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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한 기대 (삶)/신뢰의 길

팬데믹, 회복해야 할 교회됨의 가치(모임과 흩어짐)

by 바울과 함께 걸었네 2020. 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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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교회됨의 가치를 고민해보자

새로운 일상, 막연하기만 하다. 
너도 나도 코로나에 대한 대응과 위기 전략들을 골몰하지만 대상자체가 막연하고 신비스럽기때문에
어느 누구하나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한다. 

필자는 목사로서 현 시점 즉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교회가 지닌 가치는 무엇이어야 하는 가를 고민하지 않을수 없다. 
더나아가 코로나와 함께 살아가는 신앙 공동체가 자칫 길과 방향을 잃게 되다면 
돌이킬수 없는 상태로 전락될 위험이 있다. 

교회됨의 가치란 무엇일까? 모이는 것과 흩어지는 것이다. 
모임은 흩어짐을 위함이요 흩어짐은 모이기 위함이다.
교회됨은 곧 그리스도인됨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행하신 일들에 대한 순종적 태도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인격을 통해서 세워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됨 곧 그리스도인됨은 선교적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사셨기 때문이다. 선교적이라 함은 모이고 흩어짐이다. 
교회됨의 중요한 가치를 따라 우리도 모이고 흩어진다. 


2. 그렇다면 코로나 시대의 교회됨의 가치는? 


코로나 펜데믹 시대속에 모이고 흩어진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모인다는 것은 오프라인의 공동체적인 예배이다. 흩어짐은 온라인속의 개별적 일상과 삶의 예배다. 
코로나 시대에 우리가 교회됨의 가치를 잃지않으려면 모임과 흩어짐의 적절한 균형이 필요하다. 
온라인은 소통과 선교적 공간이요 오프라인은 충전과 회복의 공간이다.

새로운 일상이 오면서 온라인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코로나19시대를 대비하고 새로운 일상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다른게 아니다. 
모임과 흩어짐을 잘하는 것이다. 

지난 한국사회는 개별적 온라인이라는 공간에서 저마다 자기의 생각을 표현하고 표출하였다. 
그러다가 광장으로 나온 계기가 있었는데 그것은 촛불 혁명이라고 불리우는 것이다. 
당시 주요 사회학자들은 청년들이여 이제 온라인에서 나오라! 밖으로 나오라! 라고 줄기차게 외쳤지만, 
어느누구도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잘못된 지도자에 대한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청년들은 온라인의 세상에서
오프라인의 세상인 광장으로 나왔다. 
지금은 코로나19로 인해 다시 오프라인의 세상에서 개별사회의 공간인 온라인으로 들어갔다.
유튜브와 같은 공간은 자신을 표현하기는 좋지만,
거짓과 가짜뉴스가 판치는 세상이 되었다. 어느 덧 오프라인이 사라진 사이버 공간은 그야말로 게토가 되었다. 
사이버 공간과 온라인 세상의 한계를 느끼는 이들은 조만간 다시 광장이라하는 오프라인 세계로 나오게 될것이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코로나19의 상황으로 개별적 세상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저마다 좋은 사이버 컨텐츠로 예배및 교육영상을 제공하고 있다.
지금까지 집회와 모임중심의 오프라인의 세상에서 개별예배의 공간인 온라인의 세상으로 들어갔다. 
그곳에 제공해주는 신앙및 교육 영상 컨텐츠를 제공받으며 예배를 드린다.
분명히 사이버 공간은 참여의 공간이라기 보다 수동적인 공간이다.
철저히 자기를 감추는 익명성이 보장되는 공간이다. 상호교통이 제한되는 공간이다.
이런 세상이 열렸다. 교회는 앞으로 무엇을 해야할까? 어떻게 존재해야할까? 
사이버 세상속의 종교시대를 열어가야할까?


3. 사이버 세상속의 종교 시대?
 
코로나 펜데믹이 가져다 준 새로운 일상중 가장 도드라진 특징은 언컨텍트 세상이라한다.
말하자면 비대면 접촉시대이다. 그래서 점차 대안적 요소로 나타난 것이 사이버 공간이다.
서둘러 교회 역시 사이버 세상에서 모임을 대안으로 내놓고 있다. 

하지만 사이버 종교적 공간은 아직 이르다.
마치 제임스 카메룬 감독의 아바타 수준의 공간이 계발되지 않은 한 사이버 공간은 아직 한계가 있다.
그곳에서 은혜를 누리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맛본다는 것 쉽지않다.  

