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간절한 기대 (삶)/책과 삶

한중록(閑中錄)을 읽고, (혜경궁 홍씨, 신동운역(스타북스,2020))

by 바울과 함께 걸었네 2020. 8. 13.
728x90
반응형

영화 '사도'를 보았다. 사도는 송강호 유아인을 주연으로 2015년 개봉한 영화이다.   
영화 사도는 사도세자(思悼世子)의 비극적인 죽음을 다룬영화다. 
영화를 보고난 후 몇가지 질문이 생겨 혜경궁 홍씨에 의해 기록된 '한중록'을 펼쳐보았다.

 

예스24 한중록 http://www.yes24.com/Product/Goods/89604744

 

1. 한중록의 저자인 혜경궁 홍씨?

한중록의 저자인 혜경궁 홍씨는 조선 21대 임금 영조의 며느리이며 22대 임금인 정조의 어머니이다. 또한 사도세자의 세자 빈이다. 1795년 조카 홍수영이 청하여 쓴 글이라고 밝힌다. 한중록에는 단순히 사도세자에 대한 이야기만 기록되어 있지는 않다. 이번에 읽은 책은 총 6권으로 분류되어 있다. 

제1권 세자빈 되어 궁궐에 들어가다
제2권 영조와 사도세자의 불화가 극에 달하다
제3권 사도세자 뒤주에서 천둥소리 들으며 죽다
제4권 나와 내 친정에 대해 기록하다
제5권 역적의 집안이 된 친정을 변명하다
제6권 정조와 순조 그리고 나의 한 많은 일생

이렇듯 한중록에는 궁궐의 삶이 기록되어 있다. 궁의 예법과 생활이 한 여인의 시선과 관점으로 그려지고 있다.  또한 그 삶이 어떤지 보여주고 있다. 임금의 권력 뒤에 보이지 않는 조력자들이며 실제 세력들이 누구인지를 드러내고 있다. 임금으로서 영조의 모습 그리고 시아버지로서 그의 인간다움, 부자간의 갈등과 긴장 등 감히 엿볼수 없는 광경들이 글을 통해서 그대로 우리에게 전해준다. 이것이 한중록이 우리에게 주는 역사적 가치 일것이다. 당시나 지금이나 권력을 도모하려는 세력은 존재하기 마련이며 이것을 젊은나이에 과부가 된 한여인이 몸으로 겪고 있다. 그래서 한중록인가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중록의 내용 중 역사적 사실 여부는 지금도 논의중이다. 기억에 의한 기록이라 그런가 싶다. 하지만 그런 논의들은 국문학자나 역사학자들에게 맡겨두고 한중록에 기록된 사도세자와 영조에 대한 스토리들을 중심으로 몇자 적어보고 싶다. 

역사를 좋아하는 이라면 역사이래로 왕조국가에서 왕자의 죽음은 혼란을 가중시킨다는 것을 알것이다.
왜냐하면 왕의 승계와 더불어 미래를 도모하는 이들과 끊임없이 권력을 탐하는 이들과의 전쟁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사도세자 이야기는 사실 비극이다. 아무리 왕가의 이야기라지만, 인간사에 있어서는 또는 있을수 없는 이야기이다. 과연 부왕인 영조와 세자인 경모궁(사도세자) 사이의 멀어짐 때문이었을까? 또는 왕위를 지키려는 영조가 아들에게 왕위를 빼앗길것같은 위기 때문이었을까? 
사도세자의 정신적 질병은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함에서 온 것일까?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영조와 사도세자의 비극적인 관계에 관해서 역사학계는 여전히 논란중이다. 
특별히 혜경궁 홍씨가 기록한 한중론의 역사적 진실성 여부에서부터, 과연 영조가 세자를 죽음으로 내몬 까닭이 단순 부왕과 세자간의 갈등 때문이었을까? 여전히 논란이 있다.  


2. 영조는 왜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었는가? 대리청정?

특별히 대체로 동의하는 것은 영조와 사도세자 간의 관계의 틀어짐은 대리청정(代理聽政)이 그 분기점이라는 것이다. 대리청정은 왕이 육체의 고단함으로 정사를 제대로 돌볼수 없을때 세자나 세제가 대신 정사를 돌보는 일을 말한다. 사도세자의 대리청정은 기사년 1749년 경모궁(사도세자)가 15세 된 시점에 시작된다. 혜경궁은 한중록에서도 대리 후에 탈이 났다고 서러움을 밝힌다. 

