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샤바의 장엄한 광경을 뒤로했다. 자꾸 뒤를 돌아보게 만든다. 눈으로 마음으로 담고 싶어서이다. 다시 내 삶으로 돌아가면 하나님과 긴밀하게 연결되는 삶 하나님의 음성에 집중할만한 곳을 찾아 살리라 하는 결단을 내며 버스에 올라탄다. 데린쿠유로 향한다.
데린쿠유는 2만여명이 살수 있는 정도의 지하도시다. 성인 한 명이 겨우 들어갈수 있을 정도의 통로로 되어있다. 놀랍게도 약 85미터의 깊이로 내려갈수 있으며 마굿간을 비롯하여 창고, 곡식저장고, 식당과 학교 그리고 예배당까지 있었다. 특별히 도시 중앙에 지상으로 이어지는 환기구가 설치되어 있어 공기가 유입되고 나갈수 있도록 하였다.
순례팀을 따라 통로로 내려가는 데 한 외국인이 아래에서 올라오다가 우리를 만났다. 한국인들의 무리가 내려오니 외국인은 잠깐 통로 중간 좁은 틈에 피신했다. 우리가 다 내려오면 올라가려는 배려였던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사람들이 계속 내려오는 것을 느껴 조금 당황했는지 나를 보더니 위에 내려올사람이 아직 많냐고 묻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순례팀의 말미에 있었던 터라, '우리는 마지막이다 그런데 뒤에 또 다른 그룹이 내려오고있다.'고 알려줬다. 그 외국인의 표정에서 당혹스러움을 감출수가 없었다. 그 외국인은 입구까지 잘 올라갔을까? 하여간 좁은 통로를 내려가는 것이 여간 힘든것이 아니었다. 허리에 통증도 왔다.
나와 같이 거구의 몸집은 이곳에서 살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내려가는 길에 벽에 손을 대어봤다. 우연히 십자가가 만져졌다. 왜 여기에 십자가가 있는 것일까? 옛 성도들이 좁은 통로에서 왕래하던중 통로에서 사람들의 행렬을 만나 다 내려올 동안 기다리기도 뭐하고 해서 잠깐 기도를 하며 벽에 십자가 성호를 그엇는지 모르겠다. 아니면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의 고백으로 이곳에 드나들때 인자와 자비를 베푸신 하나님께 감사해서 그어 놓은 표시일지도 모르겠다. 혹은 후대에 이곳에 순례객으로 방문을 해서 데린쿠유에 살던 신앙의 선배들의 모습에 은혜를 받아 그어 놓은 고백의 표시일지도 모르겠다.
사도바울은 십자가는 미련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겐 능력이라고 역설한다. 십자가는 세상 사람들에게 거리끼는 것이 분명하다. 십자가를 믿는 자마다 죽임을 당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데린쿠유와 같은 곳에서는 능력이 되어 살아갈 토대와 힘을 제공한다.
비록 어두운 감옥과 같은 곳에 발을 딛고 살아가지만 시선은 하늘을 보게 하는 것이 십자가이다.
그래서 십자가는 능력이 된다.
데린쿠유는 농장에 사는 한 어린아이가 닭을 좇다가 우연히 발견한 지하 도시라고 한다. 데린쿠유의 건설은 대체로 로마 비잔틴 제국 이전부터 로마의 대대적인 박해를 피해 그리스도인들이 숨어있었던 시기로 알려져 있다. 11세기 초 오스만 투르크에 의해 기독교는 이슬람에 박해를 받게 된다. 역사적으로도 여러 정황으로도 그리스도인들의 주거지요 은신처로 이용되었다. 그곳은 신앙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 녹아진 곳이며, 공동체를 이루며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주는 곳이다.
몸을 구푸려 좁은 통로를 내려간다. 그래도 암석으로 된 동굴이라 시원하다. 한 30여분 정도 내려가다보니 커다란 공간이 나타났다. 독특한 공간이다. 가운데 큰 통로가 있고 좌우로 방이 하나씩 있는 공간이다. 어느 누가봐도 그곳은 십자가형태의 예배당이었다. 데린쿠유의 가장 깊은 곳에 예배당이 있었다.
