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주의와 기독교의 미래
복음주의의 성장은 기독교의 미래 그 자체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때로 교회일치적 복음주의(ecumenical evangelicalism)라고 기술되는 복음주의 내에서의 성장 경향은 이 문제를 언급하는데 있어서 관심의 초점이 된다. 본 연구가 마무리 되어감에 따라 전체적으로 복음주의 부흥이 지니는 그리스도 교회를 위한 더 광범한 함의를 탐색하는 것은 적절한 일이다.
복음전도에 대한 새로운 강조
기독교의 미래가 복음주의에 달려있다는 인식이 점차 확산되어가고 있다. 교회의 주요 과제는 이제 복음전도라고 보여진다. 즉 돌봄과 양육을 초월하여 선포와 봉사로 나아가는 역동적인 선교의 강조말이다. 점차로 세속화 되어가는 시대에 복음전도는 교회의 경계를 넘어서 밖으로 뻗어나가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중요성을 지닌것으로서 보여지게 되었다. "오늘날 세계의 절박한 욕구는 선교 지향적인 대규모의 전환이 있어야 할 것을 요구한다
기독교의 선포는 항상 다원주의적 세계에서 경쟁적인 종교적, 지적 확신들과 겨루는 가운데 발생하였다. 그러므로 복음전도는 세계를 지배하려는 제국주의적 열망에 근거하지 않으며 오직 희망과 용서를 필요로 하는 세계와 하나님의 복음을 나누려는 간절한 소망과 복음의 진리에 대한 근본적 확신에 근거한다.
그러나 복음주의 역시 복음전도에 대하여 배워야 할 어떤 것이 있다. 복음은 개인들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사회에 대해서도 복된 소식이다. 어떤 복음주의자들은 계속해서 복음전도란 개인적 회심을 요구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님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입장의 배후에 있는 관심들은 주목되고 존중되어야만 한다. 개인들에 대한 복된 소식의 기적을 정당하게 평가하지 못한 복음전도에 관한 어떠한 기사도 부족한 것으로 견책 되어질수 있다. 그러나 성경 그 자체에 충실하여 복음은 또한 사회를 위하여서도 좋은 소식임이 지적되어야만 한다. 복음주의자들은 복음의 사회적 국면이 복음주의의 성서 중심성을 긍정하는 통전적이며 본질적인 요소들로서 충실하고 책임적으로 표현되는 것을 확실히 하여야만 한다. 복음의 선포는 단순한 개인들의 집단이 아닌 한 사회에 행하여진다. 그리고 그것은 사회의 구성분자인 개인들과 더불어 사회자체를 진지하게 고려하는 것을 의미한다
복음주의의 미래
복음주의가 다음 천년에로의 진입을 준비함에 따라 복음주의가 세계 기독교에서 상당한 중요성을 띠게 될 것이라는 점은 현재의 연구로부터 분명해질 것이다. 복음주의는 영어권 밖으로 확대되고 있으며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 그러면 복음주의의 전통적 중심지인 서구내에서 복음주의의 미래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그곳에서도 역시 모든 징후들은 고무적인 것으로 보인다. 복음주의에 대한 위협들은 현실이며 그것의 기회와 자원들 역시 그러하다.
복음주의에 대한 도전은 다음과 같다 신앙공동 복음주의는 계속 성장, 증가하는 지적 세련화 그리고 교회내에서의 증가하는 수용등에 잘 대처할 수 있는가? 아니면 복음주의는 그 독특한 아이디어와 강조점들을 상실할 것인가?
본서는 복음주의의 강점과 약점에 주목하면서 매우 복잡한 이 운동의 형세를 탐색해보고자 하였다. 만일 내가 성급하게 미래를 예측해 본다면 그러한 예측은 다음의 형태를 취하게 될 것이다. 그 운동은 다음 세대에도 숫적으로 계속 성장할 것이고 훨씬 더 위대한 학문적, 사회적, 정치적 중요성을 달성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복음주의의 성장과 이에 대한 점증하는 수용과 더불어 19세기 후반 유럽과 미국 교회를 지배하였던 자유주의적 개신교의 또 다른 형태가 될 위험이 도래할지도 모른다. 이러한 일은 결코 발생할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가능성은 진정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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