 

기사년己巳年(1749)에 경모궁께서 15살이 되시니, 어른이 되는 예식을 1월 22일에 하고 27일에 합례하기[신랑 신부가 첫날밤에 잠자리를 같이 하는 것]를 정하였다. 영조께서는 늦게 얻은 경모궁이 15살이 되어 합례까지 하게 되니 기뻐하시고 조용히 재미를 보시면 좋으실 텐데, 어떤 생각이신지 갑자기 대리代理[왕세자가 왕을 대신하여 정사政事를 보는 것]하시겠다는 영을 내리셨다. 그날은 바로 나의 성년식 날이었고 모든 일이 대리 후에 탈이 나니 어찌 서럽지 않으리오. -한중록 중에서


아마도 세자의 대리청정은 훗날 왕위 승계로서 입지를 견고하게 하는 기회였을 것이다. 그러나 왜 혜경궁은 대리청정 후에 탈이 났으며 서러움을 표하는 것일까?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사도세자의 대리청정의 주요 현안은 '영조의 탕평책에 관한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 노론과 소론의 당쟁은 극심했다. 당시 노론과 소론의 당쟁은 숙종재위 당시 영조의 왕위 승계와 관련이 있었는데, 영조는 당시 숙종의 둘째 왕자로서 숙빈최씨가 어머니이다. 알다시피 그의 어머니는 무수리출신으로 희빈 장씨에게 많은 괴롭힘과 모함을 받은 이었다. 그러다가 숙빈 최씨는 연잉군() 지금의 영조를 낳았다.  희빈장씨에게서 출생한 이가 경종(宗)이다. 당시 소론은 경종을 노론은 연잉군을 지지한다. 그러나 경종이 병약하고 자식이 없어 젊은 나이에 죽고 이어 세제인 영조가 노론의 힘을 얻고 왕이된다.
그러니 당연히 영조는 경종을 살해했다는 소론들의 의심을 받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는 왕으로써 틈틈히 실력을 쌓고 탕평인사를 통해 두루 인재를 확보하게 되면서 그의 지지기반을 견고하게 한다. 

하지만 여전히 노론과 소론의 당쟁은 그칠줄 모르고, 이에 노론은 소론세력을 제거할 목적의
토역론(討逆論)을 주장한다. 탕평정국을 내세운 영조는 당연히 그 주장을 물리쳤을 것이다. 그러니 노론은 노론대로 소론은 소론대로 영조에 대한 불만이 가득했을 것이다. 영조 25년은 그것이 한창 논란이 되던 시기였다. 이 시기에 영조는 사도세자에게 대리청정을 맡긴 것이다. 분명 세자가 토역론을 감당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세자의 소극적인 대리청정은 노론에게도 빌미가 되었다. 게다가 대리청정의 과정에서 부왕과의 갈등은 더욱 깊어졌다.  

보통 조정 신하의 글이라도 나라 일과 관련이 있거나 편론偏論[남이나 다른 당을 논란함. 여기서는 노ㆍ소론이 다른 당을 논란하는 것]이 있는 글은 소조께서 스스로 결정을 내리지 못하셔서 대조께 아뢰면, 그 글의 내용은 아랫사람의 일이지 소조께서 아실 바가 아닌데도 격노하시며 소조께서 신하를 잘 조화하지 못해 전에 없던 그런 글이 올라왔다 하여 소조의 탓으로 삼았다. 글에 대한 답을 여쭈려고 대조께 아뢰어도 여지없이 꾸중하셨다.

“그만한 일을 결단치 못하여 내게 번거롭게 물어보니 대리시킨 보람이 없다.”

그래서 답을 여쭤 보지 않으면 그렇다고 또 꾸중하셨다.

“그런 일을 내게 물어보지도 않고 스스로 결단하였다.”

이처럼 저렇게 한 일은 이렇게 안 했다고 꾸중하시고, 이렇게 한 일은 저렇게 안 하셨다고 꾸중하시어, 이 일 저 일 모두 심하게 화를 내시며 마땅치 않게 여기셨다. 심지어 백성이 춥고 배고프거나 가뭄이 들거나 천재지변이 있어도 꾸중하셨다.

