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초대교회 성지순례 기행

[튀르키예 여행/ 성지순례 여행] 비시디아 안디옥, 결단의 장소

by 바울과 함께 걸었네 2019. 6. 28.
728x90
반응형

데린쿠유에서 나와 순례팀은 코니아(Konya,꼬냐)로 이동하였다. 
코니아에서 하루를 보내고 이튿날 얄바츠(Yalvac,얄바츠)으로 향한다. 
코니아는 굉장히 보수적인 무슬림들이 거주하고 있는 곳이며 이곳 무슬림들은 영적이며 신비적인 것을 추구하는 성향으로 알려져있다. 

코니아는 성경상으로 이고니온으로 얄바츠는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알려져 있다. 
성경에서 이고니온은 총 6차례 등장한다. (행 13:51; 14:1,19,21; 16:2 딤후3:11) 그리고 이고니온은 비시디아 안디옥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 일단 선교팀은 이고니온(코냐)에서 비시디아 안디옥(얄바츠)으로 간다. 그러나 사실 바울은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이고니온으로 갔다. 

얄바츠의 비시디아 안디옥 교회터(Antiokheia Kazisi Acik Hava Muzei)로 가는 길에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비가올것같은 분위기였다. 그러나 뜨거운 태양 볕이 내리 쬐는 것보다 바람도 불고 선선한 것이 좋은 것 같다. 
물론 그곳은 돌들 뿐이었다. 비시디아 안디옥 교회터도 분명 말이 유적이지 무너진 돌들 일것이다. 누군가 그랬다. 
터키 그리스 여행은 돌만 보고 오는 여행이라고 말이다. 이렇게 돌들이 많은 도시는 본적이 없다고 말이다. 
심지어 순례팀 터키여행 가이드 이름마저 임석(林石)이었다. 말하자면 돌 만 보다 온 셈이다. 
돌 들 밖에 없는 옛 도시에 무엇하러 가는 것일까? 

동기 목사에게 터키 순례여행 간다고 자랑을 했다. 그러자 다 무너진 교회 터들을 보러 뭐하러 가냐고 한다.
이렇게 대답 했다. 
"다 무너진 교회 터를 보러 가는거에요. 가서 중요한 건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고 오려고..."
맞다. 우리는 다 무너진 옛  교회 터들을 보면서 허무함만 느끼다 오려고 가는 것 아니다. 
그 무너진 건물을 보며 하나님께서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셨을까를 깨닫고 오기위해 이곳으로 온것이다. 
결국 하나님은 건물이 아니라 이땅에 사람을 남기셨다. 
사람안에 하나님나라를 세우셨고 그 나라의 확장은 결국 건물 이 아니라 
겨자씨 같고 누룩같은 보잘것 없는 한 사람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깨닫기 원하셨다. 
우리의 여행은 하나님께서 무엇을 중요시 여기셨는지를 깨닫기 위해서 떠난 여행이다.   

많은 돌들을 구경하며 걸어 올라갔다. 아직 정리가 되지 않았지만, 이곳이 당시 거대한 도시였음을 추측하게 만드는 유적들이 좌우로 많았다. 

 

얄바츠의 비시디아 안디옥 교회터(Antiokheia Kazisi Acik Hava Muzei)로 가는 길@함신주

 

이 얄바츠 지역은 남쪽 갈라디아에 속한 곳이다. 이곳에 비잔틴 로마 제국시대의 유적들이 있다. 
비시디아 안디옥은 알렉산더 대왕 사후(死後) 셀레우코스 1세 니카토르(Σέλευκος Νικάτωρ)가 BC 301년 세운 도시이다. 그는 니카토르라는 칭호를 사용했는데 승리자 라는 뜻을 지닌다. 셀레우코스는 자신의 아버지 안티오코스의 이름을 따서 이곳을 안티옥(또는 안디오케이아)라고 명명하였다. 그리고 BC 25년 아우구스투스(IMPERATOR CÆSAR DIVI FILIVS AVGVSTVS, BC 63~AD 14) 황제의 시대에 이르러 이곳은 로마의 식민지로 퇴역한 로마 군인들이 거주하는 아주 번성한 로마의 도시가 된다. 명실상부 황제의 도시요 로마의 도시가 된다.  

