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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한 기대 (삶)/신뢰의 길

팬데믹(pandemic; 전염병의 대유행) 공포사회

by 바울과 함께 걸었네 2020.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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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우리사회에 미친 영향은 무엇일까? 
올해 초 중국 우한시로부터 시작된 코로나19는 점차 세계적인 문제로 넘어가고 있다.  이미 세계보건기구 (WHO)는 전염병의 위험도에 따라 전염병 경보단계를 1단계에서 6단계까지 나누는데 최고 경고 등급인 6단계를 ‘팬데믹(pandemic; 전염병의 대유행)’이라 한다. 인간 역사이래 가장 대표적인 팬데믹은 14세기 중세 유럽을 공포로 들끓게 하였던 흑사병과 1900년초 스페인독감이었다. 
전문가들은 이제 코로나 바이러스의 종식은 올해안에 끝나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대한 예방의학회 기모란교수 역시 올해안에 끝나지 않을 가능성을 짚었다. 

"올해 안에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지금까지 두 번의 팬데믹(pandemic·세계적 대유행)은 홍콩독감과 신종 플루 등 인플루엔자 팬데믹이었다. 동시에 시작해서 동시에 끝났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은 도미노와 같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코로나19 유행이) 끝난다고 하더라도 끝난 게 아니다. 도미노처럼 다른 나라에서 돌다가 다시 우리나라로 돌아올 수 있다." 
(대한예방의학회 기모란교수 오마이뉴스3월24일자 검색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624090&CMPT_CD=P0010&utm_source=naver&utm_medium=newsearch&utm_campaign=naver_news)

코로나19 유행이 끝나더래도 끝난 것이 아니라고 진단한다. 동의가 된다. 
독감을 앓듯이 더 새로운 변종 성격의 바이러스는 끊임없이 우리의 삶에 엄습할 것이다. 
어째든 한정된 지역을 넘어 세계로 뻗어간 이 코로나 바이러스는 우리의 소중한 일상을 빼앗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상을 살아가도록 만들었다. 마스크를 사기위해서 약국에 줄을 서야했다. 사람들과 비대면 접촉을 위해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해야 했다. 확진자들의 동선을 지켜보며 위기감을 가지거나 안도해야했다. 
이런 일들이 지금은 장기화 되면서 점차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상들이 새로운 일상으로 바뀌게 되었다. 
코로나19가 우리의 삶에 많은 부분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 영향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1) 공포사회

올해 7월 올림픽이라는 전세계적인 축제가 개최된다. 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내년으로 연기될 것이 잠정 결정이 난 것같다. 올림픽은 말그대로 전세계적인 축제이다.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1988년 올림픽이 계최된이후로 세계화는 가속되었다. 이를 지구촌이라고 불리며 마치 세계 여러 나라를 구석구석을 안방드나들듯이 하였다. 
이런 세계화에 가속을 붙인 것이 있다면, 아무래도 대중매체일 것이다. 각 가정의 안방에 TV가 놓여짐으로 인해 안방에서 전세계의 소식들을 눈으로 귀로 들었다. 항공및 해양도로의 발전은 하루 이틀이면 해외여행을 가능하게 하였다. 
통신은 말할 것도 없이 세계화의 좋은 도구가 되었다. 더욱이 오늘날은 모바일의 발전으로 IT의 눈부신 성장이 있다. 유튜브와 SNS는 세계의 구석구석에 있는 일들을 실시간으로 전파를 가능하게 하였다. 
하지만 이런 발전 이면에는 지구화가 공포사회를 양산해내는 결과를 가져왔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세계적으로 확산과 그 추이를 각 매체와 SNS등을 통해서 전국적으로 전달되고 있다. 정보라는 이름으로 대비하고 준비하는 것은 좋지만, 두려움과 불안함은 증폭되었다. 이전에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관심 밖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은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우리 주변의 일들이 되어버렸다. 세계화는 곧 초연결사회로 발전되고 있다. 

결국 지그문트 바우만의 표현대로 '세상은 더욱 믿을수 없고 두려운 곳이 되어버렸다.'  지구촌은 세계를 불안하고 두려운 곳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래서 개인의 안전에 대한 걱정이 정점에 달하고 국가는 점차 국가의 안위와 질서의 재편을 위해 개인의 안전을 가장 중요한 전략이며 강조점이 되버렸다. 
코로나19도 마찬가지다. 세계화의 가속은 세계의 곳곳을 이웃처럼 드나드는 시점에서 전염병이 공유되기 시작했다. 이 전염병의 공유는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같은 현실은 지금 내 이웃에서 벌어지는 일처럼 느끼기 시작했다. 마스크 대란과 아시아인 혐오, 세계 경제대공황등이 팬데믹의 공포사회가 조장한 결과라고 하겠다. 

