늘 그렇듯 신탁은 애매하다. 무엇이든 해석의 문제다.

이렇게 크세르크세스가 이끄는 페르시아의 대군과 그리스 연합군과 전쟁이 시작된다.
테르모필레 전투에서 그 유명한 레오니다스와 300용사가 고전하였지만, 패전하게 된다.
레오니다스와 스파르테의 용맹한 용사들은 그리스가 페르시아를 상대로 해전에서 전쟁을 준비할 시간을 벌어주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감당해준다. 아르테미시온 해전에서도 그리스 연합군은 크 손실을 입고 퇴각하게 된다.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는 그길로 헬레스폰토스 해협에서 앗티케까지 행군한다. 꼬박 4개월이 걸렸다고 전한다.
그 결과로 페르시아는 아테나이까지 입성하게 된다. 페르시아인들은 그대로 아레오파고스로 올라 아크로폴리스까지 진입하였고 신전을 약탈하고 살육하고 전체에 불을 지른다. (역사, 8권 51~53장)
아테나이가 불에 소멸될것이라 했던 신탁이 이루어진 셈이다. 아크로폴리스는 페르시아의 공격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수도 있었다. 그러나 역사는 페르시아와의 전쟁의 종결을 서두르지 않는다.

살라미스 해협에서 수적으로 우세한 페르시아는 아테나이 인들의 함대를 둘러싸고 포위하여 공격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해협의 입구는 좁았다. 테미스토클레스가 이끄는 헬라스의 함대들은 마치 살라미스의 해협에 갇혀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하였다. 페르시아 함대를 그곳으로 유인한 것이다. 비좁은 해협에 페르시아의 함대는 아무것도 할수 없었다. 완전히 대열이 무너졌고 테미스토클레스의 헬라스 함대는 대열을 유지하며 해전을 벌이게 된다.

결국 페르시아의 대부분의 함선들은 살라미스에서 완전히 파괴된다. 심지어 헬라스인들의 사상자도 많지 않았는데, 대부분의 헬라스인들은 헤엄을 칠 줄알아 함선이 파괴되거나 백병전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살라미스로 모두 헤엄쳐갈수 있었다. 페르시아인들은 헤엄칠줄 몰라 바다에서 빠져 죽었다. (역사, 8권 84~95장)
이것이 기원전 480년경 살라미스와 육지사이의 해협에서 일어난 가장 중요한 전쟁이다.
이를 역사는 살라미스 해전이라고 한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해전중 하나이다.

그리스 연합 해군이 승리하자 크세르크세스의 전의는 완전히 꺾였다. 그런 의미에서 살라미스 해전은 페르시아 전쟁의 결정적인 전환점이었다. 이로써 아테나이는 한동안 지중해의 강자요 맹주로서 자리잡을 수 있었다. 아테나이와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은 페르시아 전쟁의 후속조치로 델로스 동맹을 맺게된다. 이 시기에 그리스인들은 아테나이를 지켜준 아테나 여신을 기념하기 위해 파르테논 신전을 봉헌하게 된다. 사실 고대의 전쟁은 신들의 전쟁으로 간주되었다. 아테나이의 승리는 곧 아테나이의 수호신인 아테나여신의 승리였다. 그런의미에서 아크로폴리스는 신들의 도시였고 신들의 도시가 아테나이에 존재하는한 그들은 평안했다.

그러나 현재 파르테논 신전의 모습을 보면 알수 있듯이 이곳은 이제 신들의 도시가 아니다. 고대 도시의 일상을 담고 있는 유적지요 박물관이 되었다. 파르테논 바깥쪽 면의 지붕은 휑하니 뚫려있다.
지금도 보수공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파르테논 신전은 아테나 여신을 위한 신전이었다. 그러나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공인하고 이어 제국의 국교가 되자 이곳은 자연히 예배를 위한 공간이 되거나 건축자제로 사용되었다.
오스만 제국이 그리스를 정복한 후 이곳은 곧 모스크로 사용되었다가 전쟁시에 무기고와 화약고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1687년 베네치아 군이 이곳에 포탄을 떨어뜨리는 바람에 화약이 터저 지붕이 날아가바렸다. 그나마도 남아있던 것들은 19세기 초 영국대사였던 엘긴이 가져가 대영박물관에 전시중이라고 한다.