지금 이곳은 한적한 시골 마을도시라 찾는 이도 없는 곳이라 맘에들었다. 그런데 유적들을 쭈욱 한눈에 둘러보면 이곳이 고대 로마의 큰 도시였다는 것을 짐작 할수 있다. 이 지역의 높은 곳, 높은 곳이라 봤자 오르막길 언덕의 중앙을 말하는데, 그곳에 아우구스투스의 신전터가 있다. 규모로 볼 때 작지 않은 신전터이다. 황제의 신전터가 있다는 것은 이 지역이 지금처럼 시골마을은 아니었을 것으로 추측이 된다. 신전터를 향해 올라가는 길목에 비잔틴 시대의 야외 공연장과 교회터가 있다. 로마인들은 도시를 세울때 목욕탕과 야외공연장을 만들었다. 목욕탕을 통해서 당시 도시 건설과 상수도 구조는 어땠는지를 살펴볼수 있다. 그리고 야외공연장을 통해서 당시 문화와 관습이 어땠는지를 살펴볼수 있다. 이곳은 말그대로 도시였다. 상점들이 활발하게 움직였을 것이다. 지금은 한적한 시골도시이지만 말이다. 

아우구스투스 신전터에서 내려와 아래쪽으로 둘레길을 따라가면 바울 기념교회터가 나온다.  

 

비시디아 안디옥 바울 기념 교회터 @함신주

 


이 교회터는 바울 기념교회터로서 성경에 보면 바나바가 비시디아에서 안식일에 회당을 찾아 갔는데 그 회당자리로 추정되는 곳이다. 오늘은 이곳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사도행전 11장은 베드로가 욥바에 살고 있는 이방인 백부장 고넬료를 만나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사건은 사실 굉장히 중요하다. 이방인 선교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이 세워진 사건이다. 당시 예루살렘 교회는 할례받은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다수를 차지했다. 그런데 베드로가 이 고넬료라하는 이방인과 함께 교제하고 식사한 것에 대해서 교회가 비난하기 시작한 것이다. 심지어 베드로가 고넬료에게 세례까지 주었다. 베드로는 그 일을 상세하게 예루살렘교인들에게 전한다. 성령께서 고넬료와 그 가정에 임하신 사건도 이야기한다. 그 이야기를 들은 교인들은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도 생명에 이르는 회개의 기회를 주신것이라고 여기기 시작했다. 베드로는 탁월한 설교자였다. 얼마나 상황묘사를 잘했을지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은 교인들이 얼마나 은혜를 받았을지 상상해본다. 이후 수많은 이방인들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역사를 듣게 된다. 이 이야기를 들은 교인들은 즉시 행동으로 옮긴다. 

바나바를 안디옥으로 보냈다. 수리아의 안디옥이다. 바나바는 하나님의 은혜로 사람들이 믿게 된것을 보고 기뻐하였다. 모든 사람에게 믿음을 견고하게 가질 것을 권한다. 많은 이들이 얼마나 큰 격려와 위로를 받았을지 상상이 된다. 그 후 바나바는 사울을 찾으러 다소로 간다. 그리고 바나바는 사울을 데리고 안디옥으로 왔다. 그곳에서 함께 1년간 힘써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친다. 그곳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을 듣게 된다. 말하자면 '예수쟁이'다.  

예수쟁이하니까 생각이 나는 이야기가 있다. 안디옥 지역에서 불렸던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은 사실 비아냥 거리는 말이었다. 또한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은 우리가 우리를 스스로 일컬어 했던 말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붙여준 별칭이었다. 
우리나라 초기 기독교 역사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1896년부터 소왈론(William L. Swallen)선교사는 함경도 함흥에서 함흥읍내교회를 설립하고 사역을 한다. 신창희씨 부인이 예수를 영접한 이후로 함흥읍내교회는 1897년에 이르러 12명으로 늘어난다.  그러자 함흥감사가 외국 종교의 탈을 쓴 예수 교인들을 체포하여 처벌하라는 명령을 내리게 된다. 그리고 배교를 명한다. 그러나 교인들은 감사의 명을 거부한다. 사람들은 예수쟁이들을 험담하기 시작했다. 교인들은 예수쟁이라고 욕하는 말을 아주 기쁘게 들었다. 이후 사람들이 길에서 예수교인을 보면 "예수온다." "예수 지나간다."라고 말했다. 
사람들의 눈에는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로 보였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들의 삶이 온통 예수로 충만했기 때문이었을까? 최권능 목사님 처럼 입만 열면 '예수천당'을 외쳤기 때문이었을까? 

