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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든지 죽든지 (신학)

주제: 세상 개혁이 먼저가 아닌 교회개혁이 먼저

by 바울과 함께 걸었네 2009. 6.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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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써 한학기가 끝났다.

이글은 조직신학 개론 수업 기말 과제로

한국교회안에 퍼져있는 신학사조를 
조직신학적으로 비판하고 그 대안을 제시하라는
문제에 대해서 나름대로 쓴글이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이 여론조사기관인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지난달 23∼27일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08 한국 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에 따르면 ‘개신교회를 신뢰한다’는 답변은 18.4%에 그쳤다.불신한다’와 ‘신뢰도 불신도 하지 않는다’는 각각 48.3%와 33.3%로 나타났다. 개신교회가 신뢰받기 위해서는 △교인과 교회 지도자들의 언행일치(42%) △다른 종교에 대한 관용(25.8%) △사회봉사(11.9%) △재정 사용의 투명화(11.5%) △교회의 성장제일주의 지양(4.5%) 등이 필요하다는 답변이 나왔다.

 
  필자가 제공한 리서치를 통해서 보자면 한국교회에 널리 퍼져 있는 신학적 사고는 한마디로 말해 ‘
실천적 무신론자의 삶을 살고 있는 세속주의 그리스도인들’이라고 할 수 있다. 세속주의 혹은 세속신학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미국의 복음주의자 마이클 호튼은 이 세속주의를 계몽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 계몽주의의 초자연적인 것을 거부하며, 오직 이성과 같은 자연주의만을 인정하는 데서 등장한 것이 세속주의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세속적인 물결은 교회로 타고 들어오는데, ‘상황화’의 이름으로 답습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하여 현실세계의 하나님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전통적 하나님 초월적 하나님을 거부하고 이 시대의 정치와 경제 기술에서 발견되는 존재하는 하나님에 대한 신학이 발전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세속신학은 기독교에게 정통 교리의 언어가 아닌 세상의 언어로 복음을 재 진술해야 함을 요구 했고, 결과적으로 세속신학은 하나님 없는 세상을 만들어 버렸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리하여 해방신학, 민중신학, 정치신학, 특히 신 죽음의 신학은 세속신학의 변형이라 할수 있다.

  
 물론 한국교회 내의 보수적인 상황에서 이렇게 진보적이고 극단적인 신학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것은 이러한
세속신학의 가치관은 한국교회안에 이미 널리퍼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 언급한 리서치를 통해 우리는 한국교회의 가장 큰 문제가 성도와 지도자들의 언행일치의 문제를 꼽았다. 이를 필자는 이미 ‘실천적 무신론자들’이라고 비난하였다. 교회안에서는 성도로써 거룩하게 사는, 그러나 세상에서는 하나님 없는 것처럼 사는 사람들이 바로 실천적 무신론자들이다.

 
  최근에 한국교회는 목회자의 교회 세습문제, 비윤리적인 문제들로 진통을 겪었다. 또한 대기업의 회장, 국회의원이며 심지어 대통령까지 한국교회의 성도들이 한국교회의 권력의 핵심이 되면서 그들안에 정직하며 순결하게 청지기적사명을 가지고 살기보다는 도리어 하나님이 없는 시대에 사는 것처럼 부정직함 가운데 살게 되었다. 이런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세상 사람들이 실망을 감추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은 점점 교회가 대형화 되어가고 있으며 세속권력의 중심으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서있게 되면서 이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자 하는 강력한 열정에서 시작된 결과라고 생각된다. 하나님의 복음으로 이 세상을 정복하고 마침내 이땅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가 오기를 우리는 간절히 원한다. 그러나 세속주의는 리차드 니버가 제시하는
변혁자 그리스도 유형을 충분히 오해한데서 나온다. 세상을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변화 시키는 것을 현대에 이르러 우리는 점점 경제, 정치, 문화, 교육등 우리의 삶의 모든 부분을 기독교화 시키는 것으로 오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기독교 윤리학자 스탠리 하우어워스는 ‘콘스탄틴주의’라고 이름을 붙였다. 

  
  분명 우리는 변혁자 그리스도의 모습을 비전으로 삼고 본받을 필요는 있다. 그러나 과연
니버의 변혁자 그리스도 유형은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세상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향해 우리가 가진 복음의 능력을 보여주고 교회의 소망을 보여줄수 있을까?

  세속신학
이란 바로 우리가 오히려 변혁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향해 복음의 진리를 외치기보다 수백억대의 거대한 교회건물을 세우며 자식에게 세습시키고, 서로 총회장이 되려하고, 무조건 낙태는 살인행위라 외치며, 사학법 철회를 외치며, 뉴라이트 운동을 통해서 이땅을 진정한 기독교국가가 되게 하고자 하는데 있다. 이것은 철저히 하나님이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기독교 국가를 건설하겠다는 데에 마음을 두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권력기반을 장악하도록 부름받은 것이 아니라 보복과 마지막 심판은 하나님에게 속한 것임을 인정하고 우리가 있는 곳이면 어느 곳이든지 ‘소금과 빛’이 되라는 부르심을 받았다. 기독교 변증가 이며 철학자인 오스 기니스는 “오늘의 문제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이 있어야 할자리에 있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들이 있는 처소에서 그들이 마땅히 되어야 할 사람이 안되고 있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과연 이시대 교회는 그리스도인들이 치열한 세상 안에서 순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살도록 그들을 돕고 있는가?  필자는 세속신학에 물든 세속교회를
바르멘 선언의 칼 바르트의 고백 교회를 중심으로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바르멘선언
은 1934년 5월 31일 독일의 고백교회의 총회가 바르멘에서 발표한 신학선언이다. 바르멘 선언 제3조를 살펴보면 ‘이 그리스도의 교회는 은총을 입은 죄인들의 교회로서, 죄 많은 세상 한복판에서 그자신의 신앙과 순종과 복음과 질서를 통해......증거해야 만한다 ......세상 이념이나 정치적 신념으로 바꿀수 있다고 가르치는 그릇된 교설을 배격한다’

 
 기독교 윤리학자인 스탠리 하우어워스 역시 고백교회를 대안으로 내걸고 있다 “고백교회는 사회를 변혁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아니다. 오히려 효율성과 변혁을 추구하는 행동주의와 세속주의를 거부한다. 오히려 고백교회는 회중으로 하여금 만물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를 예배하도록 결단케 하는데 있다.” 고백교회는 공동체를 이룸으로 이 세상에 영향을 끼치려고 한다.
 
 진정한 교회란 믿음과 비전이라는 선물을 갖지 못한 세상으로서 알 수도 될 수도 없는 것이요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허락 되는 것이다. 고백교회는 가시적인 교회가 되기를 원한다. 가시적인 교회란 그 안에 속한 사람들이 약속에 충실하며 원수를 사랑하고 진리를 말하며 가난 한 사람들을 존중하고 의로운 일을 위해 고난당하는 삶을 사는 것, 자신의 신앙과 순종과 복음과 질서를 통해 세상을 향해 그리스도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장소이다. 세속신학은 세상을 향한 개혁의 외침으로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교회에 안에 있는 회중들의 마음이 먼저 개혁 될 때에 가능하다.


참고서적

-마이클호튼,세상의 포로된교회. 부흥과개혁사.
-목창균,현대신학논쟁.두란노.
-김명용,칼바르트의신학.이레.
-리차드 니버,그리스도와 문화.대한기독교서회
-스탠리 하우어워스,하나님나라의 나그네된 백성.복있는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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