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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 성지순례 기행

[튀르키예 여행/ 성지순례 여행] 공존과 조화의 장소 튀르키에, 이스탄불

by 바울과 함께 걸었네 2019. 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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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과 함께 걸었네 - YES24

흥미로운 여행기를 토대로 성경의 배경과 교회사를 이해하고 인문 고전의 깊은 상상력까지 풍부하게 더할 수 있는 책이 나왔다. 역사신학을 전공한 함신주 목사가 코로나19로 세계 여행의 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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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는 어떤 사건을 기억나게 한다. 장소는 현재의 위치를 발견하게 한다. 그리고 미래를 향해 가도록 한다. 장소는 미묘한 요소다.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장소와 만남을 갖는다는 것은 설레는 일이다. 성지순례 여정 초입에서 만난 장소는 바로 터키의 이스탄불이었다.
이스탄불은 만남, 공존 그리고 조화의 장소이다. 보스포로스 해협을 중심으로 동 서양이 만나는 지점이다. 과거 기독교 초기 교회의 흔적들과 현재 이슬람의 화려함이 공존하고 있는 곳이다. 동 로마 비잔틴제국의 영광과 오스만 터키제국의 웅장함이 미묘한 신비감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스탄불의 최고의 명소는 단연 성(聖) 소피아 성당일것이다.

성소피아 성당 모습

비잔틴 건축양식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현존하는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이 아름다운 건물은 360년에 콘스탄티누스 1세의 아들 콘스탄티누스 2세에 의해서 처음 건립되어 진 동 로마 비잔틴 제국의 대표적인 성당이었다.

그러나 532년 니카의 반란으로 목조건물이었던 소피아성당은 소실이 되었다. 니카의 반란에 대해서 알려진 바는 별로 없다.
유스티니아누스 제위시절은 분면 전제군주제국이었지만, 당파가 존재했다. 그 중에 대표적인 당파가 녹색당과 청색당이다. 녹색당과 청색당은 상호간에 대립과 견재를 통해 정당의 세력을 유지할수 있었다. 정당은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정당간에 견재를 통해 권력을 점하고 우위를 다지기도 하고, 함께 협력하여 권력의 독점에 저항하기도 한다.
그런의미에서 니카의 반란은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권력의 독점에 대한 반발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정당을 향한 압력과 탄압에 대한 일종의 저항으로 일어난 것이다. 녹색당과 청색당은 히포드롬 경기장에 모였고 황제의 권력에 저항할것을 결의했다. 정당정치는 민주정치의 좋은 표본이다. 권력의 독점을 견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역사는 이 반란을 왜 '니카의 반란'이라고 이름을 지었을까? 사람이름도 아니고 말이다. 사실 역사는 이름을 짓는 것부터 시작한다. 니카(NIKA)는 승리라는 뜻이다.
니카는 히포드롬 경기자에서 응원할때 쓰는 표현이었을 것이다. 경기장에서 승리는 법을 지키고 공정하고 평등한 위치에서 더 값지다. 반란군들은 니카라는 이름으로 모였다. 반란군 들은 정의라는 구호와 승리라는 구호아래 모였을 것이다. 그런데 정치에서 승리란 무엇일까? 권력의 독점이 권력자 자신에게로 향하는 것에서 국민을 향하는 것이다. 더나아가 민생이 안정되고 전쟁이 아닌 평화가 임하는 것이다. 그들이 바라는 승리는 그런 것이다.

터키의 현주소는 아쉽다. 여행 첫 날 터키의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다. 이유인즉, 터키 이스탄불은 정치적으로 아주 중요한 곳이다. 터키의 수도는 앙카라 이지만 , 어쩌면 수도 보다 영향력있는 도시가 이스탄불이었다. 그러니 집권 당은 이스탄불을 여당의 텃밭으로 만들어야 했다. 그런데 제1 여당 ‘공화인민당'(CHP)에게 말하자면 패배를 한것이다. 이에 터키 최고선거위원회(YSK)가 야당이 승리한 이스탄불광역시장 선거를 무효로 만들고 재선거하기로 결정하였고,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크게 반겼다는 후문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7일(현지시간) 의사당에서 열린 여당 정의개발당(AKP) 회의에서 "우리는 이스탄불 재선거 결정이 터키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중요한 발걸음으로 본다"며 반겼다는 것이다..(연합뉴스 2019.0518)
현지 가이드로부터 이 소식을 듣고 우리 일행은 이스탄불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지금 히포드롬 경기장 중심에 우뚝 솟은 오벨리스크를 떠올려본다. 권력의 독점에 대한 해방과 자유 그리고 승리를 갈망하는 그들의 민족성은 어디에 있을까?