“소조의 덕이 없어서 그렇다.”

그러므로 소조께서는 날이 흐리거나 겨울에 천둥이 치면 또 무슨 꾸중이나 나실까 근심하시고 염려하여 일마다 두렵고 겁을 내셨다. 그러다 마침내 사악하고 망령된 생각이 다시 들어 병이 점점 깊어지시는 징조가 나타났다.
영조께서 훌륭한 덕과 인자함을 지니시고 모든 일을 잘 살피시어 조심성 없는 성품은 아니셨는데, 소중하신 왕세자께서 병이 드시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셨으니, 어찌 서럽지 않으리오.
소조께서 한 번 꾸중에 놀라시고 두 번 격노에 걱정하시니, 웅대하고 똑똑하며 장하신 기품이라 하지만 대조의 꾸중 때문에 한 가지 일도 자유로이 결정하지 못하셨다.  -한중록 중에서- 


여기에 대리청정은 불쏘시게 역할을 하였고 이에 격분한 영조는 틈만나면 아들을 꾸짖고 나무란다.  게다가 그는 법률과 소송 형옥이나 노예따위를 맡기는 형조의 일, 죄인을 다스리는 일들은 모두 세자를 불러 옆에 앉게 했다고 한다. 한중록의 기록이나 여러 역사적 정황으로 볼때 대리청정의 시기가 영조와 세자간의 갈등이 깊어지는 시기임은 분명하다. 

영조께서는 대리 전이라도 사형수를 다시 심리하거나 형조刑曹[조선 시대 육조六曹 가운데 하나로 법률法律ㆍ소송訴訟ㆍ형옥刑獄ㆍ노예 따위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청]의 일 또는 죄인을 다스리는 등 대궐에서 말하는 불길한 일에는 자주 세자를 불러 옆에 있게 하셨다.
 
 -한중록 중-


3. 영조는 왜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었는가? 영조의 열등감 투사?

한중록에 의하면 사도세자는 총명함 덕분에 부왕으로부터 사랑과 총애를 받고 자라왔다. 하지만 책읽는 것과 공부를 소홀하게 여겨 근심을 사게 되었다. 공부에 소홀하게 여긴것이 아버지의 살인적인 분노를 사게된 이유였다면 영조는 정신적으로 조금 문제가 있던 임금이었다는 생각도 갖게된다. 어쩌면 영조 자신의 출생과 관련한 어떤 열등감의 투사가 그대로 아들에게 이어졌을수도 있다. 실력과 공부와 정치로 얻은 임금의 자리였다. 그런 그에게 세자의 부족함은 그대로 영조에게 근심이었을 것이다.
정치적 이유에서든지 어떤 이유에서든지 분명 부왕과 세자의 갈등의 골은 점점 깊어져갔다.  아버지가 두려워 민첩하게 행동하지 못하고 대답하지 못하는 세자의 모습, 이를 보고 답답해하는 영조.... 부모라면 어떤 상황인지 안다. 우리는 자식에게 내가 가진 열등감을 과하게 부과한다. 내가 가졌던 공부에 대한 열등감이나 신분, 자리에 대한 수치심은 그대로 자녀들에게 향한다. 그래서 공부를 강조하기도 하고 삶을 통제하고 지나치게 간섭하기도 한다.  아이들은 부모의 품에서 풍성해지는 것이 아니라 비쩍 말라간다. 영조의 품은 세자에게 사실상 뒤주나 다름없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한중록은 부모들이 읽어야 할 책이라고 까지 말한다. 

경모궁께서 15세가 되셨으나 대왕께서 능에 행차하실 때 한 번도 대왕을 모시고 따라간 적이 없으셨다. 교외 구경을 하고 싶으셔도 늘 궁궐 거동이시고, 영조께서 능에 행차하실 때 예조禮曹[육조의 하나로 예악, 제사, 연향, 학교, 과거 따위에 관한 일을 맡은 관청]에서 동궁을 수행시키려 힘을 쓰면 수행하라는 허락이 날까 하고 초조히 마음을 졸이셨다. 그러다가 못 가시게 되면, 처음에는 서운하고 무섭던 것이 점점 답답하고 애가 타서 우실 적도 있었다.
당신이 부모님께 속으로는 본래 정성이 지극하시지만, 민첩하지 못하여 품고 계신 정성을 100분의 1도 못 드러내셨다. 부왕은 그 사정도 모르시고 미안하신 빛은 있어도 한 번도 관용을 베풀지 않으시니, 경모궁께서는 점점 두렵고 무서운 것이 병환이 되어 화가 나시면 푸실 데가 없었다. 그래서 그 화를 내시와 궁녀에게나 푸시고 심지어 내게까지 푸시는 일이 몇 번이나 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한중록