2) 언론

이런 시대속에서 '언론'은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해주지 못하고 있다. 언론은 사회적 책임을 가진다. 어두운 곳을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감시자의 역할을 해야한다. 
그러나 언론이 가짜뉴스를 양산해 낸다. 확인도 안된 정보들을 그대로 흘러보낸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언론의 공포 조장 소재는 다양했다. 코로나 확산을 정치와 이념의 문제로, 신천지와 같은 이단 그리고 교회의 문제로, 마스크 대란의 문제를 정부와 사회적 문제로 야기시켰다. 언론의 공포조장 서비스는 비정상적인 공포를 확산시켰다확인도 안된 정보들을 그대로 흘러보낸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언론의 공포 조장 소재는 다양했다. 코로나 확산을 정치와 이념의 문제로, 신천지와 같은 이단 그리고 교회의 문제로, 마스크 대란의 문제를 정부와 사회적 문제로 야기시켰다. 언론의 공포조장 서비스는 비정상적인 공포를 확산시켰다.  

사실 이 공포의 깊은 곳엔 '죽음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죽음의 공포가 인간에게 존재하는 한 종교는 사라지지 않는다. 종교는 죽음을 이기기 위한 존재론적 몸부림이다. 그래서 전쟁, 전염병과 같은 공포시대에 미신적인 종교가 성횡했던 이유도 거기에 있다. 나름대로 죽음을 이기기위한 것이다. 

3) 개인적이며 미신적형태의 종교 

나는 개인적으로 죽음의 문제에 크게 직면한 공포사회는 개인주의적이면서 미신적인 형태의 종교를 조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10여년전부터 종교적 부흥의 시기가 올것이라고 내다 보았지만 좀더 구체화 될것같다. 종교적 부흥시기라는 것이 기독교의 부흥이 아니라, 개인종교의 부흥이라는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주었던, 공동체적 담론에서 벗어나 다시 모더니즘적인 개인의 재발견의 시기가 다시 올것이다. 근대는 생각하는 주체의 회복이다. 근대시대를 열었던 개별성은 계몽주의를 낳았고, 종교의 영역에서는 종교개혁을 낳았다. 하나님의 말씀앞에서 독대자로 선 개인, 회개하고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개인에 집중한다. 회개는 개별적 존재인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직면하게 한다. 그리고 본래적 자아로 돌아간다.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깨닫는 위치로 나아간다. 이러한 개인을 계몽된 인간이라고 한다. 이는 근대의 문을 열고 그리고 소위 종교개혁시대가 열리며 부흥운동으로 이어져 기독교는 명실상부 세계적인 종교가 된다. 

철학적이며 사회학적 의미에서 개별적 자아가 인식하는 구원이란, 생각하는 자아로의 회복 그래서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고민하고 생각하고 결단한다. 포스트모더니즘 사회속에서 근대는 바우만의 표현대로 액체형태처럼 이시대속에 흘러와 스며들었다. 포스트모더니즘속에 근대성이 형성되었다. 비정상적인지 정상적인지는 모르겠지만, 개별적 존재로서 인간의 모습이 현시대속에 강자 되었다. 성소수자들, 여성들이 그들의 인생을 당당하게 살아가는 것을 택한다. 그리고 건강과 안위함을 위해 살아가는 계몽된 인간으로 살아간다. 일인가구가 더욱 증가 할것이고, 결혼이나 직장에서의 삶보다는 개인의 여가와 행복이 더욱 중요하게 된다. 
 뭐라고 정확하게 말하긴 어려우나 개인의 안전을 신봉하고, 안락함을 더 의지하는 또 다른 신앙의 모습일수도 있다. 무신론자들이면서 또한 자신을 믿는 것이다. 건강과 안위, 위생에 집착하게 된다. 혼자사는 삶에 위로를 얻는다. 그러나 인간은 우주의 먼지 같은 존재이다. 인간 중심부를 향해 밀려오는 두려움과 불안을 처리할 능력이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러한 두려움과 불안은 고립으로 이어져 우울증을 야기한다. 인간의 삶을 극도로 허무하게 만든다. 성과와 생존에 매달리는 삶이 된다. 한병철은 그의 <피로사회>라는 책에서 성과위주의 세상, 생존 위주의 세상에서 우울증을 이렇게 진단한다. 생동성을 잃어버린 삶..... 

