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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13

<신문을 읽고> 얼마나 절망해야... 인간은 얼마나 절망해야 혁명을 꿈꾸게 되는가. 삼봉 정도전을 주인공으로 장편을 쓸 때 품었던 질문이다. 태어나자마자 혁명을 꿈꾸는 이는 없다.그 사회의 법과 제도 안에서 교육을 받고 취직을 하며 꿈을 펼치고자 노력한다. 그러다가 난관에 봉착하며 실패하고 좌절한다.추락을 거듭하며 절망이 바닥을 친 후 도저히 이 사회에서 희망을 찾기는 어렵겠다고 확신하는 순간, 인간은 혁명을 꿈꾸게 된다.정도전도 홍경래도 전봉준도 지옥 같은 나날을 통과하고 나서 비로소 혁명가가 되었다.내가 혁명가의 빛나는 이상과 치밀한 논리와 용맹한 자세보다 절망의 두께에 천착하는 이유다.감히 말하자면 지금 우리 사회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회생하기 위해선, 섣불리 답을 내놓기보단 절망의 두께를 재는 것부터 필요하다. 불편하고 부끄럽.. 2024. 7. 10.
동방정교회의 ‘예수기도’와 한국교회의 ‘통성기도’ 비교연구 * 각주는 뒤에 참고문헌으로 대신합니다. 동방정교회의 ‘예수기도’와 한국교회의 ‘통성기도’ 비교연구 _ 함신주 Ⅰ. 서론 Ⅱ. 예수기도. 헤시카즘(Hesychasm)과 예수기도(The Jesus Prayer)2. 예수기도의 역사 3. 예수기도의 방식 Ⅲ. 통성기도. 한국교회와 기도 2. 한(恨)의 정서를 담은 통성기도 3. 통성기도의 역사 ‘한의 정서를 중심으로’ Ⅳ. 예수기도와 통성기도 비교. 1. 차이점과 비슷한 점 Ⅴ. 결론 : 예수기도와 통성기도를 통합한 기도 모델. ---참고문헌--- Ⅰ. 서론 오늘날 한국교회는 기독교 영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높아지는 관심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영성이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대답하기조차 애매하고 어려운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 기독교 영성은 우리의 .. 2024. 6. 25.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에 갈때마다 내 자식들에게 역사교육을 제대로 해주리라 작정하지만 어느덧 혼자 말하고 있는 내모습을 발견… 그래 뭐시중헌디….. 다음에는 필시! 역사교육을 제대로 해주겠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사진은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 금동미륵반가사유상, 뭔가 기대를 하고 들어갔지만 생각보다….시끄럽다. 사유보다는 어서 가유 사유의 방에는 두 개의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이 전시되어 있다. 멀찍하게 보이는 것은 국보 78호이고 가깝게 보이는 것이 국보 83호이다. 둘다 삼국시대때 제조된 것으로 여기나 국보 78호 반가사유상은 신라설이 유력하다고 들었다. 반가부좌를 틀고(半跏) 절제되면서 은은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을 보고 있으니 삼국시대의 불교가 민중들에게 전해주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었는.. 2022. 7. 26.
MZ세대 와 교회/ 어떤교회가 되어야 할것인가. 요즘 대중메체에 ‘MZ세대’라는 말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사실 이 MZ세대는 이미 2018년 부터 사회와 경제적인 이슈로 자리하고 있다. 2021년과 코로나 펜대믹 현상이 맞물리면서 MZ세대는 그야말로 거친 파도와 같이 사회구석구석에 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글을 쓰는 필자는 경제학자나 사회학자는 아니다. MZ 세대라는 떠오르는 핵심 세대를 향한 냉철하면서도 예리한 분석의 결과를 기대하지는 않길 바란다. 더욱이 대중메체에서 언급하는 세대론은 경제적 용어가 대부분이다. 필자는 인위적으로 세대론을 나누고 어떤 틀과 프레임을 씌워 경제관념을 덮는 것에 대해서 거부감이 있다. 현재 MZ세대에 대한 대부분의 통찰은 과학적이거나 합리적인 분석에 의한것이라기 보다, 이 세대 구성원들이 정치적이며 사회적 이슈에 .. 2021. 8. 6.
코로나19 가 한국사회에 준 영향 2. 한국 종교(기독교) 코로나19가 한국사회에 준 영향 그 두번째로 종교에 준영향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코로나19가 한국사회에 미친 영향중에 한국 종교에 끼친 영향이 지대하다. 일각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해 종교의 문화와 인식까지 변화될 가능성까지 내다보았다. 이번 사태가 준 영향과 더불어 변화될 종교적문화는 무엇일지 숙고해보고자 한다. 1) 코로나19로 받은 영향과 던지는 세 가지 고민 1. 종교집회와 권력? 코로나19가 주는 가장 큰 영향은 종교적 모임인 예배일 것이다. 마침 중앙Sunday 3월7일자 신문기사를 보았다. 유현준교수가 쓴 '종교단체의 강적은 전염병…한곳에 못 모이면 권력 잃어' 라는 기사의 내용에 많은 부분 공감이 되었다. 유교수의 말에 따르면, 줄지어 놓인 긴 의자가 앞만보게 배치된 교회 공간은 말 그대로.. 2020. 3. 6.
길선주 목사와 3.1 운동 -길선주목사와 3.1운동- 길선주 목사와 그의 민족운동에 대해 짧게 정리하여 남겨본다. 길선주 목사는 3.1 독립선언서에 인장을 맡겨 민족대표로서 서명을 하였다. 그러나 사경회등으로 3.1운동의 태화관 독립선언식 모임에 참석하지 못해 비판을 받은 글들과 자료들을 본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길선주 목사는 이후 자진하여 투옥이 되었고 또한 아들 길진형이 105인 사건에 연루되어 심한 고문뒤에 죽은 사실들은 그가 민족대표로서 자질이 충분하다라는 것을 입증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러한 사실들이 아쉽게도 묵인된 것은 한국교회 후손들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1. 길선주 목사의 애국심 그리고 애주심 길선주 목사의 대부흥운동 기간 전후의 그의 삶의 여정을 보면, 위국 기도를 통한 국권회복의 강한 소망이 있었으며 나.. 2018. 12. 19.
1980년대 기억들 3 1987년 유치원에 들어가면서 나의 꿈은 한 번더 바뀌게 된다. 목사가 되는 것이다. 나는 어렷을적부터 아니 태어나면서 부터 기독교라는 종교를 가지고 태어난 소위 모태신앙인이다. 아버지는 충남 서천에서 출생하셨고, 증조할머니로부터 내려오는 3대째 신앙인이셨다. 또한 충북 보은에서 출생하신 어머니는 대대로 불교집안이셨다. 어머니는 결혼하여 아버지의 권유로 기독교인이 되신 것이다. 당시 부모님은 가난한 신혼시절 집앞에 있는 성덕교회(현재 성도중앙교회)에 등록을 하였다. 그곳에서 좋은 신앙인이셨던 권사님을 만나 신앙생활을 시작하셨다. 어머니는 그 권사님과 함께 나를 업고 지금의 종로구 평창동의 삼각산 기도원이며 다락방기도원이며 멀리에 있는 한얼산기도원 등등의 철야기도회를 다니셨고 은혜를 많이 받으셨다. 지금도.. 2018. 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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