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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든지 죽든지 (신학)/교회사

1980년대 기억들 3

by 바울과 함께 걸었네 2018. 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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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유치원에 들어가면서 나의  꿈은 한 번더 바뀌게 된다. 목사가 되는 것이다. 

나는 어렷을적부터 아니 태어나면서 부터 기독교라는 종교를 가지고 태어난 소위 모태신앙인이다. 아버지는 충남 서천에서 출생하셨고, 증조할머니로부터 내려오는 3대째 신앙인이셨다. 또한 충북 보은에서 출생하신 어머니는 대대로 불교집안이셨다. 어머니는 결혼하여 아버지의 권유로 기독교인이 되신 것이다. 당시 부모님은 가난한 신혼시절 집앞에 있는 성덕교회(현재 성도중앙교회)에 등록을 하였다. 그곳에서 좋은 신앙인이셨던 권사님을 만나 신앙생활을 시작하셨다. 어머니는 그 권사님과 함께 나를 업고 지금의 종로구 평창동의 삼각산 기도원이며 다락방기도원이며 멀리에 있는 한얼산기도원 등등의 철야기도회를 다니셨고 은혜를 많이 받으셨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이 더운 여름 산 기도원 한 가운데에 자리를 잡고 앉으셔서 말씀에 집중하시고 나는 어머니 무릎에 머리를 베고 시원한 부채바람을 느끼며 자던 것이다. 

나는 어머니 등에 엎히거나 걸어서 함께 기도의 산에 올랐다. 함께 기도하시던 권사님은 내가 '주의 종'이 될 아이 라고 생각하셨다. 나는 유난히 목사가 된다는 것이 좋았다. 예배가 끝날때, 축도를 하시는 목사님을 따라하기도 하였다. 당시 기억은 워낙 어릴적이라 희미하나 교회마다 기도하는 사람들이 참 많았던 기억이 난다.       

그 시절은 기도하는 이들이 많았다. 산마다 기도하는 소리가 들렸 것 같다. 어머니도 금요일 철야를 마치고 철야를 위해 기도원에 가시거나 또는 토요일 아침 일찍 기도산으로 권사님들과 함께 산을 오르시곤 하셨다. 어쩌면 이시기에 형성된 한국교회의 성장의 발판은 기도하는 이들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여겨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1960-70년대 개발독재시대를 거쳐 한국교회는 성장의 발판을 딛고 도시화와 함께 성장을 이뤄냈다. 

그러나 그것은 제대로된 성장일리 없었다. 역기능적 성장이었다. 생존의 본능에 충실한 성장이었다. 가난, 전쟁과 독재, 분열은 생존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당시 강단은 '5중 복음 3중 축복의 설교'가 주를 이루었고, 소위 한국적 형태의 '희망의 신학'이 시작된다. 그렇게 1980년대에 들어오면서 한국교회는 소위 대형교회가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대형집회 중심으로 일종의 운동으로 일어났다. 소위 복음주의 운동이라고 봐도 좋을 것같다. 그러나 생존과 본능에 충실하며 성장한 교회는 뿌리의 견고함 보다는 외형적 급성장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 결과 너도나도 교회의 성장에 집중하기 시작하였고 그 즈음 각광을 받는 것이 교회 성장학이었다.


(사진자료 옥성득교수의 한국기독교역사 https://1000oaks.blog.me/221366507313)


위의 도표만 보아도 알수있듯이 장로교와 감리교 그리고 오순절 교단은 1980년대에 들어와 눈에 띄게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위의 자료를 제공한 옥성득교수는 70년대~90년대 초까지 오순절교단의 급성장추이를 보면서 왜 오순절교단이 급성장 하게되었는지와 더불어 장로교를 비롯 개신교 교단의 오순절화가 진행되었는지 분석해야 한다고 말한다.[각주:1] 

관련해서 필자는 두 가지 정도가 한국교회의 성장에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첫째, 한국 개신교 성장의 배경에는 조용기목사를 중심으로 한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성장이 있었고 그 영향을 받았다. 그런 의미에서 배현성교수의 말대로 한국교회는 제도적인 면, 정서적인 면에 있어서 장로교적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오순절교단의 영향을 받아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와 은사에 열려있다.[각주:2]  그러니 '모든 한국교회는 장로교이며 오순절'이라는 말에 동의는 되지 않지만, 수긍은 된다. 

둘째, 한국개신교단의 성장 특히 오순절교단의 성장은 1970년대 초부터 198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여의도에서 수 차례 열린 대형 집회 내지는 선교대회 등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이 부분은 좀 더 나중에 다루고자 한다.) 

먼저 조용기 목사와 오순절교단의 교회 성장을 이루었던 '교회 성장학'이라는 신학 방법론이 한국교회의 성장을 이루어냈다. 이강일 소장은 한국교회의 성장의 배경에는 빌리그레함을 중심으로 대형 복음주의 집회와 풀러신학교에서 시작한 교회성장학을 김선도, 조용기 같은 한국의 몇몇 선진적 목사가 능동적으로 수용한 상황이었음을 집어주고 있다. [각주:3] 교회 성장학이란 무엇일까? 교회성장학은 도날드 맥가브란(Donald McGavran 1897-1990)의 선교전략에 의해 제시된 방식이다. 교회성장학이라는 신학적 방법론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955년 하나님의 선교전략(Bridge of God,1955)과 교회 성장의 이해(Understanding Church Growth, 1970)라는 책을 통해서 인데 이는 맥가브란이 아프리카의 7개국을 순방하고 선교단체들을 통해서 세워진 교회들을 탐방하여 조사하고 연구하는 과정을 통해서 얻은 것이었다. 맥가브란의 교회성장학은 이미 밝힌대로 선교적 전략과 선교지의 교회들을 순회탐방하여 연구한 결과로 얻은 것이다.[각주:4] 