공간과 공감의 문제이다.
사이버 공간에서 충분한 인간적 공감대 형성이 가능할까?
인간적 공감이란 지성적 공감 뿐아니라 감성 그리고 의지적 공감 더나아가 영성적 차원의 공감까지를 말한다.
인간은 이 통합적 공감대가 형성이 되어야 성숙으로 나아갈수 있다. 공동체도 성장한다.
사이버 공간은 지정의 세가지 공감이 가능할수 있다. 하지만 영적차원의 공감까지는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사이버 세상의 종교시대, 이와 관련하여 필자의 생각은 아직까지는 부정적이다. 

그러나 사이버 세상은 말그대로 소통과 선교의 장소로 삼아야 한다.
교회의 흩어짐 즉 모임을 위한 전 단계의 장소로 가능하다. 
이를 위해서 사이버 공간내에 셀리더의 역량을 키우는 방안을 고민해야 할것이다.
셀리더의 역량이라는 것은 사이버 공간내에서 영적 리더로서의 역할을 말한다. 
아직까지는 사이버공간은 개인 영역이다. 고립과 자기몰두적 세상이다. 
사이버 공간의 영적 리더들은 영적 멤버들로 하여금
그곳에 머물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 공동체로 나오도록 하는 역할을 감당해야한다.


4. 그러면 무엇을 고민해야 할까?

언컨텍트와 펜데믹의 대안으로서 사이버 세상이 열렸다고 해서 교회는 서둘러 그곳에 집중하기 보다
오프라인의 세상을 더욱 고민해야 한다. 공간의 활용이라든지, 교육과 예배의 실용적 측면이라든지 결국 오프라인을 대비하고 준비해야한다. 사이버 세상에서 신앙공동체의 예배의 현장으로 이끌어내어야 한다. 

필자는 코로나 펜데믹 도 또하나의 새로운 일상이 될것이지만, 그것보다는 미국의 인종간의 혐오에 대한 반대운동이라든지, 배제 소외에 대한 인간됨 이라든지, 점차 줄어드는 출산율을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펜데미과 더불어 좀더 미래에 형성될 사회적 분위기에 조심스럽게 발맞추어 가야할 필요를 느낀다.  
미래는 펜데믹과 더불어 인간됨의 문제 그리고 삶의 질에 대한 문제가 이슈가 될것이다. 

펜데믹은 이미 우리가 경험했다. 공간의 변화다.  교회는 공간의 문제 즉 신앙 공동체의 터전에 대한 문제를 고민해야한다. 교회가 이런 고민이 시작되지 않으면 언컨텍트시대에 교회에 찾아오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둘째 인간됨의 문제는 현재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정의문제라든지 공평의 문제를 말한다. 이전엔 이데올로기로 틀이 형성되었다면 이제는 정의와 공평의 문제가 우리의 삶에 형성될 것이다. 교회는 더욱 성도들의 삶의 문제에 집중을 해야한다. 지금까지도 그래왔지만, 성도들의 신앙과 삶의 분리는 더욱 지탄을 받게 될것이다. 우리가 신앙교육에 있어서 무엇에 집중해야 할지를 깨달아야한다.

마지막으로 삶의 질에 대한 문제인데, 이는 구체적으로 출산율과 관련이 있다. 신기하게도 출산율은 삶의 질과 관련이 있다. 앞으로 출산율은 감소된다. 교회는 이에대한 구체적인 준비가 되어있는가? 다음세대가 줄어들고 있다.  
출산율의 문제는 신앙 공동체가 그 맥을 유지하지 못할수도 있다는 것이다. 무리한 건축이나, 지금까지 대형교회를 지향했던 모든 사역들, 비 실용적인 넓은 공간, 인적 자원들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신문에 나온 기사에 주목해보았다. 한국 사회의 인구가 점차 줄고 있다는 것이다.
중세 유럽에 흑사병이 돌던 시기에 처음에는 거주지를 떠나는 정도로 시작했다가 점차 유럽전역에 흑사병이 돌자 사람들은 출산을 하지 않았다. 흑사병으로 사망한 이들과 줄어드는 출산률로 인해 중세 유럽은 일상으로 복귀가 쉽지 않았다. 이런 분위기가 코로나19 시대와 맞물려 출산율이 계속해서 줄고있다는 것이다. 
아래는 관련 2020년 6월 1일자 중앙일보 기사이다. 