 

 소왈론(William L. Swallen)선교사의 글, 우리의 삶속에 예수가 보이고, 예수의 삶이 보인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미지 출처: 기독교윤리 실천운동  https://cemk.org/8062/ ) 

 


여튼 마치 안디옥교회에서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을 기쁘게 들었던 것처럼 우리 믿음의 선조들도 '예수쟁이'라는 말을 기쁘게 들었다. 우리의 삶속에 예수가 보이고, 예수의 삶이 보인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후 바울과 바나바는 선교팀으로서 파송을 받는다. 사도행전 11장에서 글라우디오황제 때 큰 흉년이 든다. 안디옥교회 교인들은 각자 힘이 닿는대로 헌금을 모아 예루살렘교회에 보내기로 결의하고 바나바와 바울을 선택하여 예루살렘교회 장로들에게 보냈다. 예루살렘교회는 흉년으로 경제적 어려움이 그리고 베드로가 갇히고 야고보가 순교하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박해로 인한 불안함이 가중되는 시점이었다.  이때 바울과 바나바가 예루살렘에 방문하여 위로를 하고 마가 요한을 데리고 다시 안디옥으로 돌아오면서 바울은 확실히 자리매김을 하게 된다. 결국 사도행전 13장에 안디옥교회는 바울과 바나바에게 안수하고 파송하게 된다. 이들은 실루기아로 내려가 배를 타고 키프리스(구브로)로 건너간다. 

바울의 일행은 온 섬을 두루 다니다가 살라미에 이르러 바예수라고 하는 유대 거짓 선지자를 만난다. 그와 함께 있던 서기오 바울이라하는 총독이 함께 바울을 초대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한다. 이때 엘루마라고 하는 마술사가 총독 서기오 바울이 예수를 믿으려하는 것을 방해한다. 바울이 그를 꾸짖으며 맹인이 될것을 선포하자 그가 주변을 더듬으며 인도할자를 찾는다. 이를 본 총독이 예수를 믿게 된다. 
바울 일행은 살라미에서 배를 타고 밤빌리아의 버가로 갔고 이때 마가 요한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간다. 마가 요한은 바나바의 조카였다. 마가 요한의 귀향을 통해 몇 가지 추측 중 하나는 그가 부유한 귀한 집 아들로서 고된 선교 여행에 지쳐 집으로 가고자 했다는 것이다. 특히 마가의 다락방으로 알려진 오순절 성령의 역사가 일어난 장소는 120명이나 되는 이들이 모여 기도할수 있는 다용도 실이었다. 그가 부유한 아들이었다는 것을 입증해 주는 대목이다. 그는 고생한번 안해본 귀한 집 자녀였을 것이다. 그러니 쉽지 않은 선교여정에 말하자면 도망을 간것이다. 결국 후에 이일로 바나바와 바울은 크게 싸우고 헤어지는 일이 일어난다(행15:37~39). 훗날 마가는 로마로 가서 사도 베드로의 수행원으로 섬긴다(벧전5:13). 전승에 따르면 베드로곁에서 그의 설교들을 묶어 복음서를 제작하였는데 그것이 마가복음이다. 
사도바울과 마가는 어떤 관계를 가지게 되었을까? 중간에 중도 하차한 그를 두고 바나바와 싸웠기에 바울은 여전히 마가가 심적으로 미덥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바울과 마가의 행적은 아리스다고와 함께 갇힌 감옥에서 발견된다. (골 4:10; 몬 1:24) 아마 마가는 감옥에서 바울을 아주 잘 섬겼을 것이다. 
그러니 바울은 훗날 디모데에게 남긴 유언에서 이렇게 말한다. 