파르테논은 이렇게 인간들의 욕망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원래 이곳은 신들의 영역이었지만, 인간들은 신들의 영역까지 자신의 욕망으로 채웠다. 신성한 영역은 때때로 인간들의 금지의 영역이 되었지만, 호기심과 욕망의 영역이기도 하다.
종교라는 이름으로 욕망을 대체하고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욕망을 발현한다.
그 조각이라도 취득하고 싶은 소유의 욕망이 솟아오른다.
지금의 파르테논의 모습은 종교, 전쟁, 소유의 욕망으로 인해 완전히 망가졌고 유실되었다.
파르테논의 오랜 역사를 마주대할수록 인간의 실존을 만나게 되고,
파괴되고 유실된 파르테논을 보면서 인간의 본능이 어떠한지를 깨닫게 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 것같다.




순례팀들에게 시간이 충분이 주어졌다. 파르테논을 충분히 관찰하고 가까이 가볼수 있는 기회이다.
일단 아내와 파르테논을 사진이라는 기억장치에 담을 생각으로 파르테논이 한눈에 보이는 광장에 서보았다.
아테네 도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멀리 제우스 신전도 보인다. 몇 개의 기둥밖에 남지 않았지만, 그 터의 크기가 말해주듯 웅장함을 상상해본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파르테논 신전을 방문하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 페르시아를 물리치고 아테나이를 지중해의 강대국으로 만들어놓은 전쟁의 여신의 이야기를 들으며 감탄했을까? 신전은 번영과 평안을 바라는 인간들의 마음에 적잖은 위안을 주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곳은 신들이 살고 있는 도시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죽음이 존재하는 한, 앞날을 한치 앞도 예측할수 없는 존재로 살아가는 한 신의 존재는 인간에게 필수적이다.
그리고 신전은 그 인간들에게 위안과 평안을 주었다. 이것이 고대 그리스인들의 일상을 이곳에서 보내는 까닭일 것이다.

잠시 그리스도인들의 일상을 묵상해 본다. 그리스도인들도 적잖히 죽음을 마주대하며 산다. 한치앞도 볼수 없는 인생길을 걸어간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의 위안은 교회의 예배당에 있지않다. 예배당을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저기에 계시지 하며 평안을 누리지 않는다. 교회를 일컬어 신들의 도시라 말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들은 우리가 서있는 이곳, 말씀대로 살아가는 삶을 하나님의 나라 라고 한다. 하나님을 인정하는 순종적 태도로 살아가는 이곳을 하나님나라라고 믿는다.
우리는 하나님은 어떤 웅장한 건축물에 가두지 않는다. 아무리 멋지게 교회를 건축하고 예배당을 화려하게 지어도 거기에 계시지 않는다.

주께서 이르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냐? (사도행전 7:49)

하나님은 인간이 지은 건물에 계시지 않는다.
그분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주인으로 모시는 이들의 마음 한복판에 계시고 삶의 자리에 계신다.
믿는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고 믿음으로 살아가 그 지경을 점점 넓혀가는 것. 하나님을 인정하는 삶의 태도도들이 점점 넓어지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요 그나라가 확장되는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일상이다. 일상이 하나님나라가 되는 순간이다.



잠시 그리스인들의 일상을 거닐어 보았다. 그들은 신의 영역과 인간의 영역을 구분한다.
그러나 동일하게 그들은 자신의 문명의 뿌리를 배우고 인간을 배웠다.
이제 내려갈 시간이다. 인간의 영역으로 향한다.
이제 그곳으로 향한다. 신들의 도시 아크로폴리스 그리고 파르테논 신전은 아름다웠다.
파르테논 신전을 뒤로 하였다. 아레오파고스가 보인다.
아레오파고스로 향하니 순간 정신이 번쩍인다.
성지순례자의 본분을 잠시 잃었다. 아차....
방향을 수정하자 나의 본분을 깨닫는다.
이래서 인간에게 방향 수정이 중요하다.

알지 못하는 신에게 까지 정성을 쏟았던 신심이 강했던 아테네인들을 향해
거룩한 분노를 쏟아내었던 사도바울의 열정의 장소로 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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