올해 출생아동이 27만명대로, 합계출산율은 0.8명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서형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은 9일 보건복지부가 주최한 ‘저출산·고령화 대응을 위한 인문·사회 포럼; 인구의 사회문명사적 관점, 미래사회의 삶의 양식’ 토론회에서 이 같은 분석 자료를 공개했다. 서 부위원장은 “인류 문명사를 돌아볼 때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인구 현상’을 우리나라에서 목도하고 있다”며 “올해 1~3월 출생아 수가 전년 동기보다 10~12%가 줄었고, 합계출산율이 0.12명 떨어졌다. 이 추세대로 가면 올해 출생아수가 27만명대 초반, 출산율은 0.8명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합계출산율(이하 출산율)은 가임 여성 1명이 평생 낳은 아이의 수를 말한다
[출처: 중앙일보 2020.06.10] 갈수록 심해지는 저출산 “올 출생아 27만명, 출산율 0.8명” 

이런사회를 이미 2017년에 예견한 라가르드 총재는 집단자살 사회 라고 말했다. 부끄럽다. 
사실 출산율은 삶의 가치에 따른다. 출산율이 낮은 것 그만큼 우리네 사회가 삶에 대한 가치를 잃어버렸거나 그런 가치를 따질만한 여유가 없다는 뜻일 것이다.

"이대 행사가 끝난 뒤 이동하는 차량 안에서 라가르드 총재는 “결혼 안하고 출산율이 떨어지면 성장률과 생산성이 떨어지게 돼 있고, 그럼 재정이 악화된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가 바로 집단적 자살현상이 아니겠느냐. 이게 한국의 문제”라고 지적했다고 한다. 사회 안전망 없이 여성들을 경쟁시키니 자연스럽게 출산을 포기하는 사회가 되고, 이는 결국 사회 전체적으로 리스크가 큰 구조가 형성된다는 주장이다. 이 국장은 “‘집단자살 사회’는 전문용어는 아니지만 라가르드 총재가 나름 한국의 현상을 느끼고 묘사한 표현”이라고 말했다."  [출처: 중앙일보 2017 10.25일자] 라가르드 “한국은 집단자살 사회” 


5. 결론: 교회의 됨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

우리는 교회됨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할까?
우리가 대비해야할 것은 코로나19가 준 일상. 새로운 일상이 아니다. 좀더 멀리 봐야한다.

앞으로 교회는 공간의 변화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어야 한다. 그리고 무례한 시대속에서 삶에 대한 가치를 품게해주며 사람에대한 예의를 지켜가는 사회를 어떻게 회복해갈것인가 이어야 한다. 줄어드는 출산율과 해소되지 않은 경제를 통해 우리가 무엇에 집중해야 할지를 깨달아야 한다. 즉 교회의 가치인 모임과 흩어짐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에게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숨쉬기 조차 어려웠다. 교회됨의 가치인 모임과 흩어짐
결국 우리가 고민해야 할것은, 모임의 문제이다. 어떻게 신앙 공동체로서 모이게 할것인가? 어떻게 복음이라는 가치를 통해 영혼을 살리고 사람사는 세상이 되게 할것인가? 모색해야 한다. 그게 교회됨의 가치 아니겠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백성들의 그리스도인됨의 모습아니겠는가? 

지금까지 교회가 했던 코로나19 대응법은 대체로 예측하지 못했고 준비되지 못한 일들 속에서 했다. 
교회는 잘 대응했다. 실시간 예배 방송, 줌으로 이어지는 셀모임, 각종 교회교육 컨텐츠들 계발해 내었다. 
이제는 좀더 미래를 봐야한다. 사이버 공간에서 나와야한다.
그렇다고 오프라인의 공간을 무조건 강조해서 될일은 아니다.
현시점에서 교회됨의 역할을 감당할수 있는 적절한 고민이 필요하다. 
사회는 이 고민이 이미 시작되었다고 본다.
공간의 문제인 건축부터 사람됨의 가치를 세우는 정치분야
출산과 삶의 질과 관련된 경제및 사회복지분야 그리고 의료분야,
이미 사회는 이 고민이 시작되었다.

반면에 교회는 새로운 일상을 맞이하기엔 너무 분주하다. 
한국 개신교회는 함께 협력하기 보다 여전히 개교회 중심적이다. 
다시말하자면 각개 전투중이다. 
코로나19를 통해 각개전투가 전략적이면서 함께 해나가는 전투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제는 코로나19의 새로운 일상을 열어가는 시점에서
교회됨의 가치를 좀더 지키기 위한 방식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좀더 멀리보고 가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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