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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 성지순례 기행

[튀르키예 여행/ 성지순례 여행]사데,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by 바울과 함께 걸었네 2019. 7.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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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내려온다. 비잔틴 시기에 건축한 사데교회가 보인다. 그 옆에 높은기둥들로 이루어진 아데미 신전도 보인다.
사데는 페르시아 제국의 총독령 수도로 번성하게 된다. 이 지역에서 동서 무역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부유한 도시로서 명성을 되찾는 듯했다. 그러나 BC 17년 아나톨리아 서부 지역에서 일어난 지진으로 도시가 파괴된다. 티베리우스(Tiberius) 황제의 원조로 재건된다.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사실 죽은 자로다.
짧고도 강력한 이 한마디의 구절 속에 영적인 메시지가 담겨있는 것 같다.
산을 내려오면서 그 영적 의미들을 곱씹는다.

 이 큰 신전옆에 초라하고 작은 교회가 있다. 

요한계시록 3:1~6까지는 사데교회에 편지한 내용이다. 반복되는 단어가 있다. '이름'이다.
3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5절, '그 이름'을 생명 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살았다 하는 이름'은 무엇일까? '생명 책에서 지우지 아니하고 천사들앞에서 시인할 그 이름'은 무엇일까?
그것은 그 이름에 합당하게 살아온 사람들을 말하는 것 아닐까? 살았다 하는 이름은 그리스도인 이 아닐까? 그리스도인은 살아있는 이름이다. 왜냐하면 생명책에 기록될 이름이기 때문이다.
사데 교회가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다는 것은 그들이 스스로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받았다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그들은 그리스도인답게 살지 못했다. 행위의 온전함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타락했다.
그러니 분명 살았다 하는 이름인 그리스도인이라 불렸지만 그들의 실상은 죽은 자들이다.
우리 주님은 명하신다 행위를 온전하게 하라. 회개하라. 흰 옷을 입어라.
그리하면 생명 책에 이름을, 아버지와 천사들 앞에서 그 이름을 시인하리라.
나는 실상 살았는가 죽었는가? 무엇을 의지하며 사는 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에 맞게 살고 있는가?

하늘 높은줄 모르고 솟아있는 신전의 기둥들 마치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 같다. 


멀리 있는 교회 터를 바라본다. 비잔틴 시대에 세워진 교회가 눈에 보인다.
교회 옆은 아데미 신전의 기둥들이 있다. 하늘 높은줄 모르고 솟아있는 신전의 기둥들 마치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 같다. 다산과 풍요의 신, 아데미 신전 옆에 있는 교회 말이다.
풍요의 신전은 높은 기둥의 끝으로 우리의 눈을 향하게 한다.
풍요라 함은 저 끝에 도달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아니 풍요라함은 쾌락이고 즐기는 것이라고 말이다.
하루를 살아도 행복하게 살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 신전 옆에 교회가 있다.
세상의 주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가지며 살고있다.
우리는 세상을 떠나서 살 수 없고, 세상을 등지며 살도록 부르심 받은 사람들 아니다.
세상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 그렇다고 세상과 동화되어 살라는 것 아니다.
거룩하게 부름을 받았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합당하게 살라고 부르셨다.
신전 옆에 있는 사데교회가 우리의 삶이 어떠해야 할지 말을 건네는 것 같다.

교회 옆에 세워진 신전의 기둥 높이와 터가 이 신전의 크기가 얼마나 컸을지 가늠이 된다.
높이가 거의 6미터 정도는 돼 보이는 큰 기둥 두 개가 있다. 기둥은 이오니아 양식 기둥으로 되어있다.
그리스의 기둥은 크게 세 가지 양식으로 분류할 수 있다.
간결함과 묵직함이 특징인 도리아 양식 기둥이 있다. 배흘림 양식의 기둥으로서 짧고 굵은 게 특징이다.
그리고 코린토 양식이 있다. 아칸서스 잎을 새겨 넣었는데, 마치 아칸서스 잎이 바람에 휘날리는 모습을 새겨 넣은 듯 화려하다. 마지막으로 오늘 우리가 본 이오니아 양식이다. 이오니아 양식은 길고 가느다란 기둥이 특징이다. 사람들은 가느다란 기둥을 보며 가냘픈 여성의 모습을 떠올렸다.
아데미 신전의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다.

사대교회 내부, 작고 아담한 교회였다.

이 큰 신전 옆에 초라하고 작은 교회가 있다.
순례객들이 교회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소동이 일어났다. 무슨 일인가 가보니 입구에 뱀 한 마리가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 물리거나 질색하여 기절? 하는 일은 없었다. 군 출신 집사님께서 나뭇가지로 살며시 들어 반대편으로 던져버렸다. 이럴때 갑자기 '사데교회의 사가 뱀 사(巳) 가 아닌가' 하며 생각한다.
뱀은 이곳에 살면서 순례객들을 반갑게 맞이하러 나온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쫓아낸 꼴이다.
이런 생각이나 하고 나도 아재는 아재다. 어째든 뱀을 멀리 던져내고 소동은 종료되었다.
작은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아담한 벽돌로 된 교회였다.

사데교회터 근처에 있는 안내판.

이 교회는 4세기경 테오도시오스 황제에 명령에 의해 건립된 교회였다.
후대에 아데미신전을 발견하면서 이 교회도 발굴된 것으로 여겨진다. 결국 1911년쯤 세상에 드러났다.
교회는 두 공간으로 만들어졌다. 예배드리는 공간과 더불어 문을 통하여 밖으로 나가면 세 개의 창문이 있는 또 다른 공간이 나온다. 개인적인 추측으로는 성만찬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예배자들이 모여 예배를 하고 세례 받은 이들은 그곳으로 모여 성찬을 나누는 것이다. 아니면 주방과 같은 공간으로 함께 식사를 하며 교제를 나누는 공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사데교회는 아닐지라도, 우리는 이 교회가 세상에 발견되면서 네가 살았다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자로다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권면을 쉽게 지나치지 않는다.

*참고도서
헤로도토스,역사,천병희 옮김.(도서출판 숲,2009)

http://m.yes24.com/Goods/Detail/93720745

 

바울과 함께 걸었네 - YES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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