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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든지 죽든지 (신학)/교회사

1980년대 기억들 2

by 바울과 함께 걸었네 2018. 9.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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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가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어른들이 많이 하게 되는 질문이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일것이다. 이 짖궂은 질문은 아이들이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는 즐거움과 동시에 선택과 결정이라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것인지 일종의 사회생활(?)을 배우는 혹독한 관문인 셈이다. 

동시에 많이 물어보는 짖궂은 질문이 또 하나 있다면 '너는 커서 무엇이 될래?'일 것이다. 이 질문을 통해 부모는 아이의 미래를 위한 고민과 준비를 시작하게 될 것이다. 일종의 인생을 향한 발걸음이 시작되는 시점이다. 

어떤이들은 장래희망이라는 것이 자주 바뀜을 통해 현실적 목표수정을 하게 될것이며 어떤 이들은 어렷을 떄의 건강한 길 제시를 통해 한 방향으로의 긴 목표를 가지고 오랜기간 준비하며 전문가로서 성장하게 된다. 그러니 어렷을 때의 어른들의 적절한 질문은 아이로 건강 정신을 가지고 인생을 향해 자신감있게 나아가게 한다. 

필자도 어렷을 적 "너는 커서 뭐가 될래?"라는 질문을 많이 받고 자랐다. 그떄마다 그 시절 다수의 남자아이들은 '대통령'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 나도 그랬다. 아이들은 지성과 지혜의 성장을 이루며 합리성을 배우고 본능의 충실한 삶 보다는 이성적 결단과 적용에 충실한 삶을 살아간다. 이를테면 철이 드는 것이다. 본능에 충실한 삶은 먹고 사는 문제가 중요한 삶이고, 권력이 마냥 부러운 삶이며 그것을 추구하는 것이 일종의 목적과 방향이 되는 삶이다. 

이성은 말하자면 합리적인 비판정신을 산출해내는 것이며 이성적 삶은 합리적인 비판을 가지고 현실을 보다더 인간 다운 삶을 살도록 방향짓는 삶이다. 그렇지 못한 삶을 우리는 본능에 충실한 삶이라고 한다. 비판없이 살아가는 삶이요. 권력이나 먹고사는 문제에 순응하며 사는 삶이다.

대체로 어린아이들은 본능에 충실하다. 성경시대에 사회계층들을 나눌때 그 기준은 '의존도'라고 한다.[각주:1] 가장 많이 의존했던 계층을 취약계층이라고 보았다. 말하자면 어린아이이다. 그런의미에서 천국은 어린아이들과 같은 이들이 간다고 했을때, 천국은 의존도 높은 이들, 하나님만 바라보며 의존하는 이들이 가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기도 한다. 

하여간 아이들은 본능에 충실하다. 그리고 본능이라는 것은 의존하는 것인데, 먹고 살기위한 의존일 것이다. 그러므로 아이들은 권력자를 본능적으로 알아본다. 조금 후에 살펴보겠지만, 1980년 한국교회도 마찬가지였다. 한국교회는 1945년 이후 해방을 맞으면서 일제 제국주의의 남겨진 문제들을 처리하고 재건해 나감에 있어서 미숙함을 보여왔다. 신앙의 미숙함 뿐아니라 신학의 미숙함까지 이어져 결국 분열의 아픔을 겪에 되었다.

1960년을 거쳐 한국교회는 생존에 지나치게 매달렸다. 말하자면 어린아이와 같은 교회는 점차 본능에 충실하여 기독교적 정신과 그 뿌리의 견고함을 다지고 성장으로 가야할텐데 살기위한 방식에 몰두하였다. 결국 끊임없이 한국교회는 살기위한 방식에 집착하여 권력에 등을 기대기도 하였으며 심지어는 권력에 의존하여 부정과 부패의 온상이 되기도하였다. 혹자는 한국교회는 1960년대 4.19혁명을 통해 이승만과 함께 하야되었다고 한다.

