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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한 기대 (삶)/책과 삶

떨림과 울림, 김상욱저

by 바울과 함께 걸었네 2021. 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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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는 떨림이다. 정지한 것들은 모두 떨고 있다. 수천 년 동안 한자리에 말없이 서 있는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떨고 있다. 그 떨림이 너무 미약하여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을 뿐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그 미세한 떨림을 볼 수 있다. 소리는 떨림이다. 우리가 말하는 동안 공기가 떤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공기의 미세한 떨림이 나의 말을 상대의 귀까지 전달해준다.
(중략)
사랑고백을 하는 사람의 눈동자는 미세하게 떨린다. 그 고백을 듣는 사람의 심장도 평소보다 빨리 떤다. 우주의 숨겨진 비밀을 이해했을 때, 과학자는 전율을 느낀다. 전율은 두려움에 몸을 떠는 것이지만 감격에 겨울 때에도 몸이 떨린다. 예술은 우리를 떨게 만든다. 음악은 그 자체로 떨림의 예술이지만 그것을 느끼는 나의 몸과 마음도 함께 떤다.
인간은 울림이다. 우리는 주변에 존재하는 수많은 떨림에 울림으로 반응한다. 세상을 떠난 친구의 사진은 마음을 울리고, 영화 <레미제라블>의 ‘민중의 노래’는 심장을 울리고, 멋진 상대는 머릿속의 사이렌을 울린다. 우리는 다른 이의 떨림에 울림으로 답하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나의 울림이 또 다른 떨림이 되어 새로운 울림으로 보답받기를 바란다. 이렇게 인간은 울림이고 떨림이다."
- 김상욱, <떨림과 울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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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읽는 책을 소개한다.
요즈음 핫한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의 '떨림과 울림'이라는 책이다.
이책의 저자는 물리학자이며 무신론자이지만,
책의 내용은 우주를 통해 인간 존재를 다루며
물리라는 학문을 통해 인간의 삶의 전반을 다루고 있어서 목사로서 재미있게 읽고 있는 중

위의 글은 책의 서론의 첫 문장이다.
떨림과 울림이라…

이 책이 내게준 큰 공헌은 다음과 같다.
첫째, 물리학에서 다루는 물리의 영역은 하나님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물리학은 어려운 과학개념의 일부이며, 신의 영역과 존립할수 없는 즉 세속영역, 과학과 합리라는 개념아래에 놓여진 불경한 영역일것이라는 오해를 깨트린 것이다.
적어도 물리학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이치, 물질 등을 자세히 관찰하며 영광과 찬송으로 응답하는 것일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책의 저자는 스스로를 무신론자라고 밝히고 있다. 우주의 근원, 인간의 존재에 대한 저자의 깊은 고뇌속에는 하나님의 존재를 발견케한다. 적어도 그의 글속에서 말이다.
" 모든 사람은 죽는다. 죽으면 육체는 먼지가 되어 사라진다. 어린시절 죽음이 가장 두려운 상상이었던 이유다. 하지만 원자론의 입장에서 죽음은 단지 원자들이 흩어지는 일이다. 원자는 불멸하니까 인간의 탄생과 죽음은 단지 원자들이 모였다가 흩어지는 것과 다르지 않다. 누군가 죽음으로 너무 슬플때는 우리 존재가 원자로 구성되었음을 떠올려보라. 그의 몸은 원자로 산산히 나뉘어 또다른 무엇인가의 일부가 될테니까..." 20쪽
저자가 밝힌대로, 모든 사람은 죽는다는 것 우리의 존재가 먼지로 되돌아간다는 것. 저자에게 세상은 원자로 구성되었고 결국에는 다시 원자로 흩어진다. 인간은 결국은 원자가되어 자연으로 흩어진다고 믿는다.
이 숭고한 진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세계와 잇닿을수 밖에 없다. 인간에게 죽음이 있는한 하나님의 존재를 한순간도 잊을수 없다. 물론 이 일반은총에 대한 인간들의 오해는 우리의 존재가 결국 하나님앞으로 간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게 하지만 말이다.