"사회가 원자화되고 사회성이 마모되어감에 따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보존해야 할 것은 오직 자아의 몸밖에 없다.....자아의 전신 가치와 더불어 건강 가치뿐이다.......벌거벗은 생명은 모든 목적론 건강해야하는 이유를 제공하는 모든 목표의식을 지워버린다." (한병철, 피로사회,112-3)

건강과 자기 가치를 우선으로 하는 세상 쉽지 않다. 장기화된 코로나19사태가 이것을 더욱 가속화시킬 뿐아니라 견고하게 고체화시키고 있다. 개별적 자아의 추구는 개인주의를 심화시키지만,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두려움과 불안함이 양산해 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생을 생존위주의 삶과 우울증과 생동성을 잃어버린 삶으로 전락시키는데 있다.
분명 철저히 개인주의화 되는 종교 그리고 그러한 세상이 될 것이다. 이런 세상속에서 교회는 무엇을 해야할까? 옛 기독교 부흥의 단초가 된 사경회나 집회 중심의 공동체로 모이는 신앙 운동은 힘을 잃게 될 것이다. 비위생적이라고 느끼게 될 것이다. 하지만 어느 시대를 따져보아도 공동체가 아닌 개인 신앙은 곧 미신론적 신앙으로 이어지게 되어있다. 개인을 공동체로 연결시켜주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공포세상에서 기독교는 본연의 위치를 다시 회복해야한다.

결론: 해석학의 필요

곧 교회의 재발견의 시기가 도래하게 될것이다. 이때 필요한 것이 '해석학'이다. 
최근 상당히 교회안에 이슈였던 선교적 교회론 은 결국 수많은 카페 교회를 만들어냈다. 비정상적인 고민과 위기의식이 비정상적인 형태의 공동체를 만들어냈다. 카페교회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선교적 교회론은 사실 교회론의 위기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 위기라는 것이 비단 교회 재정과 목회자들의 생존 문제로 인한 위기라거나 성도들이 줄어가는 위기는 아니다. 해석학적 위기다. 
교회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데, '텍스트와 콘텍스트 사이'에서 교회가 어떻게 존재하고 연결되어야 하는 가에 대한 위기이다. 그래서 오늘날 선교적 교회는 다시 해석학적인 기초위에서 다시 세워가야한다. 
소위 하나님의 말씀을 관찰하고 질문하여 잘 해석해 내고 오늘날의 현실과 시대적 상황에 그대로 적용해 내는 소위 말씀의 조옮김의 시간들이 필요하다 .이러한 해석학적 틀에 맞추어 교회가 존재해야한다. 그 안에는 긴장이 존재하고 몸부림이 존재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해석학적 성찰이 반드시 필요하다. 

코로나19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질문을 해야한다. 해석해야한다. 그리고 이 시대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녹아지도록 교회가 어떻게 존재해야할지를 고민해야한다. 이게 선교적 교회의 기초일 것이다. 
이 기초위에서 우리는 새로운 시도들을 해보아야 한다. 모임과 장소에 대한 고민을 다시 해보아야 한다. 인터넷이나 유튜브나 SNS등으로 드려지는 예배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연구하고 고민해봐야한다. 인간에 대한 이해를 충분히 해야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적극적으로 찾아야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붙들고 계시고 거닐고 계신다. 우리의 상황을 아시고 붙드신다. 그 예수님은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아니하시고 상한 갈대도 꺽지 않으시는 분이시다. 우리를 회복시켜주실 것이다. 존재론적 위기속에서 교회는 말씀을 치열하게 해석해내어야 할 의무를 지닌다. 

공포사회에서 함께 불안해 하지 말자. 우리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다. 우리가 주일을 지키는 이유도 우리의 신앙의 선조들은 주일을 작은 부활절로 지켰기 때문이다. 일반세상 사람들이 알고있는 것처럼 우리가 주일을 지키는 것은 비단 헌금 때문이 아니다.
장소에 집착하는 이유도 다른데 있지 않다. 주일을 안식일로 지키는 우리는 주일을 삶의 절정이요. 새롭게 되는 시점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공포세상에서 믿음을 유지하며 살기위한 일종의 몸부림이다. 
반면 세상은 공포사회이다. 공포세상은 어둡다. 저마다 죽지 않기 위해 살아간다. 두려워하며 산다. 마스크가 곧 생존인 세상이다. 어둡다. 긴 터널을 지나가는 것 같다.
그러나 부활의 세상은 밝다. 교회가 언덕위에 등불인 이유도 거기에 있다. 초연결사회 속에서 세상은 전세계적인 전염병을 보고 두려워하고 불안해 한다. 우리가 해야할일이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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