교회내 개혁의 부르짖음과 자성 그리고 반성의 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올 무렵 1960-70년대에 이르러 한국교회는 본능적으로 박정희라는 독재와 유신의 권력의 식탁에 떨어지는 부스러기라도 먹으려고 하였다. 1966년 제 1회 국가조찬기도회에서 김준곤목사는 "박대통령이 이룩하려는 나라가 속히 임하길 빈다." 라고 기도회를 이끌었다. 심지어 1966년 03.12일자 경향신문 "기도는 은밀한 가운데서"라는 기사에 보면 박정희 대통령은 그날에 불참을 하였는데, 이유인즉 기도는 은밀한 가운데서 해야지 호화롭게 기도회를 갖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기독교 정신에 어긎나는 것이라고 소신을 전했다고 알렸다. 이어서 박대통령은 "기독교를 믿는 정치인들이 종교를 남에게 보이기 위해 이용하기 시작하면 종교가 타락되고 정치도 망하는 것"이라고 주의사람들에게 나무랐다는 것이다. 그저 웃을수만 없는 이야기이다.  

1980년대에 이르러 한국교회는 여전히 겉은 성장하였지만 어른아이 와 같은 구석을 보여왔다. 말하자면 역기능적 존재가 된것이다. 정치와 권력 집단을 향한 본능에 가까운 몸부림을 볼수있는 간단한 예로 1980년 8월 6일 롯데호텔에서 열린 대통령 조찬기도회이다. 당시 정진경 목사가 "전두환 상임위원장을 위해서 이어려운 시기에 맡은 직책을 통해 사회 존재하는 악들을 제거하고 정화시켜 준것에 대해서 감사하다."고 기도를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5.18 광주민주화혁명으로 인해 수많은 무고한 생명을 학살한 그 슬픔과 아픔이 채 가시지 않은 8월에 교계 지도자들이 이와 같은 기도를 했다는 것은 가슴 아픈일이며, 직면해야할 1980년대 한국교회의 현실인 것이다. 1980년대 한국교회는 아직 어린아이적 생존 본능을 가지고 있었다.     

'커서 뭐가 되고싶니?' 라는 질문속에는 미래에 대한 건강한 자기 실현도 포함되지만, 본능적으로 먹고사는 문제에 직면하게 되는 질문이다. 아이들이 대통령이 되고 싶은 마음은 그러한 본능에 충실함에서 나오는 반응인것이다. 1980년대 한국교회는 어린아이같이 본능에 충실한 모습으로 생존에 집착하였다.  

나도 역시 대통령이 되고 싶었다. 공교롭게도 당시 대통령은 전두환이었다. 대통령이 되고 싶었던 그때는 그저 어린아이의 심리에 나타난 권력자를 향한 또는 본능에 가까운 생존 욕구의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당시 대통령은 말그대로 멋있는 존재였으나 지금에 와서 보니 당시는 시대적으로 아주 암울했던 시기였다. 1980년대 중반 어느날 더운 여름날로 기억한다. 어머니와 함께 버스를 타고 가던중 고려대앞을 지나다가 데모하는 군중 사이에서 최루탄 연기에 눈이 매워서 어머니 품에 파뭍혀서 울었던 기억이 난다.

 1980년대 중반은 민주화와 인권운동이 극에 달하던 시기였다.  아마 당시가 한국 민주화운동역사에 한획을 그은 6월항쟁이 아니었다 싶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인 1986년 대통령직선제에 대한 요구가 거세지자 전두환은 4.13 호헌조치를 통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는 의도를 드러낸다. 

결국 1987년 1월14일 서울대생 박종철이 물고문을 받다가 사망한 사건이 그리고 6월 9일 연세대학교에서 민주화 운동을 하던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에 맞아 숨지며 6월 행쟁은 더욱 가속화, 대형화되며 결국 6월29일 대통령 직선제를 수용하는 이른바 '6.29선언'이 나오게 되었다. 대통령직선제 그리고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은 수많은 희생자를 만들었고 수천명이 동원되는 부르짖음 속에 피어난 것이다. 

내가 어렷을때 꿈이자 희망인 대통령은 최고의 권력자 였으나 그 시대를 행복하게 이끌지 못하였다. 지금 이렇게 회상해보니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인 1980년대 중반은 최루탄연기가 가득한 눈물의 시대였다. 6월 항쟁때 발사된 최루탄은 모두 35만 발 인것으로 집계되었다니 말이다.[각주:2]  

한국 교회도 마찬가지였다. 권력을 등에 엎고 그 자리에 오르다 보면 개혁하고 변혁하는 위치에 서게 될것이라고 상상했지만, 변혁을 커녕 아무런 영향을 끼칠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런의미에서 1980년대는 교회도 눈물의 시대였다. 




  

  1. 크레이그 키너,IVP 배경주석,186. [본문으로]
  2. 조선일보사, 조선일보 칠십년사 제 3권,1853쪽.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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