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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한 기대 (삶)/책과 삶

『하나님나라의 비밀』을 읽고

by 바울과 함께 걸었네 2016. 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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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 Mcknight. 김광남역. "Kingdom Conspiracy."

『하나님나라의 비밀』. 새물결플러스.2016.

 

 

하나님나라는 무엇일까? 저자는 먼저 정장바지 스타일의 사람들의 하나님나라 개념과 스키니진 스타일의 사람들의 하나님나라 개념을 나눈다. 이것은 저자가 현대의 상황에서 과연 하나님나라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지를 고찰하기 위한 시도라고 본다.

 

스키니진스타일의 사람들에게 하나님나라는 사회정의와의 연결속에서 찾는다. 하나님나라는 개인구원에서 흘러나오는 사회정의및 사회변혁과 관련이있다고 믿는다.(22) 또한 정장바지의 스타일의 사람들에게 하나님나라는 구속적 통치를 가르키며 예수의 삶과 사역을 통해서 인간의 역사안으로 들어왔음을 밝힌다.(37)  

 

저자는 하나님나라의 개념을 밝히려는 시도안에서 두 상황에서 긴장을 최소화 하려는 시도를 할것이라고 예상된다. 더불어 그는 정장바지의 스타일의 보수적인 그룹들이 구속적 역학의 개념을 빌어 하나님나라의 사역은 문화를 변혁하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칼 헨리 와 엔디크라우치, 미로슬라브 볼프에 이르는 변혁자 유형의 그리스도를 통해 문화의 변화를 통한 행동주의 유형보다는 오직 그리스도인의 소명을 통하여 신실한 현존이라는 전략을 통하여 하향식 변화를 제안한다. 이들은 문화를 변혁하는 것이 하나님나라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들의 행동은 자칫 권력을 추구하는 일에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행동한다는 데서 위험요소가 있다고 평가한다.

 

더 나아가 이들은 문화라는 단어를 세상이라는 단어로 대체하고 있는 듯하다고 판단한다. 그런의미에서 문화는 구속의 대상이라고 여긴다. 그런데 저자는 세상을 살기좋은 곳으로 만들려는 시도를 세속적 방식이라고 한다. 좀더 책을 읽어봐야 알겠지만, 저자는 결국 교회가 교회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교회가 되는 것은 세상이 그자신을 세상으로 이해하도록 돕는 것이며 교회가 할수 있는 교회의 사명을 회복함을 통해 가능하다고 본다.

 

즉 본 서는 사회적 행동과 구속적 통치사이에서 하나님나라를 어떻게 정의하며 성경적인 차원에서 풀어나갈 것인지 기대를 갖고 시작하는 것이 책을 맥락을 잃지않고 읽는 방식이라고 여겨진다.

 

 

철저히 저자는 하나님나라와 교회를 동일선상에 놓고 그의 논지를 풀어간다.

하나님나라의 사명이 곧 교회의 사명이라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다스리심과

종말론적 가치 아래에 있는 성도들을 말하는 것이다. 그는 제도적 교회를 말하고 있지는 않는 것같다.

 

교회는 현재 성취되어 있는 하나님나라 안에 존재하는 그 무엇이다. 교회와 하나님나라 사이의 유사한 연관성을 그는 살피려는 시도를 곳곳에서 하고 있다.

 

"하나님의 구속은 사람들을 그리스도 안으로 이끌어 그들이 그리스도안에 머물고 아들의 나라 안으로 들어갈수 있게 하는 것이라 여겨야한다. 또한 이런 것들을 교회의 변형으로 여겨야 한다." (163)

 

그렇다면 질문이 생긴다.

 

예수께서 이땅에 오셨을때 과연 교회를 중심으로 움직이셨나 싶다.

예수님은 철저히 세상에 오셔서 죄인을 부르러 오셨으며 그분이 거한 곳이 하나님나라가 되게 하셨던 분이지 교회를 만드신 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예수님께서는 교회를 세우신 분이 아니라 사람을 세우신 분이며 제자들을 통해 교회를 세우신 분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나라가 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통치안으로 들어오는 즉 교회로 들어오는 삶안에서 가능하다고 저자는 보고 있는데, 교회안으로 들어온다는 말자체가 궁금하다. 들어온다.

또는 머문다. 들어간다. 그렇다면 오늘날 교회인 하나님나라로 들어오는 게 되는 것이 무엇일까

교회에 등록? 복음을 듣고 하는 영접기도? 교리 문답이후에 받는 세례? 주일예배를 드리고 지키는 것?

 

저자는 163페이지에 우리는 나라인 동시에 교회라고 밝힌다. 결국 교회 밖에는 하나님나라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 교회는 이 방인들을 위해 확대된 이스라엘로서 하나님의 백성을 묘사하는 사회적 정치적 용어들임을 밝힌다. 교회라는 용어는 세상나라 혹은 로마의 권세와 맞서고 있는 공동체의 범위로 한정된다고 말하는데, 그렇다면 하나님나라의 확장 내지는 확대라는 개념을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좋을까? 세상 권세에 놓여진 혹은 이방인들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하나님나라의 확장의 개념일까? 하나님나라로 들어오게 되는 것이 무엇일까? 

 

저자는 끊임없이 세상 나라를 향해 무언가 변혁시키려하는 시도나  세상을 변화 시키려는 것에 대해서 무의미한 것 내지는 불가능한 것으로 여긴다. 특별히 선을 행함이나 사회 정의내지는 사회 복음에 대해서는 조금더 이해하기 어려운 다소 난해하게 논지를 풀어나간다. 

 

즉 사회적 행동주의가 교회를 밀어내거나 대체할때 그것은 우리의 충성이 더이상 에수와 하나님나라가 아니라 세상을 향하도록 만드는 일종의 우상숭배가 되며 하나님나라의 일이 백성들을 통하여 세상속으로 흘러갈때 그것이 선한일이다. 그러나 선한일은 하나님나라의 사명이라고 할수 없다는 말을 한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하나님나라의 사명은 무엇인가? 왜 그는 끊임없이 하나님나라의 사명을 교회의 사명안에 가두려고 하는 것일까?    

 

To be continue.....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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