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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갑바도기아에 대해 언급한 것은 두 부분이다.
사도행전 2장과 베드로전서 1장에서이다.
갑바도기아에 그리스도의 공동체가 어떻게 존재할수 있었을까?
성경에 갑바도기아라는 지명이 먼저 등장하는 것이 사도행전 2장 4~13절이다. 본문은 오순절 성령 강림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께서 강하게 임하시고 각기 다른 방언(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말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된다. 그리고 이 기이한 현상을 이방인들이 듣고 보게 된다.
성령의 역사는 보이는 역사 이다. 누구나 볼 수 있도록 임하신다.
성령은 무조건 신비하게 감추시거나 특정한 이들만에게 주시는 역사도 아니다.
게다가 애매모호하게 역사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어느 누구든지 '저것이 성령의 역사다.' 하며 보는 이로 하여금 분별이 가능하게 역사하신다.
정확하며 분명한 역사이다. 성령과 악한 영의 역사가 확연히 구분될만큼 분별이 가능한 역사다.
이러한 성령의 역사 이것을 성경 속에서는 '성령의 충만'이라 하였다. 충만이란 흘러넘친다는 의미다.
흘러넘치는 역사로 인해 무엇이 담겨있는지 그대로 보여진다.
그래서 성력의 역사에는 교회가 일어나고 기독교 공동체가 세워진다.
성령은 교회의 설립자시다. 설립자인 동시에 운영자시다. 교회에는 성령의 활동이 가득해야 한다
성령의 충만, 이것을 교회사에서는 소위 부흥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사도행전2장의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은 방언으로 나타났다.
8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 9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갑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10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11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행 2:8~11)
이렇게 성령의 역사가 강력하게 임할 때, 그곳에 있던 이들 중에 한 무리가 '갑바도기아에서 온 이들'이었다. 이들은 성령의 역사 중에 하나인 '방언'을 경험하였고, 방언을 통해서 들었던 것은 '하나님의 큰 일' 이었다. 하나님의 큰 일은 무엇이었을까? 하나님의 나라의 역사의 시작을 알리는 일이었을 것이다. 오순절 성령께서 오심으로 하나님나라가 이미 임하였고 도래하였음을 선포하는 것이었다. 교회가 세워지고 민족과 열방가운데 하나님의 구원의 손이 모든 곳에 미치는 큰일을 그들은 들었을 것이다. 그렇게 오순절 갑바도기아에서 예루살렘으로 온 이들은 하나님의 큰일을 보고 들었다.
그리고 갑바도기아로 돌아가 그들의 공동체를 세웠을 것이다.
또 한 가지 가능성은 예수믿는 유대인의 무리들이 스데반의 순교 이후에 극심한 박해를 경험하고 각 지역으로 흩어졌다. 그들은 갑바도기아와 여러 곳으로 흩어졌을 것이고 그곳에서 그리스도의 공동체를 세워 나갔을 것이다.
이들 공동체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 본문이 베드로 전후서 이다. 베드로는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라고 언급하고 있다.
1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2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5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7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벧전1:1~9)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에게 편지를 쓰고 있다.
사도는 왜 이들을 흩어진 나그네라고 정체성을 부여하고 있는 것일까?
나그네는 이 땅을 나의 본향이라고 여기며 살아가는 존재들이 아니다. 말하자면 나그네는 여행객들이다.
그러기에 나그네라는 정체성은 때때로 우리에게 허무함을 안겨준다.
정처없이 떠도는 삶이기 때문이다. 안정적인 삶이 아니기에 불안함을 주기도 한다. 사도는 이들 지역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흩어진 나그네라고 한다. 이 나그네라는 말이 얼마나 허무함과 불안함을 가져다주는 말인지 모른다.
이것을 베드로는 몰랐을까? 목회자인 베드로는 이들의 마음에 믿음을 불어넣어주기 위해서 또 한 가지 정체성을 부여해주고 있다. 2절이다. ‘곧..... 택하심을 받은 자들’
나그네와 택하심을 받은 자들 뭔가 두 정체성 사이에 모호함도 느껴지고, 모순도 느껴진다.
