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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한 기대 (삶)/신뢰의 길

가룟유다에 대한 단상....

by 바울과 함께 걸었네 2016.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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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4:12~25

 

마가복음 11장에서 15장은 예수님의 지상 생애의 마지막 주간인 성 고난주간에 있었던 사건을 보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112~42절은 성고난주간의 다섯째 날인 목요일에 있었던 사건을 보도하고 있습니다.

 

13~15절을 보면 유월절 음식을 어디서 준비할것인지를 묻는 제자들에게 우리주님은 성내로 들어가서 물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면 그를 따라가서 그집 주인에게 장소를 얻도록 지시하십니다.

 

재미있는 것은 방을 구하기 위해 허락을 맡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으로 합니다. 그렇게 예수님과 제자들은 유월절 만찬을 할수 있는 장소를 얻게 됩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서둘러 유월절 만찬을 준비합니다.

 

그런데 이 즐거운 절기에 예수님께서 뜬금없이 이상한 말씀을 하십니다. 18절을 읽어봅시다. 주님은 당신의 제자에 의해 팔릴것임을 말씀하십니다. 나와 함께 먹는 자가 나를 팔리라 하시고 20절에 보니 더욱 구체적으로 말씀하십니다.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자가 팔것이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함께 먹는 자,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자는 사실 함께 식사하는 아주 가까운 사이를 일컫는 말입니다. 사실 굉장히 애매한 말씀입니다. 지금은 식사시간이었고 예수님과 제자들은 모두 한 식탁에 둘러싸여 함께 먹고 마시기 시작합니다. 당시 유대 관습에 의하면 모두가 비스듬이 기대어 누어 무교병을 잘라먹고 포도주를 함께 마셨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 모두 예수님과 함께 그릇에 손을 넣고 먹을 것을 먹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 갑작스럽게 나와함께 그릇에 손을 넣고 함께 먹는자가 나를 팔것이라 하신 말씀은 굉장히 당황스러운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19절에 보니 거기 앉아있는 제자들 모두가 하나씩 나는 아니지요 말하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이런 발언은 사실 가룟유다를 아주 은밀하게 향하고 있었습니다.

모르기는 몰라도 가룟유다는 예수님께서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지 알고 있었을 것이며 사실 마음이 몹시 찔렸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 어느누구도 눈치채지 못하도록 아주 은밀하게 가룟유다에게 말을 건내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는 절대로 요동하지 않습니다.

 

사실 가룟유다의 이야기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상당히 불쾌감을 안겨주는 이야기중에 하나입니다. 가룟유다라는 배은망덕한 인물 때문에 예수님이 죽으셨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 아니... 세상 사람들조차도 배신자의 대명사로 가룟유다를 꼽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가룟유다는 우리가 미워하고 싫어하는 인물이기도 하지만 사실 우리마음속에 깊은 연민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깊은 내면은 가룟유다와 너무나도 닮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양심과 마음 한복판에는 복음서에서 말씀하시는 예수님과 전혀 다른 모습의 예수님을 섬기기도하며, 그분을 수도없이 배신하며 그분을 멀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너무 가룟유다와 닮아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룟유다라는 인물을 너무나 미워하고 그의 이름을 부르는 것 조차 불쾌하지만 그는 우리의 깊은 연민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이 사실은 그리스도인이라면 어느 누구나 직면하는 감정이며 고민입니다.

 

게다가 더욱더 가룟유다에게 연민이 가는 이유는 가룟유다가 왠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구원사역에 희생된 희생자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떠십니까? 가룟유다는 예수 그리스도께도 버림받고, 하나님으로부터 이용당하다가 버림당한 불쌍한 사람이라고 생각되십니까?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신가요? 하나님은 정말 그렇게 잔인하신 분이실까요?

 

본문의 21절을 읽어봅시다.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라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자기에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이 말씀은 마치 예수님께서 가룟유다에게 대놓고 하시는 말씀이라고 생각될지 모르겠습니다.

 

이 본문말씀은 요한복음 13장에도 동일하게 나옵니다.

요한복음 1321~22절을 보니 예수께서 이말씀을 하시고 심령에 괴로워하여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서로 보며 누구에게 대하여 말씀하시는지 의심하더라.

 

요한복음에서는 우리는 위의 말씀이 가룟유다를 향한 말씀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지만 요한복음에서는 이 말씀을 누구에게 하시는 지를 제자들 중 어느 누구도 몰랐다고 합니다. 이는 예수님과 가룟유다 사이의 아주 은밀한 대화였기때문입니다. 아마 가룟유다는 알고있었지만, 마음이 굳어져서 움직이려고 하지 않았을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자신을 향한 말씀인지도 조차 모를정도로 귀가 닫혀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주님은 그 사랑하는 제자 가룟유다가 조금이라도 겸손하여져서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반응하기를 간절히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회개하고 돌이키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떡 조각 받아든 유다는 떡조각을 받아들고 예수님을 떠나게 됩니다.

그런의미에서 우리주님은 가룟유다를 그냥 내버려두시지 않았습니다. 당신을 팔자로 여겨 내버려 두거나 분노중에 내 쫓지 않으셨습니다. 끝까지 붙드시고 회개를 촉구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 바로 우리 주님의 사랑입니다.

 

이러한 주님의 사랑은 지금 우리에게도 유효합니다. 우리주님은 지금도 우리를 건드리고 계십니다. 우리안에 마음이 굳어져서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못들을 때도 있습니다. 교만해져서 하나님없이 살아가기도 합니다. 그럴때마다 우리 주님은 우리마음 깊숙한 곳을 찌르시고 우리의 영혼 깊은 곳을 건드리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이 싫어서 주님으로부터 때때로 도망가고자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신앙은 어떠습니까? 깊은 영적 무감각함으로 인해 여러분의 마음이 굳어져있습니까? 어떤 음성도 어떤 부르심도 들을수 없는 상황이 되셨나요?

혹시라도 영적인 둔감함이 찾아왔다면, 우리의 마음을 찢고 회개해야합니다. 성령을 구해야합니다. 민감함을 달라고 기도해야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한주간 살면서 조금이라도 주님께서 우리의 삶에 말을 걸어오신다면, 그 말씀으로 인해 내 마음이 찔리고 고민이 되고, 염려가 되고 마음에 깊은 부딪힘이 일어난다면 겸손하게 우리 주님께 나아가 그것을 부여잡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요엘서 213절에 보면 너희는 옷을 찢지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시기를 날마다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회개는 우리의 마음을 찢고 주님께 돌아오는 것입니다. 인내하시며 기다리시는 그리스도의 품으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우리의 굳어진 마음을 깨고 주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러한 굳어진 마음은 예수님의 보혈로만 가능합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보혈은 우리의 딱딱하고 굳어진 마음을 녹입니다. 그리고 완전하게 깨트립니다.

 

회개하며 용서받음을 깊이 경험한 사람은 세상을 회심시키며 다른이들을 변화시키는 사람이 됩니다. 부디 그리스도의 품, 하나님의 집의 풍성함을 기억하며 한 주간 사시길 바랍니다. 세미한 그리스도의 음성에 귀 기울이며 사시는 저와 여러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한 삶 사는 저와 여러분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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