"누가만 나와함께 있다. 네가 올때 마가를 데리고 오너라 그는 나의 사역에 유익하다...(딤후4:11) 

 

비시디아 안디옥의 회당터에 세워진 바울 기념교회 @사진 함신주

 

바울과 바나바는 마가를 예루살렘으로 보내고 비시디아의 안디옥에 이른다. 이곳에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았다. 
회당장이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은 후 바울과 바나바에게 권면의 말을 부탁한다. 그러자 바울이 일어나 손짓을 하며 설교를 시작한다. 그 유명한 '비시디아 안디옥 설교'다. 
아브라함부터 모세와 출애굽이야기, 선지자들과 다윗의 이야기 그리고 요한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이야기를 전한다. 옛 구약의 말씀들을 토대로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에 관한 말씀을 전한다. 그 말씀이 얼마나 강력했는지 유대인들이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전해달라고 간청을 한다. 
심지어는 유대인들과 유대교에 입교한 이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따르는 일이 일어난다. 
다음 안식일에도 온 성읍이 이 말씀을 듣고자 모였다. 유대인들이 시기가 나서 바울이 말한 것을 반박하고 모독하였다. 
이에 바울과 바나바는 담대하게 이렇게 선포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그것을 버리고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주께서 이같이 우리에게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너로 땅끝까지 구원하리라 하셨으니라"(행 13:46~27)

바울은 유대인들이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자처하였다고 한다. 유대인들에겐 아주 불쾌한 말이었다.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가노라' 이 말씀을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한다. 유대인들은 바울과 바나바를 박해하여 그지역에서 쫓아낸다. 
성경에 보니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두 사람이 그들을 향하여 발의 티끌을 떨어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가거늘.....(행 13:51)"

비시디아 안디옥이 바울의 일생에 중요한 장소가 된다. 왜냐하면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바울과 바나바는 아주 중요한 결단을 하기 때문이다. 발에 티끌을 떨어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가는 결단말이다. 이방인들의 구원을 위한 사도가 되는 결단말이다. 이후 그는 그의 평생을 이방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바친다.

 

비시디아 안디옥 지역 고대 비잔틴제국의 야외 극장터 @ 함신주

 

장소는 기억을 불러 일으킨다. 내 삶을 돌아보건데 나에게도 결단의 장소들이 있다. 처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던 장소, 복음을 위해 살것을 결단하고 신학교로 향해던 장소,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했던 장소 말이다. 비시디아 안디옥의 교회터에서 만감이 교차한다. 사도바울의 위대한 결단의 장소에 서있다니 말이다.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수요예배를 드렸다. 우리 역시 신앙의 여정속에서 믿음의 길을 걷다보면 반드시 믿음의 결단을 해야할 때가 올것이다. 어떤 결단을 해야할까? 사도바울과 같이 티끌을 떨어버리는 담대함이 필요하다.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결단을 해야한다. 그리고 복음과 하나님나라라는 사명을 위한 믿음의 결단을 해야한다. 
결단은 신앙을 살아있게 한다. 실존적인 해석같지만 살아있다는 증거는 결단을 통해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모든 살아있는 존재는 결단을 통해 자신을 입증해낸다. 신앙도 마찬가지다 살아있는 신앙은 결단을 통해 절대자로 나아가고 결단을 통해 성장한다.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시간은 나를 조금 성장하게 한다. 생명력있게 살아가도록 한다.  

 

예배를 인도하기 위해서 비시디아 안디옥의 한 교회터의 돌 강대상에 서보았다.@사진 함신주

 

바울과 바나바는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이고니온으로 향한다. 우리 순례팀은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이고니온으로 향한다. 물론 거꾸로 가는 여정이지만 워낙 비시디아 안디옥의 시간이 감동이 있었다. 예배를 인도하기 위해서 비시디아 안디옥의 한 교회터의 돌 강대상에 서보았다. 찬양중에 멀리 보이는 초원과 만년설로 뒤덮힌 산을 보았다. 발의 먼지를 털어버리고 이고니온으로 향한 바울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예배를 인도하며 바울의 마음을 느껴본다. 

사명을 깨달은자 결단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아가는 자는 그안에 기쁨이 있다. 성령께서 주시는 기쁨말이다. 바울과 바나바는 찬송을 하며 이고니온으로 갔을 것이다.

 

멀리 보이는 비시디안 안디옥 회당터 바울 기념교회, 바울과 바나바는 발에 티끌을 떨어버리고 이고니온으로 향했다. @함신주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