사도는 이렇게 말한다. "너희는 정처없이 순례의 길을 떠나는 나그네이지만,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존재다."
성지여행을 하면서 재미있는 것은 아침에 일찍일어나서 든든히 아침을 먹는다. 그리고 로비에 모여 버스에 짐을 싣는다. 버스를 타고 여행지로 떠난다. 성지를 둘러본다 그리고 호텔로 이동하여 짐을 내린다. 그리고 하룻밤을 잔다 아침에 일어난다..... 아무리 좋은 호텔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그것을 안다 이곳이 내가 영원히 머물곳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누구하나 우울해 하거나 답답해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의 본향은 이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집이 따로 있고 내가 살아가야할 곳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그네 길을, 여행객으로서 사는데 두려움이나 걱정이 없다. 우리의 영적 여정속에서 두려움과 걱정이 때때로 몰려드는 것은 우리의 본향이 어디인가를 잊어버리고 살기 때문 아닐까....
사도 베드로가 전한 것처럼 우리는 분명 흩어진 나그네들이 맞다.
우리의 본향은 이곳이 아니다. 그러나 또한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들이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나그네들인 우리는 분명한 목적지가 정해져 있으며 그 목적지는 저천성 예루살렘 이다.
우리가 이 정체성위에 견고하게 서있으면 끝까지 이 걸음을 걷게 될 것이다.
괴레메를 나와 다시 차를 타고 이동하였다. 파샤바 계곡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이곳의 별명은 스머프 마을이라고 한다. 버섯모양의 기이한 암석들이 장관이다. 그런데 이곳의 별명은 스머프 마을외에 또 있다. 수도사들의 마을이다.
속세를 떠나 거룩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 수도사들이 고독을 향해 들어갔던 곳이다.
이미 전에 이곳을 방문한 적이 있던 집사님은 달라진 이곳을 보며 흥미로워했다. 지금은 이곳을 관광지로 한참 개발중인 듯 휴게실과 카페 그리고 멋진 테라스가 설치되었다. 수도사들의 마을 분위기보다는 이제는 관광지가 되어간다.
수도원 운동은 사실 이집트 사막을 배경으로 시작되었다. 역사가들은 대체로 성 안토니오스가 270년경 시작했다고 여긴다. 안토니오스는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설교를 하고 가르치고 그는 다시 사람들이 없는 고독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곳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결국 사람들이 몰려온 곳에 수도원이 세워졌다. 이러한 수도원 운동이 퍼져간 곳은 소아시아 지역의 갑바도기아이다. 소아시아 지역의 수도원들은 4세기에 이르러 시작된다. 특별히 성 바실리오와 같은 이들은 수도원에서 공동의 규칙을 세우며 공동체로 살아가도록 하였다.
이들의 목적은 완전한 덕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완전한 덕으로 나아가는 데있어서 먼저 함께 살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그곳에서 순종과 겸손과 사랑이 나오기 때문이다. 둘째 절제와 금욕의 삶을 살았다. 절제와 금욕은 자기의 욕망을 제거하며 의지를 제거하는 데 가장 필요한 훈련이기 때문이었다. 마지막으로 노동과 기도를 중시했다. 기도는 자기의 영혼을 돌보는 것이요 노동은 영적인 삶의 기본적인 뼈대였다.
완덕에 대한 교부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어떤 자가 압바 안토니오스에게 이렇게 질문했다.
'무엇을 지켜야 내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수 있는지요?' 그러자 원로는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그대에게 명하는 것을 지키시오. 그대가 어디로 가든 항상 그대 눈앞에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야 하오. 거룩한 성경이 증거하는 바를 지키시오 그대가 어디에서 살든지 경박하게 옮겨다니지 마시오 이 세가지를 지키시오 그러면 그대는 구원받을 것이오.'