그의 이러한 선교전략을 사회과학적으로 분석한 것은 굉장히 탁월한 점일 것이다. 또한 교회성장을 통해 선교로 즉 복음전도의 사명을 일깨워 준것은 가장 큰 공헌일 것이다. 게다가 실제적으로 한국교회는 기도하는 교회요 복음의 열정이 특심이며, 선교 동원과 파송국으로 세계교회에 이름을 알린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성장학은 지나치게 교회의 양적 성장에 관심을 갖게 했다는 한계점을 낳았다. 더욱이 한국교회가 해방이후에 내실있게 성장한것이 아니라 개발과 도시화의 물결에 함께 급 성장을 이룬 역기능적 모습을 만들었다. 교회성장학은 한국교회의 내실있는 성장이 아니라 성장촉진제를 투여한 꼴이 되었다. 저마다 교회는 성장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몸집만 비대해지고 뚱뚱해져 버렸다. 이를 1970년대 초반 시대의 선각자였던 함석헌은 한국교회를 향해 이렇게 한탄 하였다.   

교회탑이 삼대같이 자꾸만 늘어가는 것은 반드시 좋은 현상은 아니다........(중략).....이러한 교회의 증상은 고혈압이라 진단할수 밖에 없다. 뚱뚱하고 혈색은 좋고 손발이 뜨끈한 듯하나 그것이 정말 건강일까? 일찌기 노쇠하는 현상 아닌가 그렇기에 이렇게 혼란해 가는 사회를 보고도 아무 용기를 내지 못한다.[각주:5]  

1980년대 교회는 한국교회의 역사상 가장 뛰어나고 걸출한 교계 지도자도 배출하고 세계에 손 꼽히는 교회들을 세워 성장한 것처럼 보였다. 헌신된 선교사들을 파송하며 살아있는 듯했다. 그러나 성장촉진제를 맞는 열매는 겉 보기엔 예쁘고 색깔이 고우나 금방 썩고 부패한다. 지금의 한국교회는 역사상 가장 부패했다고 평가를 받고 있다. 더이상 윤리적으로 신뢰받지 못하는 대상이 되었고, 교인수도 줄어가며 일찍이 쇠퇴의 길에 접어들었다. 이제는 더이상 교회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지 않게 되었다. 성장해야할 나이에 쇠퇴하게 되었으니 한국교회는 길포드증후군(Gilford Syndrome)이 되어버렸다. 슬프고 답답하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이 극에 달하고 인권에 대한 부르짖음이 격렬했던 시점에 한국교회는 믿음의 선배들이 부르짖던 민주와 평등을 위한 움직임임 아니라 오히려 화려한 도시의 성장과 경제개발에 발맞춰 저마다 교회 성장이라는 목표를 내걸고 여기저기 기도의 불을 붙이고 있었다. 그 기도의 불은 개인의 복락과 안위에 집중하는 기도였다. 당시 한국 교회는 봄, 가을 부흥회가 자주 열렸었는데, 말 잘하고 걸죽한 목소리를 가진 부흥강사들의 설교를 듣기위해서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이 찾아왔다. 기도와 말씀은 당시 가난과 우울함을 벗어나고 싶은 몸부림을 표현하는 곳이며, 하나님앞에 토하는 곳이었다. 그러니 성도들은 말씀이 있는 곳, 뜨거운 기도회를 찾아 다녔다. 

더욱이 내가 살 던 곳은 하월곡동이었다. 달아래 동네, 너 커서 뭐가 될래? 라는 질문에 목사가 되겠다고 어른들에게 당당하게 말했던 그 때 교회는 그랬다. 한국교회가 생존에 집착하는 '급 성장'을 추구한 것이아니라 내실 있는 성장, 본능에 충실한 교회가 아니라 본질에 충실한 교회, 독재 권력이 아니라 민주를, 불평등이 아니라 평등을 추구하며 영혼구원과 복음에 충성하는 교회로 여기까지 왔다면 어땠을까? 태양이 되기 보다 어두운 밤 하늘의 방향을 지어주는 북극성이 되기로 했다면 어땠을까? 역사는 우리에게 늘 아쉬움을 남기지만, 역사는 우리에게 아쉬움에 머물지 말고 일어나라고 이제 다시 그길을 걷지 말라고 우리들에게 종용한다. 

1980년 기억들이 우리에게 주는 과제들이다. 역사는 기억하는 자들에게만 말을 걸고, 기억하는 자들에게만 길을 걷게 한다. 



  1. https://1000oaks.blog.me/221366507313 [본문으로]
  2. http://www.christiantoday.co.kr/news/155524 [본문으로]
  3.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216315 [본문으로]
  4. 맥가브란의 교회 성장론 1. 동일 집단의 원리, 2.집단 개종운동,3.수용성의 원리,4.사회과학의 원리,5.토착화의 원리. 6.추수의원리,7.제자화와 완전화,8.평신도사역의 원리. [본문으로]
  5. 출처: 함석헌, 한국교회는 무엇을하려는가?을http://shinjoo.tistory.com/entry/권력과-한국교회 [신주의 서재]에서 인용함.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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