 

그렇게 점점 서먹서먹하게 지내시다가 서로 보실 때는 영조께서는 꾸중이 사랑보다 앞서시고, 아드님은 한 번 뵙는 것도 조심하시고 매우 두려워하심이 무슨 큰일이나 치르시는 듯싶었다. 이렇듯 어느 새 부자지간이 더 멀어지게 되었으니, 어찌 서럽지 않으리오. -한중록


4. 영조는 왜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었는가? 세자의 정신적 질병?

결국 경모궁은 정신병증세가 심해진다. 헤경궁은 사도세자가 의대병(依襨病)에 걸렸으며
마음이 분하고 답답하면 무언가를 죽여야 직성이 풀리기에 이른다. 선희궁은 세자의 어머니로서 세자의 깊어가는 병의 증세가 심히 걱정되었을 것이다. 결국 영조에게 나아가 대처분을 내려달라고 요청한다. 영조 역시 이런 세자의 모습에 우려를 금하지 못했을 것이며 나라뿐아니라 왕의 자리까지 염려가 된 탓인지 선희궁의 요청에 응하여 대처분을 결단한다. 

그 날 아침, 대조께서 무슨 까닭인지 옥좌에 나와 앉으시려 경현당 관광청에 계셨다. 그러자 선희궁께서 가서 울면서 고하셨다.
“소조의 병이 점점 깊어 바라는 것이 없으니, 소인이 차마 이 말씀은 모자 지간의 도리로 보아 못할 일이지만, 옥체를 보호하고 세손을 건져 종사를 평안히 하는 일이 옳으니 대처분을 하소서.” 한중록 중에서..


결국 세자는 그 자리에서 폐위가 된다. 쌀 뒤주를 내오라 명한뒤 들어가라 명하니 세자는 그 속으로 들어간다. 부자지간의 싸움이 대부분이 그렇듯 세자는 아버지의 단순 체벌에서 끝날 것이라 여겼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나는 숭문당으로 해서 휘녕전으로 나가는 건복문 밑으로 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다만 대조께서 칼 두드리시는 소리와 소조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버님, 아버님, 잘못하였습니다. 이제는 하라 하시는 대로 하고 글도 읽고 말씀도 다 들을 것이니 이러지 마옵소서.”
내 간장이 마디마디 끊어지는 듯하고 앞이 막히니, 가슴을 아무리 두드린들 어찌하리오. 당신의 용기와 건강한 원기로 대조께서 뒤주 속으로 들어가라 하신들 아무쪼록 들어가지 마실 것이지, 왜 마침내는 들어가셨단 말인가!

왜 들어가셨냐며 한탄한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미묘하다. 물론 왕과 세자의 관계는 더욱 그러하겠지만, 아버지는 아들을 보며 미래를 염려한다. 그러나 아들은 아버지를 보며 거대한 산을 본다. 넘을수 없는 산 말이다. 그래서 역사이래로 아버지는 문화에서 절대로 깨지지 않을 인식이나 틀을 말한다.
아버지를 넘어선다는 것은 도무지 넘을수 없는 인식의 틀, 철학과 예술사적 틀을 깨는 것을 뜻한다. 세자는 아버지라는 거대한 산을 넘기위해 몸부림을 쳤을 것이다. 그리고 영조는 그런 아들을 보며 근심하고 염려한다.
뒤주는 그런의미에서 아버지를 넘어보려는 아들의 '객기'이며, 그런 아들을 가두고 조이려는 아버지 라는 '존재의 강한 인식론적 틀'일 것이다. 이 둘의 싸움은 인간 역사이래로 계속되어 왔다. 그 틀을 깨고 이기면 영웅이 된다. 지면 영원한 이인자로 산다. 결국 세자는 뒤주속으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죽을지는 짐작못했을 지도 모르나. 그것은 젊은 날의 객기와 같은 것이다. 그는 뒤주속으로 들어간다 후회했을 지 모르겠지만 그곳으로 들어가 차라리 죽기를 청한다.

