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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을 따라 (교회와 공동체)/창동염광교회 50년사

염광교회 50년사 / 부흥과 성장 이야기 4. "교회학교, 밤이 오기전에"

by 바울과 함께 걸었네 2022.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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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5월 말 건축허가가 나와, 창동87-1번지에 대지 177평 건평 60평의 본당이 완공되었고 1975년 7월 6일 입당예배를 드렸다. 1976년 10월 초에 교회 옆에 반지하로 교육관(30평)과 그 2층에 목사관(15평)이 완공되었다.

1976년 10월 초에 교회옆에 반지하로 교육관이 완공된다. 이미 1972년 5월14일자 주보에 따르면 아동부를 지도할 교사를 모집하는 광고를 낸다.

"어린이 교회학교를 지도할 교사를 찾고있습니다. 희망하는 분은 자청하여주시기 바랍니다."
<창동염광교회 주보>, 1972.5.14.

아동부

1972년 5월14일 주일 오후 2시 아동부 학생 48명(남자28명, 여자20명)을 모아 함께 분반 공부를 시작함으로 교회학교가 시작되었다.
197208_하기학교 후(교회학교교사들과 최기석 목사(가운데))&amp;amp;amp;amp;amp;amp;amp;amp;amp;amp;amp;nbsp;

이후 1973년에는 아동부 숫자가 78명 그리고 1974년에는 100명이 넘게 성장하게 된다. 1977년 에는 연령에 따라 아동부와 유초등부를 분리하였고, 1980년에는 유치부와 유초등부로 분립하였다. 이후 1981년에는 아동부를 초등부와 유년부로 1985년에는 소년부를 신설하여 전담교역자를 두고 학생을 지도하였다. 

교회학교기념촬영(1973년7월)

&amp;amp;amp;amp;amp;amp;amp;amp;amp;nbsp;여름성교학교(1975.8)) 여름성경학교(1977.7.) 여름성경학교 교사들(가운데 김석한 목사 1978.7)


중.고등부

최기석 목사는 1972년 5월21일자 주보에 '중.고등부 를 조직한다.'는 광고를 내고 중고등부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청소년 복음전도의 사명감을 갖기를 원했다. 그러던중 1972년 6월4일 13명이 주보의 광고를 보고 모여 창립 총회를 갖고 회장에 고등부 학생 조용부가 선임된다. 
 

오늘 중고등부를 조직합니다. 처음으로 시작되는 중고등부를 위하여 기도와 지도를 아끼지 맙시다. 중고등부 회원들은 예배후 남아쥐기 바랍니다. <창동염광교회 주보>,1972.6.13.


1972년 6월11일 저녁예배는 중고등부 헌신예배로 드렸다. 최기석목사는 요한복음 3장4~5절의 말씀을 가지고 '밤이오기 전에' 라는 제하의 설교로 말씀을 전했다.


이후 중고등부 학생들은 주일1부 예배를 드리고 2부는 분반공부로 모였으며 1973년 2월25일 주일 오후 3시에는 중등부과 고등부가 함께 예배는 드리되 분반공부나 특별활동시에는 증둥부와 고등부가 분리하여 활동하게 된다.

1972. 8. 하기학교 후(왼쪽 윗줄부터 김영애(고2), 공훈(중1~2), 조용부, 최숙자 사모, 군종사병, 최기학 전 총회장)

교사들의 수고와 헌신 가운데 1978년 2월 26일 중고등부 출성 학생수는 88명(남자51명,여자37명)에 이르게 된다. 1985년부터는 중등부와 고등부가 완전히 분리가 되어 모든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1972년 중고등부 제1회 염광문화제


청년부와 청년예배
창동염광교회는 1972년 교회학교가 시작되면서 청년들이 교사로 봉사하기 시작하자 청년회의 조직의 필요를 갖게 된다. 1972년 9월10일주보를 보면 청년부 창립총회 광고가 있다.

예배후 청년회 창립총회 있습니다. <창동염광교회주보> 1972.9.10.

1973.9. 청년회 등산모임
1976년 청년회

 

초대청년들 등산 모임


청년부는 회장에 최기학 부회장에 홍상순 총무에 조계학등이 선임되었다. 매주 토요일에 모여 기도회를 갖고 1975년 9뭘14일부터 교회학교의 부서로서 예배와 성경공부를 하게된다. 이시기에 약 12명(남자8명, 여자4명))의 청년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이후 모임이 활발하게 증가되자. 1981년에는 청년부와 대학부로 분립하게된다. 이후 1985년부터는 청년1부와 청년2부로 운영되었다가 1986년부터는 당회의 방침에 따라 제1청년회, 제2청년회로 나뉘게 된다.
1997년 2월 23일 당회에서 다음과 같이 결의하였다.

청년중심주일 4부예배
팀 구성후 먼저 청년예배에서 실시한후 전반기 중 본당에서 4부예배로 드릴 예정임
4부예배시간
1) 예배 : 오후 2시~4시
2) 성경공부 : 오후4시~6시
-<창동염광교회 당회록>1997.2.23.

즉 당시 온누리교회나 사랑의교회에서 예배모델을 따라 청년중심의 예배를 고민하였고 1997년 5월 4일 오후2시에 본당에서 청년중심의 주일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사랑부
2000년 7월23일 오후 1시30분, 유년부 예배실에서 창동염광교회 사랑부가 개설되었다. 방수동 전도사가 소년부와 함께 사랑부를 겸임하였다. 당시 담임목사와 성도들 약 70여명이 모여 첫 예배를 드렸다.
사랑부는 다양한 연령층으로 구성하였고 사랑의 교회에서 발간한 장애 아동을 위한 교재를 구입하여 사용했다.

사랑부 첫 예배 추정 사진
사랑부 예배는 생동감이 있다. 앞에 나와서 대표로 노래할 사람을 찾으니 금세 한아이가 씩씩하게 대답하고 단앞으로 나가서 노래한다 그러자 모두 환영하며 박수쳐준다. 선생님의 질문에 아이들의 대답도 확실하고 서로에 대한 관심도 많아 다정하고 참여적이며 격려하는 따뜻한 분위기다. 예배 후 간식시간 간식을 먹기 좋을 만한 크기로 잘라 선생님이 손수 먹여주시고 턱아래까지 그릇을 대주시며 입을 닦아 주기도한다.
"그들을 향한 특별하신 뜻- 사랑부 어린이들의 예배," 쉴만한 물가, 2000년9월호(97호)>

창동염광교회는 교회교육에 혼신의 힘을 쏟은 교회라고 하겠다. 1972년 중고등부 첫 헌신예배때 최기석 목사의 설교처럼 한국교회의 어두운 밤이 오기전에 믿음의 사람들을 양성하는 것, 하나님나라의 확장을 위해 사람을 세우는 일을 아주 중요하게 여겼다.

박재완 은퇴장로가 기증한 85년도 여름성경학교 자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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