물론 니카의 반란은 오늘날의 터키의 민족과는 연결될수 없다. 그리고 동로마 비잔틴제국의 권력의 독점을 향한 민중의 반란이다. 그러나 이스탄불은 그 정신이 녹아 있는 장소이다. 장소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여전히 히포드롬 광장이 존재하고 있으며, 성소피아 성당이 찬란한 과거의 역사를 간직한채 존재하고 있다. 이곳에 니카의 반란이 꿈꿔온 그 승리가 임하길 원한다. 물론 그들의 꿈은 반란이라는 이름아래 학살과 피의 잔혹함으로 끝났지만 그 정신은 지금도 살아있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그 장소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결국 니카의 반란으로 콘스탄티노플은 화염으로 휩싸였다. 그때 소실된 것이 목조로 된 성 소피아 성당이었다. 결국 유스티아누스 황제는 도망을 결심하나 황후인 테오도라가 그를 막아선다.
"만약 지금 폐하께서 목숨을 부지하시기 원하신다면 폐하시여, 곤란할 것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돈도 있고, 눈앞에는 바다가 있고 배도 있습니다. 하지만 생각해 주소서. 그렇게까지 해서 살아남은 뒤, 과연 '죽는 것보다야 나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소첩은 "자주색 옷은 가장 고귀한 수의"라는 옛 말을 옳게 여기옵니다." (진원숙,"비잔틴제국,"살림.)

결국 벨리사리우스 장군의 지휘 아래 반란군은 진압되고 수천명이 학살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반란군을 진압한 유스티니아누스는 성소피아 성당의 재건을 명하고 밀레토스의 이시도로스(Isidoros)와 수학자인 트랄리스의 안시미오스(Anthemios)에게 설계를 맡겨 532년부터 537년 12월 27일 까지 공사기간 6년도 안되서 헌당식을 갖게 된다.
성소피아 성당의 압도적인 위엄과 경이함에 그는 '솔로몬이여 내 그대를 이겼노라!" 라고 외쳤다고 한다.

그리고 정교회는 성소피아 성당을 재건한 업적을 기려 유스티아누스와 테오도라를 성인의 반열에 올린다. 대제가 되었고 성인의 반열에 올랐지만, 역사의 평가는 좀더 지켜볼일이다.

비잔틴 건축양식의 가장 큰 특징은 중앙에 돔을 얹은 형태이다.
높은 천정과 아치형의 돔의 건축양식은 웅장함을 가미할뿐아니라
그자체로 경외심을 불러일으킬만하다.
실제로 돔은 하늘이라는 개념을 상징화 시킨 공간이다.
그 공간은 거룩의 영역인 하늘과 세속의 영역인 땅이
통합(統合)되는 곳이다.
그렇게 성스러운 예배의 공간은 하늘과 땅이 만나는 지점이 된다.
예배는 하늘과 땅이 만나는 지점이다. 예배하는 장소는 땅의 백성들이 하늘을 다스리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다. 그런의미에서 예배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땅에 발을 딛고 살아가지만 하늘을 품고 사는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백성은 서있는 곳에서 예배드리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성소피아 성당 뿐아니라 그리스 정교회의 예배당은 예배하러 예배당에 들어오는 이들마다 서있는 곳이 하나님나라임을 강조하기 위해 돔을 얹었고 그곳을 프레스벽화로 채웠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보좌에 앉아있는 형상이나 천사들이 경배하고 있는 모습들을 채워 넣음으로서 시각적으로 마치 천상의 예배를 드리는 것 같은 착각을 갖도록 하였다.
그러므로 예배자들은 예배당을 방문할때마다 믿음을 얻기를 원했다. 그리고 보기 원했다. 예배당의 웅장하고 경외함에 매료된 이들은 우리의 믿음은 이곳에 있다는 확신을 갖고 세상으로 나갔다.
그리고 수 많은 박해와 시련에도 그들은 힘을 얻고 용기를 얻고 그리스도인으로 믿음을 지켰다.

그려진 벽화들을 보고 누군가는 그렇게 말할지 모르겠다. 허무한 것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이라고 말이다. 분명 성스러운 것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가치있는 것마저 허무하게 만들어 버린다. 그럴지라도 종교는 성스러움에 대한 감정이다. 성스러움에 대한 인식과 열정은 오직 종교의 영역에서 가능하기 때문이다. 종교는 현실 세계에서 성스러움을 맛보고자 하는 인간의 열망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성스러움에 대한 해석과 분별의 작업을 거쳐야한다. 그 작업을 우리는 신학(theology)이라고 한다. 교회사에서 성스러움과 속됨을 분별하고 해석하는 많은 방식이 있었다. 어떤 이들은 칼로 자르듯이 성스러움과 속됨을 잘랐다. 어떤 이들은 성과 속의 혼합을 어떤이들은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성과 속을 해석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할 것은 종교에서 해석과 분별의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을때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의 자리를 허무한 것으로 바꿔버릴 여지가 크다. 인간의 욕망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해석과 분별의 작업을 제외한 성스러움을 향한 욕구는 지극히 인간적인 것으로 만들고 종교는 미신적 요소로 전락해버린다.
그것을 회복하려는 의지가 종교개혁이다. 예배를 개혁하고 말씀으로 돌아가자 외쳤다.

성 소피아 성당을 둘러봤다. 모든이들이 경외심을 느꼈던 그 성스러운 공간에 서 보았다. 성모 마리아가 예수를 안고 현세를 내려보고 있다. 인간들의 성스러움을 향한 욕망과 현실 세계의 결핍을 이해하고 있는 듯한 표정으로 보고 있다.

모든이들이 경외심을 느꼈던 그 성스러운 공간에 서 보았다. 성모 마리아가 예수를 안고 현세를 내려보고 있다. @ 함신주


지금은 박물관이 되어버렸고 성스러운 기독교 예배의 공간은 미흐랍과 민바르가 놓여진 이슬람의 예배 공간으로 바뀌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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