예배당으로 오는 길은 좁은 통로를 이용해서 가장 깊숙한 곳으로 와야한다. 평소 우리는 예배당으로 가기 위해서는 넓은 도로로 차를 타고 오거나 걸어온다. 주차가 잘되어 있는 예배당을 선호한다. 집근처 교회오기 편한 곳으로 교회를 정한다. 앉아서 조는 둥 마는 둥 찬양하고 말씀듣고 헌금하고 축도 받고 오면 그것으로 한주간 예배드린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사실 순교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죽어야 살고 부활한다. 그리스도인들의 모든 예배는 사실상 현실을 넘어 비현실적 삶이다. 하나님나라말이다. 예배에서 하나님나라를 맛본다. 예배당을 들어올때는 죽음을 경험하며 나갈땐 부활의 능력을 입고 나간다. 가장 예배다운 예배는 데린쿠유의 지하 예배당에서 일것이라 믿는다. 예배 드리러 예배당으로 가기 위해서는 깊은 곳으로 내려가야한다. 더 깊은 곳으로 좁은 통로로 내려간다. 땅 속 깊은곳으로 말이다. 죽음을 경험한다.
그리고 예배를 드리며 천상을 맛본다. 아이러니하게도 땅속 깊은 곳에서 하나님나라를 맛본다. 그리고 부활의 능력을 입는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와 영원히 있을지어다." 축도를 받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계심을 깊이 느끼며 다시 좁은 동굴 밖으로 향해 올라간다. 일상을 살아간다.
이것이 성도들의 예배였다. 우리의 예배는 어떤가 고민해 본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갈 동력을 과연 어디에서 얻는가?
순례팀들과 이 조용한 곳에서 찬양을 불렀다. 찬송가 336장이다.
'환난과 핍박중에도 성도는 신앙지켰네
이신앙 생각할때에 기쁨이 충만하도다
성도의 신앙 따라서 죽도록 충성하겠네'
예배당에서 함께 침묵으로 기도하며 신앙의 결단을 하였다. 그곳에서 조금 올라왔다. 학교가 있다고하여 그곳으로 향했다. 이 지하도시에 학교라니....
신학교나 성경학교였을 것으로 추정하는 공간이다. 인간은 역사를 통해 유산을 물려줘야할 의무를 가지는 존재들이다. 그것은 가르침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인간은 끊임없이 후손들에게 가르친다. 유산을 물려주기도 한다. 종족을 남기기 위해 노력을 다한다. 이런 지하도시에 학교가 존재한다는 것이 흥미롭다. 그들은 성경을 가르쳤을 것이고 역사를 가르쳤을 것이다. 나는 누구며 왜 우리는 여기에 있는지를 그들을 가르쳤다. 기억이야 말로 가장 무서운 무기라하였다.
역사는 가장 무서운 무기다. 가르치는 것은 중요하다. 우리의 선배들도 일제의 침략 속에서 가장 큰 과제로 삼았던 것은 후학을 양성하는 것이요 기억을 물려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교회에서 민족의 얼인 한글을 가르치고 역사를 가르쳤다. 학교에서 민족의 정체성을 가르쳤다.
학교 공간에서 나와 다시 그 좁은 통로로 올라갔다. 기다리고 올라가고 를 반복해서 드디어 입구로 나갔다.
밝은 빛을 보자 빛의 감사함이 저절로 느껴졌다. 빛은 그냥 감사한 것이다.
어두운 공간에서 빛을 본 우리는 행복했다. 그러나 마냥 행복하지는 않았다. 세상이 보였기때문이다. 지하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린 성도들은 올라오자마자 빛으로 인해 보이는 세상을 어떻게 바라봤을까? 마치 우리가 예배를 드리고 예배당 문이 열리며 세상을 바라볼때, 수련회에서 은혜를 깊이 받고 이제 믿음을 살아야겠다고 결단하며 집으로 가서 초인종을 누르고 집에 들어갔을때....그 때 느꼈을 마음과 같았다. 지하도시에서 나와 빛 가운데 내가 바라본 세상은 무거움을 안겨줬다. 분명 세상은 녹록치 않고 두려움 가득한 곳이지만, 영원히 함께 하실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살 맛나는 곳이 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와 영원히 있을지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