 

@ 네이버 영화 이미지

 

소조께서 나가시자 즉시 대조의 노하신 음성이 들려왔다. 휘녕전이 덕성합과 멀지 않아 담 밑에 사람을 보내 보니, 벌써 용포를 벗고 엎드려 계신다 하였다.
대처분[사도세자가 음모를 꾸몄다 하여 그 죄를 다스리는 것]으로 생각되니 천지가 망극하여 가슴이 무너지고 찢어지는 듯하였다.
거기에 있는 것이 부질없어 세손이 계신 곳으로 와서 서로 붙잡고 어찌할 줄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신시申時[오후 4시] 전후 즈음에 내관이 들어와 소주방燒廚房[바깥 소주방, 대궐 안의 음식 만드는 곳]에 쌀 담는 궤를 내라 한다하시니, 이는 또 무슨 말인고? 놀라서 내지 못하고 세손이 망극한 일이 있는 줄 알고 뜰 앞에 뛰어 들어가 대조께 아뢰었다.
 
“아비를 살려 주옵소서.”
“나가거라!”
 
대조께서 엄하게 말씀하시니, 세손은 할 수 없이 나와서 왕자 재실齋室[왕자가 공부하던 방]에 앉아 있었는데, 그때 그 모습은 고금천지간에 없을 것이다.


세자의 폐위로 인해 혜경궁은 자연스럽게 세손을 보호해야할 의무를 가졌다. 그리하여 영조에게 편지를 보낸다. 세손을 보전해 달라고 말이다. 수많은 남편들이 그렇지만, 모든 어머니들이 아들 편이듯 아내는 내편이 아니다. 아내는 그저 아들이다. 물론 세자는 이런 그의 아내를 보며 아쉬워 하지만, 어쩌겠는가 자신이 배 아파 난 자식인데, 결국 혜경궁은 자신의 아들을 임금의 보위에 오르게 하는 노력을 인정받는다. 

‘처분이 이러하시니 죄인의 처자가 편안히 대궐에 있기가 분에 넘쳐 죄송스럽고, 세손을 오래 밖에 두었기에 죄가 더 중한 몸이 되어 두렵사오니 이제 친정으로 가겠습니다. 은혜로운 마음으로 세손을 보전하여 주옵소서.’


5. 임오화변 이후 한중록의 내용?

이후 한중록은 혜경궁 홍씨의 정조 임금의 보위를 둘러싼 당쟁의 중심에 서게 된다. 어머니로서의 강인함과 홍씨 가문 즉 친정을 살리기 위한 필사의 노력이 엿보인다. 그런의미에서 한중록은 설령 소설과 같은 기억에 의존한 기록이라 할지라도 역사적 가치는 높아보인다. 

 

@네이버 영화 이미지

 


결론에 이르러 영화 사도이야기로 마친다. 
왕위를 지키기 위해 예법과 공부를 중시하는 영조 그에 반해 아버지의 사랑과 관심을 원하는 아들 세자 간의 갈등과 비극을 다루었다. 한편 한중록은 임오화변 즉 사도세자의 죽음에 대한 이유를 살필 목적으로 세자와 부왕인 영조사이의 갈등을 주요 소재로 삼았으며, 훗날 아들 정조가 왕위에 올랐지만, 순조에 이르러 홍씨 가문이 풍비박산이 나는 시대적 정황을 그려내고 있다. 한중록은 말 그대로 한 많은 여인이었던 혜경궁 홍씨가 남편을 잃고 세손 즉 정조를 왕위에 올리기 위한 그 험란한 과정들을 적어낸 기록이다. 

 

http://www.yes24.com/Product/Goods/89604744?OzSrank=1

 

한중록

[요즘책방, 책 읽어드립니다]가 선정한 궁중문학의 진수!시아버지 영조와 남편 사도세자 사이의 갈등에서아들 정조를 지키기 위해 남편을 버린 세자빈 홍씨열 살에 사도세자의 세자빈으로 책봉

www.yes24.com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