둘째, 물리학에서 다루는 시간의 개념은 하나님의 개념이라는 것이다.
보수적인 신앙을 해온 내게 진화론에 대한 거부감은 이루말할것도 없이 크다. 지금도 사실 여전하다.
책을 통해서 깊이 들여다본 진화론의 문제는 결국 시간에 관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주의 기원이라든지 인간의 존재의 기원이라든지 이런 심오한 부분은 적어도 세속의 영역에서는 시간의 문제와 연결되어있다.
소위 엔트로피의 증가의 법칙 말이다. '엔트로피는 증가한다.'
물리학의 문외한인 필자는 엔트로피는 증가한다 라는 이 명제를 어떻게 이해할지 몰라 당황했다. 하지만 저자는 친절하게 큐브를 통하여 설명해준다.
"큐브를 돌리는 과정이 시간이 흐르는 것과 같다고 생각해보자. 큐브를 돌리는 방향에 제약은 없다. 시계방향으로 돌린 것을 뒤집으려면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리면된다. 물리법칙에 시간의 방향성이 없다는 것은 큐브를 돌리는 방향에 아무런 제약이 없다는 것과 같다..... 큐브의 색이 맞아있는 상태에서 시작하여 무작위로 돌리면 색이 흐트러진다.......... 큐브의 색이 맞아있는 상태가 과거이고 큐브의 색이 흐트러진 상태가 미래라고 하면된다. 큐브를 부작위로 돌리면 과거에서 미래로만 가며 그반대 과정은 일어나지 않는다. 시간이 오직 한방향으로만 흐르는 것 이를 시간의 화살이라고 부른다... "

저자는 큐브가 잘 맞춰진 상태(과거) 에서 무작위로 돌려서 흐트러진 상태(미래)가 되는 것을 시간이 한 방향으로 흐르고있음을 설명한다. 시간은 분명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흐르고 있다. 그리고 미래로 흐르는 시간은 되돌리수 없다. 설사 되돌릴수 있다고 할지라도 그 가능성은 지극히 작다. 저자는 또한 잉크를 이용하여 시간의 흐름, 엔트로피의 증가의 법칙을 친절하게 설명한다.
"물에 잉크를 한 방울 떨어뜨리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잉크가 퍼져서 물전체가 뿌옇게 된다. 하지만 가만히 놓아둔 뿌연 물이 맑은 물과 잉크 한방울로 스스로 분리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잉크가 한곳에 방울로 모여있는 것보다 퍼져있는 경우의 수가 많기 때무이다. 즉 잉크가 퍼져가는 과정은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과정인것이다. "
그러면 우주는 분명 시간을 거슬러가면 '큐브가 잘 맞춰진 상태', '잉크가 물에 떨여져 여기저기 퍼져가기 전에 그 한방울' 이 된 상태가 분명히 있어야 한다. 저자는 우주가 한점에서 출발한 순간을 빅뱅이라고 말한다.
빅뱅, 목회자로서 빅뱅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적어도 나는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믿음의 바탕에 서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창세기의 천지창조의 신화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적어도 창세기는 천지창조의 과학적이며 합리적인 증인이자 증거로서 기록의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빅뱅이라는 우주적 기원이나 시점이 있었다고 할지라도 내 믿음은 흔들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빅뱅이라는 시점자체도 하나님의 시간, 하나님의 역사적 개입이 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을때 빅뱅이라는 방식을 사용하여 파생된 먼지들 즉 작은 분자들이 화학반응을 일으켜 생명이 탄생하거나, 행성이 탄생할수 있는 가능성도 배재할수 없기때문이다. 작은 먼지들의 움직임 조차도 하나님의 섬세한 개입이라고 믿으면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의 지성을 완전히 초월하는 능력이 된다. 대신 그 모든 가능성을 우연이라는 이름으로 축소시키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에게 일어난 물리라는 영역이 과학적으로 증거가 불분명하다하여 그저 우연의 산물이거나 공허의 공간으로 남기지 않기를 바란다. 창조론이든 진화론이든 그 어떤 것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제한하지 않기를 바란다.
적어도 물리라는 영역이 내게 준 큰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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