(기독교고전총서,'사막교부들의 금언집 중에서)
완덕이라함은 사실 그리스도인들에게 부담되는 말이다. 행위로 우리는 완전함에 이를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믿음과 삶의 분리가 이뤄졌다.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었기 때문에 구원의 확실함이 행위의 신학을 터부시 하는 경향이 생겨났다. 물론 완덕은 이상이다. 완덕은 이룰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완덕을 포기할수 없다. 그리스도인은 믿음과 삶이 하나가 되는 삶이다. 그리스도를 본받아 겸손과 사랑과 순종을 살아야 한다.
그래서 완덕을 향해 그들은 동굴로 들어갔다. 그리고 절제하며 금욕을 하였다. 오늘날 우리는 이 완덕을 이루는 삶을 어디에서 가능할까? 이제 교회의 시대가 오면서 수도원의 삶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수도원이라하면 신비주의, 금욕과 절제의 삶, 이분법적 신앙으로 생각한다. 고대 교부들과 수도자들에겐 사람들이 모였다. 결국 수도자들이 있는 곳엔 수도원이 생겼고 성경을 가르치기 시작하자 그곳에 성경학교 즉 대학이 생긴다. 마을이 형성된다.
결국 수도자들은 도시 한복판의 수도원을 세우게 된다. 엄격한 수도 규칙을 세우고 일상생활속에서 수도가 가능하게 끔한다. 이러한 도시 수도원은 일상속에서 영적인 삶을 유지하기 위해 좋은 도움이 되었지만 아쉽게도 종교의 세속화를 가속시켰다. 끊임없는 수도원 개혁운동의 단초를 제공하였다.
복음에 헌신하겠다고 전적으로 복음을 위해 바치겠다고 하는 이들은 광야의 수도원이 아니라 신학교에 보내져 신학교육을 받게 되었다. 성직이 생겼고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다.
광야와 동굴에서 절제와 금욕을 훈련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위해 발버둥 쳤다면 이제는 일상생활 속에서 그 음성을 듣기위해서 발버둥쳐야한다.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 손에 스마트 폰이 있고 노트북이 있는 세상, 귀에 시끄러운 노래소리와 정신없이 돌아가는 영상들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
조용한 파샤바 계곡의 암석들 사이에서 잠깐 하늘을 보며 서있다. 고독과 외로움을 느낄 겨를없는 이시대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갈수 있을까?
교회 라는 공동체로 모였지만 함께 순종과 겸손과 사랑을 나누기 보다 이기심과 욕심이 가득하다. 합리와 과학이 하나님의 능력의 자리를 빼앗아 버렸다.
이 대 자연의 장엄함 앞에서 인간은 한 낫 먼지에 불과했다. 그래 맞다 인간은 먼지다. 수도자들의 계곡에서 내가 먼지였음을 깨닫는다. 단순함은 내가 먼지로 지어진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수도사들은 모래먼지 속으로 들어가고 바위의 먼지속으로 들어갔다. 먼지와 같은 존재라는 것을 빨리 깨닫는 위치로 말이다.
한 원로에게 물었다.
"어떻게 해야 수도자가 됩니까?" 그가 대답하였다.
"내 견해로는 홀로 자기 자신을 대면해야 수도자가 될수 있다네." 또 한 원로에게 물었다.
"내가 사막을 돌아 다닐때에 왜 두려움을 느끼게 됩니까?"
그가 대답했다. "그대가 아직 살아있기 때문이라네" (기독교 고전총서, 사막교부들의 금언집) 수도란 모름지기 자신을 독대하는 일이다. 그리고 자아를 죽이는 일이다.
먼지로 되돌아가는 작업이다. 그래서 두려움 조차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들은 피했다. 제한된 영역으로 나아갔다. 하나님을 찾고 연결될 만한 곳이라면 어디든 나아갔다.
하나님께 모든 촉각을 세우고 그분과 연합되는 일에 집중하는 삶을 사는 것 그것이 바로 수도일것이다.
지금 우리는 그런 곳을 찾아야 한다.
로완 윌리엄스의 말대로 하나님과 연결되고 숨쉴만한 공간을 찾는 일에 전념하는 일, 이것이 지금 이곳에서 수도의 삶이며 지금 우리에게 요구 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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